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북쪽 산악지방에서 살고 있는 오렉과 그라이가 주인공이다. 산악지방은 척박하고 가난한 곳이며, 저지대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영주와 그가 다스리는 영지를 중심으로 삶이 진행되며, 영주는 가문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로드 혈통은 '칼날'의 선물을, 티브로는 '고삐 매기' 즉 상대의 의지를 빼앗고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능력을, 보레는 '쓸어내기' 즉 상대의 마음을 빼앗고 머리도 없고 말도 못하는 바보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라이의 어머니 가문인 바레는 '부름'을, 오렉의 가문인 카스프로는 '되돌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 능력으로 영지를 다스리고 지킨다.  

오렉은 능력이 나타날 나이가 되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렉의 아버지 카녹은 이를 초조히 여긴다. 그러다가 오렉이 갑자기 달려드는 독사를 되돌리고, 앞에 놓인 풀과 나무를 되돌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오렉은 능력을 쓰려고 마음 먹지도, 능력을 발휘했다는 느낌도 없다. 오렉은 통제되지 않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눈을 가리고 살게 된다. 그 와중에 경쟁자이자 무례한 오그 드럼의 영지를 방문하고, 이후 어머니가 아프다 돌아가시는 일이 일어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어머니가 써서 남긴 책을 읽으며 위로하던 오렉은 어느 순간 깨닫는다. 눈 가리개를 풀어도 자신은 누군가를 되돌릴 수 없음을, 처음부터 자신에겐 되돌림의 능력이 없었음을, 있지도 않은 능력 때문에 어머니가 아팠던 내내 어머니를 직접 보지 못했음을. 아버지와 대립한 것도 잠깐, 오그가 침입하고, 오그와 싸우고, 오그와 카녹이 죽는 일이 벌어진다. 오렉은 카스프로 영지를 카녹의 심복이었던 알록에게 맡기고 그라이의 아버지인 로드 밑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라이와 함께 길을 떠난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능력이 아무 것도 없는 것. 둘은 서로 반대되는 상황인 것 같지만, 결국 그것에 따르는 짐을 져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상황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도망가려 하거나, 능력이 없음에도 능력이 있는 척 허세를 부리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자신을 속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뿐일 거다. 새삼 나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잘 쓰여진 환타지 소설은 하나의 장면에 여러가지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오렉과 카녹의 갈등은 부모의 기대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카녹의 기대에 따르는 오렉이 눈가리개를 하는 설정은 그 설정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지.    

오랜만에 읽은 좋은 환타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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