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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69년 스위스의 취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 작가는 최재봉의 글에서 알게되었다. 최재봉은 한겨레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한 때 내가 그 신문을 받아 보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가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묶어 나온 책이 있긴 하지만, 그가 언급한 글들을 읽으려면 내가 너무 힘들 거 같아서 그의 책은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 근데 '저기 네가 오고 있다'라는 사랑에 관한 에세이집을 뒤적이다가 최재봉의 글을 접하게 되고 그 글을 통해 보통씨를, 다행히도 독서광 정희샘에게 그의 책이 있어 방학동안에 읽어야 할 책 1순위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 사이에 내가 있는 이 곳과 너무도 다른 나라에 있는 정순샘이 부러워 더욱 관심을 끄는 책이기도 하다. 정순씨, 그 곳 괜찮은가요? 외롭겠다라고 하는 내 걱정에 그게 너무 좋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떠난 그녀의 긴 여행....
나에게 여행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가거나, 지독한 고독과 마주 하거나하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같은 곳에서 눈을 뜨고, 밤이 오면 눈을 감아야 하는 그 끊임 없는 반복이 너무 지겨워져서, 익숙한 공기 말고 색다른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 들이면 좀 힘이 날까 싶어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므로 뭔가를 보고 느끼고 그런 것이 만족되면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 없는 거.. 그게 내가 하는 여행이지 싶다.
보통씨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은 보들레르나 플로베르와 같은 지성을 안내자로 내세워 그들의 삶과 생각을 빌어 여행에 관한 여러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1. 출발
- 기대에 대하여
여행에 대한 기대는 실재와 너무 다르다. 위스망스가 쓴 소설의 주인공 데제생트 공작은 여행의 실제 경험이 상상보다 못하다는 판단으로 더이상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씨는 데제생트의 의견에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난다. 결과를 잘 알면서도 원인을 만드는 거.. 그것이 삶과 여행이 동시에 가지는 모순이 아닐까?
-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샤를 보들레르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글을 이용하여 쓴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한 이 부분 참 좋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 배,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그래도 여행을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비행기의 이륙처럼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호퍼의 그림... 저마다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여행의 장소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그래도 괜찮다.
2. 동기
-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이집트를 사랑한 플로베르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요부분을 읽다 보니 여행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보통씨의 글에 약간 짜증이 나려고 한다. 자신의 나라 프랑스를 사랑하지 못한 플로베르는 대신 이국, 특히 이집트를 동경하여 그 곳에서 오래 생활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조국을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정해야 한다는 어불성설 같은 말로 독자를 우롱하는 듯한 그런 느낌.. 여행의 기술이라는 이 책에서는 도저히 여행을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 호기심에 대하여
이 책의 좋은 점은 다양한 지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새롭게 알게 된 인물.. 알렉산드 폰 홈볼트 (독일의 자연 과학자, 남 아메리카에 대한 자연적 사실을 유럽에 최초로 알린 사람)...
그는 오직 사실을 지식으로 축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이런 그에게 니체와 괴테의 말을 빌어 "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라고 보통씨는 말한다. 그러나 아무런 호기심 없이 가장 매혹적인 도시에서조차도 집으로 돌아 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는 말로써 마찬가지로 여행의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여행의 기술은 이국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보통씨는 말하고 싶은가 보다.
3. 풍경
-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 숭고함에 대하여
이번에 보통씨는 워즈워드의 말을 빈다. " 자연은 도시의 삶으로 인한심리적 피혜를 치료하는 불가결한 약이다." 이 말에는 나도 동감... 그리고 광대한 자연이 주는 숭고함을 통해 자칫 교만에 빠지기 쉬운 인간은 겸허와 수용하는 자세를 배운다. 어쩌면 여행을 통해 우리가 정말 얻어야 할 것이 마음의 안정과 겸허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 나는 박물관과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들.. 즉 인간의 창작품들에 경기를 느끼다가 질려 버리고 만 적이 있다. 너무 볼 것들이 많고, 내가 모르는 것이 많아 정신이 마비되고 만 것이다. 그러한 그로키 상태를 이겨내게 해 준 것이 스위스의 융프라우이다. 여름에도 눈을 머리에 쓰고 있는 대자연.... 그 앞에서 난 마음의 평화와 겸허함을 얻었다.
4. 예술
-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그림들은 화가의 시각을 통하여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는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러므로 예술품들은 여행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여행의 보조자가 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얻게 되는 아름다움은 글과 그림을 통하여 표현이 될 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말그림으로..
5. 귀환
- 습관에 대하여
드디어 보통씨와 함께 한 여행이 끝나고 보통씨가 사는 영국의 마을 런던의 해머스미스에 돌아왔다. 근데, 왠 엉뚱한 결말? 갑자기 습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일상화된 습관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먼 곳을 떠돌다 왔으면 멋진 말 한 마디를 남겨야 하는 거 아니가? 그런데 아니 일상의 습관이라니...
결국 멋진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행의 결론을 이야기하기는 한다. 멀리 떠나려고 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들에 다시 주목하라고.. 예를 들면 내가 늘 걷는 거리를 다른 곳에 닿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거리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있도록 말이다. 음..
보통씨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님을 말한다. 결국 나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세심히 바라 보는 것 또한 멋진 여행임을 그 안에 살아가는 힘이 있음을 말한다. 조금은 진부한 결론, 모두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잘 안되는 그런 교훈을 전해 주려 한다.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그의 박학다식으로 말미암아 문장은 제법 읽을 만하다.
특히 보들레르..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그러나.. 그런들....!!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늘 여기서 떠나기를 갈망하지만, 어쩔 수 없이 꼭 돌아오고야 마는 여기...
다시 처음으로..
이 책의 제목은 여행의 기술이다. 그냥 세계의 지성과 함께 한 여행기라고 하면 더 맞겠다. 어쨌든 어떤 이유로 느끼게 되는 일상의 불행은 여행을 종용한다. 그것도 내가 익숙한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의 일탈적 여행말이다. 그 여행을 잘 하는 방법은 강한 호기심을 지닐 것, 남이 먼저 한 여행기에서 벗어날 것, 목적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곳곳이므로 세심히 관찰하고 글 또는 그림으로 남길 것.. 돌아와서는 일상을 새롭게 볼 것.. 그게 바로 여행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