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 이매진의 시선 6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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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경기도의 한 공립 유치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한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특수반에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돌본다. 유치원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아이가 등원해 옷을 정리하고, 우유를 마시고, 놀이를 하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방과 후 수업을 듣고 하원할 때까지, 아이 곁에서 그의 하루를 함께한다. 힘든 날은 아이고 되다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고되지만, 그만큼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만큼, 나도 그들에게 받는다.

하지만 나는 고작해야 6시간, 하루의 4분의 1 정도를 아이들과 함께할 뿐이다. 내 몫의 돌봄노동은 늦어도 오후 4시면 끝나지만, 아이들은 계속해서 돌봄을 필요로 한다. 유치원을 졸업한들 돌봄으로부터 졸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특수학교로 자리를 바꿔 보다 전문적인 돌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한 돌봄이란 아주 짧고, 피상적인 셈이다. 마지막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 문을 나서면, 자리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한다. 난 과연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돌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돌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돌봄에 대한 글을 썼다.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은 건 글을 쓴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페이지를 넘겨가며, 후회와 부끄러움에 귓바퀴가 빨개졌다. 이 책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결코 돌봄을 논하는 글 따윈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얇은 핑크빛 책은 그만큼 깊고 너른 시야로, 담담하고 따뜻하게 돌봄을 성찰한다. 감히 올해 읽은 책 중 최고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묘사되는, 갑자기 죽을병에 걸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청년의 모습은 지극히 평면적이다. 장기가 적출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고난 끝에 수술비를 마련해 부모를 살리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짧고, 굵게 마무리된다.(p.165.)

현실 속 조기현이 마주한 돌봄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2011년 양옥집을 수리하던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로 실려 온 뒤부터 그의 돌봄자가 된 조기현의 삶은, 그럼에도 계속 흘러간다. 아들의 아들이 된 아빠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두 번이나 중환자실에 실려가도, 당뇨와 고혈압, 갑상선 약을 달고 살아도, 발에 라면국물을 쏟아 심각한 화상을 입어도, 아빠는 꾸역꾸역 살아나간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p.81.)

 

계속해서 흘러가는 삶 속에서 조기현은 영웅서사에 도취할 수도, 자기연민에 파묻힐 수도 없다. 돌봄이라는 고난을 극복했다며 뿌듯해하거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며 절망하기엔 남은 삶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기현은 섣불리 돌봄자로서의 삶을 끝내기보다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어나가고자 한다. ‘흐름이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닥쳐오는 운명이라면, ‘이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서사를 만들어가려는 주체적인 노력이다. 그는 돌봄을 거부하지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도 않는 새로운 삶을 이어가보려는 결심을 한다.

그렇게 조기현이 이어간 삶의 궤적은 견고하고, 또 아름답다. 그는 충북 음성의 공장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면서도 취침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다. 공장에서 나온 뒤에는 시민단체에서 서정성과 사회성의 간극을 좁히고자 노력한다. 오랜 꿈이었던 영화 역시 절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아빠는 그런 조기현에게 짐인 동시에 버팀목이다. 아빠의 존재는 그를 지독히도 힘들게 만든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쫓아온다며 뛰쳐나가 애를 먹이는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한 아빠를 돌보며 조기현은 적금 깨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못할 수도 있다고 담담히 체념한다.(p.78.)

하지만 돌봄을 통해 조기현은 비로소 아빠를 이해하고, 그와 더 친밀해진다. 돌봄이 안겨준 고민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더욱 치열하게 성찰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돌봐야 하는 아빠의 존재는 세상의 파고에 홀로 휩쓸리지 않게끔 그를 단단히 붙잡아준다.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에 나오는 인간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처럼, 조기현과 아빠는 서로 의지하고 또 갈등하며 망망대해를 해쳐나간다.

 

이러한 조기현의 이음, 세상은 쉽사리 긍정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를 돌보면서 자신의 서사를 써나가려는 건강한 시민이 아니라, 기특하고 불쌍한 효자로 취급될 뿐이었다. 가난한 흙수저가 사회변혁이나 예술 같은 숭고한꿈을 꾸는 일 역시 허용되지 않았다.

맘대로 불행의 낙인을 찍었으면 지원이라도 제대로 해줬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아빠가 처음 쓰러졌을 때는 8년 전에 이혼한 엄마가 아빠 앞으로 들어놓은 실비보험과 빈번히 이루어진 금전거래 탓에 긴급 복지 지원을 받지 못했다. 3년 뒤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위해 찾은 주민센터에서는 복지 담당자의 정교한 논리에 가로막혀 끝내 삶을 볼모로 말의 칼을 휘둘러야 했다.

돌봄을 받는 입장인 조기현의 아빠 역시 삶을 이어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직 일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받던 그는 중환자실에 실려간 뒤로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뒤에도 아빠는 여전히 움직거리고싶어하지만(p.157.),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화분에 물을 주거나 청소하는 것밖에 없다.

 

조기현은 이야기한다. 돌봄이 낙인이나 형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돌봄을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간 짙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돌봄을 전 사회의 문제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누구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최소 한 번 이상은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에서, 돌봄은 그 무엇보다 공적이다. 그런 만큼 돌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가정여성의 울타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

물론, 돌봄이 공적인 문제라 해서 모두가 의무적으로 돌봄에 참여해야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조기현은 상황에 따라 돌봄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8년간 아빠를 돌보며 숱하게 미래를 단념해야만했던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으리라.

그의 아빠처럼 돌봄을 받는 사람들 역시 무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만 남아있을 수 없다. 돌봄 받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거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하며, 이를 위해선 생산성을 기준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던 종래의 합의를 재고해야 한다. 어쩌면 돌봄을 중심으로 세상을 생각한다는 건 근대 이후 이어져온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뒤엎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조기현은 가난과 돌봄을 모르는 사람들을 미워한 게 미안해서 더 열심히 글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누구보다 당당해도 될 때에 오히려 미안해하는 저자는, 내게 하나의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경험을 특권하기보다는 이를 딛고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저자, 적을 상정하고 사정없이 몰아붙이기보다는 차분히 대안을 고민하는 건강한 서사는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조기현 본인이 이야기했듯, 사회복지사가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사회적으로 승화하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p.168.) 이미 그는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얼마든지 사회적 이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자신의 첫 책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앞으로도 그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를,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가장 강연해보고 싶은 장소로 꼽은 공공도서관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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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 교회가 500년간 외면해온 종교개혁의 진실
로드니 스타크 지음, 손현선 옮김 / 헤르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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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철회할 수도 없습니다.

양심에 거슬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옳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떻게 다른 방도를 취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 섰으니, 하나님이어 도우시옵소서. 아멘.

 

1521, 루터는 보름스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라는 압력에 정면으로 맞선다. 상대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주인이자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 그 앞에서, 루터는 저잣거리의 입말인 작센 독일어로 누구도 해할 수 없는 양심에 기대어 호소한다. 분노와 당혹감으로 뒤틀린 수많은 얼굴을 뒤로 한 채, 루터는 문을 박차고 걸어 나간다.

그리고, 모든 게 달라졌다. 개인은 사제를, 라틴어를 거치지 않고도 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탐욕스러운 로마의 지배에 맞서 독일과 저지대, 스칸디나비아가 들고 일어났고, 끝내 자유를 쟁취했다. 루터의 뒤를 이은 칼뱅은 정직한 노동과 치부(致富)를 긍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길을 텄다. 바야흐로 자유와 이성의 새 시대가 열렸다. 유럽을 휘감았던 암흑의 베일은 산산이 찢겨 다시는 이어붙일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가 볼 때, 갈가리 찢겨 마땅한 암흑의 베일은 오히려 이러한 낭만적인 환상 쪽이다. 희대의 이가리 파이터이자 자기PR의 귀재 루터, 사회학의 황제로 떠받들어지는 베버에 의해 종교개혁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퍼져나가, 종교개혁 500주년(2017)을 넘긴 지금까지도 대다수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크의 책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는 종교개혁을 둘러싼 환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확실하게 깨부순다.

이정도면 컨셉인가 싶을 정도로 꿋꿋하게 유럽의 각종 지명·인명을 영어식으로 바꾼 게 신경 쓰이고,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1500~1558)를 프랑스의 샤를 5(1338~1380)로 잘못 적는 등 치명적인 실수도 있지만(p.30.), 번역 역시 무난하다.

 

저자는 우선 종교개혁의 동기부터 와장창 뒤엎어버린다. 세간의 이해와 달리, 종교개혁을 이끈 원동력은 민중의 영적인 갈망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어디까지나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도모하던 세속군주들이 주도한 정치적 사건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루터의 후원자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와 잉글랜드 국교회를 창시한 헨리 8세는 모두 열렬한 성유물 덕후였지만, 교회의 막대한 재산과 성직자 임면권을 노리고 종교개혁의 파도에 올라탔다.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루터 역시 로마에 대한 증오와 독일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그의 글에 우리독일이 어찌나 자주 나오는지, 마치 민족(nation)의 탄생이 종교개혁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종교개혁의 불길이 끝내 사그라지고 만 것도 똑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 국가에선 일찍부터 군주가 교회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국왕은 1305년의 아비뇽 유수 이래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착실히 키워갔고, 마침내 1516년의 볼로냐 협정을 통해 성직자 임면권을 확보했다. 오늘날 바티칸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부러워 마지않을, 오래된 갈리카니즘(Gallicanism)의 전통이다. 에스파냐 역시 통일왕국을 이룬 뒤 프랑스의 전례를 충실히 따랐다.

 

철저히 정치적인 이벤트였던 만큼, 종교개혁의 결말 역시 정치적이었다.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독일, 저지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에게 돌아온 건 신앙의 자유가 아니었다. 신앙의 국유화였다. 독일 종교개혁을 일단락지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의 결과는 Cuius regio, eius religio, 즉 지배자의 종교가 그 지방의 종교라는 것이었다.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의 군주들은 저 위풍당당한 프랑스 국왕과 마찬가지로 성직자 임면권과 교회 재산을 집어삼켰다.

네덜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 사람들에겐 군주의 종교를 믿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같은 개신교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칼뱅파가 루터파를, 루터파가 재세례파를 공격하고 추방하는 일이 빈번했다. (애초에 저자는 개신교란 가톨릭의 여집합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모호하고 실체 없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던가. 신앙의 국유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근대적유산을 남겼으니, 바로 세속화다. 사람들은 원래 남이 시키는 일은 하기 싫어한다. 그 남이 국가라면 더더욱! 예배 출석과 세례는 물론이고 사소한 옷차림마저 단속받는 등, 경건이 국가가 강제하는 의무가 되자 사람들은 신앙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 철밥통 공무원 신분인 사제들 역시 적극적으로 신도들을 끌어 모으려 들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고백한 사제가 아무렇지 않게 강대상에 서고, 국가가 여성 사제를 허용해도 누구하나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다들 관심이 없다는 게 보다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반면 미국처럼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종교가 맹렬해지고, 타 종교에 배타적으로 변해갔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를 쓰는 기업들처럼, 각 종교가 열성적으로 신도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는 미사 한번 나가지 않던 19세기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막상 미국에서 청교도들을 접하고는 열성적인 가톨릭교도로 변했다.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 선교에 나선 미국인 목사들은 가톨릭의 권태로운 독점체제를 무너뜨림으로써 다시금 사람들의 믿음에 불을 붙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독일의 역사학자 하인츠 실링은 종교개혁의 진정한 의의는 다름 아닌 교파화(Confessionalization)’라고 이야기한다. 종교를 의식조차 못하던 절대다수의 유럽인들이, 개신교의 등장과 함께 자신은 어느 한 쪽에 속한다고 고백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내부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고백을 강요한 남한과 북조선처럼, 가톨릭과 수많은 개신교역시 교파화를 거치며 비로소 종교로 거듭났다. 안팎으로 치열한 투쟁을 거듭하며 정체성을 확립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경험은 이후 근대 국민/민족국가 건설의 밑바탕이 되었고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는 단순히 종교개혁을 둘러싼 환상과 오해를 까발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진정한 의의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데, 크게 세 가지만 꼽아보도록 한다.

 

우선 저자는 종교개혁이 순전히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촉발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과연 타당한가 싶다. 종교개혁을 순전한 영적 각성으로만 받아들였던 기존의 이해에도 분명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방향을 180도 틀어버릴 필요가 있을까? 선행연구가 세속군주의 이해관계가 종교개혁에 미친 영향을 도외시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저자가 숱하게 인용하는 R. H. 토니의 말마따나, 역사는 관념과 물질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물론 최대한 콤팩트하게 주장을 전개해야하는 교양서에서 그렇게 쓰면 재미야 좀 떨어지겠지만.

 

저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학자들의 주장을 끌어다 쓰는 모습도 보기 좋진 않다. 가령 자본주의를 만든 건 칼뱅이 아니라 중세 수도원이라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R. H. 토니는,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칼뱅주의가 맡은 역할까지 부정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칼뱅 이전에 이미 태동했고 칼뱅 자신이 자본주의를 긍정할 생각도 없었지만, 칼뱅주의의 엄격한 규율과 소명의식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배양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저자가 눈에 불을 켜고 비판하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영어판 서문을 쓴 사람이 다름 아닌 토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근대개신교를 비판하고 중세가톨릭을 옹호하며 사용하는 내러티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안긴다. 요컨대, ‘전근대근대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긍정할 수 없는가? 오늘날 우리가 바람직하며 보편적이라 여기는 근대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을 때에만 전근대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저자는 종교개혁을 거치며 서구가 근대를 맞이했다는 통설을 비판하기 위해, 종교개혁 이전에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과학적 탐구정신이 존재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이에 따라 중세의 수도원은 자본주의의 배양실로,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민주주의의 수원(水源)으로,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과학의 발전을 예비한 종교로 탈바꿈한다. 그 결과 종교개혁이 갖는 혁명적 의의는 퇴색했을지언정, 근대중심주의와 서구중심주의는 오히려 강화되고 말았다.

근대를 앞당김으로써 전근대를 긍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비단 서구 학자들이 자기네 역사를 다룬 저술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이미 효력이 다했음에도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는 언데드인 자본주의맹아론은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니, 최근 들어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는 성리학 긍정론을 살펴보도록 하자.

혹자는 만인의 성인됨을 긍정하고 일종의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낸 성리학이야말로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그동안 양명학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근대적인 무언가를 이제는 성리학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은 근대의 시점을 양명학이 등장한 16세기에서 성리학이 등장한 12세기로 올려 잡은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의의를 가질까? 성리학, 그리고 가톨릭은 양명학과 개신교를 예비했다는 점 말고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는 걸까?

 

근대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전근대를 긍정할 방법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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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
윤춘호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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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천주교 전래사, 그중에서도 양반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인 역사는 설명할 수 없는 경이감과 함께 그만큼의 의문 역시 안겨준다. 조선은 좋게 말하면 철학의 왕국’, 나쁘게 말하면 관념국가라 일컬어질 정도로 학문을 사랑했고, 진리를 향한 날선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대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은 광대한 우주에서 개인의 내면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의 바람직한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혹자는 만인의 성인(聖人)됨을 긍정한 성리학이야말로 동아시아 근대성의 분기점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그 영향력은 넓고 깊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양반들은 성리학을 버리고 서양의 낯선 가르침에 기꺼이 몸을 맡겼다. 누구보다 성리학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체제에 안주하며 충분히 영화롭고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그들이 말이다. 대체 왜 양반집 도련님들은 비밀스럽고, 위험하며, 어딘가 중2(!)스럽기까지 한 사이비 종교를 열렬히 사모했는가? 성리학이라는 정교하고 세련된 체계는 왜 그들의 갈망을 채워줄 수 없었는가? 형장의 이슬 되어 사라져가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믿음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윤춘호의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이하 믿는 일)는 조선 양반들에게 믿음이란 무엇이었는가를 파고드는 훌륭한 팩션(Faction)이다. 역사 교양서와 소설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이 책은 때로는 꼼꼼한 사료독해로, 때로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자의 전작 봉인된 역사와 마찬가지로 당대를 살아간 수많은 인물들의 다채로운 시선이 흥미롭게 교차하면서도, 이승훈의 삶과 믿음이라는 하나의 서사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정갈하고 유려한 문장 역시 독서의 즐거움을 돋운다.

 

제목에 떡하니 다산을 박아놓아 착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정약용이 아니다.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를 이끌었으나, 믿음을 저버리고 종국에는 목숨마저 잃은 배교자 이승훈이다. (그럼에도 신문사 서평들은 하나같이 정약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퍽 안타깝다)

왜 하필 이승훈인가? 성인이나 복자로 추앙받지도, 한국사의 위인으로 존경받지도 못하는 그를 구태여 무덤에서 불러낼 필요가 있는가?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세례명인 베드로처럼 세 번이나 배교했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이승훈의 삶이야말로, 당시 조선에서 믿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절절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승훈의 죽음은 이벽처럼 비극적이지도, 정약종처럼 비장하지도 않았다. 구차하고 처절했다. 바로 그 점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믿는 일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가상의 편지글, 그중에서도 이승훈과 북경의 예수회 사제 그라몽이 나눈 대화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희망에 부풀어 오른 두 사람이 빚어내는 묘한 긴장과 불안이, 앞으로 펼쳐질 조선 천주교회의 험난한 앞날, 그리고 이승훈 개인이 겪을 고난과 좌절의 전조로 읽히는 탓이다.

 

1783, 이승훈은 28살 젊은이. 그는 아버지를 따라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가장 거대한 제국의 심장에 들른다. 그곳에서 선배 이벽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던 서양의 가르침을 접한다. 지금껏 알아온 성리학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우주를 접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 푸르고 코 높은 노인에게 죽음 뒤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지,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통역을 거쳐 더듬더듬 배운다. 노인을 만난 이후, 이승훈은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다고 믿는다.

서양의 앞선 문물에 대한 동경과 갈망 역시, 천주를 향한 사랑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뒤흔든다. 노인의 신묘한 재주, 견고하고 웅장한 북경의 북당(北堂)과 아름답게 울리는 파이프오르간,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는 놀라운 기계까지, 이 모든 게 가난하고 낙후한 조선 청년의 눈에 선명히 박힌다. 이승훈은 조선 역시 서양처럼 번영하기 위해서라도 천주를 믿어야겠다고 확신한다. 그에게 신앙과 진보는 떨어져있지 않다.

무엇보다, 젊은이 특유의 치기와 열정, 공명심이 이승훈을 이끈다. 사실 노인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현란한 문물 역시 겉핥기로만 접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는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거기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보기로 한다.

 

이승훈을 맞이하는 그라몽 신부, 그는 나고 자란 프랑스를 떠나 머나먼 극동에 온지 20년이 되어가는 예수회 사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신부지만, 이제는 조금씩 지쳐간다고 느낀다.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군주들은 천주의 충직한 종을 자처하면서도 자꾸만 교회를 국가의 손 안에 두려한다. 교황의 사냥개라는 멸칭을 감수하면서까지 헌신해왔건만, 돌아온 건 예수회 해산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명령이다. 아직까지 북경에 남아있는 건 지저분한 재산문제를 매듭짓지 못해서일 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은자의 나라 코레에서 왔다는 한 젊은이가 난데없이 북당으로 들이닥친다. 부르주아에게 봉건적 신분질서의 수호자로 비난받는 사제를, 그는 만민평등의 사도로 받아들인다. 계몽주의자에게 미신과 야만의 총체로 조롱받는 천주교를, 그는 첨단을 달리는 진보의 총아로 동경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심지어 이 젊은이는 천주의 말씀을 잘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라몽 신부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젊은이에게 세례를 준다. 위대하신 신의 뜻을 한낱 인간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유가 무엇이건 선교사를 파견한 적도 없는 미지의 나라에서 이렇게 천주를 알고자 찾아온 젊은이가 있지 않은가! 그라몽 신부는 젊은이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다만 젊은이의 치기와 야심이 못내 불안했던지, 신부는 그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내린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정했지만 다시 주의 품으로 돌아온 베드로 성인의 힘을 빌어, 언제라도 날아갈 것 같은 그의 마음을 천주에 묶어두고자 한다. 이런 염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젊은이는 그저 교회의 반석이 될 기대에 부푼 듯 보이지만.

 

과연, 조선으로 돌아온 뒤 이승훈의 삶은 베드로를 빼다 박았다. 북경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스레 서학 집회를 가진 사실이 발각되어, 그는 아버지 앞에서 첫 번째 배교를 한다. 이 배교는, 역설적으로 이승훈의 설익은 믿음을 더욱 깊고 단단히 뿌리내리게 했다. 회개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온 1795년부터 1800년까지, 이승훈은 자신을 포함해 10명의 임시신부를 선출하고 교단을 정비하는 등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임했다.

하지만 성리학을 국교로 삼는 나라, 단 한 척의 무역선도 띄우지 않고 단 한 명의 외국인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서 천주를 섬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교회의 지도자로 지내는 동안 이승훈은 이 어려움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풀어나갔다. 임시성직제도가 독성죄라는 유향검의 문제제기를 깔아뭉개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지도자로서의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음에도 북경에 편지를 보내 답을 구하는 등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졌다.

이 과정에서 이승훈은 천주에 대해, 믿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한다. 조정은 단 한 명의 선교사 파견도 허용치 않을 것이고, 목자 없는 양떼들은 천주를 믿음에도 구원받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제사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조상과 공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차리지 못하게 하는 서양 사제들의 불관용을 두고 볼 수 있는가? 명예는 최대한으로 누리려고 들면서, 책임은 어떻게든 피하려는 뻔뻔스런 교회 지도자들은 또 어떻고?

고뇌 끝에, 이승훈은 믿음을 버리기로 한다. 아니, 정확히는 믿음의 무거움을 감당하지 못해 내려놓은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배교(1791)와 세 번째 배교(1795)가 이루어졌다. 베드로와 달리, 이승훈이 세 번째로 회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교회를 떠났고, 국가와 문중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던 이승훈에게, 마침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정조가 승하한 뒤 정권을 잡은 정순왕후와 벽파의 영수 심환지가 사학(邪學)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천주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벌인 것이다. 신유박해(1801)라 불린 이 파국을, 아무리 배교자라 한들 이승훈이 피해갈 도리는 없었다.

국문장에서 그는 자신이 믿음을 버린 지 오래라고 항변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도 옛 동료들을 팔아넘기는 짓은 하지 않았다. 심문관 앞에서 동료는 물론이요, 친형 정약종의 이름까지 술술 불어버림으로써 기어코 살아날 구멍을 찾아낸 정약용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1801226, 이승훈은 서소문 앞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 조선 최초의 영세자였고, 한때는 사실상의 주교였던 만큼 당연한 결말이었다. 조선천주교회사를 쓴 달레의 말마따나, 이승훈은 참회한다는 한마디면 그 피할 수 없는 형벌을 승리로 바꿀 수 있었다.”(p.242.) 그럼에도 이승훈은 끝끝내 이를 거부하고 배교자로 죽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혹시 앞으로 더 큰 고통만을 남긴 채 자기 하나만 주의 곁으로 돌아가는 걸 죄스럽게 여겼던 건 아닐까. 막판에 회개하여 순교자로 남을 경우, 천주교회는 자신의 죽음을 거룩하게 포장하여 음지에서 세를 불려갈 것이다. 허나 앞으로도 조선 땅에서 천주교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만일 순교자 이승훈에 이끌려 무고한 신자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면, 애꿎은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고로 이승훈은 추한 배교자로 남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내 시체를 보고 침을 뱉고 손가락질하도록, 그래서 믿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질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무의미한 죽음은 이걸로 족하다.

 

이승훈의 생각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역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으나, 다산처럼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승훈은 믿음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잘 알았고, 그로인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의 동학들도 마찬가지다. 도교의 신선술에 심취했던 괴짜 천재 이벽은, 천주교로부터 성리학이 결코 주지 못하는 내세에 대한 전망을 얻었다. 그는 죽음을 불사한 아버지의 반대 끝에 독방에 틀어박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천주교에서 만인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보았던 정약종은 가혹한 고문에도 신념을 꺾지 않았고, 순교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들은 다르게 믿고, 다르게 죽었다. 하지만 믿음의 무게를 안다는 점에선 모두가 하나였다.

 

이들을 보면서, 다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빼어난 재능으로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이. 하늘에서는 상제(上帝), 땅에서는 군주가 만물을 조화롭게 주재하는 세상을 꿈꾼 이. 선한 목자가 되고 싶었으나 결코 양과 목자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이. 그런 다산에게, 믿음의 무게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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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앤더슨 2019-12-08 2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자체가 탁월한 시가을 보여 주네요

유찬근 2019-12-13 18:1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인데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810kimyj 2019-12-10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빠져드는 문장력, 따스한 저자의 감성이 느껴지는 책이네요.
 
돌봄 민주주의 - 시장, 평등, 정의
조안 C. 트론토 지음, 김희강.나상원 옮김 / 아포리아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한 일본인의 연설이 이웃나라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신생정당 레이와 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의 당수인 야마모토 타로. 평소 일본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동영상을 공유하며 공감을 표했던 건, 배우 출신인 야마모토의 뛰어난 언변 때문만은 아니었다. 야마모토 타로의 연설은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갖고 있는 어떤 불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바로 생산성이 떨어져 언제든 탈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 어떤 사람도 평생 생산적일 수는 없다. 한국의 경우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시기는 길게 잡아야 1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까지다. 그 전후로는 좋든 싫든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야마모토 타로의 연설이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넘어, 보다 광범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에게 돌봄이란 사실상 운명이므로.

이젠 너무나 진부해진 말이지만,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이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마저 붕괴됨으로써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더욱 가혹한 처지로 내몰렸다. 누구나 남에게 돌봄받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 의지할 곳이 사라진 순간 비운으로 거듭났다. 사람들은 이제 생산성이 없으면 죽어 마땅하다는 슬픈 운명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비운을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보다 견딜만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야마모토 타로는 전통적인해법, 다시 말해 국가의 역할 확대를 염두에 둔 듯하다. 하지만 설령 국가가 모든 걸 떠맡는다 한들, 운명의 방향을 틀 수 있을까? 여성주의 정치학자인 조안 C. 트론토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복지국가의 전성기 시절처럼 돌봄을 국가에게 외주줄 경우, 필연적으로 돌봄에서 비켜난 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 돌봄 민주주의는 돌봄이란 국가가 일방적으로 떠맡기엔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대안은 무어냐, 바로 돌봄의 민주화다.

 

트론토는 돌봄을 윤리가 아닌 관계의 측면에서 정의한다. 돌봄은 개인의 이타심에 기반한 주체적인 선택 혹은 미덕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이상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것이다. 마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듯, 돌봄은 매우 일상적이고 광범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성격이, 돌봄을 정치적 의제로 테이블에 올리지 못하게 만든다.

 

저자는 그간 돌봄을 민주주의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게끔 방해해온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돌봄은 여성()의 자연스럽고 사적인 활동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이다. 아내에게 당신이 일 나가면 애는 누가 키우냐고 당연한 듯 물어보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들이 잘 보여주듯, 돌봄은 여성가정이라는 경계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돌봄의 민주화를 방해하는 두 번째 요인인 돌봄 무임승차, 돌봄을 가정여성에 묶어둔 이러한 편견이 오랜 세월에 걸쳐 튼튼히 뿌리내린 결과다. 돌봄 무임승차란 말 그대로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가며 돌봄의 의무는 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려는 행태를 일컫는데, ‘보호형 무임승차생산형 무임승차가 대표적이다.

보호형 무임승차에 대한 설명으론 여자도 군대 가라!!”는 한 마디면 충분할 듯싶다. 한국사회에서 군복무는 일종의 시민권이자, 돌봄 의무에 대한 면책특권으로 작용한다. 거칠게 말해 남성인 나는 군대에서 온갖 고생 다 했으니 이걸로 됐고, 여성인 너는 군대도 안 갔으면서 이것저것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군복무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돌봄의 범주에 들어갈 터이지만(이 점에서 저자는 급진 여성주의와는 궤를 달리한다), 남성들은 구태여 군복무를 돌봄에서 떼어내고 전자를 특권화한다.

전선이 뚜렷하게 그려지는 보호형 무임승차와 달리, ‘바깥에 있는 일터에 나간다는 이유로 남의 돌봄에 올라타는 생산형 무임승차는 좀 더 복잡하다. 작가 정지민이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에서 담담하게 적고 있듯, ‘바깥양반여성이 안사람남성에게 난 밖에서 쌔빠지게 고생하는데 넌 집에서 놀면서 뭐가 그리 힘드냐며 짜증내는 상황 역시 얼마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집 밖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남녀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던 구 공산권의 야심찬 기획 역시, 어떤 여성은 남의 돌봄에 무임승차하고, 어떤 여성은 이전보다 더 많은 돌봄 의무를 떠맡는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돌봄과 민주주의의 사이를 벌려놓은 세 번째 요인은 바로 1980년대부터 착착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세계화다. 사회란 건 없다는 대처의 선언 이후, 개인과 가정은 어디에도 의존하지 못한 채 모든 책임을 떠맡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돌봄은 국가는 물론이고 가장 전통적인 거처였던 가정으로부터도 떨어져나가, 점차 시장에 포섭되어갔다. 조주은이 기획된 가족에서 예리하게 포착했듯, 화이트칼라 여성이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과 같은 신성한 돌봄허드렛일을 분리하여 자신은 전자만을 수행하고 후자는 가족이나 가사도우미에게 외주를 맡기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이트칼라 여성이 남들의 돌봄에 전적으로 무임승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일은 일대로 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업무 틈틈이 세심하게 가족을 돌봐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허드렛일의 외주화는, 임금노동과 돌봄의 이중굴레에서 허우적대는 이들 화이트칼라 여성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화이트칼라 여성이 이럴진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머지 여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예컨대 화이트칼라 여성이 고용한 가사도우미는 하루의 절반은 남의 집에서,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집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돌봐야만 한다.

 

이처럼 저자는 가부장제와 임금노동의 신성화, 신자유주의 등으로 인해 돌봄이 진지한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며, 지금이라도 돌봄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정에 떠넘기거나 국가와 시장에 외주화하는 일 없이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돌봄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위한 로드맵이다. 저자는 돌봄에 적합하게끔 시공간을 재조직해야한다고 주장할 뿐,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경우 남성 의무 육아휴직제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했듯, 가정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돌봄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른바 돌봄복무제도입이다. 사전에도 없는 말이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남성들에게 군복무 말고도 돌봄이라는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신체조건(사회복무요원)이나 아주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입증해야하는 본인의 신념(양심적 병역거부)과는 상관없이, 모든 남성은 자유롭게 군복무와 돌봄복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후자를 택할 경우 유치원, 아동센터, 특수학교, 요양원, 복지관 등에서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 물론 업무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돌봄복무 기간은 군복무 기간보다 길어야 한다.

돌봄복무제가 그럴싸한 이유는 사회복지에 들어가는 세금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돌봄이 군복무와 동렬에 놓이게 되는 상황 그 자체이다. 앞서 언급했듯 군복무는 그간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시민권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공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사실상 군필자(당연히 남성)에게만 부여되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군복무와 돌봄복무라는 선택지를 주는 건, 돌봄이 군복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란 걸 보여줄 수 있는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다. 나아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군복무 역시 보다 넓은 의미의 돌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돌봄이 군복무보단 편하지 않냐고. 글쎄, 어느 쪽이 더 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유치원 특수반에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돌보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돌봄, 절대로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말 안 듣는 아이를 향해 우유 마셔요, 바르게 앉아요, 정리해요 같은 말을 백 번 넘게 되풀이하고, 잠깐 한눈판 사이에 저만치 뛰쳐나간 아이를 쫓아가고,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보면 아이고 되다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누군가를 돌보는 건 힘든 만큼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만일 구청이나 선관위같은 꿀무지로 배정받았다면, 나는 결코 돌봄의 기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이 돌봄복무제를 통해 돌봄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돌봄이 당연히 남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여성 역시 군복무와 돌봄복무 중 하나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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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사회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0
심너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SF의 최대 매력은 사고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가정에서 시작해, 끝에는 정교하고 그럴싸한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독자에게 지적 쾌감을 안겨주고 상상력을 넓히는 일이야말로 SF소명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소멸사회는 내겐 실패한 사고실험으로 남을 듯하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도래한 암울한 205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가정은 허술하고 인물들은 도무지 그 시대 사람들 같지가 않다. 차라리 2010년대의 청년들이라 했다면 보다 그럴싸했을 것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인구가 줄어 소멸을 향해가는 마당에 청년들이 뭐 하러 한강에 배를 띄워 사는가? 그냥 무수히 널려있을 빈 집을 점거해 살면 되지.

애초에 200여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담아내기엔 너무 무겁고, 커다란 주제였다. 올해 나온 대멸종에 실린 단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를 재밌게 읽었던지라 퍽 기대하는 작가였는데, 이 책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곽재식 작가가 이야기한, 너무 별로라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하고 이야기 고치는 연습을 해볼 수 있는 바로 그 정도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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