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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45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책인데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저자 고경태는 <한겨레 21>과 <한겨레> 토요판(별도의 주말섹션이 아닌, 주간판과 구분되는 토요판으로는 한국 언론 최초라고 한다)을 성공시킨 베테랑 편집자다. 파격적인 기획을 대담하게 밀어붙이고, 이를 성공시키기까지 한 저자의 편집인생이 기자 특유의 간결한 문체에 힘입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의 기획이 하나같이 그 매체에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끌어들임으로써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겨레> 토요판 1면은 전날 일어난 최신의 사건을 보도하는 통상적인 신문과는 달리 편집장이 중요하다 판단한 주제 하나를 대문짝하게 실었다. 전형적인 주간지의 기법으로, <한겨레 21>에서 오래 일한 저자의 경험이 녹아들었다. 초창기 <한겨레 21>을 스타덤에 올린 김규항과 김어준의 쾌도난담 역시 술자리에서 오고갈 법한 대화를 그대로 주간지에 실은 것인데, 굳이 따지자면 ‘활자화된 팟캐스트’라 할 수 있다.
매체 A에 다른 매체 B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파격을 꾀한다. 퍽 일관적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파격’은, 이 책이 증명하듯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신문이 ‘신문 아닌 것’을 끌어들여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면, 굳이 신문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활자화된 팟캐스트’를 읽느니 그냥 팟캐스트를 듣는 게 낫지 않나? 성격이 전혀 다른 매체를 슬금슬금 끌어들이다보면, 결국 신문과 잡지 고유의 성격까지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활자의 종언을 더 이상 호사가의 공담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된 지금, 신문과 잡지 고유의 방식으로 혁신을 꾀할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가 주로 아이템 개발이나 외부 필진과의 에피소드에 치중된 점은 아쉽다. 편집이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 가이드라인은 편집장이 정할지언정 결국 그 속을 채우는 건 기자들이다. 자신의 구상을 팀원들에게 설득하고, 때로는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화려한 편집장 역사에는 명민하고, 오만하며, 고집 센 기자들과 실랑이한 기록이 전무하다시피하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라 일부러 뺀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저자가 실랑이를 벌일 여지 자체를 주지 않았던 걸까.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후자일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PART 5 「내가 만난 편집장」에 등장하는 편집장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캐릭터가 겹친다. 좋게 말해 추진력 있고, 나쁘게 말해 오만하고 독선적이다. 편집장의 역할은 ‘조율’보다는 ‘지휘’인 걸까. 저자의 다른 책인 『유혹하는 에디터』를 읽으면 편집장의 또 다른 모습을 접할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