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분 동안만을 기억하는 박사는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미래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박사의 루트에 대한 애정은, 과거 루트가 박사에게 야구 카드를 선물해서도 아니고, 미래에도 루트와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루트가 박사 앞에 있기 때문에, 그저 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귀하기 때문에 루트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루트는 매일 매일 한결같은, 넘치는 애정을 받은 셈이다.
나도 아이들을 그저 사랑할 수 있을까. 어제와 내일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들이 아이들 자체로 존귀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박사가 수학을 사랑한 것처럼 나도 과학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과학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오면서, 쉽고 재미있게, 그렇게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내 가르침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대단하다 칭찬하면서, 그렇게 가르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가지에 미쳐야 궁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한가지에만 몰두하는 삶을 꿈꿔왔고, 그래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들, 예를 들면 먹는 일, 씻는 일, 자는 일,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 돈을 버는 일 등을 하찮게 여겨왔다. 그래서 그동안은 삶이 제대로 영위되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한 삶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내가 미쳐서 매달일 일 모두를 중요시하면서 모두를 잘 조화시키며 이루어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남는 이를 꼽으라면 이덕무를 꼽고 싶다.
어머니는 영양실조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단다. 의원의 처방을 받고도 돈을 마련하지 못해 그 약을 못 해드렸단다.
가난한 집에 시집갔던 누이도 영양실조와 폐병으로 어머니의 뒤를 따라갔단다.
정작 본인도 벽에 얼음이 얼어 거울처럼 얼굴을 비추고 날이 풀리면 누런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방에서 살았고, 열 손가락이 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올라 피가 터질 지경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열심히 책을 읽었단다.
다행히 39살 때 관직에 올라 정조의 총애를 받았단다.

먼저 나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무능력함을 비판하고 싶다. 벼슬에 뜻이 없었다면 농사라도 지으면서, 장사라도 하면서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머니와 누이가 병으로 앓아 누워 약도 못 해주는 형편인데 책만 읽고 있었을 이덕무의 모습을 생각하면 속이 터진다.
그래도 작가의 말처럼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끈질김, 투철함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이덕무도 사람인데 그라고 몸과 마음이 괴롭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 맹목이 무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게 -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세계신화총서 3
재닛 윈터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신화를 재해석한 이야기이다. 헤라클레스 이야기보다는 아틀라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
평생 지구를 짊어져야 할 운명의 아틀라스는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잊어도, 지구 밖으로 인공 위성과 우주선을 쏘아올려도 그렇게 지구를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는 계속 자신에게 질문한다. 왜 이것을 내려놓으면 안 될까?

고등학교 시절에는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매일 먹고, 마시고, 싸고, 자야 영위되는 삶이 싫었다. 외출할 땐 옷을 입어야 하고, 여성스럽게 행동해야 하고,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회적인 조건들도 싫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인간에게 보여주면서 선악과를 따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다지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두가지 밖에 없다는 그 제약이 싫었다.

지금은 삶의 모든 조건을 하나하나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있긴 하지만, 그 선택은 그 뒤의 결과를 알지 못한채 이루어진다. 서울대냐 포항공대냐를 선택하는 것은, 그 순간에는 4년동안 생활할 대학만을 선택하는 줄 알았지만 실은, 대학 다니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이었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가 선택되는 것이었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 것이냐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선택의 순간에는 이 모든 결과를 알지 못했지만,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유의지대로 사는 것인가? 아니면 내 의지대로 살고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 뿐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인가? 이 책은 이 해묵은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살짝 속삭인다. 내 선택에 대한 결과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선택이라고. 지금이라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던져 버릴 수 있다고. 아틀라스가 지구를 내려놓고 뚜벅뚜벅 걸어갔듯이 나도 책임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다고. 아틀라스가 지구를 내려놓았다고 세계가 박살나진 않았듯이, 내가 자유로워진다고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금복, 춘희라는 두 모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모녀의 삶이 주축이 되어 반편이, 박색의 노파, 애꾸눈 여인, 생선장수, 걱정, 칼자루, 쌍둥이 자매, 문씨 등 인물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뒤섞여 한편의 거대한 서사를 만든다. 이야기의 화자는 유창하고 익살맞게, 해학적으로, 때론 조롱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야기는 현실적인 사건과 비현절적인 사건이 공존한다. 6.25 전쟁 와중에 금복은 4년 전에 죽은 걱정의 아이를 낳는다. 커피와 극장으로 대변되는 평대의 근대화와 무당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예언이 공존한다. 이렇게 소설의 공간은 현질적이면서 비현실적이다.

주인공들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박색의 노파는 돈 때문에 자신의 딸인 애꾸눈에게 죽는다. 금복은 자신이 만든 평대 극장에서 불에 타 죽는다. 춘희는 사람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홀로 벽돌을 굽다 죽는다.

소설의 공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보면, 작가는 역사 기록에 남지 못하고 죽어간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죽음 이후에는 그들의 삶의 흔적도 없지만, 그들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충분히 고통스럽고 슬펐으며, 힘겹게 견디고 몸부림치며 살았노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삶의 무의미함, 허무함에 좌절한다거나, 보통 사람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있진 않다. 이는 작가의 해학적이고 유쾌한 어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남성 작가가 그리는 여성의 모습은 무언가 찜찜한 것이 있다. 박색의 노파는 추한 겉모습을 가져 여성적인 매력이 거의 없는, 그래서 인색하고 욕심많은 인물이다. 춘희는 크고 강인한 육체를 가졌지만 매우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의사 소통 능력이 없어서-춘희는 벙어리다- 그녀가 가진 여성성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다. 금복은 자신의 매력적인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고 즐길 줄도 알았던, 가장 긍정적인 모습의 여장부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남성화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파멸한다.-이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의아한 대목이다. 억압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해야 했던 우리나라 여인들의 삶을 상징하는 것인가? 작가에게 그런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주인공들이 가지는 여성성은 부정되거나 고립되어 있지 그것이 삶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던 금복이 남성화하고 파멸하는 것이야 말로 작가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우려된다. 작가는 여성을 영적인 존재로, 마이너리티를 대표하는 존재로 본다지만-소설 뒷부분 작가의 인터뷰가 있다.-이러한 여성을 대변하는 등장인물은 왜 없느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존의 신비,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사이 몽고메리 지음, 승영조 옮김 / 돌베개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기가 되면 3m 이상씩 상승하면서 범람하는 아마존강, 그곳에 사는 다양한 야생 동물과 식물, 그리고 자연과 어울리며 사는 방법을 아는 인디오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또는 강력한 독으로 무장한 동물과 곤충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냉정함과 야만성, 잔인하고 치열하기에 매혹적인 그것.
야생의 삶에 혹하는 나를 멈칫거리게 하는 것. 냉정하고 잔인한 자연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위해 어떤 동물을 해치는 것처럼 자연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를 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먹이사슬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식물의 죽음처럼 아마도 흔하게 접할 사람의 죽음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난 문명인이기 때문에, 저 대목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과학적 사실과 신화, 전설이 함께 어우러진다. 아마존 물속에 있다는 엥깡찌에 대한 전설 속 이야기와 안데스 산맥이 형성되면서 대륙의 서안으로 흘러가던 아마존강이 물길이 막혀 급속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과학적 사실이 나에겐 모두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보뚜가 사람으로 변신한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발굽을 가진 뒷다리와 앞지느러미를 가진 고래의 조상 화석을 믿는 사람이 함께 나온다. 전설을 믿는 이는 다리달린 고래 화석을 믿지 않고, 화석을 믿는 이는 보뚜가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둘 모두 진실의 편린을 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작가의 말대로 그렇게 대립되는 두 이야기는 묘하게 닮아있다.
과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나, 스스로를 이성중심주의자, 유물론자라고 일컫는 나
SF와 환타지와 신화와 전설을 좋아하는 나, 이야기에 탐닉하는 나
두 나의 교점에 있는 무언가를 작가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난 아직 모르겠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