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3 ()     14:23~

 

 



 

 

 

나는 언제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써보라며 격려를 해 주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형편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도전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오래 전에 동갑나기들의 친목 모임에서 글을 써보라고 격려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주욱 살펴보니 다행히도 그런 글이 있어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역시 기록을 남겨둔다는 것은 이렇게 인용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어 참 좋다.

 

누군가가 꾸준한 노력과 배움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룬다면 그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따라서 그 성취가 아직 미미하더라도 크게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조금씩 더 노력한다면 분명 더 크게 성취할 것이다. 위대한 성공자들도 이렇게 성장, 발전한 것일 게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칭찬을 받아들이고, 더 분발하기로 결심을 하자.

 

새삼스럽지만 내가 전에 이런 글을 썼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아니, 이런 가슴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  ] 4070 / 6343      [등록일] 1999년 12월 29 18:23      Page : 1 / 7

 [등록자] SUNNYSON         [  ] 82           

 [  ] [   ] (Yes, you can! / Yes, you can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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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게 시인이나 작가 같은

   친구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데 통신을 한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토모63, 우리 토방에

   천리안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 있음을 알게 되어 난

   뛸 듯이 기뻤고 바로 시가 게재된 시가 있는 풍경(debut.11)

   그 곳에 드나들었다.

 

   새로운 시가 게재되면 메일로 알려주는 정기독자에도 등록을

   하여 지금까지도 한편도 빼먹지 않고 읽었고 그가 채팅을 할

   때는 적지 않은 대화도 나누었다. 결국엔 올 여름 그를 찾아

   처음으로 전라도 광주 땅을 밟게 되었다.

 

   시인을 만나 본 느낌은 예감대로 친구는 참으로 맑고도 순진

   했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어린 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했으나

   살아 낸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으며, 애절하면서도 가슴시린

   인생여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그런 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참으로 뜻 깊은 여행이었다. 

 

   그런 그를 만나게 된 것은 내게 행운이다.  세속의 잣대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던 것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인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나누고 우정을 쌓아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맑은내, 김경수 친구가 좋은 작품 많이 쓰길

   간절히 기원한다. 

 

   우리 토모63, 토방에는 글을 참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 

   난 가끔 그들에게 글을 참 잘 쓴다며 칭찬의 말을 건넸는데,

   책을 내보라기도 하고 계속 글을 써보라고 권유도 했다.     

 

   물론 본인들은 정색을 하여 펄쩍 뛰며 아니라고 겸손해 한다.

   난 이자리를 빌어서라도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꾸준하게 글을

   써보라고 다시 한번 권하고 싶다.  그러다가 후에 여러 명이

   뜻을 모아 책을 내 볼 수도 있을 터이니깐 말이다.

 

   나아가서 나는 우리 토방의 모든 친구들에게 글을 써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주절주절 낙서도 좋고, 일기와 같이 하루

   일을 써서 올려도 좋고 하니 말이다.

 

   모든 친구들이 경험해서 알겠지만,  채팅은 가벼운 이야기나

   잡담을 재잘재잘거리며 나누는 것인데, 그러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할 수 있어 좋은 것이다. 물론 진지한

   이야기도 분명히 나눌 수 있지만 여럿이 대화를 할 경우에는

   매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채팅은 많은 단점도 갖고 있다.  그러한 단점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대화방에서 채팅

   하는 것을 통신이라고 하고,  이 통신의 단점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보자.  물론 통신에 많은 장점이 있음을 전제로 하되,

   이번에는 그 단점들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통신의 특성인 익명으로 대화상대가 보이지 않는 환경하에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자기의 성격이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혹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행동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는

   여러가지 경우의 조합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여러 사람으로

   분장하여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이 통신을

   하는 경우를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통신하는 사람들의 주된 목적은 즐거움의 추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신을 하다가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

   과 맞지 않는 대화가 시작되면 부르르 대화방을 나오게 되고

   또 자주 이방저방 쉽게 옮겨다니게 된다.

 

   자신의 뜻과 마음에 맞아 즐거운 대화가 지속된다 해도 일상

   생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유희적인 대화로 흐르게 되

   어 버린다. 그리고 채팅이 즐거우려면 농담이나 유모가 지속

   되어야 하거나, 자신에 대해 좋게하는 말이 들려야만 한다.

 

   그리고 대화가 가볍기 때문에 아무 얘기나 불쑥불쑥 쉽게 말

   하게 되고, 그런 반면 그렇게 불쑥 나온 말에 민감하게 반응

   하게도 된다.

 

   통신의 특성이 이렇다 보니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고, 생각도

   짧게 되고, 느긋하게 기다라는 여유를 갖을 수도 없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옅게 되어간다. 통신하는 사람이 다 이렇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따라서 통신시간이 오래되면 우리의 정신이나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성격의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통신에서 얻는 효익보다는 폐단이 더

   크기 때문에 통신을 그만두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단박에 통신을 그만둘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그

   단점 즉,  폐단을 줄일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래도록 깊이 생각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며 할 수 것

   이 있어 그런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보내다면 자연히 위에서

   지적한 통신의 단점과 폐단을 점점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채팅 시간은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글을 써 보라고 권장

   하고 싶다. 물론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먼저 토방 게시판뿐만 아니라 다른 게시판에 있는 글을 자주

   읽어 보면서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격식이나 제한

   써 본다면 나중에는 누구나가 훌륭한 글쟁이가 될 것이다.

 

   글의 형식이나 내용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타인을 욕

   하거나 비방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어떤 소재, 주제, 내용

   을 다룬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잘 쓰고 못쓰고를 걱정

   하지 마라. 전문가의 글이 아닌 다음에야 거의 오십보백보라

   해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관한  좋은 이야기 거리가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올리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가운데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입장도 생각해보게 되니 자연히 급

   한 마음은 없어지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를 갖게도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친구들 어떼요? 우리 가볍게 새내기 환영글이나 축하글 같은

   것부터 써보며 시작해보지 않을래요? 우리 오늘부터 해 보자.

 

 

   다 같이 글을 써 보자고 외쳐보는

   태양의아덜 서니... 

 

윗글에 나오는 친구, 맑은내는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 몇 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다시 연락을 취하여 근황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맑은 글을 읽으면 영혼이 살짝살짝 흔들린다. 물론 그의 불로그(http://blog.naver.com/mimaing) 도 알게 되었다.

 

다른 한 친구는 작년에 책을 또 한권 냈다. 몇 년 전에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녀는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보면 글로 삶을 노래했다. 삶과 노래가 글이 되고 책이 되었던 것이다. 남아공에는 왜 갔어? (조현경저/사군자)」꿈을 꾸는 한 언젠가 이뤄지는 것일 게다.

 

같이 일하는 동생에게도 오랜 전부터 글쓰기를 종용해 왔다. 책 읽고 독후감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동생은 귀찮게 왜 그 짓을 하냐는 듯한 의문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그랬던 동생도 이제 무엇이든 오랫동안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며 약간은 수긍하는 눈치다. 그렇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조금씩 노력하다면 실력이 쌓이고 언젠가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아직도 자신이 없다고, 아니 능력있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자신의 꿈을 이룬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 4204 / 6343      [등록일] 2000년 01월 07 19:13      Page : 1 / 7

 [등록자] SUNNYSON      [  ] 64           

 [  ] [   ] (나는 언제나 내식으로만 쓴다!) <-> (I Never Write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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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둬야지. 형편없는 영어실력에 번역을 하려고 하니 머리에 쥐가

 나고 또 만족스럽지 못하여 화도 난다. 난 사실은 완벽을 추구하려고 하는 이상주의자

 이기 때문에 내가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용납을 못해왔다. 하지만 어쩌리, 글의 전체적

 인 내용을 전달할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냥 내가 번역한 그대로 올린다.틀렸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누구든 메모를 날려주시길 부탁하면서...

 

 좋은 내용의 글이니 마음으로 읽어들 보고, 재주와 소질이 있는 친구들은 특별한 다른

 인생 목표나 계획이 없는 한 조금더 신경을 써서 의도적으로 글을 써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많은 친구들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태양의아덜 서니...

 

 

 

                        ( 나는 언제나 내식으로만 쓴다. )

 

 

 

    당신을 통하여 행동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생명력, 생명의 비약, 에너지 혹은

    태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언제나 변함 없이 당신과 같은 사람은 하나만 존재

    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하는 것이다.(마타 그레이햄)

 

 

 15살 때, 나는 영어 수업시간에 내 자신의 책을 쓰고 또 책에 쓸 삽화도 그려 볼 계

 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반수의 학생들은 야유를 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비웃느냐

 고 거의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라. 천재들만이 작가가 될 수 있는 거야." 하며 영어교사는 잘

 난 체 하 듯 말했으며, "그리고 넌 이번 학기에 D학점을 받게 된단다."하고 덧붙였다.

 

 나는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깨어진 꿈들에 관

 한 짧으나 슬픈 시를 써서 캐이퍼 주간 신문사에 보냈다. 놀랍게도 신문사에서는 그

 시를 게재했으며 원고료로 내게 2달러를 보내왔다. 나는 글이 출판되어 원고료를 받

 는 그런 작가가 된 것이었다! 나는 담임 교사와 급우들에게 (내 시가 게재된 신문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웃고 말았다.

 

 단지 눈먼 고양이가 물고기를 잡는 격의 재수가 좋은 것뿐이라고 교사가 말했다.

 

 나는 성공을 맛본 것이다. 어쨌든지 난 내가 직접 쓴 첫 작품을 팔았던 것이다. 이러

 한 성공은 선생님이나 급우들 중 그 누가 이뤘던 것 이상이었던 것이며, 단지 재수가

 좋았을 뿐이라고 폄하한다 해도 내겐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그 이후 2년 동안 나는 수십 편의 시, 편지, 유머 및 요리법에 관한 글을 썼으며 원

 고료도 받았다. 평균 마이너스 C학점으로 졸업을 했을 때까지, 나는 내 작품들을

 모은 스크랩북을 여러 권 갖게 될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 때 창피를 당한 이후,

 가 글을 쓰는 것에 관하여 담당교사, 친구 심지어 가족 중 그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

 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꿈을 깨뜨리는 자들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친구나 자신들의 꿈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항상 자기들의 꿈

 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 당신은 당신의 꿈을 지지해 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라고 새로운 친구가 내게 말했는데, "넌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하며 격려를 해 주었다. 

 

 나는 내가 글을 쓸 만큼 똑똑한지 모르겠다고 말 했는데, 갑자기 다시 15살 학생으

 로 돌아가 그 때의 비웃음의 반향을 듣는 기분이 되었다.

 

 "말도 안돼",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책을 쓸 수 있다" 고 친구는 말했다.

 

 나는 그 때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제일 큰 아이가 겨우 네 살이었다.

 리는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한 염소농장에서 살았는데, 사방 수 마일 내에는 인가가

 없었다. 매일매일의 일거리로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염소 젖을 짜야 했고, 요리와 세

 탁을 하고, 정원도 손질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글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이 잠을 사는 사이사이 나는 구식 타자기를 두드렸다. 난 내가 느낀 대로 쓸

 뿐이었다. 아이를 갖게 되어선 낳는 것처럼 한편을 완성하는데 9개월이나 걸렸다.

 

 나는 무작위로 출판사 하나를 선정했으며, 원고용 박스가 따로 있다는 소리는 전혀

 듣지도 못했으니까 원고를 넣을 박스로 쓸만하다 싶은 빈 팸퍼스 기저귀 포장박스

 를 하나 찾아서 원고지를 넣었다.  편지를 동봉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가

 이 책을 직접 썼습니다만, 마음에 드셨으며 좋겠습니다. 삽화도 물론 제가 직접 그렸

 습니다. 6장과 12장을 제일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원고를 넣은 기저귀용 박스를 노끈으로 묶었고, 스탬프로 찍은 발송인 주소가 있는

 회송용 봉투도 넣지 않고, 원고를 복사해 두지도 않고 우송해 버렸다. 한달 후에 나는

 편지를 받았는데, 계약서와 로얄티 선금이 함께 들어 있었고, 또 다른 책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크라잉 윈드(울부짖는 바람)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1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브

 라이유식 점자책으로까지 출판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판매되었다. 나는 낮 동안에

 TV 토크 쇼에 출연했으며 밤에는 여전히 기저귀를 갈아 주는 엄마 노릇을 했다. 책의

 홍보를 위한 행사로 나는 뉴욕에서부터 캘리포니아와 캐나다까지 여행을 했다. 내 첫

 번째 책은 캐나다에서 미식 영어를 위주로 하는 학교들에서 필독서가 되었다.

 

 다음 책을 쓰는 데는 6개월이 걸렸다. 나는 여전히 원고용 박스가 있다는 것을 몰랐

 는데, 이번에는 <엉클 위글리>라는 게임용 빈 박스에 원고를 넣어 우송했다. 나의 탐

 색하는 마음(마이 서어칭 하트)이란 제목의 이 책도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는 다음 소설인 '내가 내 마음을 줄 때'를 겨우 3주만에 썼다.

 

 작가로서 가장 형편없던 해엔 겨우 2달러를 벌었다 (제가 15 , 기억 나시죠?). 최고

 로 좋았던 해에는 36,000달러나 벌었다. 대부분 일년에 수입은 5,000에서 10,000사이

 를 왔다갔다했다. 이 정도 수입은 살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은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짬짬이 일해서 벌 수 있는 파트타임 수입으로 기대보단 훨씬 많은 것이고, 만일 글을

 전혀 쓰지 않아서 빈둥빈둥 논다면 한푼도 벌지 못했을 것이므로 5,000불에서 10,000

 불은 큰 돈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무슨 대학을 다녔냐고, 학점은 얼마였냐고, 작가가 되려고 어떤 자격

 을 갖추게 되었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 것도 답할 수 없다. 난 단지 쓸 뿐이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재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쓰지 못한다. 나는 게으르고, 훈련을

 받지도 않아 철저하지도 못하고, 책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 및 친구들

 과 같이 한다.

 

 4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동의어 책도 없었고, 케이마트에서 89센트에 산 웹스터 소

 형 사전을 사용한다. 6년 전에 129불을 주고 산 전자식 타이핑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보지도 않았다. 난 여섯 명의 식구를 위해

 서 요리, 청소 및 세탁 등의 모든 일을 하고, 여기 저기에서 몇 분씩 짬을 내어 글을

 쓴다. 네 명의 아이와 소파에 앉아서 피짜를 먹거나 티비를 보면서 노란 편지지 첩에

 모든 이야기를 보통의 필기체로 쓴다. 책의 내용이 완성되면, 다시 타이핑을 해서 출

 판업자에게 우송한다.

 

 나는 총 여덟 권의 책을 썼다. 네 권은 출간되었으며, 세 권은 출간을 위해 출판업자

 들에게 보내져 있다. 한 권은 평판이 나쁘다.  

 

 글 쓰길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여, 전 당신에게 ",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 당신

 은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

 ." 라고 힘주어 외치고 싶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바, 알려진 방법에 따라서 바르게

 쓰진 않지만, 그런 널리 인정된 시류를 타파해 왔다. 글 쓰기는 쉽고, 또한 재미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다. 물론, 남들이 어쩌다 재수 좋게 한번 잘 썼다고 비난한다고 마음

 쓸 필요도 없다.  ....................(  린다 스태포드  ).......................

 

 

 덧글)

 다 읽으시냐 수고하셨습니다. 어떼요, 글 쓰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거 느끼셨죠?

 친구들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한번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 이런 소재를 구해서 번역해 올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아하, 이 책은 미국 출장 갔다가 구입해 온 책인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이런 책을 선택했는지 신기할 뿐이다. 윗글은 Chicken Soup for the Soul at Work 책을 한 챕터를 번역해 올린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 글을 써보라고 끈덕지게 종용했던 것 같다. 얼마 후에 또 글쓰기에 관한 글을 써 올렸다. 하긴 한 두번으로 안 된다면 세네번은 부딪혀 보아야 하겠지.

 

 

 [  ] 4205 / 6343      [등록일] 2000년 01월 07 19:21      Page : 1 / 5

 [등록자] SUNNYSON         [  ] 46           

 [  ] [   ] 밑글↓의 좋은 예가 되는 조선일보일보의 기사를 퍼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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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번역한 글 "나는 언제나 내식대로 쓴다."에 언급되었던 "누구나 글을 쓸 수 있

 고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서 2000년 1월 1 조선일보 31

 사회란에 게재된 기사를 옮겨 적어봤다. 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우리 친구들 중에

 도 하나, , ... 점점 많은 시인과 작가가 나오리라 믿는다.    

 

 많은 글쟁이 친구를 두게 될 것 같아 흐뭇한

 태양의아덜 서니...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최고령급 주부 崔 永 信 씨

 

 

                      50년간의 습작같은 고행

                     51살에 활짝핀 "작가의 꿈"

 

 

 "꿈만 같아요"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시부문 당선자인 최영신. 새해 쉰 한살인 '중년 아줌

 '로 신춘문예 최고령급이다. 그녀는 충남 금산에 있는 용문초등학교 12회 졸업생.

 공식 학력은 그게 전부다.

 

 전화로 당선통지를 할 때 대화가 힘들었다. 울먹이는 듯했다. 대선서 언제 올라오냐

 고 묻자 간신히 "다음주 화요일." 개인택시를 모는 남편 권선태(權善.59)씨가 쉬는 날

 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16남매에 어머니가 둘]

 

 최씨는 한학자.농사꾼인 부친의 16남매 중에 '섞여' 태어났다. 어머니가 둘이었고,

 복형제가 얽혔다. 집안은 인산밭 700, 양계 1만수, 70마지기, 포도밭 1000평을

 짓는 대농(대농)이었고, 최씨는 "12살 철들며부터 죽어라 집안 일만 하다가" 16살 시

 골처녀 몸으로 전주로 가출한다.

 

 떡볶이 장사, 옷가게 점원, 화장품 가게, 스탠드바 등등 열댓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밑

 바닥을 훑는 인생 여정이 시작됐다. 19살 때 대전의 한 운전학원에서 지금 남편을 만

  21살에 결혼, 22살에 큰 딸을 낳았다. 그러나 처녀적 고생은 그후 닥칠 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남편 사업실패로 빚만...]

 

 운수사업에 손댔던 남편은 빚만 지고 실패, 직접 돈벌이에 나선 최씨가 미장원과 인

 삼 보따리 장수를 거치며 "한두되씩 쌀팔아 연명하던 시절"을 살아낸다. 나중에 남편

 이 장의차 운전사로 취직됐으나, 빚갚느냐 4년 동안 월급은 손도 못댔다.

 

 <사진>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된 최영신씨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

 . /김진평기자 jpkim@chosun.com

 

 초등교 졸업이 공식학력

 밥장사-보따리 장수등

 갖은 고생하며 세딸 키워

 "내 체험의 불꽃 피우며

 정말 詩人이 되고 싶다.

 

 

 최씨는 지영(29), 나영(27), 유영(24) 등 세 딸을 대학까지 가르쳐 레스토랑 주인, 디자

 이너, 간호사 등으로 키워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아이들에게 소풍 한번 못 따라가

 준 어미"로 가슴이 저민다. "구리무 한번 못바른 세월에"  몸을 방치하다 80년대 초

 결핵성 임파선으로 3년 동안이나 목수술을 받아야 했다.

 

 늦깎이 시인 공부는 "엄마의 인생을 살라" 고 부추긴 큰딸 덕이었다. 그래서 98 3

 월부터 최씨는 배재대 사회교육원에 다닌다. 그전에 공부는 '신문(조선일보)읽기'였다.

 

 

 ["엄마 인생 살라" 부추겨]

 

 최씨는 밥장사 끝낸 늦은 시각 몸이 물먹은 솜 같아도 신문을 3-4시간씩 읽어냈다. 

 그러길 20여년. 사회교육원에는 작가를 꿈꾸는 '가방끈 긴' 학생들이 많았다. 개중에

 는 박사도 현직교사도 여럿 있었다. 그들에게 조롱당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내가 어

 떻게 살았는데..., 내 생활체험으로 너희를 이기리라"며 웃음을 지었다. 시인 강희안

 (35)씨도 최씨의 습작을 보고 "2년 배운 사람보다 훨씬 낫다. 김소월도 국민학교밖에

 안 나왔다"며 격려했다.

 

 하루 15~17시간을 매달리는 시작(시작). 시 원고를 든 채 의자에서 잠들거나 신혼인

 강 시인을 밤늦게 찾아가 갓난애를 대신 얼러주며 '한 말씀'을 듣고 온 적도 한 두번

 이 아니다. 최씨는 "10년을 일찍 죽는다 해도 정말 시인이 되고 싶다"는 가슴속 외침

 으로 기운을 차렸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면서도 내 안의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쓴 600편의 시가 쌓였다.

 

 지난 11. 딸들이 여기저기 게재된 신춘문예 응모 사고(사고)들을 올려 가지고 왔다.

 "엄마는 할 수 있을 거야"라는 격려오라 함께 였다. 황동규, 김주연 두 심사위원이

 뽑아준 당선작 '우물'은 말미가 이렇다. "...끝없는 고행의 길로 일생을 바친 소녀의

 빈 웃음들이 둥글게 받은 하늘에 기러기 한 줄 풀어 놓고 있었다.

                                              (김광일 기자 / kikim@chosun.com)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누구나 꿈을 갖고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글 잘 쓰고,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된 것이지.

 

굳이 작가나 시인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만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마칠 때 한 권의 자서전을 내 자손에게만이라도 남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비록 죽어 저 세상에 가도 나 자신과, 삶과 흔적은 후손들의 핏줄 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남게 될 테니깐 말이다.

 

10, 20년 후에 내 친구들 중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될지  참 궁금하다. 10, 20년이라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터. 우리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 조금 더 끈기를 갖고, 열정을 갖고, 계획을 세우면서 말이다.

 

글을 쓰기 싫으면 매일매일 타이핑이라도 쳐 보자고 권하고 싶다! ^^

 

 

2008. 8. 3.     15:38

 

 

태양의아덜 서니로 돌아가 글쓰기를 권하는 고서

김 선욱

 

덧글) 나는 내식대로 쓴다 영어 원문 

 

 

 [  ] 4087 / 6343      [등록일] 1999년 12월 30 17:58      Page : 1 / 8

 [등록자] SUNNYSON      [  ] 77           

 [  ] [   ] (Dear My Friends, I Need Your Help!!!)           

───────────────────────────────────────

 

   밑에 4381번에 말한 좋은 이야깃거리란 아래 글을

   말한 것인데, <Chicken Soup for the Soul at Work>

   이란 영어책에서 발췌해 온 것인데 번역을 해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 보면 좋을텐데...

 

   우리 토방에 영어 잘하는 친구가 많은 걸루 아는데

   좀 도와 주지않으련? 아래 글좀 누가 번역해서 가급적

   빨리 올려주었음 좋겠는데...

 

   좋은 글이라 같이 공유하고 싶은

   태양의아덜 서니..

 

   ----------------------------------------------------------------- 

 

                      I Never Write Right

 

 

There is a vitality, a life force, an energy, a quickening,

that is translated through you into action, and because

there is only one of you in all time, this expression is

unique. Martha Graham

 

When I was 15, announced to my English class that I

was going to write and illustrate my own books. Half

the students sneered; the rest nearly fell out of their

chairs laughing.

 

"Don't be silly. Only geniuses can become writers," the

English teacher said smugly. "And you are getting a D

this semester."

 

I was so humiliated I burst into tears. That night I wrote

a short, sad poem about broken dreams and mailed it to

the Capper's Weekly newspaper. To my astonishment

they published it, and sent me two dollars. I was a

published and paid writer! I showed my teacher and

fellow students. They laughed.

 

"Just plain dumb luck", the teacher said.

 

I'd tasted success. I'd sold the first thing I'd ever

written. That was more than any of them had done, and

if it was "just dumb luck," that was fine with me.

 

During the next two years I sold dozens of poems,

letters, jokes and recipes. By the time I graduated from

high school (with a C-minus average), I had scrapbooks

filled with my published work. I never mentioned my

writing to my teachers, friends or my family again. They

were dream killers, and if people must choose between

their friends and their dreams, they must always choose

their dreams.

 

But sometimes you do find a friend who supports your

dreams. "It's easy to write a book," that new friend told

me. You can do it."

 

"I don't know if I am smart enough,"I said, suddenly

feeling 15again and hearing echoes of laughter.

 

"Nonsense!" she said. "Anyone can write a book if they

want to."

 

I had four children at the time, and the oldest was only

four. We lived on a goat farm in Oklahoma, miles from

anyone. All I had to do each day was take care of four

kids, milk goats, and do the cooking, laundry and

gardening. No problem.

 

While the children napped, I typed on my ancient

typewriter. I wrote what I felt. I took nine months, just

like a baby.

 

I chose a publisher at random and put the manuscript in

an empty Pampers diapers package, the only box I

could find (I'd never heard of manuscript boxes). The

letter I enclosed read: "I wrote this book myself, I hope

you like it. I also drew the illustrations. Chapter 6 and

12 are my favorites. Thank you."

 

I tied a string around the diaper box and mailed it

without a self-addressed stamped envelope, and without

making a copy of the manuscript. A month late I

received contract, an advance on royalties and a request

to start working on another book. (99-12-30 5:12:12PM)

휴 타이핑 무쟈 힘드네.

 

Crying Wind became a bestseller, was translated into

15 languages and Braille, and sold worldwide. I

appeared on TV talk shows during the day and changed

diapers at night. I traveled form New York to California

and Canada on promotional tours. My first book also

became required reading in Native American schools in

Canada.

 

It took six months to write my next book. I mailed it in

an empty Uncle Wiggley game box (I still hadn't heard

of manuscript boxes). My Searching Heart also

became a bestseller. I wrote my next novel, When I

Give My Heart, in only three weeks.

 

The worst year I ever had as a writer, I earned two

dollars (I was 15, remember>). I my best year, I earned

$36,000. Most years I earn between $5,000 and

$10,000. No, it isn't enough to live on, but it's still

more than I'd make working part-time, and it's $5,000

and $10,000 more than I'd make if I didn't write at all.

 

People ask what college I attended, what degrees I have,

and what qualifications I have to be a writer. The

answer is none. I just write. I'm not a genius, I'm not

gifted and I don't write right. I'm lazy, undisciplined,

and spend more time with my children and friends than

I do writing.

 

I didn't won a thesaurus until four years ago and I use a

small Webster's dictionary that I bought at Kmart for 89

cents. I use an electric typewriter that I paid $129 for

sic years ago. I've never used a word processor. I do all

the cooking, cleaning and laundry for a family of six

and fit my writing in a few minutes here and there. I

write everything in longhand on yellow tablets while

sitting on the sofa with my four kids, eating pizza and

watching TV. When the book is finished, I type it and

mail it to the publisher.

 

I've written eight books. Four have been published, and

three are still out with the publishers. One stinks.

 

To all those who dream of writing, I'm shouting at you,

"Yes, you can! Yes, you can! Don't listen to them!" I

don't write right, but I've beaten the odds. Writing is

easy, it's fun, and anyone can do it. Of course, a little

dumb luck doesn't hurt.  Linda Stafford. (99-12-30

5:28:10 PM/99-12-30 5:37:5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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