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슈퍼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절대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던 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제야, 드디어... 마침내?
지난 이틀간 목이 아프고 온몸이 쑤신 근육통과 오한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약 먹고 자고 약먹고 자고 중간중간 간신히 비몽사몽간에 회사일을 체크하다가 오늘 드디어 조금 제정신이 든다.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 밥도 챙겨주고, 학교에 보내고 나니,(엄마 코로나 확진자에게 자가격리라는게 과연 가능하긴 한걸까, 왜 아무도 코로나 시국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
어쨌든, 아이도 없고 밥도 먹고 약도 먹고 식탁에 앉아 있으니, 이건 뭔가.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아직 몸은 아프지만, 회사에는 연차를 내고, 아이들은 학교를 가서 오후에나 올 테고, 나는 햇볕이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사방은 조용하고 집안은 따뜻하다. 아, 너무 행복하다. 코로나에 걸려 행복을 논한다는게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 너무 행복하다. 이런게 행복이였구나!!^^
최근에 읽었지만 계속 정리하지 못했던 책들을 다 꺼내놓았다. 먼저 <주역강의> 부터.
낭독모임에서 다함께 읽었던 책인데 주역의 64괘를 하나씩 설명하다보니 지금 우리의 관심사와 크게 상관없는 부분도 꽤 있어서 그런 부분은 스킵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좀 너무 뻔하다고 해야 할까, 초등 도덕 교과서 같이 그저 옳고 좋은 말들이 꽤 있어서 이걸 과연 읽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런 부분들마저 모두 너무 뼈때리는 교훈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공간의 만남, 그 사이에 우리의 인생이 끼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이란 시간과 공간의 조화 속에서만 원만히 진행될 수 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때가 맞지 않으면 일이 성사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때가 되었어도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일은 역시 어그러지게 마련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공허한 옛 말이 아니니, <주역>이 그 첫머리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역시 이러한 시간의 절대성, 공간의 상대성, 그리고 그 둘의 조화에 관한 내용이다.
"-46p, 건,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내가 주역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약 10년 전, 큰 아이가 5살, 둘째가 2살일 때였다. 아이를 보면 책을 보며,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때 나를 사무치게 했던 부분은 '박' 괘였다. 꽉 막힌 시절을 견디는 지혜다. 주역에서는 꽉 막힌 시절을 어떻게 견디라고 이야기했을까? "종자를 남겨둔 군자는 수레를 얻지만, 소인은 오두막마저 깨뜨린다."
유치하지만 나는 당시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다이어리에 틈만 나면 써놓고 이 문장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꽉 막힌 시절이라 해도 나는 종자를 품을 수 있다. 종자를 남겨야한다. 가슴속의 씨를 결코 버리지 말아야한다고 주문을 걸듯 나에게 말했었다.
그 씨앗이 10년 동안 많이 자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흔들리고 심난해하며 주역을 다시 읽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한마디 말을 찾아서, 나의 맥락에 꽂히는 그 하나의 괘를 찾아서 주역을 샅샅이 읽었다. 그리고 찾았다. 나에게 필요한 괘. 바로 수, 어떻게 때를 기다릴 것인가에 관한 괘이다.
"수는 때를 기다림이다. 유부는 믿음 또는 확신이 있음을 의미한다.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왜 기다리는지, 기다리면 무엇을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믿음과 확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기다림을 견디기 위한 첫 번재 요건이다. 목표와 기약이 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모두가 아는 바이다. <주역>은 이처럼 기다림에는 반드시 믿음과 확신,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시기가 도래하였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청하지 않은 세 사람의 객이 있어 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특히 인재의 출현이 가장 가시적이고 즉자적인 타이밍의 판별 기준이 된다. 그런 귀인이 나타나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그를 공경해 맞이하고, 그 뜻을 받들어 행한다면 끝내는 길하다는 것이다.
_105 수, 어떻게 때를 기다릴 것인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10년을 사업을 했지만 갈수록 확신이 없고, 잘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틈만 나면 딴 곳을 보고 방황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알량하게 다른 것을 보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필요한 건 믿음일것이다. 내가 00를 할 거라는 믿음, 이제 시작한지 10년, 나는 갑자기 잘 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천천히 조금씩 더디더라도 노력한만큼은 확실히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목표가 잘 보이지 않아 이런저런 헛짓거리 하고 있으니 당연히 잘 될리가 없지.
그러니까 사실 지금은 추락기가 아니라 추후 10년을 위한 목표를 짜야 할 때였던 거다. 그런데 지치고 힘든 나는 그것을 하기 싫어서 뻘짓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그러다보니 목표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더 내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렇지만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다, 처음 창업할 때 10년짜리 계획을 짰던 것처럼 이젠 앞으로의 10년짜리 계획을 짜야 할 때인 것이다. 나는 나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10년이든 20년이든, 나는 더디더라도 확실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주역에 관한 주석서를 쓰다가 계속 포기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또 포기하고 산책삼아 갔던 절에서 깜빡 잠이 든 그에게 미래 혹은 전생의 그가 꿈에 나와 호통을 친다. "현세에서 주석을 끝내지 못한다면 다음 세상에서 다시 역경을 공부하고 써야 한다."고, 이후에 나오는 저자의 말이 감동이다.
"그러자 욕심이 사라졌다. 완벽한 주석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나 최소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거라는 판단도 생겼다. 잘못 쓴다 해도 스승이 없었으니 나 외의 다른 누군가에게 오점을 남길 일도 없었다. 남이 알아주기를 기대해서 쓰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어차피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주역>의 주석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정말이지 순수하게 내 안에 끓어 넘치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162
나 또한 그렇다. 완벽한 무언가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 정말이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지. 내안에 피가 끓어서, 그것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러니 중요한 건 그것밖에는 없다. 그러기 이 끓는 피를, 목표로 환원해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어렵더라도. 어려울 때면 <수, 어떻게 때를 기다릴 것인가> 를 다시 읽자. 그리고 <부, 막힌 운을 뚫는 법>을 다시 읽자. 기신기신하면서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군자로서의 일을 어떻게든 계속해야 한다. 마치 누에가 뽕잎을 먹고 실을 자아내듯이, 다 나왔을 것 같은데 그 작은 누에에서 다시 실이 뽑아져 나오듯이 그렇게 끊임없이 할 일을 해야 한다.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에가 기신기신하면서도 끝까지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어 가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 계우포상이다. "
188p, 부- 막힌 운을 뚫는 두 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