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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161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한길사 / 2019년 5월
평점 :
한나 아렌트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상징되는 20세기 전반기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인물평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렌트는 20세기 전반을 ‘어두운 시대’로 정의한다. 공적인 삶을 상징하는 ‘밝음’의 대척점에 있는 어둠은, 모두가 사적인 것에 매몰된 상황에 대한 은유다. 역자 홍원표에 따르면 아렌트에게 어둠이란 가치판단이 배제된 중립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공적인 삶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던 고대 그리스로부터 지대한 영감을 받은 아렌트가 과연 어둠에 대해 일말의 부정적인 평가도 남기지 않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나 그가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마주했고, 전후에는 《뉴요커》 기자로서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취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어두운 시대에 아렌트가 집중한 건, 다름 아닌 ‘사람’이다. 사람이 백만 명 단위로 죽어나가던 시대에 사람이라니, 지나치게 한가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렌트가 조명한 사람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온 세상이 사적인 것에 얼굴을 박고 있던 때, 이들은 용감하게 공적인 것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가톨릭의 개혁을 추구한 보수적인 리버럴 발데마르 구리안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좌파 시인 그룹을 이끌었던 위스턴 휴 오든까지, 사상도 행적도 가지각색인 아렌트의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역자의 섬세하지 못한 번역까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읽어가는 과정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쓴 약을 먹어가듯 두꺼운 책을 꾸역꾸역 읽어가며, 어둠으로 가득 찬 20세기를 비추었던 등불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위로받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20세기 전반 유럽의 이야기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읽으며, 난 엉뚱하게도 20세기 후반 한국을 떠올렸다. 최인훈이 『광장』에서 이명훈의 입을 빌려 이야기했듯,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의 간판을 내건 신생국 대한민국 역시 광장(公)은 없고 밀실(私)만 빼곡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전반의 유럽과 마찬가지로, 20세기 후반의 한국에도 밀실을 젖히고 나와 기꺼이 광장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학인 최인훈과 김수영, 종교인 함석헌과 문익환, 정치인 장준하와 김대중, 언론인 한창기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의 어두운 시대를 밝혀간 이들의 역사 역시, 누군가가 써주었으면 싶었던 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