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내 은사님의 결혼기념 책 선물
나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는 교육이다.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다 보니 우리가 가장 준비하지 않은 채 맞게 되는 것이 아이들 낳는 것이고, 우리가 가장 잘 못하는 것이 교육인 것 같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겐 모든 과거가 부정되는 실정이라 옛 어른들의 교육방식은 거부된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교육관이 확고하게 서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낳아 놓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 일관성이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가 있겠는가. 한마디로 주먹구구방식으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많지 않은 책을 읽었지만 확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특히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 같다. 감정이 앞서다 보니 불끈 화를 내게 됨은 물론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못하면 무작정 야단만 치고, 조금 잘 하면 지나치게 칭찬하고 만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백이면 백 다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통해서 배우지 않고 그만 포기하고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 선생님께 맡겨버림으로써 손쉽게 처리하고 만다. 그러니 더 이상 참다운 지도가 안 되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직접 해 보니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비무환. 준비가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문제가 생기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와 교육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 준비 안 된 사람들이 결혼을 하여 살다 보니 이혼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가정에서 아이들을 잘 못 가르치니 어긋나거나 탈선하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인성교육은 받지 못하고 시험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니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메말라 간다. 이런 현상은 어느 가정에서나 생길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미리 대비를 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에 시달리며 힘들어 하게 된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살다 보니 알 수 있다.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일반적인 문제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미리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면 될 것이다.
미리 겪은 사람들에게 배우거나 책을 통해서 배우면 된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책 20권만 읽으면 교육에 관해서는 확실한 원리 원칙을 세울 수 있고, 다양한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나 선배들에게서 배우지도 않고, 책을 통해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지도 않는다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너무나 단순한 논리지만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육아를 제대로 하고,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면 책을 읽으면서 배우면 된다. 우리 부부에게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결혼을 한지 얼마 후에 아내 은사님께서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다. 아내가 고등학교 때 담임을 하셨던 여선생님이신데 아내를 무척 아껴주셨다고 한다. 학교 졸업 후에도 음악회에도 데리고 가시고 했다니 각별한 정을 갖고 계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 선생님께서 책을 한 보따리 사 들고 오셨던 것이다. 또 아내에게 물어보니 결혼 생활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해주셨다는 것이다. 실제 결혼해서 살아본 사람이야 다 알겠지만 결혼생활이 환상적이지만은 않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결혼을 하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나 또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그런데 선생님께서야 오죽하셨겠는가.
그런데 선생님께 참으로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아내나 나나 선생님께서 사주신 책을 읽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책을 아주 멀리하지 않았지만 가까이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취미란에 꼭 ‘독서’, ‘바둑’ 이렇게 적었지만 독서는 취미로 어쩌다가 하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다가 37살 이후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나중에 선생님께서 사주신 책들에게도 눈길이 가게 되었다. 그 책은 책장의 정해진 그 자리에 늘 꼽혀 있으면서 우리 부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선생님께서 사다 주신 책들을 쳐다보게 되었고, 불현듯 선생님께서 책을 선물하셨을 때의 마음을 상상해보고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부랴부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선물할 때의 마음이야 얼마나 간절한가. 책을 읽고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그 날 이후로 선생님께서 사다주신 책을 한권 한권 다 읽어나갔다. 정말 죄송한 마음이지만 아내는 아직도 그 책들을 다 읽지는 않았다. 좀 오래된 책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때문일까.
그 책들은 자녀교육에 관한 것들이었다. 교육할 대상들이 많이 변하고, 세상이 또 변했지만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책이지만 장맛이 나는 좋은 책들이었다. 선생님께서 선물한 책들은, 「어느 할아버지의 평범한 이야기」, 「내 딸아 인생을 너는 이렇게 살아라」「젊은 엄마를 위하여」, 「김약국의 딸들」, 「피천득 수필집 금아문선」등이다.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젊은 엄마를 위하여는 내가 사다 준 책인줄 착각을 하고 있었던 책이다.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읽지 못한 책이 있는 것이다. 당장 읽어보아야겠다.
책 제목을 보니, 육아에 관한 책 1권, 아들 . 딸들에게 읽어주면 좋을 책 각 1권, 아내가 읽으면 좋을 수필, 소설 책 각 1권 등 딱 좋은 책을 선물하신 것을 알 수 있겠다. 책 맨 뒷 페이지 한 구석에 ‘1993. 3. 14. 현옥 결혼을 축하하며 오정석’이라고 가지런히 씌여 있다. 선생님의 마음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 하다.
몇 년 전 한 때 아내가 책을 많이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교육에 관한 책 1권을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아내는 그 책을 얼마나 감명 깊게 읽었는지 책 뒷부분을 읽고나서는 자기가 잘 못한 점이 너무나 많아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와 또 다른 분께 선물을 한다고 책을 사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사다가 주었다.”
“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 변하게 되면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니 책의 힘이야말로 얼마나 큰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아내의 성장, 발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기회를 빌어 아내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참 죄송스럽게도 이렇게 우리 부부에게 귀감이 될 책을 선물한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아내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나는 갖은 애를 쓰면서 연락처를 찾게 되었다. 예전에 선생님 부부께 인사 드리러 가서 받은 오래된 명함을 찾아서, 선생님 부군께서 다니시던 회사에 연락을 하는 등 이리저리 간신히 알아보아서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명함 한장 소홀히 하지 않고 모아둔 소심한 내 행위 때문에 결국 연락처를 알아냈지만 아내와 나는 못난 제자 부부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연락처를 찾았건만 아내는 선뜻 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계시긴 하지만 열 일을 제쳐놓고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마땅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하루 빨리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우리 부부의 못난 죄를 용서받아야겠다. 그리고 아울러 늦었더라도 책을 선물해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려야겠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지, 왜 사는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