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가벼운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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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싱글이다, 왜? - 하느님도 싱글이란 거 몰라? 제발 좀 그만 괴롭혀!
카렌 살만손 글, 에드 포더링햄 그림, 전지운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에 너무도 당당해 보이는 한 여자가 누워있다. 그리고 도전적으로 말한다. “그래! 나 싱글 이다, 왜?”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써 있는 말이 가관이다. “하느님도 싱글 이란 거 몰라?”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자신의 싱글을 동격화하는 이 짧은 한 줄의 낙서를 보면서 이 책의 당돌함에 웃음을 흘리며 책을 펼친다. 그러나 이게 책인가? 몇 줄의 낙서나 그림을 삽입해 놓고 한 권으로 묶어내면 책이 되는 당돌함의 다양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다다르면 황당함에 속았다는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이건 분명히 책이다. 싱글에 관한 나름대로의 경험과 분석과 관찰로 다듬어진 싱글 예찬론이 펼쳐진다.
나이에 이끌려 결혼의 제도를 따라가는 인류의 관습은 종족보존과 생리적 본능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혼인을 선택한다. 주변인들의 의례적인 선택과 강요에 의하여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우리에게 보편적인 혼인 제도를 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독신주의자도 아니다. 예전에는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에 나오는 ‘성하상’같은 속이 깊고 희생적이며 한 여자에 대한 지조를 버리지 않는 근사한 남자를 만나면 결혼하겠다고 하는 남자에 대한 환타지도 가지고 있었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면서 세상과 불협화음으로 지내는 알코올 중독자 ‘니콜라스 케이지’ 같은 남자를 만나고도 싶었다. 나의 깊은 사랑으로 한 남자를 구원해 내는 모습은 얼마나 영화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말 그대로 환타지에 불과한 상상속의 흐릿한 몽상의 골목길에서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막상 한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방의 나를 위한 애정의 표현을 구속이나, 집착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이상한 나의 시각이 결혼을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지금은 ‘돈’만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결혼은 이제 나와 상관없고(아니, 언제는 상관있는 명제였던 적이 있던가)싱글로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들이 닥칠 때 혼자서도 거뜬히 밀어 붙일 수 있는 ‘돈’과 결혼하고 싶을 뿐이다. 너무 노골적인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냐고? 천만에. 사람은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좀 더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돈’보다는 ‘사랑’이 더 귀중하다는 흔해빠진 진부한 말을 한 번 더 해야겠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역시 ‘사랑’의 힘은 ‘돈’의 힘보다 강했다. 때로는 이것이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아 상처를 받지만 종국엔 그랬다. 그래서 인류는 여전히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이다.
이 황당하고 귀여운 책에는 26가지의 싱글로서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합리화적인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부록이랍시고 싱글의 생활을 편리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보도 실려 있는데, 정말 이 정보들이 싱글에게 얼마만큼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내가 보기에는 친구들끼리 한창 몰려다니며 수다를 떠는 여중생들의 가벼운 낙서장이나 눈요기로는 그만인 책이지만 이 책을 인지도가 낯설지 않은 <디자인 하우스>에서 출판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다. 일회성으로 던져질 이 작은 흥밋거리 책을 출간하기 위하여 번역을 하고(번역자는 몇 시간 만에 작업을 끝냈을 것으로 추측된다)유통과 소비의 거리를 측정했을 마케팅 회의를 떠올려 본다. 책이 작다고 해서 책값이 작은 것은 아니다. 경제적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제목이 주는 당당함과는 다르게 이 책이 주는 싱글의 이미지란 이거다. “그동안 잘해왔던 일조차도 상대방에게 미루는 의지박약의 수동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을 텐데...물론, 살아 봐야 아는 일이겠지만요. 그래서 인생을 도박이라고 하는 거겠죠.” 한다.(45쪽) 이 대목 말고도 책의 곳곳에는 결혼을 늪처럼 여기거나,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기며 결혼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내용들이 즐비하다. 아니, 결혼제도 그 자체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작은 책의 결론은 결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어느 한 싱글의 그렇고 그런 자기 생각을 수다로 떠들은 것뿐이다.
이 책은 친구 K로부터 선물 받은 것인데, 그녀의 취향에 맞는 책을 나에게 골라 주었다. 그녀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웃을 수 있어서 그나마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