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진 2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신경숙의 아름다운 대상 묘사와 세심한 서정 표현이 글 읽는 이의 마음과 혼을 쏙 빼 놓았다. 또한 그녀의 정적인 글솜씨가 파리의 문화와 대한제국의 극박한 정세 변화라는 동적이고 서사적인 면과 잘 어우러져 한 개인의 아픔과 나라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봄날, 마냥 들뜨는 마음을 가라 앉히기에 적당한 소설이다. 리진의 깊고 검은 눈동자와 움직이는 듯 멈추는 듯한 춘앵무 한 사위가 새로 피어나는 봄꽃을 향해 다가가듯 내 마음을 잡아 끈다.
신경숙의 리진은 태어나 한 동안 이름 없이 '아기야'로만 불리워진다. 요즘 어느 광고를 보면 누군가에게 당신은 어떤 이름이냐를 묻는 문구를 사용하던데 이 아기는 후에 강연에게는 '은방울'로 명성왕후에게는 '서나인'으로 프랑스 공사 콜랭에게는 왕으로부터 부여 받은 이름 '리진'으로 불리운다. 강연에게는 영원히 지켜주고픈 사랑이 되고, 왕후에게는 마음을 나누고픈 의리가 되고, 콜랭에게는 이국의 신비로운 여인이 된다.
프랑스 공사의 눈에 박힌 리진은 ' 너와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그런 관계이고 싶지 않다'는 왕후의 말을 받들어 파리로 떠난다. 어려서 배운 프랑스 말이 파리로 가야하는 운명을 만든 것일까? 루부르 박물관과 상쟐리제 거리로 대표되는 문화의 도시 파리에서 빅토르위고, 모파상, 들라크르와를 알게된 리진이 멋지게 살기를 내심 원했지만 그녀는 끝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뱅상과 잔느처럼 그렇게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살 수는 없었던 걸까.. 조선에서 기다리는 홍종우의 집착은 그녀 앞에 먹구름이다.
조선으로 돌아온 그녀는 조선 역사의 슬픈 운명처럼 격랑속으로 휩쓸려 간다. '나를 위해 무엇도 하려 하지 마라'는 글을 남기고 떠난 강연의 숨은 사연, 외세에 휘청대는 조정, 왕후의 참담한 죽음그리고 교태전 옆 석등에 기대 마지막을 맞이한 리진... 리진은 역사의 흐름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또 한 명의 개인이다. 프랑스 상류사회를 고스란히 공부하고 받아 들였으나 동양의 이름 모를 나라 여인일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전정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콜랭의 염려와 걸어다니는 꿈속에서도 춘앵무로 위로 받고 싶었는 조선에 대한 그리움은 리진을 끝내 조선으로 귀향, 그리고 파국으로 이어졌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고달픈 역사와 함께 스려져간 한 여인의 깊은 눈망울, 허리 졸린 푸른색 드레스, 강연의 대금소리가, 민비의 불안한 한탄이 긴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