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평화 - 박기범 이라크통신
박기범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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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박기범씨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 현장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벌였던 반전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일단은 그들의 신념에 놀랐다. 박기범씨를 비롯한 반전 활동가들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 현장에 과감히 들어간다.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이라크 입국이 불가능해질 때엔 이라크에 못 들어가게 되었노라 발을 동동 구른다. 폭탄이 우선적으로 떨어질 곳에 일부러 찾아가서 인간 방패가 되어 폭격을 막겠다 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기 위해 40여일씩, 50여일씩 단식하기도 한다. 이들은 무엇을 그렇게 확신하는 걸까? 자신의 목숨을 모두 걸만큼.  

구체적인 가치관이나 신념이 없는 나로서는, 또한 그것을 관철시킬만한 적극성과 소시이 없는 나는 이들 앞에서 작아지기만 할 뿐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이라크에서 활동했던 박기범씨가 겪는 어려움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전쟁 전 이라크에서 만나 박기범씨와 친구가 된 아이들 중에 하싼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전쟁 후 만난 하싼은 부모님과 헤어져 오갈 곳이 없어져, 거리에서 먹고 자면서 외국인에게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범씨는 매일 하싼을 만나 점심을 사주게 되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하싼의 삶 자체는 아무 변화가 없다. 기범씨는 점심을 사주는 일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하싼은 기범씨가 당연히 밥을 사주는 것이며, 자신에게 필요한 운동화나 옷을 당연히 사주어야 한다 생각한다. 기범씨는 자신의 행동이 하싼을 더욱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괴로워하게 된다. 현지에서 이들과 삶을 함께하는 것이 아닌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할 수 있는 행동에 기약이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나라도 이러한 결과를 위해 내 목숨을 다 걸며 전쟁터로 오지는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기범씨와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이유가 다르고, 아이들의 국적이 다르고, 아이들의 상황이 모두 다르다. 그래도 기범씨가 하는 고민이 디딤돌학교에서 한번쯤은 했던 고민이라 많이 신기했다. 디딤돌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이들의 부모님 상황, 경제적 형편이 바뀌지 않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이 턱없이 부족해보일 때가 많다. 아무튼. 

 이렇게 진행중인 고민과 어려움이 그대로 담겨 있어 좋았다. 이건 얼마전 이정현 선생님이 성석이에 대해 쓴 글을 보고도 느낀 점이다. 2009년 현재에서 힘찬이의 지난 2년을 돌아본 내 글보다 2007년 당시 어려움과 고민을 담은 이정현 선생님의 글이 더 생생했다. 일반화하고 정리한 글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다못해 기범씨가 고민하고 있는 내용은 이 책을 읽은 생각 깊은 누군가도 쓸 수 있는 글인 것이다. 현재를 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과 관련된 생각과 고민, 어려움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온라인 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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