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1 (일) 13:39~ 날씨: 맑음
오늘은 일요일. 막 출근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가 도로 잤다. 9시경에 일어나 기수련을 했다. 조금 있으려니 아내가 일어나고 이어서 아들 성준이 딸 예지가 일어났다. 모처럼 만에 온 가족이 함께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을 먹고 아내와 둘이 커피를 한잔 했다. 아내는 늘 하루에 커피 한잔을 마신다. 더 마시면 잠이 안 온다며 딱 한잔만 마신다. 반면 나는 아무리 마셔도 잠이 안 오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물처럼 마시고 있다.
후식으로 포도를 내왔다. 색은 조금 붉으스름한 게 맛은 달착지근한 게 좋았다.
어디서 이런 게 났을까 싶어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더니 칠레산이라고 했다. 안심하고 먹을만한 것인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칠레는 남반구라 지금이 포도 수확 철인가 싶었다. 아니면 냉장보관했다가 푸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에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도 있고 해서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지 궁금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믿고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농작물인데 수입 시에 검역을 철저히 했겠지, 마트에서도 철저하게 검사를 했겠지, 수입업자도 먹을 만한 것이니 수입해다 파는 것이겠지, 칠레 당국도, 수출업자도, 생산업자도 설마 먹지 못할 것을 출하하거나 수출하지는 않겠지 하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먹는 것은 중요하구나, 철저하게 검사하는 것이 꼭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포도) 생산업자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작물을 생산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마음과 자세는 어떤 분야에서나 중요한 것이 틀림없다. 소고기 수입이든, 다른 식품 수입이든 철저하게 안전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수입하는 것이 정부와 관계자들의 책임이고 의무인 것이다. 무엇을 더 따져야 하겠는가.
마을버스를 타고 나오면서 뉴스에서 바다이야기가 흘러나오자 기사 아저씨가 한말씀 하셨다. 저런게 왜 아직도 횡행하는 지 모르겠다고. 돈이 되니까, 사람들이 모이니까 하겠지 하신다. 그러다가 강원랜드 이야기로 넘어갔다. 도박을 하다가 하루에도 몇 명씩 죽곤 한다고 말이다. 그거야말로 정부가 도박과 사행심을 조장해서 시작된 사업이 아닌가.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허가할 필요가 없는 사업이다. 어디 그런게 한두가지겠는가만은…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주기 위해서 도박산업, 반건강 사업, 사행심 조장 사업 등도 허가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다.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가정을 하고 하든 안하든 본인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를 물가에 갖다 놓고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튼 처음부터 없어도 좋은 것은 아예 없는 것이 좋다. 마약이나 총기류와 같은 위험하는 것은 말이다.
나는 담배와 관한 씁쓸한 경험이 있다.
어려서 집에서 담배농사를 지었다. 벼농사 지을 논도 없었기에 시골에서 유일하게 목돈을 만지를 수 있는 농사가 담배뿐이었다. 그놈의 담배농사는 손은 어찌나 많이 가던지. 그때야 담배가 사람들의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담배농사를 짓는 농민의 자식이었으니 나는 그 덕을 보고 자란 것이다. 원죄가 아닐 수 없다.
담배 농사를 짓다보면 순을 잘라주어야 한다. 그래야 꼭 필요한 잎들만 잘 자란다. 그런데 그 순을 따내다 보면 손바닥이 온통 시커매지면서 냄새도 얼마나 고약한지 모른다. 말린 담배 잎 냄새도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게 독한 것이 담배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커서 죽어도 담배는 안 피운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술안마신다고 하던 사람이 술 안마실 수 없는 것처럼 담배를 피고 말았다.
고3 때 친구와 자취를 했다.
친구 매형이 놀러왔다가 담배를 두고 갔다. 아직 담배 같은 것은 피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울까 하는 호기심이 들어 담배를 피워보았다. 기침도 나고 머리도 아픈 게 절대 피울 것이 못 되었다. 하도 머리가 아파 아스피린을 사먹었다.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또 한대를 피워보았다. 기침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또 아스피린을 사먹었다. 이렇게 한두대 피다가 담배를 피게 된 것이다. 그 후로 37살 때까지 약 20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 그동안 담배를 끊으려고 몇 차례나 시도했는지 모른다. 담백같이 백해 무익한 것은 아예 배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 괜히 배워서 무척 고생을 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1999년 1월 10일에 담배를 끊었다.
다행히도 지금껏 피우지 않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담배를 배운 것은 후회가 된다. 그 때 내 눈에 띄이지 않았더라면 담배를 배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인 것이 문제였다. 담배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아예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피워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로 올라오면서 빌딩의 안전요원 분과 대화를 나눴다.
밖에서 담배를 피고 계셔서 내가 담배 끊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직 젊으실 때 담배를 끊는 게 좋지 않냐고 충고를 했다. 매일 인사를 하고 다니니까 친한 느낌도 있어서 한 충고라 고깝게는 듣지 않으셨을 것이다.
광우병에 걸릴 소지가 아무리 적은 소고기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런 소고기가 유통되면 누구나 경계심을 갖고 대하지 못한다. 아무리 큰 문제도 세월이 흐르면 묻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런 소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때 내가 만일 광우병에 걸려 죽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 자신이 적은 확률을 무시하고 아무런 걱정없이 문제있는 소고기를 먹은 것은 후회하지 않을까. 과학적 확률을 근거로 행동한 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저 계단을 올라가면 아름다운 가게 보물섬이 있음을 나는 안다>
모든 사람이 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우리는 어리석은 가정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고. 오히려 사람들은 비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가설 자체가 그른 것이다.
숭례문 개방과 한국 소고기 시장을 개방하는 것과 똑 같은 어리석은 조치다.
사람들이 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숭례문을 개방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나 안으로 들어가서 불지르는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단 한번의 사고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불을 지를 위험이 있다고 가정을 했더라면 우리는 결코 숭례문을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개방하지 않았을 것이다. 광우병에 걸릴 위험 소지가 있는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절대 광우병에 걸릴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시장을 활짝 열어야 하는가. 왜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고 국민들을 위험에 방치해 두려고 하는가. 사람들이 모두 다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위험한 소고기는 사먹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곧 수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미국 소고기를 사먹게 될 것이다. 왜 대한민국 어린이를 미국의 위험한 소고기라는 수입이라는 강가에 두려고 하는가.
나는 누구에게나 위험한 담배를 끊으라고 충고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전하지 않은 미국 소고기를 절대 수입하지 말라고 충고할 것이다. 그것이 욕을 먹을지언정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딱 끊는 것이다.
안전하지 않은 미국 소고기 수입 ‘딱’ 안 해 버리면 그만이다. 역사는 되돌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모든 미국 소고기 수입 절대 반대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풀을 뜯고 자란 소의 고기가 아니라면….
2008. 5. 11. 14:31
미국 소고기 수입 절대 반대를 외치는 고서
김 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