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2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배경은 안술시다. 자유로운 상업 도시였던 안술은 알드의 통치 아래 있다. 알드는 안술 사람들이 믿는 다양한 신들을 거부하고 자신의 유일신만을 주장하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탄압한다. 주인공인 메메르는 안술시의 수장이었던 갈바 가문의 가정부다. 메메르는 알드 병사가 어머니를 강간하여 생긴 아이이며, 알드의 침략시 메메르의 어머니는 갈바만드의 도서관에 숨어서 목숨을 구한다. 이 도서관은 갈바 가문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고, 갈바 가문 사람들이 신탁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를 모른채 도서관을 드나들던 메메르는 도서관에서 맞주친 수장 어른에게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오렉과 그라이가 안술의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 안술시를 찾는다. 오렉은 서부 해안에서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며, 그라이와 함께 서부 해안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오렉과 그라이는 시장에서 메메르를 만나 갈바만드에 머무르게 된다.  

알드에 대항한 안술 시민들의 봉기가 일어난다. 하지만 봉기는 실패로 끝나고, 봉기 때 일어난 불로 안술의 알드 통치자 간드가 화상을 입는다. 간드의 아들이 간드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간드의 사망설을 유포하고, 시민들이 갈바만드로 모이는 일이 일어난다. 알드의 침략으로 메말랐던 신탁의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고, 수장 어른이 가져온 책에서 신탁이 내려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간드의 궁전으로 가, 지하에 갇혀있던 간드를 구하고, 그 아들을 쫓아낸다. 오렉과 수장 어른의 저지로 더 이상의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결국 안술과 알드 사이에 평화 협정이 맺어진다. 메메르는 도서관의 책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놓자 수장 어른에게 제안하고, 오렉과 그라이를 따라 떠나기로 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운 안술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행동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군중들이 모여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채 그냥 앞에 있는 사람 따라서 오고 가고 하다보니 독립이 된 듯한 느낌이다. 메메르가 신탁을 듣는 이로 나오지만 이것도 뚜렷하지 않다. 신탁의 분수에서 물이 나온 것도 수장 어른이 한 일이고, 수장 어른이 가지고 나온 책은 읽기를 배우기 위한 독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신탁의 분수에서 물이 나온 것을 보았고, 신탁을 들었다. 그리고 행동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신탁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속임수에 속은 것일까? 

어스시 시리즈 두번째 책이었던 아투안의 무덤도 비슷한 느낌이다. 미지의 신비로운 힘이 나오고, 그 힘에 영향을 받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다른 이들은 주인공을 신탁을 받는 이, 무녀로 추앙하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이 힘을 지배하기 보다 지배받는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가 선한 의지로 움직이는지, 악한 의지로 움직이는지 그들은 모른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두렵고, 그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이 두렵다.  왜 르귄이 그리는 여자 주인공들은 이런 느낌일까?

오렉과 그라이의 모습은 반가웠다. 이런게 시리즈 물을 읽는 재미같다. 다만 그들의 딸인 멜이 갓난 아기였을 때 죽었고, 이후 그들 사이에 아이가 없는 것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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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북쪽 산악지방에서 살고 있는 오렉과 그라이가 주인공이다. 산악지방은 척박하고 가난한 곳이며, 저지대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영주와 그가 다스리는 영지를 중심으로 삶이 진행되며, 영주는 가문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로드 혈통은 '칼날'의 선물을, 티브로는 '고삐 매기' 즉 상대의 의지를 빼앗고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능력을, 보레는 '쓸어내기' 즉 상대의 마음을 빼앗고 머리도 없고 말도 못하는 바보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라이의 어머니 가문인 바레는 '부름'을, 오렉의 가문인 카스프로는 '되돌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 능력으로 영지를 다스리고 지킨다.  

오렉은 능력이 나타날 나이가 되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렉의 아버지 카녹은 이를 초조히 여긴다. 그러다가 오렉이 갑자기 달려드는 독사를 되돌리고, 앞에 놓인 풀과 나무를 되돌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오렉은 능력을 쓰려고 마음 먹지도, 능력을 발휘했다는 느낌도 없다. 오렉은 통제되지 않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눈을 가리고 살게 된다. 그 와중에 경쟁자이자 무례한 오그 드럼의 영지를 방문하고, 이후 어머니가 아프다 돌아가시는 일이 일어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어머니가 써서 남긴 책을 읽으며 위로하던 오렉은 어느 순간 깨닫는다. 눈 가리개를 풀어도 자신은 누군가를 되돌릴 수 없음을, 처음부터 자신에겐 되돌림의 능력이 없었음을, 있지도 않은 능력 때문에 어머니가 아팠던 내내 어머니를 직접 보지 못했음을. 아버지와 대립한 것도 잠깐, 오그가 침입하고, 오그와 싸우고, 오그와 카녹이 죽는 일이 벌어진다. 오렉은 카스프로 영지를 카녹의 심복이었던 알록에게 맡기고 그라이의 아버지인 로드 밑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라이와 함께 길을 떠난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능력이 아무 것도 없는 것. 둘은 서로 반대되는 상황인 것 같지만, 결국 그것에 따르는 짐을 져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상황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도망가려 하거나, 능력이 없음에도 능력이 있는 척 허세를 부리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자신을 속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뿐일 거다. 새삼 나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잘 쓰여진 환타지 소설은 하나의 장면에 여러가지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오렉과 카녹의 갈등은 부모의 기대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카녹의 기대에 따르는 오렉이 눈가리개를 하는 설정은 그 설정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지.    

오랜만에 읽은 좋은 환타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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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 - 진화에 맞선 동물들의 유쾌한 반란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박규호 옮김, 루시아 오비 그림 / 뜨인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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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을 보면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책은 아니다. 진화에 의해 현재의 다양한 생물종이 나타났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적자생존이라는 자연 선택 방식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즉 진화가 강한 자만 선택하고, 자연에 최선으로 적응한 개체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진화가 진보나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와 오류의 교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게임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어려운 이론 이야기인데, 이 책은 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어느 한 구석 사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여러 생물들과 일부러 독성을 가진 먹이를 먹거나 위험한 사냥을 하는 등 일부러 위험을 즐기는 듯한 여러 생물들의 삶의 모습이 나온다.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의 풀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갖게 된 큰 어금니. 하지만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래서 목의 길이를 줄였다. 그랬더니 목을 가누는 것이 영 불편하다. 그래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코를 가졌다. 뭐 이런 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이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소에서 어디 한 구석이 모자라고, 우스꽝스러운 장소가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후자쪽 자연이 더욱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이 책대로 진화론이 수정된다면 진화론이 더 재미있고 말랑말랑한 무엇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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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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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스포일러가 있음  

 

이 소설은 잘 씌여진 소설이다. SF 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로도 훌륭하고, 순수 문학 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로도 훌륭하다.
SF 입장에서 잘 써졌다 라고 이야기하려면 일단 이야기 자체 만으로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설정만 인정하고 들어가면-이 책에서는 높이 2,048m, 674층의 '빈스토크' 타워에 인구 50만 명이 산다는 설정이 이에 해당된다. 일단 이 부분은 그렇다고 인정하면서 소설을 읽어야 한다.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소설 안에서 논리적 타당성과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의 대립, 층별 이동 엘리베이터의 복잡함, 그리고 그렇기에 비상시 병력 이동에 대비한  정부 부서의 존재하는 것 등은 674층의 건물 존재를 인정하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이야기 자체의 타당성 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럴 듯한 사실만 나열한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닐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된 그럴 듯한 사실들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져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타워는 잘 씌여진 SF소설이 분명하다. 나는 이 소설이 국내 작가에 의해 씌여졌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된다. 드디어 가까운 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할 수 있는 SF 작가를 가지게 되는가!!

SF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도 이 소설을 매혹적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그럴 듯한 SF 설정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의 대립은 우리나라 좌우 이념 대립과 비슷해 보이고, 시위를 막기 위해 코끼리가 동원되는 장면은 촛불 시위 강경 진압과 겹쳐진다. 영화에 출연하는 개가 미세 권력의 중심지 중 하나로 파악되고, 부동산 중 비싼 곳을 소유하고 있으며, 멍멍 짖을 뿐이지만 상당히 그럴 듯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시장 직통 엘리베이터 설치는 담고 있는 의미는 다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과 대운하 정책과 묘하게 모양새가 닮았다. 그래서 SF에 생소한 사람들도 키득거리며 읽을 내용이 많다.

왜 배경이 타워였을까 생각했다.
일단 상당한 높이의 타워는 바벨탑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오만함의 극치, 그 오만함의 결과로 나타나는 갈등과 혼란, 멸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빈스토크'도 건물의 존재 자체와 건물의 유지 모두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바벨탑을 닮았다. 반면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문명의 결과물이면서 외부 환경 변화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에서-건물 내부에서 터진 폭탄 한 발에 50만 인구의 대피 소동이 벌어졌다. 그 우와좌왕하는 모습들이라니- 과학 문명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빈스토크' 는 심해저나 우주에 설치된 기지를 닮았다.

하지만 '빈스토크'는 바벨탑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이다.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서는 '빈스토크' 안으로 입주하면서 헤어진 연인이 나온다. '빈스토크'로 들어온 이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지만 '빈스토크' 밖에 있는 이는 헤어진 연인을 찾아 '빈스토크' 안으로 입주하기 위해 '빈스토크' 용병을 지원했다 작전 중 사막에 불시착한다. '빈스토크' 당국은 해당 작전에 자신들은 무관하다 주장하며 수색 작전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편지 배달 사고로 이 사실이 '빈스토크' 안에 있는 이에게 늦게 전달된다. 그러나 민간인 입장에서 사막에 불시착한 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와 편지를 늦게 배달한 원인이 된 이는 해당 지역의 관광용 위성 사진을 구해 구역을 나누어 인터넷에 올려놓는다. 일일이 눈으로 찾기에는 너무 넓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발벗고 나서 각 구역을 나누어 찾아본다. 결국 몇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사막에 불시착했던 이의 위치가 발견된다.
이 이야기에서 '빈스토크'의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폐쇄성이 나오고, '빈스토크'에 입주하면서 헤어지는 연인 이야기가 나오고, 자신들이 행한 군사 작전 임에도 나몰라라 하는 '빈스토크' 행정부가 나온다. 하지만 이 일을 모른척하지 않고 나서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들을 도와주는 네티즌들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이 처한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발벗고 나서준다면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터넷이 그들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샤리아에 부합하는' 는 빈스토크와 코스모마피아와의 전쟁이 배경이다. 코스모마피아는 최후의 수단으로 빈스토크 내 설치되었던 폭탄을 터뜨리고자 한다. 이 폭탄은 빈스토크의 건설 당시부터 주의깊게 숨겨져 설치되었고, 그 구역에 위치한 건물을 이슬람인들이 매입해 65년째 거주하고 있다. 빈스토크에 잠입한 스파이는 코스모마피아의 지령을 받아 건물들을 매입하고, 폭탄을 설치해서 폭파 타이머를 설정해 놓는다. 그러나 코스모마피아의 최후 통첩의 날이 되었지만 7개의 폭탄은 아무 것도 터지지 않는다. 건물을 지키고 있던 주인들이 65년간 빈스토크에 머물면서 이곳이 바벨탑 이기만 한 곳은 아니라는, 이 곳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다. 그래서 차마 자신의 손으로 폭탄을 터뜨릴 수 없어 자신에게 맡겨진 폭탄의 일부를 고장내 놓은 것이다.
이 내용도 코스모마피아와의 전쟁에서 피해가 발생하자 발부터 빼는 정치인들의 모습, 전쟁이 심화되자 부자들부터 안전한 지대로 대피하는 모습-부자들이 살다 빠져나간 고층 지역에 중산층, 서민들이 자리잡는 모습은 낄낄거리며 웃기엔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의 체포, 조사에는 발빠른 모습을 보여주던 검찰이 폭탄을 찾기 위한 압수 수색을 요청할 때는 책임을 지기 싫어 발뺌하는 모습 등, 부정적이고 천박한 빈스토크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 더욱 공감이 가는 것 같다.  

'그래, 알아 알아. 이 사회 부정 부패가 만연해있고, 정부는 무능하고, 부자들은 자기 배만 불리려 하고,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은 계속 살기가 힘들고, 사람들은 물질만 추구하고, 사회가 갈수록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고, 문제도 탈도 많은 사회이지. 하지만 이 사회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이고, 한편으론 인간미와 따뜻함이 존재하기도 해. 그리고 인간미와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게 아닐까' 라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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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평화 - 박기범 이라크통신
박기범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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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박기범씨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 현장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벌였던 반전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일단은 그들의 신념에 놀랐다. 박기범씨를 비롯한 반전 활동가들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 현장에 과감히 들어간다.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이라크 입국이 불가능해질 때엔 이라크에 못 들어가게 되었노라 발을 동동 구른다. 폭탄이 우선적으로 떨어질 곳에 일부러 찾아가서 인간 방패가 되어 폭격을 막겠다 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기 위해 40여일씩, 50여일씩 단식하기도 한다. 이들은 무엇을 그렇게 확신하는 걸까? 자신의 목숨을 모두 걸만큼.  

구체적인 가치관이나 신념이 없는 나로서는, 또한 그것을 관철시킬만한 적극성과 소시이 없는 나는 이들 앞에서 작아지기만 할 뿐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이라크에서 활동했던 박기범씨가 겪는 어려움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전쟁 전 이라크에서 만나 박기범씨와 친구가 된 아이들 중에 하싼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전쟁 후 만난 하싼은 부모님과 헤어져 오갈 곳이 없어져, 거리에서 먹고 자면서 외국인에게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범씨는 매일 하싼을 만나 점심을 사주게 되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하싼의 삶 자체는 아무 변화가 없다. 기범씨는 점심을 사주는 일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하싼은 기범씨가 당연히 밥을 사주는 것이며, 자신에게 필요한 운동화나 옷을 당연히 사주어야 한다 생각한다. 기범씨는 자신의 행동이 하싼을 더욱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괴로워하게 된다. 현지에서 이들과 삶을 함께하는 것이 아닌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할 수 있는 행동에 기약이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나라도 이러한 결과를 위해 내 목숨을 다 걸며 전쟁터로 오지는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기범씨와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이유가 다르고, 아이들의 국적이 다르고, 아이들의 상황이 모두 다르다. 그래도 기범씨가 하는 고민이 디딤돌학교에서 한번쯤은 했던 고민이라 많이 신기했다. 디딤돌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이들의 부모님 상황, 경제적 형편이 바뀌지 않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이 턱없이 부족해보일 때가 많다. 아무튼. 

 이렇게 진행중인 고민과 어려움이 그대로 담겨 있어 좋았다. 이건 얼마전 이정현 선생님이 성석이에 대해 쓴 글을 보고도 느낀 점이다. 2009년 현재에서 힘찬이의 지난 2년을 돌아본 내 글보다 2007년 당시 어려움과 고민을 담은 이정현 선생님의 글이 더 생생했다. 일반화하고 정리한 글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다못해 기범씨가 고민하고 있는 내용은 이 책을 읽은 생각 깊은 누군가도 쓸 수 있는 글인 것이다. 현재를 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과 관련된 생각과 고민, 어려움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온라인 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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