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be happy -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오혜경 옮김 / 지식노마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독후감 쓴 시간: 08년 3월 11 23시 15분 58 ~ 08년 3월 11 23시 33분 35

독후감 쓴 시간: 08년 3월 16 12시 30분 14 ~ 08년 3월 16 17시 57분 58

 

(How to be happy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오 혜경 옮김)

 

: 2008. 2. 28. (목) 13:16 (포스크 앞 버스정류장) ~

: 2008. 3. 09. (일) 19:57 (과천 청사역)

 

잘 짜여진 행복 실천 방법서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답변을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꾸준하게 실천한다면

누구든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행복에 대한 좋은 책인 것이

과학적인 연구를 거친 이론과 원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자찬한다.

당신이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좋은 책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분명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통찰력이 있는 행복론을 쓸 것이다.

 

서양의 과학이 완성되려면

동양의 철학을 앞세워야만 한다.

인간은 과학적인 관점, 방법으로는 결코

규명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정신적인 통찰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 때

그 인간 존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그들의 연구는

언제까지나 미완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자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우리 인류의 미래는 오래된 동양의 과거에

이미 존재해 있었다.

멀리 돌고돌아 겨우 닿게 되는

이상향이며 천국인 것이다.

행복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다.

, 그곳을 향해 나아가자.

행복여행을 떠나자.

2008. 3. 9. 20:18 금정역에서 적다

김 선욱서

 

 

조선시대 여염집 여인네가 애지중지하던 골무를 잃고 애통해 하는 이야기가 읽은 기억이 있다. 사소한 골무를 잃은 것이 가까운 가족을 잃은 듯 슬퍼하던지 글을 읽으며 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애지중지하던 자를 잃어버렸다. 몇 년 동안 평일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 했던 자를 잃어버리고는 여간 가슴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짜피 언젠가는 헤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끼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슬퍼해서 무엇하랴 싶어서 애써 아쉬움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오늘도 퇴근길에 전철안에서 두리번 거리 내 옆에 앉았던 분이 있지는 않을까 찾아보았다. 혹 내 자를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분은 보이지 않았다. ~ 23:29

 

요즘 아쉬운 것은 자를 잃어버린 일만이 아니다. 삼성의 부정을 고발한 김용철의 용기에 의해 특검조사를 하고 있지만 웬지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숨기려고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는 경제를 중시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입김이 들어가서는 아닐까 의심이 든다. 양심과 도덕을 지키는 위정자였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 23:33 12:31~

 

나는 요즘 불행하다.

 

왜냐하면 시비지심의 마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불행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불행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앞날이 너무나 암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추진하는 정책마다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면 편파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옳지 않은()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 개인에게만 영향이 미치면 그만이겠지만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에 그릇된 일이라고 따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수위를 지휘하던 당선자 시절부터 말썽만 빚더니 대통령 취임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내 놓는 정책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커먼 도둑놈들이 대놓고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부터 열가지가 모두 그렇다. 영어 몰입 교육, 정부조직법 개악, 부패내각 조각, 법인세 인하, 기업총수와 핫라인 설치, 7시 30 국무 회의, 공직자 머슴론, 유류세 인하, 복지예산 삭감, 장관급 월급 대폭 인상, 학원 24시간 개방, 부가세 인상. 내놓는 모든 정책이 부패, 불법, 비리, 사기만 일삼은 1%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기가막힐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도둑놈 집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곧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원칙과 상식이 이렇게도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 최고 리더가 썩은 사람이니 어찌 깨끗한 사람이 따르겠는가. 장관이나 요직에 앉히는 사람마다 모두 비리와 부정부패를 일삼던 더러운 인간들 뿐이다. 정도를 걸어도 나라가 바로 설지 말진데 이런 더러운 인간들이 이끄는 한국호가 어디로 가겠는가. 패망의 길로 갈 밖에 달리 갈 곳이 없지 않은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모든 위정자들을 끌어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법치국가에 그럴 수가 있는가. 하지만 가만히 두었다간 나라가 망하게 되는데 보고만 있을 수가 있겠는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정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니 무엇을 탓하겠는가. 하지만 나라가 썩어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만은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야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정치제도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무턱대고 자신의 한 표를 부정직하고 파렴치한 인간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 정말 대오각성을 해야만 한다.    

 

이런 모든 생각이 다 나의 시비지심(是非之心)에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 명상을 하고 깨달음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헛된 생각이라는 치부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어쩌란 말인가. 도덕과 양심을 내팽개치고 저만 잘 살아야겠다고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짐승으로 살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쯤에서 시비지심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

 


시비지심(是非之心) 조금 무거운 / 2006/04/05 07:45

http://blog.naver.com/makara/10003085593

포스트를 보낸곳 ()


살아가는 동안 놓고 살기 힘든 것이()와 非()’라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옳음그름또는 ‘Yes’ ‘No’의 적용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시비(是非)를 분별해야 하는 여건도 문제가 되지만 결국 사고력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사고력의 한계는 시비(是非)를 가려 납득할 수 있는 분별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별을 가리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是非이외의 길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교육받은 사회적가치를 기반으로 시비(是非)와 분별력은 적극적으로 개발되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시비(是非) 그 자체의 시비(是非)에 대한 고민에 다가설 기회는 거의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일상의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시비(是非)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시비(是非)의 분별은 보편성과 사회적대세라는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시비(是非)의 검증을 위한 잣대는 보편성으로 포장되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 입니다. 덕분에 검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시비분별은 결국 불만족의 원인이 됩니다시비(是非)는 머리로 따져지고,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조작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의 분별을 만들어 내는 근원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도 의미가 있습니다.

()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是와 非를 놓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머리로 생각()하여 是非를 가리려 하지말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순간 이미 是非의 순수성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시비(是非)를 버려야 시비(是非)를 알수 있다고 하는 말은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만들어 지는 지식, 사리를 통한 판단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라 합니다. 선각(先覺)들은 是속에 非가 있고, 非속에 是가 있음을 깨달으라고 호통칩니다. 시비(是非)는 절대적이지 못하기에 수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준임을 깨달으라 합니다.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함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깨달은 이들이 나누는 선문답(禪問答)의 기본 원리는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是와 非의 분별심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불교의 대표적인 선문답(禪問答)이 있습니다. ‘불성이 있다.’해도 답이 아니고불성이 없다해도 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답을 모릅니다만, 시비(是非)의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유가에서는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만큼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是와 非의 분별에 지나치게 집착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고정된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是와 非를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습니다. 복잡한 세상사를 바라볼 때 그리고 세상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바라볼 때도 말입니다.

일상과 상황을 시비(是非)의 분별로만 바라보고자 하는 편협함을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시비(是非)를 나누려 하지 않고 시비(是非)를 무시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속에 섞임으로 숨겨져 있는 중도(中道)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싶습니다. 아울러 세상사를 시비(是非)와 그 외의 그 무엇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유혹을 넘어 바로 섰던 사람들의 뒤를 쫒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가 사회구성체 논쟁에 제 3의 길을 있음을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받아들이고, 변별력을 가지는 것에도 제 3의 길은 있을 것 입니다. 시비(是非)라는 당연성의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是속에 非가 있고, 非속에 是가 있음에서 무엇을 낚아내야 할 것지, 그 낚아냄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할 것인지 열심히 참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Mr.
 
[출처] 시비지심(是非之心)|작성자 자유인생

내가 왜 이렇게 내 생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느냐 하면, 행복은 생각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생각이든 생각은 느낌을 낳는다. 그 느낌이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면 우리는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기쁘거나 즐겁거나 유쾌한 기분이 되어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의 첫째 요소는 생각을 제어하는 것이다.

 

생각을 제어할 수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원리를 알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위와 같은 시비지심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접근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것을 하나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져보면 된다. 사실,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 해나가길 기도하면서, 여유를 갖고 지켜보면서, 그들이 제대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비판과 조언을 하는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라면 깨끗하게 잊어버리면 된다.

 

사실 이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이웃에서 사람들과 혹은 환경에서 생각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객관적으로 나쁜 것은 거의 없다. 우리가 그렇다고 인식할 뿐이다. 그리고 객관적이라는 것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어떤 시간대를 갖고 통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변할 수가 있다.

 

가령 지금의 이런 상황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나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은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다. 능력만 있으면 도덕적 혹은 법적인 문제가 있어도 된다고 하는 너무 수준 낮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우리 나라 경제는 나빠지지 않았고 성장을 했다. 문제는 성장의 혜택이 가지지 못한 자들이나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서민들마저도 경제가 문제가 있었다고 그릇 인식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인식하게 된 데는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주요언론사들의 왜곡 보도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흠이 있어도 대통령으로 뽑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국민들 의식수준이 너무 허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그렇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은 위정자로 인하여 고통을 겪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제대로 인식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하는 것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나라가 크게 위험에 빠져 그런 교훈을 얻기도 전에 쓰러져버릴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윗물이 말아야 아랫물이 맑다

 

어찌 보면 이 속담은 그 속에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오랜 동안 선조들이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매하여 이런 진리를 외면하였던 것이다. 조직이든 사회든 지도자들이 깨끗해야 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여 고통을 견디자고 요구해도 국민들이 따를 수가 있는 것이다. 지도자가 깨끗해도 밑으로 내려오면서 부정 부패에 물들 수 있는 것이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그 윗물이 아예 더러운 자라면 밑의 관료나 백성은 부정식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나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법으로 철권통치를 한다고 해도 먹히지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법이 무섭다고 하지만 어찌 백성들이 따르겠는가.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어른들이라고 하는 노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놀랬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녕 우리나라에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이 없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저열한 생각만을 갖고 있는 한 아무리 나이를 드셨어도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 값을 못하는데 공경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래만 살았다고 대접을 해야 한다면 인간보다도 수명이 긴 동물이 있다면 동물들도 공경을 해야겠는가?

 

따라서 위정자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절대 부정 부패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나라의 통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떠드는 것조차 너무나 구차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집에서 아버지가 나쁜 짓만 하고 돌아다니는데 자식들에게 아무리 잘 하라고 훈계를 한들 제대로 받아들여지겠는가 말이다. 아버지가 계집질이나 하고 사기나 치고 산다면 자식들이 존경할 수가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결국은 또 시비지심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몇 년 동안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것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고통을 딛고 일어서서 행복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가 나빠지는 것은 대외적인 변수 때문만이 아니다

 

주식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느 회사에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결국엔 최고 경영자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다.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영자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것이 오너 경영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는 회사에 누가 오랜 기간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특히 투자자의 돈이나 울궈먹으려고 하는 사기꾼 같은 경영자를 믿고 투자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외국인 투자자가 물밀듯이 빠져 나가고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투자할만한 메리트가 있다면 잇속이 있다면 불길도 마다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왜 빠져나가겠는가. 한국이라는 국가경제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워런버핏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투자자를 한 분 알고 있다. 그분의 의견을 한번 살펴보자. 코스모스펀드닷컴에서 퍼왔다.

 

엔화와 위엔화, 유러화 등 세계 주요통화에 대하여 폭락하는 달러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원화는 그러한 달러화에 대해서 폭락하고 있으니 달러화를 제외한 주요통화에 비하여 한국의 원화는 최근 몇 개월 동안 붕괴속도로 그 가치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들과는 달리 많은 한국국민들이 심각한 고통에 직면할 것이 예상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2월의 원유수입대금이 62 억달러에 달하였는데 이는 작년 2 월 수입가격 보다 60 % 이상 증가한 금액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 한해 원유만 수입하는데 700 억 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다른 원자재 수입은 별개이며, 한국에 들어 온 외국인투자자들은 작년 한해 동안의 평가익이 77 조원에 달하니 최근 폭등한 원화로 환산한다 해도 770 억 달러에 달합니다. 한국의 경제위기에 헐값의 원화로 환전하여 역시 휴지에 가까운 가격의 주식을 매수한 외국인들이 최근 몇년 동안 약 100 조원을 현금화 한 것으로 보이니 그 돈은 자그마치 1000 억달러에 달합니다. 그렇게 이익을 실현하고도 아직도 남은 외국인 지분이 약 30 % 이니 그 평가금액은 약 2400 억 달러 수준입니다. 외국인들이 보유한 한국토지는 분당의 8 배에 달한다고 하던가요? 건물과 채권 그리고 여러 자산들을 감안할 때 경제위기 이후 10 년간 한국의 서민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 자금들을 팔고 나가기 시작하였으니 그 자금을 누가 어떻게 마련해 주어야 할까요? 당연히 달러가 부족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2000
년 초 코스모스는 다가 올 10 년이 예상되어 적어도 코스모스에 계신 선생님들만이라도 더 이상 세상에 속지 않고 넘어진 곳 증시에서 다시 일어서실 수 있도록 아무 댓가 없이 도와드렸습니다. 그러기를 9 년 드디어 작년 하반기 부터 종목별 대세수확을 강력하게 권해드렸으며, 12 월에는 최종적으로 대세상승과 중기상승 정보를 포기하고 올해의 하락을 미리 경고해드렸습니다.

코스모스는 세상에서 물질과 교육의 기회 그리고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분들의 편에 서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 또한 약자 중의 한 사람이며 부족한 것이 많고 실수와 허물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늘 배우는 입장이지만 작년에 저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를 통해 드러난 삼성 이건희 부자로 인한 한국국가시스템의 오염 정도를 알게 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국국민들의 마음을 엿볼수 있었으며, 그에 반응하는 저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의 눈에 한국의 변화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증시의 폭락과 국가의 가치인 원화의 급락전환, 경제지표들의 악화 그리고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의 심화, 사회 도덕표준의 하락으로 인해 정직한 사람들, 경제적인 약자들과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자신의 큰 딸 이름도 잘 분간하지 못하시는 저희 어머니처럼, 우리 역시 나이가 들면 그렇게 정신이 흐려지고 뼈도 삭고 말겠지요. 길어야 삼 사십년을 남겨놓은 인생들이 썩은 살점을 놓고 다투는 들개처럼 싸우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들개들의 무리속에 들어 있는 저 자신을 보는 느낌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니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속할 수 밖에 없겠지만, 물에 비친 달과 해처럼 그렇게 젖지 않고 세상을 건너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이 달라지더라도 진실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우리는 빵으로만 살 수 없으며 사는 동안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만 일삼고, 사기만 치고, 제 욕심만 차리는 사람들에 마음의 평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집이 무엇인가? 마음 편하게 몸을 쉬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집이다. 집이 커지면 마음이 더 편해지는가? 큰 집이 있다고 해도 부부가 화목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다투기만 한다면 행복은 물 건너 가는 것이다. 왜 우리는 쓸데 없는 집 욕심을 그렇게 내는가? 집이 정말 인생에서 그리 소중한 것인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부동산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동산에 미쳐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부동산에 돈이 묶이면 기업에 제대로 투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연구개발이 저절로 이뤄지는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도대체 부동산에서 마음의 평화도 얻지 못하고 상품 개발도, 생산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왜 부동산 투자에 혈안이 되어야만 하는가.

 

돈 욕심 때문이다. 사두면 천정을 찌를 듯 올라가니까 불로소득을 많이 벌어서 펑펑 쓰면서 남보다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다. 그러한 불로소득이 많이 생기면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안 먹고 안 쓰면서 모은 돈을 부동산에 파묻어 두어야만 우리가 비싸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좋은가? 우리는 어리석어서 제대로 생각할 줄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제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투기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살 집으로 투자를 한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항변하겠는가. 그렇다면 평수를 점점 더 늘려가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런 욕심은 끝이 없는 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의 구조라는 것을 아는가? , 집을 늘려가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잘 알려주는 글이 있어서 소개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정작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것이 행복이라 착각하기도 하지요.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를 기억해 보세요. 이사한 길어야 정도 뿌듯할 , 평수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셨나요? 집만 장만하면 다른 욕심 부리고 만족할 같았는데,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일 까요? 그것은 잠깐의 행복감일 뿐입니다. 행복이 욕망 충족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면, 진정한 행복을 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흔아홉 가진 사람이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뺏으려 한다라는 속담처럼, 욕심은 한이 없고 충족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 나와 남을 이롭게 고자 하는 선한 욕심인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결핍 감과 자신감 없음을 상쇄하기 위해, 혹은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에 휘둘려 성공의 이미지를 갖기 조바심인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후자의 마음으 사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면의 충만함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릅 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일시적 행복감은 느끼겠 지만,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최영아.주부/ ** 홈페이지)

 

자신에 속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다. 그래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 집은 살집으로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른 투자 상품에 투자를 해서 자산을 불려나가야만 한다.

 

어떤 곳에 투자를 해야만 잘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그렇다면 당연히 기업에 투자를 하면 된다. 기업들이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해서 소비자들이 필요한 상품들을 잘 공급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기업들이 돈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연구 개발, 생산 자동화, 물류 혁신, 판매망 확충 등 모든 기업활동에 자금이 필요한데 그런 데로 돈이 몰려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부도 늘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투자는 규제를 해야만 마땅하다. 기업에의 투자를 장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진실이다. 백년, 천년, 만년이 흘러가도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한 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과 상식에 따라서 나라가 돌아가지 않으니까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매력이 없다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고 기업들이 정직하게 투자하고 생산하고 판매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 것이다. 세금만 낮춰준다고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정직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국가, 기업, 국민 모두가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만 한다. 그럴 때야만 서로 믿고 경제활동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정책은 미봉책이 되고 말 것이다.

 

삼성의 기업비리를 보면 놀랍다. 대한민국 모든 관료들을 매수해서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삼은 것이다. 검찰이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으니 법치가 서겠는가 말이다. 그 더러운 손의 치밀한 관리는 온 나라를 검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법을 지키고 제도를 따를 것인가. 이제 우리는 죽을 각오를 하고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이 정직하게 상행위를 해야만 존경을 받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더러운 나라에서 더 이상 투자할 수 없다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우리 국민 모두는 이러한 이면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회개하고 뉘우쳐야만 한다.

 

 

더 이상 돈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많은 연구 결과가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돈이 더 많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는다는 것을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소득이 늘어나도 선진국의 행복지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는 경제 논리에만 빠져서 살고 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수준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나라는 과연 부의 수준에서 세계 몇 위에 속하는가. 경제규모로만 보면 10위권에 해당한다. 2006년도 자료를 보면, 국민소득은 17,690$ 49위고, 국내총생산은 8,565$ 12위다. 만족할만한 수치는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다고만 볼 수가 없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 1,000, 3인 가족이나 4인 가족으로 계산해 보면 가구당 연소득이 5,000만원 ~ 7,000만원이다. 이 정도 수입이면 어떤가? 적은가 아니면 많은가? 절대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금액일 것이다. 더 많은 부자들은 논외로 하고, 5000만원 정도의 연 소득이라면 적지 않은 돈이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정도 소득이면 부자국가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질 높은 삶을 꾸려나갈 수가 있다. 그래서 돈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비교가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주위 사람들과 비교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한 수입인데도 불구하고 적다고 생각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인 행복을 살펴볼 때도 빠지는 불행의 함정인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고, 언제나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비교에 민감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정작 추진해야 하는 정책은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모른 채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아무런 생각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같이 자유시장경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해지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경제가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통계적으로만 보면 가구당 수입이 평균은 5,000만원이 되지만 중.하류층 서민들은 실제 그것보다 훨씬 적은 수입밖에 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상대적 빈곤감,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돈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활 자체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을 때는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돈인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성장보다는 부의 분배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균형 발전과 부의 분배로 다 잘 살게 만들어야만 하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회복지 정책은 필요하고도 적절한 정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발전시키면 부의 분배가 균형되게 이루어져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게 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부가 편중이 심화되는 경제적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착각으로 가난한 서민들도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경제를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제 우리 나라는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그 과실이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투자자들의 소득만 늘어날 뿐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노릇인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어리석게도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줄 정책만 취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자승자박이 아닐 수가 없다. 747이라는 허황된 공약에 멋지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그들이 이미 서민들을 살리는 것과 반대되는 정책만 취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 시킨다고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노릇이다. 법인세를 인하하면 그에 해당하는 세금은 어디에서 걷을 것인가. 먼저 정부 예산을 줄이거나, 충당할 다른 세목을 검토한 후에 법인세를 인하해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예산을 줄일 것인지 검토하고 토의하고 합의를 했는가. 세수가 줄어들면 다른 세금으로 충당을 해야만 한다. 법인세는 직접세이다. 수입을 많은 법인만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부가세와 간접세는 같은 것은 무차별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세금이다. 수입이 10만원인 사람이다 10억인 사람이나 라면 한 개에 똑 같은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법인세를 줄이면 반드시 예산을 깎던지 다른 세금을 더 걷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떻게 할까? 뻔하다, 불필요하다고 하는 예산을 줄이던지,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을 것이다. ㅎㅎ

 

이러한 나의 주장은 나만의 주장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은 행복의 공식이라는 책이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것도 과학적인 조사방법을 통해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분명 우리 정부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득의 균형된 분배 정책을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를 감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없는 서민들이 세금을 덜 내게 되어 경제적 궁핍을 덜 겪을 것이니깐 말이다.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지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경제가 어떻게 정확하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가 있다. 어떻게 무턱대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가 있겠는가. 보라, 이명박 정부는 결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고혈을 짜내는 정책만 취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1%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될 것이니깐 말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균형된 부의 분배란 안중에도 없다. 자기들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못했다고 비판을 해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의 뇌에는 그런 개념의 뇌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바로 후한무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자공부 좀 해보자. (http://cafe.naver.com/chinainstitute/884에서 펌)

 

세상 사람들이 예의염치에 따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이 예의와 의리 그리고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지니고 산다면 시시비비로 아옹다옹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예의와 의리는 말할 것도 없고, 체면 불구하고 앙앙불락하는 데 문제가 있다.

요즘 뉴스나 지상을 통해 거명되는 면면들 중에는 예의염치를 불구하고 산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 사람들을 보노라면 청나라 말기 후흑학(厚黑學)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이종오(李宗吾, 1879~1944)의 처세비법 육자요책(六字要策- 본래의 중문은 做官六字眞言임)이 생각이 난다.

종오는 사람이 출세를 할려면 후안무치(厚顔無恥)해야 한다면서 후흑학의 대가로 세태를 꼬집었다

두꺼운 얼굴가죽(面厚)과 숯뎅이 같은 마음(心黑)을 지녀야 한다면서 관리들의 처세비법 육자요책이란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른바 육자요책이란 공공붕흉농롱(空恭繃兇聾弄) 여섯 자를 말한다.

여섯 자의 뜻은 우선 공(): 실무처리나 기안서 등을 허술하게 처리함으로써 언제든지 도망갈 길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 먼저 머리 숙여 아첨하거나 상대를 높이는 것으로 여기는 직접법과 간접법이 있는데, 상사를 향해서는 직접법을상사의 인척, 친구, 비서에 대해서는 자기를 비하하는 간접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 ()과 반대로 부하나 일반 대중에게는 엄한 모습으로 큰 경륜을 갖춘 것처럼 위풍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죽든 말든 남의 희생을 개의치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인상을 주면 상대방의 원한을 살 우려가 있으니 겉으로는 인의도덕을 갖춘 인물로 철저하게 위장해야 한다. (): 귀먹어리처럼 불리한 대목에서는 남이 웃든 욕하든 상관치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인 롱():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말고 금품공세와 물품공세를 펼쳐야 하지만 사단에 따라 대소공세의 차이를 둔다.

 

이제 곧 권력의 대 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5년에 한 번 오는 절호의 기회이다.

혹여나 처세비법을 몰라 실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참고하시라고 해서 여기 옮겨 실었다.

그러나 본래의 의도는 조감(藻鑑)을 지닌 인선자라고 해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데 있다.

 

그른 것은 바로 잡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사회가 썩고 병들면 누구도 살 수 없다. 둑에 구멍이 나면 작을 때 빨리 막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둑이 터지고 물난리가 나 마을은 홍수가 나고 모든 집이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나눌 때 행복이 배가된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라고 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서로가 행복할 수가 있다. 이 세상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자식이라도 못 본체하고 제 잇속만 차리겠는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고 없어지면 혼자 살아남는다면 무슨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짐승처럼 살고 있다. 저만 잘 살겠다고 경쟁하고 싸우고 타투고 있다. 우리는 정신의 산물인데도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며 즐겨 인용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정말 돈밖에 모르는 동물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아는 게 힘이다

 

정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어울려 사는 한, 사회 관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한 국가에서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 같이 잘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이상과 같이 밝혀졌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베풀고 양보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가 정책적으로 부의 균형된 분배가 이뤄지도록 정치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위정자들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이다. 온 국민이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모른다면 배우야만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 동안 나는 수 많은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해 왔다. 우리는 행복을 내적 행복과 외적 행복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행복은 외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나 지위 등 외적 행복 요소가 과연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까. 90%일까, 아니면 50%? 놀라지 마라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정한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어디서 우리의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배워보자. 아는 게 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How to be happy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오 혜경 옮김)

 

<책 읽은 시간>

: 2008. 2. 28. (목) 13:16 (포스크 앞 버스정류장) ~

: 2008. 3. 09. (일) 19:57 (과천 청사역)

 

<책 읽은 계기>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신간이 나와서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구입해 읽다. 한동안 행복에 관한 책들을 읽지 못했는데 제법 좋은 책이었다.

 

행복, 사랑, 자유, 평등, 민주, 평화, 화합 등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덕목인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 반면 남들에게 보장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모든 국가와 민족이 이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개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보편적 가치가 보호되지 않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보편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라고 해도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 놀랄 것이다. . 이 과학적인 책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행복은 환경 10%, 유전적 설정값 50%, 의도적 활동 40%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환경은 10%정도 밖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놀랄만한 것은 바로 유전적 요소의 영향이 50%나 된다고 하니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네요. 하지만 이런 모든 영향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활동함으로써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확률이 40%나 된다고 하니 무척 희망적이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소냐 류보머스키는 18년 동안 행복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그 동안 축적된 모든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행복론을 썼다며 자신 있게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확실한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행복 여행에 서툴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녀가 이 책에서 밝힌 연구방법론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모든 인류가 행복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행복은 의무라고까지 외친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정의를 살짝 틀어본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행복의 근본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서, 우리가 통제 가능한 40%에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개개인마다 주관적인 행복전략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개인-활동간의 적합성 진단을 통해서 적합한 전략을 찾아서 노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한다. 행복 전략은 6가지 분야에 12가지로 나눠 놓았다. 사실 12가지 덕목은 옛날부터 익히 들어왔던 평범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 수립, 몰입 체험, 기쁨의 음미, 감사 표현, 낙관주의 함양, 과도한 생각과 사회적 비교 중지, 친절, 인간 관계, 스트레스 대응 전략, 용서, 종교 생활과 영성 훈련, 명상.신체활동.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누구다 다 알고 있는 행복 실천 방법들일 것이다. 다만 사람마다 더 잘 맞는 게 있으니 그것들을 찾아서 실천하라는 것이다. 위의 전략들이 행복을 증진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연구로 다 밝혀진 것들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게 힘이라고 한 것처럼 알아야만 헛된 것에 속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인간 관계, 직장에서의 좀더 많은 권한과 자유, 더 나은 새 직장, 좀 더 자상한 배우자, 아기의 탄생, 회춘, 공부를 잘 하는 자녀, 질병이나 장애의 치유, 더 많은 시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알아내는 것 등은 과학적인 연구결과 어떤 것도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고 한다. 이해가 되고 납득이 가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한번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돈이 실제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돈이 실제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행복 연구가가 멋지게 표현했듯이 돈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크나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작은 행복만 안겨줄 뿐이고 또한 오래 가지도 못한다.  더욱이 쾌락에 이르는 그런 막다른 골목으로 따라가느라 애쓰다 보면 더 쉽고 효과적으로 웰빙에 이르는 경로가 있는데도 모른채 살게 된다. (28~29p)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실제로 물질주의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불행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4p) 나아가 물질주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리 가능서잉 더 높았다. (64p) 792명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부가 자신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65p) 아무리 부나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복의 어려움이 있다. 부자들이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지만 자신이 부자가 되어서 불행에 빠지지 않고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류가 부를 위해서 삶을 희생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행하게 살고, 그리고 몇몇은 간신히 부자가 되어서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돈을 많이 벌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사는데도  왜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행복을 방해하는 가장 교묘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쾌락 적응 현상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감각적이고 생리적인 변화에 빠르게 익숙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살을 에는 추운 날씨 속을 걷다가 실내로 들어오면 난로의 따뜻함이 처음에는 천국의 온기처럼 느껴지겠지만, 곧 그것에 익숙해지고 답답해지기까지 할 것이다. 미세하기는 해도 분명히 맡을 수 있는 어떤 냄새가 아파트에 배어있으면 잠시 나갔다가 되돌아오지 않고는 그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을 생리적 또는 감각적 적응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와 똑 같은 현상이 쾌락의 변화라는 영역에서도 일어난다. 이사, 결혼, 새로운 직장과 같은 일신상의 변화가 단지 잠시 동안만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70p) 우리는 이런 경험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지금 당신이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결혼 생활의 행복이 익숙해질 수 있다는 말인지 의아할 것이다. (71p) 결혼 후 남편과 아내는 약 2년간 행복의 상승을 체험한 후 원래의 행복 설정값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72p) 몇가지 다른 계열의 연구들은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확보하고 나서도 비스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0년대의 화폐가치로 오십만 달러부터 1백만 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던 운 좋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복권 당첨 소식이 들려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보통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는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복권 당첨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해 텔레비전을 보거나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72p) 그렇다면 왜 이런 쾌락 적응이 일어날까?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고통스럽게도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쉽게 적응이 되어버리는 행복을 추구하면 살아가고 있다. 돈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돈으로는 어느 때까지만 행복을 느낄 수가 없는데도 돈을 추구하느냐 불행에 빠지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도 인류가 이러한 게임에 빠져있다. 자유시장경제원리라는 그럴듯한 사랑에 속아서 말이다. 문제는 제가 살아가야할, 아니면 자신들의 자식들이 살아가야만 환경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한다는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행복은 정말 쉽지 않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위와 같은 행복 방해요소가 길목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적응 현상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우리는 조금은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만 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주는 다른 행복 증진 전략을 위해 노력하면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책이라면 인류 모두가 읽어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행복의 원리를 제대로 알아서 노력을 기울이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야만 한다면 이런 책을 먼저 읽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 이제 우리는 꾸준히 노력하여 행복하게 살자!

 

2008. 3. 16.     17:20

 

 

 

세계 최고의 행복론을 쓰고 싶은 고서

김 선욱

 

덧글) 서양 행복론의 문제점

 

내가 그 동안 누누이 밝혀왔지만 서양 과학은 행복을 제대로 정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연구 조사는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과학적 조사 방법을 취해왔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인간을 다루고 취급할 수 있는 육체적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모든 연구의 기본 원리를 동물 실험을 통해서 밝혀낸다. 쥐나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은 인간에게까지 적용하려고 한다. 그것은 큰 오류를 가지고 있다. 동물들과 인간의 차이는 바로 생각 혹은 의식에 있는 것이다. 의식이 없는 동물에 적용한 것을 의식을 가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기 보다는 정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정신적인 존재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실험, 연구를 하는 것은 자로 무게를 재는 것과 같이 괴이한 방법인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했던 행복 증진 요소들은 오래 전부터 동양에서 정신 수양, 명상, 수련을 하면서 갈고 닦는 마음에 관한 것들이다. 목표 수립, 몰입 체험, 기쁨의 음미, 감사 표현, 낙관주의 함양, 과도한 생각과 사회적 비교 중지, 친절, 인간 관계, 스트레스 대응 전략, 용서, 종교 생활과 영성 훈련, 명상.신체활동.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비록 용어는 다를지 모르지만 마음수련 혹은 인격 수양을 하면서 지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신적인 요소들을 수련하기에는 마음 수련 방법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 구체적인 전략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서양 과학적인 방법으로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수준이 있고, 깊이가 다른 법이다. 서양의 행복은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빛나는 태양과 같은 행복을 추구하는 반면 말이다. 우리가 완전하게 깨달았을 때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명상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동양적인 정신 문화 유산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이다.

 

서양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일정 수준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에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이 바로 의식의 스펙트럼(켄 윌버, 박정숙/ 범양사)이다. 내가 이렇듯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번 진리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의식 수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자유경제제도라든가 법치국가라든가 하는 것은 저급한 의식수준에 바탕을 둔 것이다. 도덕이 있고 양심을 아는 존재들이라면 우습게 여기는 것에 지나지 않다. 우리는 선하고 어진 사람을 보고 법이 없어도 살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 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 지나지 않는 낮은 수준의 의식을 강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남을 널리 이롭게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법이라는 최소한의 것에 구애를 받으며 살겠는가 말이다. 자신의 것도 몽땅 양보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말이다.

 

법과 제도에 앞서 도덕과 양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 인간답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도덕심도 없고 양심도 없는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해서 강제적인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법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양심이 지키고 도덕적으로 살아야만 한다.

 

집에서 이 독후감을 쓰려고 하던 3 11일 단박 인터뷰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가슴이 아팠다. 김용철씨가 나와 삼성그룹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삼성그룹은 최소한의 법을 어긴 부패한 조직이다. 회사의 자금으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인이나 검찰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자신들의 사욕을 취한 집단이다. 검찰 조직이 아무런 부끄러움없이 뇌물을 받아먹었다는 데는 치가 떨렸다. 그들이 어떻게 공정한 사법권을 발휘하겠는가 말이다. 온 나라가 썩었다는 증거다. 유전무죄가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더러운 나라에서 어떻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기업이 공개되면 그것은 사유재산이 아닌 공적인 조직으로 변하는 것이다.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끌어다 쓰려면 최소한의 법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의 불법으로 조성한 로비자금은 모두 공금 횡령을 하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상법이나 기타 법의 적용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비자금을 만들며, 그것을 불의하게 사용하려고 하는가. 최소한의 법도 지키지 않는 기업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이다.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부정, 불의, 불법, 사기, 공갈, 협작이 등 온갖 부정이 판을 치는 미개한 후진국이다. 선진 일류국가는 이런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국민이 더 이상 모른 체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도 부패와 불의를 척결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김용철과 사제단 / 김인국 신부,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

이 종찬 민정 수석

김 성호 국정원장 내정자 / 법무부 장관

동료든, 상사든, 증오심 격분 분개,. 한계 같은 것을 느낀다.

사정라인에 올라간다, 삼성 수사가 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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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2008-03-1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우국충정, 곧고 바른 생각과 그 깊이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행복한 마음을 갖기가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만, 님의 그런 생각을 잘 전파하고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님의 참 행복론이 책으로 얼른 나오길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