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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나는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몸짓에 가슴이 죄어와 눈시울 붉어지는 일이 많아졌다. 밥집 아줌마가 두른 앞치마에서, 도심 한 가운데 내 팔을 잡아 끌며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대는 가까운 내 친구에게까지 남들이 눈치 채지 않을 정도로만 내 눈은 순간적으로 빨개졌다가 다행히도 금세 원상복귀 되었다.
어릴 적 엄마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젼을 보면서 엄마 눈에 눈물이 흐를 때면 놀림 반, 지청구 반을 섞어 ' 얼레리요... 요게 뭐가 그리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시나.. ~~" 라며 어른들은 왠 눈물이 저리도 많은 걸까... 어린 나로서는 이해 되지 않는 그 세계가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불쌍하기도 해서 간지럼 태우며 웃기려 애쓰던 그 시절.
우리 엄마한테는 슬픈 이야기가 많다. 우리 엄마의 모든 슬픔은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7쪽)
어느날인가.. 멀리 여행을 다녀 온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줬다. 여기는 어디를 배경으로 한 사진인데 사진 잘 나오지 않았느냐며 자랑을 늘어 놓으려는 찰나에 " 어~~ 너 눈 밑에 점.. 눈물점이네...눈물점 있는 사람은 눈물이 많다던데..." 한다. 내게 늘 있던 점이라 거울을 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새롭게 각성된 이 눈물점은 그날 이후 자꾸만 색다른 의미로 각색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보리...
내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 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10쪽)
보리의 견생 역정을 귀 기울여 듣다 보니, 개의 삶도 인간 만큼 눈물겨웠다. 태어남의 기쁨과 자랑은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함께 하기에 그래도 아름답다 하는 것일까.... 선택한 삶이 아닌 주어진 삶을 받아 들이는 성숙한 삶의 자세와, 주어진 삶의 범위에서 새롭게 선택하며 견딜 수 없는 것들조차 견디며 한 걸음씩 내 딛는 모든 삶의 길은 눈물겹다.
올 해 열 한 살 먹은 조카가 말한다. ' 저는 개를 키우고 싶은데요. 엄마가 절대 안 된대요. 사람들은 저들이 개랑 놀아 준다고 말하는데요. 저는 개가 심심한 사람들을 위해 놀아 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심심한 게 정말 싫어요"
사람과 개는 저마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쩌면 아주 먼 어느 전생에 옷깃을 스친 인연이 있었겠지.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 태어나고 익숙했던 이들과 이별하며 인생을 배운다. 봄이 오고 가을이 가듯이 보리에게는 마룻바닥에 쏫아져 내린 똥조차 낼름 맛있게 먹어 버릴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이고 슬픈 어머니와 아릿한 냄새로 남은 흰순이와의 서글픈 이별이 또 기다리겠지...그러나 보리는 살아가리라...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어디로 가든 내 굳은 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130-131쪽)
보리야!! 열심히 달릴 거지? 그래 함께 뛰어 보자구나... 영희처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날아도 볼까? 가슴에 뛰는 벅찬 소리가 들리는데, 왜 또 눈물이 나는 건지....나도 엄마처럼 나이를 먹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