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책과의 소중한 인연  

 

고개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는 깊은 산골. 나는 내가 살던 고향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실제 그렇게 첩첩산중은 아니었지만, 들판이래봐야 빠꼼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마을 주위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였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아이들 걸음으로는 한 30분 정도 걸렸다. 학교와 마을 사이엔 공동묘지가 있어서 강단이 있는 아이들도 밤길은 무서워 혼자 갈 수 없다. 그 때는 무슨 귀신이 떠돈다든지 여우가 도술을 부려 사람을 홀린다는 얘기가 어찌나 자연스럽게 나돌았는지 꼭 실제 있었던 이야기 같아서 많이 무서웠다. 참 많은 것이 신화와도 같았던 시절이다.

 

그 시절 나는 4학년 때부터 웅변을 하였다. 어떻게 해서 웅변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4학년 때는 원고를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를 외워서 웅변을 했다. 마침 강감찬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걸 달달 외워서 웅변이라고 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봄 소풍을 우리 동네 앞에 있는 정문거리로 왔다. 그곳에 큰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좀 작은 느티나무 옆에 열녀를 기리는 정문이 있었다. 그 강변에 학생들이 주욱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장기 자랑을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웅변을 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국어책에 나온 이야기를 외워서 웅변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때부터 나는 하나의 꿈을 갖게 되었다. 장군이 되어서 강감찬 장군처럼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사람이 되자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강감찬 장군에 대한 내용을 달달 외우다 보니 아마도 장군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것이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된 것 같다.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5학년 때도 웅변을 계속했다. 이제는 제법 웅변다워졌을까, 원고도 써서 웅변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웅변 연습을 하던 중에 고마운 일이 있었다. 우동집을 하던 좀 잘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일요일에 학교로 웅변 연습을 하러 갔는데 생 달걀을 하나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목이 쉴까봐 달걀을 먹으라고 전해주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지금까지도 가슴 속에 남아있다. 아직도 고맙다는 말을 충분히 전해주지 못했는데, 언제 만나면 술 한잔 사면서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기에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었을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까 싶다. 친구의 도움도 있고 해서 큰 힘이 되어서일까, 전교 웅변대회에서 2등을 수상하였다.

 

그 때 이후로 나의 꿈은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장군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야 된다고 들어 육사를 가는 것이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면 대장 노릇을 하곤 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했던지, 내가 지나가면 저기 장군 지나간다는 소리를 하곤 했었다. 나의 장래 희망을 들었던지 어떤 친구는 소위 뺏지를 구해다 주기도 했다. 6학년 때는 그 뺏지를 달고 다녔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이미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은 요즘 성공철학서적을 보면 많이 나온다.

 

한편 4학년 때부터는 책도 많이 읽었다. 시골학교라 도서관이라고 해봐야 전부 해도 몇백 권의 책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었다. 그 때 도서관 담당은 여선생님께서 하셨는데, 책을 자주 빌리러 가서 귀염을 받아서였을까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나보다도 더 나에 관해서 잘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의 얘기에 의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 때 당시의 나는 책을 무척이나 많이 빌려다 보았다. 하루에 서너 권의 책을 빌려다 보았다. 책을 빌리기 전에 선생님의 채점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께서는 나보다 더 아래 학년의 담임을 맡았던 것 같았는데, 시험지 채점 매기는 것을 도와 드렸다. 선생님 곁에서 말없이 채점을 해주었던 것 같다. 채점을 다 하고 도서관 서가의 책 중에서 마음대로 3권씩이나 빌려갈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하루에 1권 밖에 빌려갈 수 없었는데 그렇게 많이 빌려갈 수 있었다니 그것은 일종의 특혜였던 셈이다. 가만히 돌이켜보건 데 선생님은 책 잘 읽는 어린 학생이 기특하기도 하였을 것 같다. 책을 빌려가서는 다 읽고 또 다음날 그렇게 많이 빌려갔으니 참 마음에 드셨을 것이리라.

 

집에 돌아가면 얼마나 책을 열심히 읽었겠는가. 3권씩 읽으려면 밤 늦게까지 읽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당시 안방과 사랑방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동생들은 안방에서 자고 나 혼자 사랑방에서 잤다. 4학년 때쯤에는 호롱불을 이용했다. 그 이후에나 석유를 이용해서 불을 밝히는 남포등을 사용했다. 전기불도 먼 얘기다. 우리 동네는 중학교 1학년 여름 살구가 익어갈 무렵에나 전기가 들어왔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호롱불 밝혀놓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겨울에 사랑방에는 볏가마를 주욱 쌓아 놓았다. 다른 한구석에 고구마 통가리를 만들어 두었다. 그 당시 나는 공부를 잘 했는데도,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는다고 부모님께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래서 안방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라도 나면 후다닥 읽던 책을 볏가마 사이 빈 공간에 집어 넣고 자는 척 하곤 했다.

 

급기야 어느 날 부모님께 들키고 말았다. 책을 빼앗겼다. 아버님께선 책을 빼앗아선 공부는 안하고 책만 본다고 책을 반으로 갈라 놓고 마셨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골학교에서 그 정도로 책을 읽었으면 공부는 어련히 잘 했을 것인데, 왜 책을 읽는다고 화를 내셨는지. 하긴 어머님께선 지금도 책을 열심히 보는 우리 두 형제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신다. 아무튼 학교에서 빌려온 책을 그렇게 해 놓았으니 참으로 큰 일이었다. 다음날 일어나 책을 찾으니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화장실에 두었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 그 책을 읽은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정말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이 한탄스럽지만 나는 어떻게 그 책을 학교에 반납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나의 책 읽는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6학년 때는 자유교양반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책 읽고 글 짓기 하는 군대회에 나가기도 했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려서 자기 집에 마을 도서관이 있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서 부친께서 도서관 설립 자금을 대는 조건으로 해서 도서관을 자기 집에 두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껏 책을 읽었는데 과학책 같은 것을 읽으면서 일일이 실험까지 다 해보곤 했단다. 그 친구는 책을 다 읽고 읽을 책이 없어서 원예, 버섯재배법 등에 관한 책까지도 읽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 친구는 결국 전자공학과에 진학을 했는데 실험을 잘 했다고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부러웠었던지 모른다.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나는 도서 담당을 하셨던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어린 제자가 마음껏 책을 보게 하루에도 몇 권씩 대출을 해 주셨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어린 시절에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이 글을 쓰다가 하도 기억이 희미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책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 친구와는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줄 곳 같은 반을 했는데 나 보다 공부를 잘 해서 늘 1등을 했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 선생님께서 웅변반을 지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과 친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무튼 친구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께서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셨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던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말없이 선생님의 채점을 도와주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던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았던 적이 없어서, 고향을 떠나온 지도 오래되어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한번 만나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 책이 출판을 되고 나면 책을 들고 한번 찾아뵐까. 선생님이 많이 그립다!

 

중학교 때는 책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괴산에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3학년 때 경기도 발안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책에 대한 열정이 좀 식었지 않았나 싶다. 하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어머님 외사촌께서 6.25 때 월북을 하셨다는데 연좌제 때문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장군이 되는 꿈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 길이 아니어도 방법이 있었을 텐데 누가 잘 얘기해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만 포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꿈이 사람을 활기차게 만들고, 열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장군이 된다는 꿈을 꾸면서 어려서부터 장군처럼 행세를 했었다. 초등학교 때 사진을 보면 유독 나는 차렷 자세가 많았다. 그게 왜 그랬을까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군인들의 절도 있는 모습을 따라해서였지 않았나 싶다. 그 꿈이 없어지고 난 후, 나는 다른 꿈을 꾸지 못하고 어영부영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공부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꿈을 꾸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그 때 이후로 10년은 참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나는 꿈이 사람을 동기 부여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고향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떠나왔다. 그것은 하나의 아픔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다시 고향을 찾은 것은 대학교 때니까 참 오랜 시간 고향을 등지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간척지 농사를 지으러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뒤늦게 따라왔다. 동네는 조립식으로 새로 지은 집들이었다. 간척지에 농사를 지으러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된 것이다. 다들 젊은 분들이라서 그랬는지 학생들로서는 내가 제일 컸다. 친구들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와서 정착하게 된 과정을 그린 것은 나는 이곳에서 생애 최초로 책 선물을 받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 진학을 앞둔 3학년 겨울 방학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동네 앞쪽으로는 너른 간척지 들판 확 뚫려 있어 겨울이라 찬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뒤쪽으로는 동네에서 산 쪽으로 꽤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 눈이 많이 내려 밭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멋진 광경을 연출해 주었다. 바람을 피해 눈 덮인 밭쪽으로 나가 돌아다니며 심심하면 눈덩이를 만들어 허공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고 놀고 있는데 마을쪽에서 누군가가 눈 위를 걸어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모습이 드러나면서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모르는 사람이었다.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네 식구인지 훤히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아가씨가 모자를 쓰고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고등학생 누나쯤 되는 줄 알았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모르지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대학생 누나였다. 우리 윗집에 있는 라씨 아저씨네 집에 놀러 왔다고 했다. 그 이후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곧 고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니깐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책에 관한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자기가 책을 보내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날 그렇게 헤어진 얼마 후에 나는 정말 작은 소포를 하나 받았다. 책꾸러미였다. 책이 3권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한스럽게도 기억력이 나빠 무슨 책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권은 죄와 벌이라는 책이었던 것 같다. 젊은 사람이 수전노 노파를 죽인다는 내용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다.

 

그 때 고맙다는 편지를 썼을 법도 하다. 무어라고 썼을까. 고맙다고 충분하게 표현했을까. 지금 돌이켜보아도 참 고마운 일이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책 선물을 하다 보니 책을 선물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책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것이기에 책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간절하기도 하다. 지금 50쯤은 되었을 그 누님은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실까. 여전히 책을 가까이 하시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계시겠지. 한번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책을 잘 읽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내가 책을 한 보따리 선물하면서 빚을 갚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더 세월이 흐르기 전에 선생님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고, 생면부지의 누님도 만나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인생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 같다. 혹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도 젊은 사람들에게 책읽기를 권유하면서, 또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어야겠다. 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도록, 그리하여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아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돕고 싶다. 책 사랑으로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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