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본 살인 사건 - 하 - 백탑파白塔派 그 첫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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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소설을 즐겨 하는 편은 아니지만, 기이한 상상력과 막연한 놀래킴을 위주로 하는 이전의 소설들과는 달리, 최근의 추리소설들은 방대한 자료와 심도 있는 작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친구의 추천이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읽고 싶어지는 문학의 한 부분이다.  내가 빠져 읽었던 ' 다빈치코드'나 새로 읽기 시작한 '히스토리아' 가 그러한 듯한데, '방각본 살인사건'은 박지원을 필두로한 '백탑파' 이야기이고 우리 나라 작가에 의해 쓰여진 추리 소설이므로, 글의 완성도가 높았으면 하는 바램이 컸나 보다.

허나 다 읽은 후 느낌을 간략히 말하면, 18세기 조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으나, 독자를 소설속으로 매료시키는 추리적 장치들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문체적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조금은 안타까움을 주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박제가가 서문을 썼다는 <백화보>의 저자 김덕형 - 소설속에서는 김진- 을 주인공으로 세워 실마리를 풀고, 그의 탁월한 능력에 위축도 되고 도움도 받는 의금부 도사 이명방의 서술로 진행된다. 정민 교수의 <미쳐야미친다>의 - 벽에 들린 사람들 -이라는 부분에 소개된 적이 있는 사람인 꽃에 미친 김군은 아침부터 밤까지 꽃을 관찰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꽃을  표현해 내려 애쓰는데 그의 이런 벽은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말든 ,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자신의 온몸을 던져 하나를 이뤄낸다. 허나 그의 유작 <백화보>는 현전하지 않는단다.

광기 넘치는 마니아의 시대- 18세기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그래도 마음에서 놓지 않았던  변화와 변혁에의 희망을 소설에 걸었던 걸까? 허균이 <홍길동전>을 통하여 현실의 불화를 견뎌내고 승화시키려 한 것처럼 ...  조선후기에 들면서 상인들에 의해 방각본 소설이 등장한 것은 한정된 필사본으로서 만족하지 못했던 소설 대중들의 요구에도 부합하여 이루진 듯하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에는 늘 청운몽의 소설이 있었다.

새로운 문물을 배울 것을 주장하는 북학파와 명에 대한 사대 및 소중화를 주창하는 세력간 다툼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보다는 백탑파의 인물망과 그들의 인용된 글을 읽는 즐거움으로 책을 펼치면 좋겠다. 그리고 소설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해 보는 계기를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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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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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는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몸짓에 가슴이 죄어와 눈시울 붉어지는 일이 많아졌다. 밥집 아줌마가 두른 앞치마에서, 도심 한 가운데  내 팔을 잡아 끌며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대는 가까운 내 친구에게까지  남들이 눈치 채지 않을 정도로만 내 눈은 순간적으로 빨개졌다가 다행히도 금세 원상복귀 되었다.

어릴 적 엄마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젼을 보면서 엄마 눈에 눈물이 흐를 때면 놀림 반, 지청구 반을 섞어 ' 얼레리요... 요게 뭐가 그리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시나.. ~~"  라며 어른들은 왠 눈물이 저리도 많은 걸까... 어린 나로서는 이해 되지 않는 그 세계가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불쌍하기도 해서 간지럼 태우며 웃기려 애쓰던 그 시절.

우리 엄마한테는 슬픈 이야기가 많다. 우리 엄마의 모든 슬픔은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7쪽)

어느날인가.. 멀리 여행을 다녀 온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줬다. 여기는 어디를 배경으로 한 사진인데 사진 잘 나오지 않았느냐며 자랑을 늘어 놓으려는 찰나에 " 어~~ 너 눈 밑에 점.. 눈물점이네...눈물점 있는 사람은 눈물이 많다던데..." 한다.  내게 늘 있던 점이라 거울을 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새롭게 각성된 이 눈물점은 그날 이후 자꾸만 색다른 의미로 각색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보리...

내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 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10쪽)

보리의 견생 역정을 귀 기울여 듣다 보니, 개의 삶도 인간 만큼 눈물겨웠다. 태어남의 기쁨과 자랑은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함께 하기에 그래도 아름답다 하는 것일까.... 선택한 삶이 아닌 주어진 삶을 받아 들이는 성숙한 삶의 자세와, 주어진 삶의 범위에서 새롭게 선택하며 견딜 수 없는 것들조차  견디며 한 걸음씩 내 딛는 모든 삶의 길은 눈물겹다.

올 해 열 한 살 먹은 조카가 말한다. ' 저는 개를 키우고 싶은데요. 엄마가 절대 안 된대요. 사람들은 저들이 개랑 놀아 준다고 말하는데요. 저는 개가 심심한 사람들을 위해 놀아 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심심한 게 정말 싫어요"

사람과 개는 저마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쩌면 아주 먼 어느 전생에 옷깃을 스친 인연이 있었겠지.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 태어나고 익숙했던 이들과 이별하며 인생을 배운다. 봄이 오고 가을이 가듯이 보리에게는 마룻바닥에 쏫아져 내린 똥조차 낼름 맛있게 먹어 버릴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이고 슬픈 어머니와 아릿한 냄새로 남은 흰순이와의 서글픈 이별이 또 기다리겠지...그러나 보리는 살아가리라...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어디로 가든 내 굳은 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130-131쪽)

보리야!! 열심히 달릴 거지? 그래 함께 뛰어 보자구나... 영희처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날아도 볼까? 가슴에 뛰는 벅찬 소리가 들리는데, 왜 또 눈물이 나는 건지....나도 엄마처럼 나이를 먹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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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 운영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
조현설 지음, 김은정 그림 / 나라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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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랑의 책을 품고 속세를 떠난 선비 유영에게 ..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이 시는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인데요. 유영 선비님께 들려드리고 싶네요. 시의 화자가 선비님을 닯지 않았나요? 운영이의 사랑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셨잖아요...... 선비님이 그네들을 만난 것은 꽃 피는 봄이었고, 제가 그들을 만난 것은 나뭇잎 떨어지는 지금, 가을입니다.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야기에 저 역시 선비님 못지 않게 마음이 아팠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다니요....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만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오세요. 지금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져서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은 거의 없답니다. 오히려 사랑의 대상을 너무 쉽게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져 운영이와 김진사처럼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모습을 사랑의 모범답안으로 설정해야할 지경이라니까요.

전 궁녀 운영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은 정말 사소한데서 시작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운영이였고, 늘 사람을 그리워한 모습을 그녀의 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그녀의 손가락에 김진사가 흘린 먹물 한방울 때문에 위험한 사랑을 시작하다니요? 그렇지 않나요? 김진사 역시 운영이와 말 한마디 해 본 적 없는데, 그녀를 보고 간 그 다음부터 상사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하고 말았으니요. 또 사랑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열 명의 궁녀들에게 처음 시를 지어 올리라 했을 때, 멀리 바라보니 푸른 연기는 가늘기도 한데 미인은 문득 비단 짜기를 멈추네 바람을 쏘이며 홀로 슬퍼하니 생각은 하늘 날아 무산에 떨어지네 라고 운영이 지었답니다. 저는 아직 한시의 맛과 그 의미를 잘 모릅니다만, 안평대군은 대번에 운영의 시만이 외로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뜻이 있구나라고 평하더군요. ‘무산’은 남녀간의 사랑이 이루어진 장소이므로, 무산에 생각이 떨어진다는 말은 사랑을 늘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유영님! 그래도 운영과 김진사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지 않나요?

당시의 궁녀는 한 번 궁에 들어가면 평생을 임금과 대군을 위해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궁의 담장을 뛰어넘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으니 말이에요. 사랑의 마음은 자신의 몸이 타는지도 모르나봐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을 성취했으니 둘은 죽었어도 여한은 없을 것 같습니다.

유영님!! 가을입니다. 선비님이 세상을 등지신 것은,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과 사람의 삶이 참 허무하구나란 그런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 사람의 신분이 제약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김진사의 하인 ‘특’은 방해하지 않았나요? 또 안평대군과 궁녀들이 머물렀던 아름다운 수성궁은 몇 번의 전란으로 재가 되어, 섬돌 위에 피어오른 꽃만 향기롭고 무성해서 봄빛을 자랑하고 있으니 인생이 허무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이젠 돌아오세요. 가을입니다. 쓸쓸하긴 하지만 올망졸망한 가을 열매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와 못다하신 유영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시길 바래요. 그리고 저도 꼭 찾아 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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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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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책은 우리 선현들의 훌륭한 글을 오늘에 되살려 일반 대중들에게 풀어 냄을 일생의 목표로 삼은 듯한 느낌을 준다. 나의 고문 읽기 역시, 정민 교수의 맛깔스런 해설 덕을 톡톡히 받은지라 그의 책이 발간되었다하면 무의식중에도 관심이 일기 일쑤다. <죽비소리>역시 정민 교수의 저력을 믿고 지난 1월에 주문했다.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이라는 부제는 책의 도착에 대한 기다림의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하였다.

책은 농부의 할 일을 달별로 엮은 '농가월령가'를 따라 열 두장으로 나눴다는데,  그 나열 순서와는 상관 없이 독자가 원하는 부분을 펼쳐  선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 마음밭을 가꾸고 제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겠구나 싶다. 한 번에 몽땅 읽을 수는 있으나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으므로 가까이 두고 오랫동안  씹어 음미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한 책이다.

사실, 주문한 책을 받아 들고 몇 장을 뒤적거리면서는 기대했던 죽비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민 교수의 다른 책에서 보았던 문장들이 중복된 것이 많아 식상했고, 원문의 부분을 빌어와 급하게 엮은 책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으며, 역자의 해석이 때로는 걸리적거리는 것이 나만의 생각을 가로막는 듯해 유쾌하지 못했다. 고려말에서 조선후기를 풍미했던 문장가들의 명문장들이라는데, 가슴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문장들이 원망스러워 나의 <죽비소리>는 책장에 한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죽비소리를 듣고 싶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 무미건조한 일상속에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주는 그 말씀을 나는 듣고 싶은 것이다.

옛사람의 책 속에 문자가 수도 없지만 뜻이 없으면 내가 가져다 쓰지 못한다.  - 296쪽

그렇다. 소동파의 말씀처럼 그 때 내게는 죽비소리를 들을 뜻이 없었던 거다.  내게로 내려 쳐 지는 죽비는 있었으나 그 소리와 아픔이 내게 와 닿지 못했던 것은  내 마음이 우리 선조님들에게서 너무나 멀리 존재 했기 때문이리라.... 뜻이 있는 곳에 비로소 말씀을 듣는 귀와 깨달음의 길이 있는 것이리라...

어제도 할 수 없고 오늘도 할 수 없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 18쪽

이처럼 무엇이든 버리지 말고 한 켠에 묵혀 두면 그에 대해 삼가 마음 열리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

무디어진 삶에 대한 경계를 주는 말씀을 묶어 놓은 책은 많지만, <죽비소리>는 고스란히 우리것을 묶어 놓은 것임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우리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의 뿌리로부터 끌어 올려지는 정신의 에너지는 다른 어떤 영양분들보다 알찬 열매를 맺게 해 줄 터이니...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화답하는 글이로다 . - 144쪽

문자가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듯, 죽비소리 역시 우리의 일상속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님의 삶속에 있고, 이름 없이 제 꽃을 피우는 들꽃에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비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 자세이다. <죽비소리>에는 내 가까운 어른들의 말씀이 있었고, 말씀속에는 깨달음을 종용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민 교수의 고문 해석과 글쓰기 방식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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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가득 2005-09-1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갸우뚱^^
 
근원수필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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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날... 날은 더워 땀 빨빨 흘리며 앉았으나 마음은 벌써 가을이다. 급한 성질 어디가랴마는 파란 나무 끝에 살짝 든 가을빛과  앞집 마당에 줄을 타고 올라가는 노란 수세미꽃이 내 시선을 잡아끈다. 어렸을 때 우리집에도 자그마한 마당이 있어, 봄에는 홍목련을, 여름에는 커다란 토란잎에 빗방울이 또르륵 흐르는 정경, 가을에는 대추 몇 알, 겨울에는 황량한 나목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모두 메워 방을 만들어 버린 바람에 흙이 있는 땅과 우리집은 멀어지고 말았다.

그 때는 흙을 버리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건물에서 거실과 부엌이 서로 통하고, 타일과 연탄 아궁이를 없애고 씽크대를 들여 놓아 한껏 신식화된 집에서 생활하는게 정말 좋았다. 우리는 왜 아파트로 이사를 못가는가라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나마 이게 어딘가 싶은 생각에 적지 않은 만족감으로 생활한지 10여년.....그런데 지금은 우리집에도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든다.

몇 주전에 마법의 콩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씨앗 한 알이 심겨 있는 아동용 화분을 얻었다.  물을 준 후 열 흘쯤 지나니, 싹이 나서 잎이 되고, 그 이파리에는 " I love you"란 글귀가 뜨는데,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찐한 감동으로 전해온다.  하앗!!~~ 요 조그마한 자연이 주는 기쁨이 이러한데, 마당이라도 있어 꽃을 심고 풀을 심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그 크기가 얼마만 할까?

다행이도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주가 있다.  최근에는 경주의 여러 못들 군데 군데에 피어 있는 연꽃을 눈에 넣어 왔는데, 아름다운 것은 꽃이지만 매력적인 것은 연잎이기도 하다. 둥굴한 이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에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엔 꼭 와서, 비 듣는 소리를 들어 봐야겠구나 싶다. 오늘의 이 텁텁한 날씨는 아무래도 비님을 몰고 오는 전조이지 싶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에 이은 근원 김용준...!!

평생 남의 흉내나 내다가 죽어 버릴 인간이라해서 근원이라 했다는데, 그의 겸손함이 드러나는 이 평가보다는 단원과 오원에 가깝다는 뜻인가?하고 물었던 그의 친구들의 평이 더 맞지 않을까 한다. 내가 비록 그의 그림을 보지 않았어도....^^ 말이다.

그의 글은 알라딘의 여러님의 평대로 영혼의 맑은 향기가 맡아지고, 세월을 비껴 가는 듯, 지금 읽어도 식상하지 않게 신선한 맛을 준다. 예술가답게 일상과 미감을 솔직담백 예민하게 펼쳐 놓은 그의 수필은 가을에 읽어도 좋겠다. 가을은 사색 계절.. 수필은 사색의 산물.... 

실례의 말씀이오나 '하도 오래간만에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청하신 선생의 말씀에 서슴지 않고 응한 것은 실은 선생을 대한다는 기쁨보다 댁에 매화가 만발하다는 소식을 들은 때문입니다. (9쪽)

7, 80년 된 감나무가 이 집에 사는 주인인 나로 하여금 얼마나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지 지금에 와서는 마치 감나무가 주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감나무를 위해 사는 것쯤 된지라 (76쪽)

매화는 기르기가 힘드니 한 번 심어 놓고 간간이 물을 주며 정들고 싶은 감나무 또는 다른 과실 나무를 심어 나를 보러 아니 오더라도, 손님에게 보는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나에게도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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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가득 2005-09-0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하하... 그럼 저도 가을옷으로 갈아 입어야 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