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이름은 나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가 찾아낸 야마모토 후미오란 이름의 이 책에게 끌렸던 이유는 푸른 책표지에서 받는 신선한 느낌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겠지만, 나오키상 수상이라는 이름이 남모를 안정감을 허락했는지도 모르겠다.

상을 받은 작품이 모두 우수하다고는 못하겠으나, 나오키 상을 받았다는 인상이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했다는 것보다는 왠지 인간적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때문일것이다.

시원스런 활자를 쫓아 읽어 내려간 야마모토씨의 <플라나리아> 그 대단한 흡입력에 책을 읽으면서 놀라고 말았다.

아사다 지로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그것이 그녀에게도 있다는 걸 새삼 새삼 느끼며 그녀의 글을 훑어 나갔다.

<플라나리아>에는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제멋대로의 인생을 사는 5명의 주인공이 나오며, 너무나도 비범한 일상을 평범한 어투로 말하는 그네들의 삶은 생경하면서도 수긍이 갔다고나 할까?

유방암이 걸린 25살의 무직자 하루카는 떼어낸 자신의 한쪽 유방 때문이라도, 나중에는 플라나리아로 다시 태어날 것을 희망한다. 재생할 수 있는 플라나리아의 삶이 마냥 부러운 그녀에게 현재의 삶에서는 아무런 '절실함'도 '간절함'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바라는 희망은 오직 하나, '나중에 태어나게 된다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는 일' 자기 혐오로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하루카의 너무나 담담한 젊은 날의 이야기 <플라나리아>에서 독특한 그녀만의 글쓰기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세상의 전부를 걸고 투쟁해서 이뤄 놓은 것을, 이혼이라는 것으로 하루 아침에 잃어 버린 남자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 <사랑 있는 내일>은 독특한 캐릭터의 등장이 눈여겨 볼 만 하고,,

이혼으로 인해서 폐인이 된 한 여자의 자아 발견의 시간을 함께 지켜 보는 이야기 <네이키드 Naked>는 소재와 대사가 너무나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평범한 주부가 겪는 생활에의 변화를 함께 지켜볼 수가 있고,

후미오가 들려주는 <수인(囚人)의 딜레마>에서는 각각 우리에게 주어진 수인의 딜레마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5편의 단편이 하나같이 눈부시지는 않지만, 책장을 덮을 즈음에 이 모든 글들이 잔잔하면서도 은근하게 가슴에 들어와 앉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야마모토 후미오, 그녀의 글쓰기에 내심 내심 기대가 되는 이유는 모두 이러한 마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재미있는 소설. 그리고 의미 있는 소설. 그 두가지 큰 영역을 소화해 낸 그녀의 글쓰기에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9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김만옥 외 지음 / 현대문학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97년에 이 책을 읽고나서 얼마전 다시 한번 책을 들어봤다.

97년을 기준으로 좋은 소설들을 선정하여 한 권의 책에 실었으나 그때만이 아닌 시간이 지난 후에 읽어도 좋을만한 우수한 단편들의 총망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수준 높은 책이라 여겨진다.

내노라한 한국의 소설가들의 화려한 단편들이 10편이나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한국 현대 문학의 흐름이나 주류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10명의 작가가 쓴 10편의 단편이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으나,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유독 심혈을 기울여서 보게 된 작품이 이동하의 '그는 화가 났던가?'이다.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이십여명의 소시민에게 휘둘리는 말없는 폭력을 이동하씨는 날카롭고 숨가쁘게 펜으로 나타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정치가가 될 수도 크고 작게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혹은 나의 모습일수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비인간적인 모습도 울분이 터지지만, 고통이 지나고 난 후에 그 모든것을 깡그리 잊어 버리는 너무나도 작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 할 수 없는 분노가 이는것은 왜일까?

이동하 작가의 날카로운 글쓰기에 혀를 내두르며 숨가쁘게 읽었던 이 소설에 박수를 치고 싶다.

그밖에도 김만옥의 '회칼', 은희경의 '서정시대', 한강의 '내여자의 열매'등을 의미 깊게 읽었다.

시대는 지났어도 글쓰기만은 변함 없는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며, 현대문학에서 나온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시리즈를 계속 해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와 나비 - 2003년 제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인숙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해의 좋은 한국 현대 문학 중, 단편 부분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내놓으라 하는 한국의 소설가들이 펼쳐놓은 아름답고 독특한 이야기들이 즐비하니까요.

빠뜨리지 않고 읽었던 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연말이 되어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곱씹어 읽어도 어느 하나 빠뜨릴 것없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글들이네요.

여러편의 소설이 담겨 있지만, 두번째 읽으면서는 김인숙의 '모텔 알프스'에 남모를 애정이 기웁니다.

'모텔 알프스'를 읽고는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정신적인 사랑만이 전부인 것처럼 알고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생각이었을까요?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만들어진 존재인데, 사랑도 한쪽으로 기울 수는 없겠죠. 사랑 뿐이 아니겠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여기에 정신만이 살아 있는 윤의 남편과, 몸만이 살아 있는 윤과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모텔 알프스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그 정신적인 삶을 지배하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 하겠습니다.

새끼를 잃어버린 영물인 고양이는 반 죽은 자식을 지키는 시어머니를 닮아 더욱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됩니다.

자신에게 딸린 혹을 달고 윤은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04년 선별된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들이 기대됩니다. 얼마 안남았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볼까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국.천우학 범우 사르비아 총서 505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원래 세계 고전이나, 한국 현대 문학을 편애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쩍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일문학을 전공이나 했음에도 많이 아는게 없어서, 기호를 말하기도, 비교를 하기도 뻘쭘했다는 게 궁색한 변명이지만, 그 보다도 몇몇권의 일본 문학에서 느껴지는 세밀함이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원어로 씌여진 이 책을 덜컥 사버렸다.

그때 해석도 되지 않던 책을 훌~훌~ 책장을 넘기며 읽어보고는, 이 책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이 가을이다.

1968년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가와바타 문학 속에 녹아 있는 일본의 정취를 엿보기로 이 책은 쏠쏠한 재미를 준다.

아기자기함과 세심함과 집요함과 미묘함이 얽혀있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면 있던 설국.

시마무라와 고마코와 요코가 들려주는 에치고유자와의 풍물과 그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의 미묘한 갈등..

명확한 스토리와 플롯의 전개의 다양성 따위는 없지만, 곱씹어야만 하는 인물설정과 배경과 상황의 조화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생각했던 것은, 철학적인 소설의 스토리도, 애매한 인물들의 복잡성도 아닌 이것 뿐이었다.

'아~나도 설국에 가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철도원, 파아란을 쓴 작가를 아세요? 51년 도쿄 출생인 아사다 지로는 야쿠자 생활을 하는등 인생의 거친 시기를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을 읽고는 소설가가 되어 보기로 했다는군요. 가와바타가 없었은들, 이 근사한 소설가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집안의 몰락으로 야쿠자 생활까지 한 아사다 지로는 여러분도 모두 아시는 <철도원>과 <파아란>처럼 청초한 소설을 써냈습니다.

사람은 그런것 같아요. 가지지 않은 세계를 동경하여 그리는 힘이 있는 존재.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 작가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여 사보게 된 <장미도둑>은 모두 6편의 단편으로 묶여있었습니다.

장편에서 만난 아사다상의 그것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지로씨를 만나게 되었죠.

그 놀랄만한 관찰과 섬세한 심리 묘사, 아연하게 만드는 스토리 구성의 탄탄함은 '과연 글 쓰는 천재로군..'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6편의 단편 중 어느 하나 쳐지는 감이 없이 모두 신선함과 다양한 주제에 놀랄따름입니다.

책을 손에 들고 있으면 몰입하게 되어 잠시 다른 생각은 잊게 해주었으니까요..

읽을거리를 찾는 분에게 이 단편을 적극 추천합니다. 멋진 소설가도 알게 되실 것이고, 재기 넘치는 글도 읽으실 수 있을 것이며, 서정미도 동시에 가지실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럼 6편의 단편의 내용들을 조금만 알려드릴께요~^^*

1. 수국꽃 情死
여행지에서 만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과의 동반자살을 꿈꾸는 권고 사직 당한 어느 중년 남성의 이야기

2. 나락
한 남자의 죽음에 둘러싼 여러가지 음모의 뒤안길
이 작품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의 진행과정을 가진 작품으로, 사건은 하나인데, 관점은 여러가지인 시각들이 돋보입니다. 부폐한 사회를 꼬집은 풍자도 살아 있고, 글의 스피드며, 결론에의 귀결이 통쾌했던 멋진 단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가 이동하의 글쓰기와 비슷한 면을 발견했더랬죠.

3. 죽음비용
평안하게 죽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도박.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평안히 죽을것인가? 아니면 그 공포에 그대로 몸을 맡길 것인가? 죽음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 그러나 결론은 백합향이 나더군요..ㅎㅎ

4. 하나마츠리
중학생이 되는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여른들의 세계. 12살인 나, 24살인 아저씨, 36살인 엄마가 진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아름다운 이야기.

5. 장미도둑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캡틴인 아버지에게 보내는 서간문. 소설은 <키다리 아저씨>처럼 줄곧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진다. 파파가 아끼는 장미 정원을 지키는 소년은 정작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한송이 장미를 지키지 못하게 되는데....

6. 가인 (佳人)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청년의 여자취향이 폭로되면서 아연실색하게 되는 이야기. 그 기발함에 웃음이 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