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사신일행을 따라 다녀오며 쓴 일종의 기행산문이지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과 풍물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우리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고전, 하지만 한 번도 단 한 문장도 제대로 만나본 적 없이 풍문으로만 귀동냥으로만 만나오던 책, 하여 올 해 2008년 독서의 목표로 [열하일기]완역본을 정독하기로 하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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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3권의 원전 완역본을 선뜻 손에 들기가 두려워 차일피일 하던중 이 번에 나온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上,下]를 만나 드디어 그 긴 여정에 발을 내딛는다. 초등학생 및 청소년용으로 나와 있는 입문서들도 서너권 준비만 해두었었는데 시작을 이 책으로 한데는 까닭이 있다. 준비해둔 여러종의 입문서중 이 책은 가장 최신판이고 가장 상세하게 [열하일기]를 따르고 있다. 두 권으로 나뉘어진 [일기]에서 일정에 다라가며 쓴 기행문들은 거의 완역이 되어 있고 일정과 관계없는 산문들도 작성 시점에 맞추어 일정 속에 별도의 산문으로 포함시켜 놓아 일목요연하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실한 사진과 삽화가 어쩌면 지루해질 먼 여행길을 달래어준다. 걷고 말을 타고 조공을 바치러 가는 길위에서 연암이 만난 수많은 일화들과 풍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맛깔나는 글로 옮겨져 있다. 특히 <성경잡지> 속의 "속재필담"은 중국인들과 필담으로 나눈 이야기들을 옮겨놓았는데 현장에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 생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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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겨우 강물에 발을 담그고 연암의 길을 다라 나선 셈인데 역시 소문처럼 그의 길은 멀고도 아득하다. 두어번 읽는다고 깨칠 수 있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도 이번 첫 만남을 통하여 연암의 생각 한 자락이 이즈음의 나와 같음을 확인 한 것 만으로도 무척 행복하고 흐뭇한 동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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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열하일기]의 1부에 해당하는 <도강록>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하는 첫 발자국에 관한 글들이다. 일자로는 1780년 음력 6월 24일부터 7월9일까지의 기록에 해당하는데 나는 <도강록>에서 연암의 큰 생각을 만나 벌써부터 흐뭇해하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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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나라 선비들) 요동이 본시 조선의 옛땅이며, 숙신,예,맥 등 동이의 여러나라가 모두 위만의 조선에 예속되었던 것을 알지 못한다. 또 오라,영고탑,후춘 등지가 본시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걸 모른다. 아! 후세 사람들이 땅의 경계를 자세히 밝히지 않고 제멋대로 한사군을 죄다 압록강 안쪽에 몰아넣어 견강부회하면서 구차하게 배치해 놓았다. ~ 이는 무슨 가닭일까. 평양을 한 곳에 정해놓고 사적에 따라 패수 위치는 앞으로 당기거나 뒤로 물러나게 하는 까닭이다. ( <도강록>, '6월28일'에서 )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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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이처럼 크고 넑고 깊다. 잃어버린 우리땅을 이제와 찾을 수는 없겠지만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고 견지함은 지금, 동북공정이 운운되는 지금 이 시대에는 더 더욱 필요한 일인 것이다. 다시 연암의 말을 들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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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군의 절반은 요동에, 절반은 여진에 걸쳐 있어서 서로 겹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본디 우리 영토 안에 있었다는 걸 더욱 명확히 증명할 수 있다. ~ 내 생각은 이렇다. 기자가 처음에는 영평,광녕 어름에 있다가 나중에 연의 장군 진개에게 쫓겨서 2,000리 땅을 잃고 점점 동쪽으로 옮겨 갔을 것이다. 이는 마치 중국의 진,송이 남으로 옮겨간 것과 같은 이치다. 아마도 기자는 머무는 곳마다 평양이라 하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 대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평양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리라. ~ 그렇지만 현재의 대동강을 패수라 하는 자는 자기나라의 국토를 스스로 줄여서 말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 上同)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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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책에는 이렇게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필담이야기와 이번에 처음으로 전문을 본 <호질>이야기까지, 이 책만으로도 한 철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읽고 생각할 거리가 넘쳐난다. 곳곳에 더하여진 그림과 유물 사진, 현재의 풍경사진까지 푸짐하고 또 푸짐하다. 옛 어른의 말씀만으로도 이렇게 배부를 수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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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는 중인데도 이만큼의 이야기다. 열하, 그 머나먼 땅까지의 일정 속에 연암이 보고 기록해둔 많은 것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는 그와 함께 열하를 다녀와야만 할 것이다. 몇 번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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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술별酒星 하나 반짝이고, 땅에는 술고을酒泉, 여기가 바로 최고라오. ( <성경잡지>, '7월 10일'에서, 어느 술집의 깃발에 새겨져 있던 글)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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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8. 낮, 그를 만나 술 한 잔 따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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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