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에밀을 읽다

 

 



 

 

 

아름다운 책과의 만남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고, 책을 만나는 것 또한 그런가 보다. 친구를 만났기 때문에 책을 만났고, 책을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나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과 책이 인생에서 영향을 주면서 아름다운 궤적을 그려나가는 듯 하다. 살면서 친구다운 친구를 만나서 일생 동안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면서 우정을 키워나간다며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들을 너무나 좋아했다. 한 때는 친구가 인생의 전부였다. 그 많은 벗들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저 만남이 좋았고, 어울림이 즐거웠던 아름다운 친구들이 내겐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아니, 내가 그들로부터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책이라는 새로운 벗을 만나게 되면서.

 

아직도 어릴 때 친구들은 만나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람이 나이가 먹고 경험이 많아지면 인생을 경륜하는 모습이 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친구들은 어릴 때 모습만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만을 씹으며 반복된 만남을 유지하기에는 내 마음이 다급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정신적 성장과 인격의 완성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먼데 자꾸 과거로만 돌아가 희희낙낙하게 되니까. 혼자 앞서 나가고만 싶지 않아 한 손을 뒤로 뻗어 같이 가자고 하나 잡는 이 많지 않다.

 

내민 손 부끄럽지 않게 덥썩 잡아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예술을 찬미하고, 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아직도 고독을 씹으며 방황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 있을 때 가끔씩 친구를 찾아가 헌책을 내밀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외면하지 않고 받아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게다가 읽고나서 느낌까지 얘기해주니 비록 헌책이지만 선물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 친구와는 오랜 동안 우정을 나누어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짝을 했다. 유달리 호기심이 많았던 친구는 모든 것에서 앞서나갔다. 그 와중에도 한자를 잘 쓴다며 내 글씨를 따라서 써보곤 했다. 으쓱 기분 좋게 해 주는 일이 아닌가. 그런 친구가 대학을 진학해서 한동안 방황을 했다. 어릴 때의 나는 친구간의 우정이란 덕목을 가장 소중이 여기던 사람이라 친구를 다잡아 주기 위해 큰 위험을 불사하기도 했다.  그러던 즈음, 친구의 집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던 때 내게 다가온 한 권의 책은 나의 영혼을 고양시켜주었다.

 

대학을 다니고 있던 친구 형의 서가에서 발견한 그 책은 바로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당시 나는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느꼈었는데, 얼마나 감동을 했던지 겨울에 고향 친구를 찾아가 열변을 토하면서 얘기를 했다. 그런데 창피하지만 지금 그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헌책을 한 권 사두었다. 나는 책을 두번씩은 읽지 않는다. 단 한번의 예외를 빼고는 아직 두번씩이나 읽은 책은 없다. 한데 나는 이 책만은 꼭 한번 더 읽어볼 것이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젊은 날의 나를 그렇게 감동시켰을까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에게 가장 관심 큰 화두는 딱 두 가지이다. 바로 교육행복이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은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기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교육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나는 우리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국가 차원의 교육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나의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 한 권 있다. 그것은 바로 루소의 에밀이다.

 

내가 에밀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친구로부터 그의 형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이다. 친구의 얘기를 빌면, 형님께서는 에밀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교육대학에 다닐까 하고 고민을 하셨다는 것이다. 아니, 얼마나 혁명적인 책을 읽었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교대에 다니고 싶어하셨을까 나는 참으로 의아했다. 이 때부터 에밀이라는 책의 이름이 나의 뇌리에 깊게 박히게 되었다.

 

그런데 책과의 만남에도 때가 있는 법일까.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고도 몇 년이 지나기까지 이 책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책을 가까이 하기 시작한 37살에 드디어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다. 책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때 완독을 하지 못하고, 5년이 더 지난 41살에 이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되었던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밤마다 울어야 했듯이, 내가 이 한 권의 책을 읽기에는 20년이라는 세월의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찌나 크게 감명을 받았던지, 그 책을 읽고 써 놓은 독후감을 읽어보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나는 그 때까지 아이들 교육에는 인성교육이 중요하지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아이들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어려서 일터로 끌려 다니면서 마음껏 놀지 못한 내 경험에 대한 반동심리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했었다. 에밀을 읽고 난 후에 그렇게 하기를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에밀에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 놀게 하라거나 공부를 소홀히 하라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의 본성을 살리는 자연 교육관을 강조했으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을 주장했던 것이다.

 

에밀은 단순한 교육이론서가 아니다. 루소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있는 인생철학서라고 보면 좋다. 에밀이라는 아이를 진정한 인간으로 교육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 아이들, 교육, 문화, 종교, 연애, 결혼, 그 밖에 다양한 분야에 관한 루소의 깊은 사색과 통찰의 결과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에밀을 가르치면서 자연신관을 제안한다. 기존의 종교를 부인하나 참된 신앙생활을 제안한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물리적 환경인 자연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본성을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루소 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단편적인 말로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커다란 오해인 것이다. 그런 본성에 따라 자랄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려서는 관념적인 내용에 무지하므로 그런 쓸 데 없는 가르침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즉 아이는 감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직 선과 악이라든지 도덕이라는 관념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감각적인 느낌에도 충실하고 육체적으로도 튼튼하게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며 육체와 정신의 균형된 발달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짧은 지면이라 책 소개는 간략히 마치겠지만 책의 모든 내용에 나는 동의하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나는 에밀의 교육관을 따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교육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원칙만이라도 고수하려고 한다.

 

에밀이라는 책을 만나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루소의 교육관은 상상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진부한 원칙과 원리가 아니라 우리가 평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따라야 할 위대한 정신인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으로만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가난해서는 안되겠지만 적성에 맞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보람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우면서 살았으면 참 좋겠다. 바라는 게 하나 더 있다면, 그 아이들은 나보다 더 일찍 에밀을 읽어서 좀 더 빨리 자신들의 아이들 교육에 대해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욕심을 내자면, 아이들이 평생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하는데다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평생 한번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한 공부였지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그나마 학교 때까지 했던 공부마저도 않게 된다. 그러니 무슨 발전이 있고 성장이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획일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공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진정한 인생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이 때, 스승의 역할을 책이 아니면 무엇이 대신할 수 있겠는가.

 

독서가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해 줄 것이다. 책이 행복한 삶의 지평선을 열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독서를 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어 당신의 사고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오래 동안 에밀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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