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현재의 탄생 -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1년의 기록
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 지음, 김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유대계 스웨덴인인 저널리스트의 논픽션. 마치 세계를 훑을 것만 같은 제목과는 달리, 책에서 다루는 현재란 어디까지나 서구세계의 오늘에 불과하다. 물론 이슬람세계가 비중 있게 다뤄지긴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의 탄생이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로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 외에는 인도와 동서 파키스탄의 분단이 곁다리로 등장하는 정도.

19471월에서 12월까지, ‘세계각지의 국가와 도시를 훑으며 현재를 만든 중요한 사건들을 훑는 저자의 시야에 서울과 평양, 도쿄와 베이징, 하노이와 자카르타는 들어와 있지 않다. 과연 병들어 죽어가는 조지 오웰이나 미국인 작가와 사랑에 빠진 시몬 드 보부아르, 새로운 패션을 창조한 크리스티앙 디오르보다 이들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이 덜 중요한가 싶지만, 비서구를 일종의 악세사리로 다루느니 깔끔하게 들어내기로 한 저자의 판단은 퍽 현명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꿀꿀함은 남는다. 어째서 서구, 구체적으로는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문제만을 천착한 이 책은 별다른 수식어 없이 현재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나올 수 있었을까. 만일 배경이 동아시아였고, 사건이 한반도의 분단이었다면 저토록 당당하게 현재를 선언할 수 있었을까. 서구는 자신을 구태여 보편이라 천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반면 비서구는 자기네 특수성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서구를 의식해야만 한다. 차크라바티의 말마따나, 유럽의 지방화가 절실하다.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만.

스웨덴어로 쓴 글의 영어 번역판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중역본임에도, 문장은 유려하고 우아하다. 슈테판 츠바이크와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동아시아나 한반도의 현재를 만든 인물과 사건들을 엮어 이런 책을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잠겼다가, 너무나 자연스레 서구 명저동아시아/한국판을 상상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역시 비서구는 결코 서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어디까지나 사족이지만, 유대인 문제에 올인한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전후 나치의 재편을 도모한 스웨덴인 페르 엥달이라는 점은 퍽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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