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통을 딛고 일어서다

 

 



 

 

 

 

독서를 통해 고통을 딛고 일어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때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딛고 일어서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통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자신이 고통을 겪기 전에는 그런 일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누구나 크고 작든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 때 슬기롭게 극복을 하느냐 아니면 좌절하느냐는 여러 가지 요인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좌절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고난을 잘 극복하고 일어서게 될 것이다. 즉 정신력이 강하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봄 드디어 무역업을 시작했다. 오랜 동안 준비해온 꿈을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서로 돕는, 내 회사처럼 일할 수 있는 무역회사를 만들자는 꿈을 위해서 작게나마 무역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준비가 소홀했다. 갑류무역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자본이 없어서 어머님의 허락을 얻어서 담보대출을 받아서 시작했다. 인쇄기계 오파업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기계를 사신다는 가망고객도 있어서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기계구입을 미루더니 결국 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1년이 넘도록 열심히 마케팅을 하러 다녔고, 97년 가을에 예비고객을 모시고 벨기에 전시회에 다녀왔다. 구입할 기계를 직접 살펴보고 원하는 제품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전시회에 다녀와 기계사양을 정하고 다음으로 결제방식을 어떻게 할까 협의를 하던 중 IMF가 터진 것이었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다 소용없게 된 것이다. 환율은 급등했다. 수입오파와 수입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던 나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는데 IMF는 내게 너무 큰 타격이었다. 사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1997년 봄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 호텔에서 TV를 보다가 운동기구를 판매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주문자 무료 전화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러 광고의 전화번호를 적어 두었다가 돌아오는 날 시간이 남아 공항에서 전화를 하였고, 여기저기 연락을 하여서 몇몇 회사의 본사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국내로 돌아와 연락을 하여 운동기구들의 샘플을 입수하게 되었다. 여름쯤에 샘플을 받아서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업을 하던 친구가 기존에 하던 사업을 그만둔다고 하여 동업을 제안하였다. 그렇게 해서 운동기구 TV 광고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본과 인력,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지만 열심히 준비를 해서 광고 판매를 하게 되었다. 시작은 순조로운 듯 싶었다.

 

그러나 복병이 나타났다. 주력상품이 가격경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5만원 정도에 판매하던 것을 2만원에 판매하게 되었으니 수익성 급격히 나빠졌고 사업은 어려워졌다. 독점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경쟁회사는 이미 아시아판권을 가지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상대회사는 TV 광고판매업계의 선두주자로 그들과의 다툼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자금 여력도 없는데다가 시간 낭비일 것 같아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 뒤로 사업은 이것저것 다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99년 한해는 정말 암울했던 한 해였다. 모든 게 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때 빚을 갚지 못하자 어머님께서는 몹시 불안해 하셨다. 혹시 담보로 잡힌 집이 날아가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셨던 것이다. 돈 벌어서 곧 갚겠다고 해서 해주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 도와주셨던 것이다. 사업을 한다고 하니깐 어머님께서는 점을 보러 가셨던 모양이다. 사업 운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평생 소원이던 무역회사를 시작하는 게 그 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마지못해 허락을 하셨는데,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자 불안하게 되셨던 것이다.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오셔서 악착같이 일해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마련한 집인데, 잘 못해서 잃게 된다면 어머님께는 엄청난 고통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불안불안해 하실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어둠컴컴한 지하실의 사무실에서 의기소침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고민하면서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어머님께서 내게 비수를 내지르셨다. 혹시나 집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시다가,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거셔서는 너 같은 자식 괜히 낳아서 고생이다, 차리리 죽어버렸다면 나았을 게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던 내게 던진 어머님의 그 한마디는 사약과 다름이 없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비참한 인생이라며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냐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 때 그저 남일처럼만 여겨지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업 실패로 자살을 했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때 이후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좌절을 하고 낙망을 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소중한 핏줄인 아이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 때까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하고, 외골수였던 내가 도둑질이나, 싸움질, 도박 같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건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잘 못 될 수도 있었는데, 단지 경제적 실패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나의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어쩜 더 일찍이 잘 못 되어 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도 우주의 보살핌이 있었던 것은 아니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주가 나를 사랑해서 이렇게 살아있게 된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는 눈물이 흘렀다.

 

모든 과거는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마저도. 그러나 그 당시엔 나에겐 죽음보다 깊은 고통이었다. 그런 깊은 수렁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면서 내가 찾았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 고통을 딛고 일어서게 된 것이 생각의 변화였고 정신력이었다면, 내가 수렁을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게 나를 도와주었던 구명줄은 바로 책들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순수하게 내 힘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관념, 관습, 문화 그 어느 하나도 의심하지 않은 게 없었다. 어느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깊이 사색하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비교해 보게 되었다. 바로 책을 통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게 되었다. 그로부터 책을 통해 진리를 찾는 나의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때 읽기 시작했던 책들이 성경, 불경, 도덕경이었다. 그 위에 점차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는 다른 책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슴푸레 깨달았으며, 여러 가지 책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우주의 원리가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우주의 한없는 사랑에 감사하게 되면서 나는 행복열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내가 사랑 자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어머님의 심한 비난의 말씀도 바로 용서가 되었다. 아니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셨을까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 고통에 가슴이 아파왔다. 그 동안 효도도 다하지 못했는지 어떻게든 평안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인생의 목표이자 꿈을 버리게 되었다. 사업을 그만두기로 하고 취직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앞으로 할 일은 그게 무엇이든지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고통의 시절이 지나갔다. 그 해부터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진정으로 가까이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려서 품었던 생각, 책만이 나의 진정한 친구라는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국민학교 때는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었는데, 14살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여 37살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이 넘는 인생의 황금기에 나는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취미란에는 항상 독서와 바둑이 올랐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한두번씩 찾게 되는 친하지 않는 친구에 지나지 않았다. 37살부터 책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 책은 진정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자리잡았다. 더 이상 취미가 아니고 삶 그 자체였다. 아무튼 오래 버려둔 고향을 찾아 만난 친구인 듯 나와 책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오랜 벗들이 재회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37살이라는 좀 늦은 나이에 다시 책을 통하여 세상으로 또 내 안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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