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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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눈]
15살의 마르코는 제작실 경비를 서게 되었다.
한산하다 못해 스산한 분위기의 지하 도시에서의 근무 첫날이라 잔뜩 긴장한 마르코의 귀에 허밍에 가까운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리며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목소리에 끌려 모니터실로 올라가는 서문의 반 층 계단 앞까지 가게 된 마르코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동갑 여자아이 은희를 만나게 된다.
반딧불이에 눈을 빼앗겨 쫓아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마르코는 은희에게 점점 마음이 커지는 걸 느끼게 된다. 한번도 기대 한적 없는 식사시간을 기다리게 되거나, 출근시간 은희를 만나기 위해 노력도 하고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지인들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그렇게 마르코의 노력에 점점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던 차에 어느 날 은희가 갑자기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르코가 은희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은희에게 아픈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과 갑갑한 터널 같은 은희의 상황들을 알게 되고 어린아이같이 순수했던 마르코가 점점 현실을 자각하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하세계 회사의 파업이 진행되면서 자신이 간과했던 현실들이 눈에 들어오며 이야기가 깊어지고 있었다.

[우주늪]
쌍둥이 자매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둘 중 하나만 키울 수 있었다. 오늘 죽여야지, 내일 죽여야지 하며 고민하던 아이들의 부모는 가위바위보 따위로 세상에 존재할 아이와 존재하지 않을 아이를 선택했고, 죽을 아이로 선택된 의조는 죽이지 않은 부모에 감사한 마음 대신 비릿한 감정을 느끼며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의조는 어느 날 기회처럼 치유키와 마주치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인식시키는 기회를 태어나 처음 갖게 된다. 멈춰버린 시간이 흐를 수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되고 이미 제로였던 자신의 존재가 타인과 부딪힐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끼숲]
유오가 죽었다. 그건 여느 날의 사건1 처럼 일어났고 유오가 사라졌어도 지하세계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단 한 명, 유오를 사랑했던 소마만이 유오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을 느끼고 자책하며 하루 같지 않은 하루를 보내며 폐인처럼 생활하던 중 유오의 클론이 폐기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오를 잃고 유오의 클론까지 잃을 수 없었던 소마와 친구들은 함께 유오의 클론을 찾으러 가게 된다.

연작 소설은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어져 내가 좋아했던 주인공들이 여러 공간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번에 내가 좋아하는 천선란 작가님의 연작 소설이 나온다는 소식에 바로 구매하고 읽기 시작했다.

구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하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 보였고, 서로의 구원이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낯설지만 익숙하게 느껴졌다.

버림받은 인간은 결국 지하로 내려가 살아가게 되고, 푸른 하늘과 드넓은 땅과 숲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공간에서 인간성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소설스러웠고 사랑스럽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사랑스러운 첫사랑의 감성과 안타까운 지하세계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는 바다늪과 이끼숲, 기억하는 이들이 있어 죽을 수 있다는 것에 용감한 그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식물은 죽지 않으니 자신의 삶을 씨앗처럼 발아하여 행성 전체를 덮는 이끼숲의 이야기는 왠지 어느 별의 전설같이 느껴져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게 하며 여운을 주는 작품으로 오래 기억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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