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쓴 시간: 08년 6월 6 17시 42분 27 ~ 08년 6월 6 21시 11분 33

 

(필승 Ver2.0 영석 / 태준식 감독 출연 연영석, 고명원/인디스페이스)

 

영화 관람 시간: 2008. 6. 6. (금) 12:30 ~ 14:10

영화 관람 장소: 인디스페이스 제 3관 좌석(왼쪽 중간쯤 앉아서 봄)

 

오랜 만에, 아주 오랜 만에 영화를 보았다. 재작년만에 해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봤었다. 하지만 그게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서 그 호사스러운 누림에서도 멀어지고 말았다.

 

이번에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특별한 영화를 특별한 날에 보게 되었다. 특별한 영화를 보고 아주 특별한 것을 느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관을 둘러보았다. 오늘날과 같이 뭐든지 큰 게 유행인 시대에 이런 작은 영화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영화관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과거 속으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과거에서 서서히 현실로 되돌아왔다. 영화관 앞에서 안내를 하는 예쁜 아가씨들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눴다. 행복하려면 꿈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해줬다. 이런 역사적 유물과 같은 영화관을 널리 알리고 싶어 거칠게 영화관도 디카로 잡아 보았다. 분식점에 들려 1,000원하는 큰 찐빵을 하나만 사먹었다. 어찌나 큰지 배가 부를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과거에서 나는 현실 속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소외받은 독립영화> 넓고 넓은 영화관에서 혼자 관람했다!



 

<노동자를 위해 노래하는 문화 노동자 전영석> 왜 그는 목소리 높여 노동자의 한을 노래하는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소외받은 계층들> 밥이라도 먹고 살자고 외치는 것이다.



 

<필승 ver2.0 연역석> 독립영화가 살아야 우리의 의식이 커진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영화관을 돌아보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안내표시>



 

<북카페>



 

<독립영화 배급 지원 센터>



 

<서울영화제를 안내하는 아가씨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꿈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중앙시네마가 인디스페이스라 바뀌어 불리는 것이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더 가깝다.



 

마침 얼마 걷지 않으면 가 닿을 수 있는 곳이 시청 앞 광장이라 천천히 촛불집회라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먼 과거로부터 21세 오늘 바로 오늘의 시간 속으로 걸어나갔다. 얼마 걷지 않아서 시청이 눈앞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들이 들어서 있었다. 나라 사랑하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왠 공연이라도 있을 것 같은 무대장치 등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아하, 어제 신문 기사에 본 그 무슨 단체에서 위령제를 지낸다고 하더니 바로 그것들이 진짜로 일어났구나 싶었다. 상세 내용은 기사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media.daum.net/politics/president/view.html?cateid=100012&newsid=20080606115409577&cp=yonhap&RIGHT_COMM=R2) 이런 비참할 데가. 아무리 생각해도 꼼수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음모의 현장이 확연히 드러났다. 오가는 시민들의 손에는 이명박 정부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각종 문구가 적힌 표시 판, 스티커 들이 들려있었다.

 

<촛불 문화제의 배후들>



 

<고2학생이라고 했다>

 



 

<이들이 왜 촛불집회의 배후가 되었을까?>



 

<성난 국민의 원성은 자자했다!>



 

 

정말 왜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둔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광장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앞을 향해서 힘차게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국민들의 발을 꽁꽁 묶어놓고 자빠뜨리려고 하는 인간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어리석은 대통령을 국민들이 어찌 따르겠는가 싶었다. 정말 통탄할 노릇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어두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아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지켜온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제 뜻대로만 국정을 운영하려고 고집을 피우는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특별한 개인들만이 모인 단일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복합 사회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조직과 단체가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조직과 단체는 크게 하나의 국가로서 다 함께 잘 살아가야 할 유일한 단일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가급적이면 소외되고 핍박 받는 국민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 체제가 잘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 경제 성장만을 외치다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정경유착, 부정직한 언론 재벌 탄생, 부실 공사, 뇌물 수수 등 부도덕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급하다고 바늘을 허리에 붙잡아 맸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도덕과 양심을 바로 세우고, 법을 엄정하게 적용하면서 재정비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기꾼에 부도덕하기 이를 데 없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온 나라에 다시금 불편부당한 일들이 판치게 된 것이다. 국가라는 배가 강을 진보로 나아가지 못하고 역사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고 있다. 온 국민이 헛힘을 빼고 있다. 국민의 뜻이라고 하는 하류 쪽으로 방향을 틀기만 하면 문제없이 흘러갈 배가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이러다 좌초하거나 뒤집어지기 십상이다. 하루 빨리 이런 위급한 상황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서민들은 물가고로 죽어나자빠질 지경인데도 대통령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잘 사는 대기업들만 잘 살게 하겠다고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잘 사는, 그렇지 못하면 굶어 죽는 사람은 없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국민이 굶어 죽는다면 누가 전쟁이 나면 누가 나가서 국가를 위해 싸우겠는가. 국민이 가장 큰 자산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시청광장을 뒤로하고 나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왔다. 오늘은 시간 여행은 참으로 가슴 아픈 여행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번에 친구를 통해서 독립영화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대하게 되었다. 독립영화라니 무슨 뜻일까? 거대자본에 의한 상업영화에 대비되는 말로 영세하고 열악한 영화를 그러나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를 비주류 영화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독립영화에 대한 상세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시길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1&eid=zQgbeIapdqVHd06Kq4I38TncIh47+zFo&qb=tba4s7+1yK0=&pid=fZCKcdoQsDwssuoMMT0sss--044804&sid=X4xT29HaR0gAAEKWHZcAAAAu )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나라인가?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살기 좋은 나라인가. 힘없어 어렵고 고통 받으며 사는 약자들도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나라인가. 적어도 국가는 국민을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는 듯 하다. 모두가 더 잘 사는 나라로 가느냐, 부유한 사람들만 더 잘 사는 나라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아직도 생활난으로 고통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마치 경제 성장이 되면 자동적으로 분배가 잘 이뤄져서 모든 국민이 부유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믿고 있는 듯 하다. 747공약이 어떤 기획과 정책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 근거 있는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저 내뱉은 헛공약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경제성장만 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고 있다. 사이비 교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대통령이 거대기업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있는 판에 소외된 계층, 생활을 위한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비정규직, 인권 침해까지 받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가 있다. 함께 하고 서로 나누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위해 한발한발 내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렵고 힘든 길을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같다. 상업영화가 판을 치는, 그것도 외국의 거대자본에 의해 제작되는 블록버스터들만이 판을 치고 있는 암울한 상황에서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독립영화 감독이 있다. 문화 노동자라는 특이한 배우를 통해 그가 비춰주는 우리시대의 후미진 구석에서 신음하고 있는 형제들의 아픔을 다함께 느껴보자.

 

대한민국이라는 어머니의 같은 형제, 빈자.약자.소외받은 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러 여행을 떠나보자. 우리 사회가 같이 나누고 사는 사회라는 것을 배우고 깨닫고, 그들에 함께 살자고 손을 내밀어 보자. 진정 다함께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

 

 

(필승 Ver2.0 영석 / 태준식 감독 출연 연영석, 고명원/인디스페이스)

 

<영화 관람 시간>

영화 관람 시간: 2008. 6. 6. (금) 12:30 ~ 14:10

영화 관람 장소: 인디스페이스 제 3, 좌석(왼쪽 중간쯤 앉아서 봄)

 

<영화 관람 계기>

친구의 소개로 영화를 알게 되었으며, 정말 우리는 따뜻한 눈길. 손길로 우리 사회의 후미진 구석을 돌아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들은 서로 많이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타고난 천성 혹은 독특하게 개발된 개성이라고 한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이러한 차이로 인하여 대립과 충돌이 생겨난다. 보수와 진보, 부자와 가난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기득권과 소외계층, 능력자와 무능력자, 정치가와 일반 시민 등 수 많은 종류의 차이가 있다. 차이에 의해 집단의 구별이 생긴 것이다. 집단과 집단은 서로 반목하고 대결하고 투쟁한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리더는 이런 집단간의 이해를 조정하여 균형과 조화를 이뤄내야만 한다.

 

우리는 그동안 차이를 드러내기만 했지, 그래서 서로 다투기만 했지 차이의 근본 원인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못했다. 근본 원인을 알면 차이를 조정하기가 쉬울 텐데 그저 드러난 현상의 해결에만 주위를 기울였다.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차이를 드러내면서 살아가는가. 왜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갖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비난하는가.

 

이번에 집권한 18대 대통령 이명박은 공공연히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외치고 있다. 이 한면만을 보더라도 그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알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어리석게도 모든 국민을 위한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한 회사의 CEO, 혹은 한명의 자연인인 자산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대표인데 특히 한 집단만을 대리하기로 작정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대통령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혼란스러운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식의 크기는 딱 간장종지 크기만 하다. 비즈니스 프랜들리, 혹은 대기업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의식만 있을 뿐이다. 반면 국민들은 도덕과 양심, 균형과 분배, 생명의 존중,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 합리적 사고와 논리 등의 큰 의식을 갖고 있는 큰 대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위기는 간장종지가 사발을 담으려고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경제밖에 모르는 생각이 어떻게 더 크고 우수한 생각을 이끌 수가 있겠는가. 제 자신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와 성인과의 차이처럼 큰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자신은 자기가 더 똑똑하고 자신의 의식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차이는 경험과 의식의 크기에서 온다. 경험이 적은 사람은, 또는 생각하는 바가 작아 밴댕이 속알딱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남들을 이해하거나 다른 생각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보이는 차이에는 그러한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경험

가난을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안다. 그래서 소외받은 자들도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 맞는 주장,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가난을 모르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비웃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을 저렇게 손 놓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 사람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동정은커녕 발길질을 할 것이다. 가난을 경험했다고 해도 꼭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는 않는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저의 가난했을 때 경험은 잊고 현재에서만 생각을 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양한 경험을 했더라도 지혜롭게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안 된다.

 

의식의 크기

물론 의식은 경험에서 넓어지고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때 필요한 것이 지혜로운 사고의 힘이다. 자신이 집적 경험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타산지석이라고 남들이 경험한 것을 통해, 혹은 역사적 교훈을 통해, 때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통해서 보다 너른 생각,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며 즐거워하지만 나이가 들면 유치하게 여겨 멀리 하듯이 사람도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지면 생각하는 바가 많이 다르게 된다. 의식이 커지는 것이다. 이 사회는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저만 잘 살고자 하지 않는다. 자연과도 조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며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거나 남용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하다 못해 동물들도 존엄성을 갖고 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다운 어른이나, 지혜로운 성인이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가 보라. 절대 그렇지 않다. 사물을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운 지식인만 되어도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순리를 따르는 법이다.

 

깊이 생각해보라, 오해, 편견, 반목, 질시, 논쟁, 대결, 싸움, 전쟁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모두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식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저만 잘 살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제가 결국 다른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경제만을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 다른 많은 것들이 있다 것을 모르는, 결국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제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소인배이며 의식수준이 낮은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다른 것은 경험과 의식의 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해야만 하며 의식을 크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볼까. 부자들은 일반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자라면 한번 자신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아무튼 어떤 부자들은 가난한 국민들이 이 나라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될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다. 이 세상은 축소해보면 둘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의 상대가 되는 가 없어지면 는 외롭고 힘든 것이다.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가 없다. 지구가 만일 100명이라면인가 하는 책이 있다. 축소해서 생각해 들어가면 결국에 남자인 와 여자인 가 함께 사는 것이다. 여자인 가 없는데 어떻게 혼자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갖은 험한 일들을 해 주기 때문에 부자들은 편하게 생활하고 다양한 서비스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서민들이 죽어 무너져버리면 사회 시스템은 붕괴된다. 외국에서 사람들을 수입해다 노예처럼 부리면 된다고?

 

이 독립영화 필승 Ver2.0 연영석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석달째 월급을 못 받으면서도 열심히 직장에 나가는 한 외국인 노동자를 보여주면서 시작한 영화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의 노래를 부르는 전영석은 우리 사회가 다함께 보듬어 안고 가야 할 가난한 사람들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구슬프게 노래한다. 21세기 선진국을 문턱에 둔 대한민국에 이런 비참한 삶들이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하다.

 

이 영화 필승 ver2.0은 문화노동자 연영석을 취재하는 르포 영화 같다. 그가 노래하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투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감독 태준식의 따뜻한 눈길이 함께 가 닿는다. 연영석, 왜 그는 약한 자들을 위해 노래하는가? 왜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고통스럽게 노래를 부르는가. 노래를 부르다 그들과 함께 시위를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그렇게 함께 행동하는 문화 노동자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 소외 받은 계층은 과연 누구에게 생존권을 주장해야만 하는가. 국가, 사회, 이웃, 친구? 과연 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는가. 또 이런 뜻있는 외침에 우리는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하긴 나도 스스로 알아서 이 영화를 찾은 것은 아니니 크게 떠들만한 입장에 있지는 못하다.

 

오늘 개봉한 이 독립영화는 두번째 상영 시간이 12시 30이었다. 나는 이 상영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11시 5 집을 나섰는데 명동역에서 도착하니 12시 24이었다. 안내글에 의하면 명동역 10번 출구에서 7~8분 걸린다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0번 출구로 나섰는데 9번 출구로 나왔다. 약간 시간을 지체했다. 10번 출구로 되돌아 가서 방향을 잡은 뒤 가방과 쇼핑백을 꽉 부여잡고 뛰기 시작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언덕배기를 서둘러 뛰어올라갔다. 언덕을 내려가는데 어떤 사람이 낙화를 사진에 담고 있었다. 영화관 위치를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급한 마음으로 지나쳐갔다. 마주쳐 올라오는 아가씨를 만나서 물었더니 바로 앞에 있다고 했다. 서둘러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내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급하니 입구의 매표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서울 국제영화제를 홍보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매표소에 가보라고 한다. 표를 사려고 자리가 있냐고 물었더니 아가씨가 약간 멈칫하더니 그렇다고 한다. 좌석번호를 알려주는데 기억하지 못했다. 이미 시간은 30분은 훨씬 지나서 결례가 될까 싶어 서둘러서 안으로 들어갔다. 3관이라는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3관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텅 비어있지 않는가. 아니다 싶어 도로 나왔다. 다른 곳을 헤매다가 다시 물어보았더니 그곳이 맞다고 한다. 상황을 보아하니 나 혼자였던 것이다. , 이럴 수가 이 넓은 영화관을 내 혼자 차지하고 보아야 하는구나 싶어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좋은 일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우리는 영화에서 펀(fun)만을 찾고 또 스릴을 찾지, 의미를 찾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뜻있는 영화를 보는 사람이 나 혼자 밖에 없을 수 밖에. 다음 시간대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언제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서 혼자 볼 수 있겠는가. 마음껏 자세를 풀어헤쳐 놓고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일단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가 중간쯤으로 자리를 옮겼다. 넥타이를 풀고 편하게 앉아 영화 관람 준비를 마쳤다.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이렇게 큰 영화관을 전세 내어 필승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연영석의 세계로, 그의 노래가 닿는 내가 간과해왔던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춰준다. 외국인 노동자의 고단한 삶, 비정규직의 애환과 설움, 노동조합원의 한 맺힌 투쟁,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투쟁 등 21세기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연영석, 힘없는 민중들의 지지자인 그는 그런 힘든 투쟁의 현장에서 그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는 진정한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의 대변인이며 그 자신 힘든 노동을 하는 노동자인 것이다. 그의 노래에는 아픔이 서려있고, 한맺힌 절규가 녹아있다. 가슴 저리는 노랫말은 우리의 무덤덤한 가슴에 애통으로, 슬픔으로 와 꽂힌다. 밥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 우리도 밥도 먹고 살자고 외치는 소리. 우리 사회에는 경제논리에 밀려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세계 12~13대 경제대국이라고 할 만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장차 선진국이라고 불릴 수가 있겠는가 싶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가 없다.

 

힘없는 노동자, 비규정직 직원들이 어떻게 정부의 지원사격을 받는 대기업과 공평한 관계를 맺을 수가 있는가.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를 공히 아우를 수 있어야만 한다. 어느 한쪽을 편파적으로 편들 수는 없는 것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는 생명이 달린 생존의 문제이다. 그런데 수많은 일터에서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려서 살아가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도 많다. 그들이 어떻게 막강한 힘을 가진 기업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시위를 하고 데모를 하고 물리력을 써서라도 대항하려고 한다. 하지만 불법이다 하여 기업은 경찰을 동원하여 물리적인 힘으로 제어하려고 한다.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는 대립과 투쟁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저들 모두가 한 형제이건만 어떻게 저렇게 비참하게 취급 당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가끔씩 뉴스로만 듣던 소식이 저렇게 가슴 아픈 일들이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더 일찍 그들의 외침에 귀기울여 들어주었을 것을 하고 후회를 했다. 그들이 보이는 눈물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어린 아가씨의 눈물, 먹고 살수는 있어야 하지 않냐는 외침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마치 그들이 내 동생이고 형이고 친구인 것 같았다. 과연 내 형제라면 수수방관만 했겠냐 싶었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가 상영될 날이 많지 않다. 마침 촛불집회도 진행되고 있는 마당이니 우리 모두가 함께 보아야할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다들 인디스페이스 영화관으로 달려가 힘들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연영석이 부르는 가슴 절절한 노래에도 빠져보자. 재밌고 스릴 있진 않지만 의미와 깊이가 있으니 함께 하자. 우리가 정신도 함께 가꾸어 갈 때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사람들이 좀 많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왜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지, 왜 경제만이 아니라 생명과 환경을 존중해야만 하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촛불집회의 외침 소리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우리 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태준식 같은 영화 감독도 있고, 연영석 같은 훌륭한 문화 노동자도 있고, 또 나처럼 정의를 주장하는 고집불통인 사람도 있으니깐 말이다. 우리가 계속 소리 높여 외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 필승 ver2.0 연영석이여 아름답게 빛나라 그리고 영원하라.

연영석, 태준식 그대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2008. 6. 6.     21:10

 

 

현충일에 뜻있는 영화를 본 고서

김 선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