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축구공만한 지구본을 돌리다 보면 나오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다.

이 마을은 신비로운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날개는 없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능력을 가지고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었다.
평화롭고 좋은 냄새에 이끌린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마을에 들어와 마을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여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껏 잊고 지낸 불안이 갑자기 불연듯 떠올라 어느 날 밤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내년이면 성년이 되는 딸아이가 가진 능력을 알리고 조절하는 방법을 미리 익히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마을 사람들과 달리 능력이 없는 줄 알았던 딸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몰래 옅듣게 되고, 남들과 달리 두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가졌다는 말에 놀랍고 혼란스러웠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평소처럼 잠을 청하게 된다.

그날 밤, 사랑하는 이들이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모두 떠나버리는 악몽을 꾸고, 울며 잠을 깨어나게 되는데, 하필 그때 자신에게 사람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능력과 꿈을 실현시켜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과 이별을 하게 된다.

현실보다 잔혹한 꿈을 겪고,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소녀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타인을 위해 써야 하는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만다. 결국 능력은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수록 소녀는 생기를 잃고 감정도 잃어간다. 셀 수 없는 반복을 겪고 다시 태어난 날, 자신이 좋아하는 꽃의 지명인 메리골드라는 마을을 선택하고, 그렇게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던 부모님과의 마지막 밤 대화가 기억이 떠오르게 되자, 자신이 바라는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렇게 메리골드 마을의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를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타인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사가 굉장한데 일단 메리골드의 마을에 세탁소를 차려 사람들의 아픈 기억과 마음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지은이었다.
지은의 메리골드 세탁소의 업무는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지워주는 일로, 일을 맡기 전 루틴이 있었다.

일단 그녀가 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통해 상담을 한 후, 하얀 옷을 받게 된다. 하얀 옷을 입고 난 후 지우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면, 입고 있는 옷에 얼룩이 생기게 되는데 사실 지은이 내어주는 차와 털어놓음으로 얼룩을 지울 수 있지만 세탁기에 넣어주는 건 손님에 대한 지은의 작은 배려라고 했다.

이렇게 세탁이 끝나면 얼룩과 함께 기억과 추억이 함께 사라지니 세탁을 맡길 때는 신중해야 함을 연신 주의 받는다.

메리골드는 사장 지은의 고향처럼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명목으로는 지은이 사람들의 마음을 세탁해주지만 무수한 세월을 겪으며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주인공의 마음을 서서히 녹여가는 건 그녀의 세탁소 손님들이었다. 

언제나 친근한 김밥집 아줌마와의 인연을 맺고 메리골드 세탁소의 첫번째 손님 무명 영화감독 재하의 소원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연희, 가족들의 희생양이었던 인플루언서 은별, 메리골드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는 영희, 세탁소의 특별 손님 연자, 그리고 해인까지 아픈 상처가 하나씩 존재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한편의 동화같은 전체적 분위기와 작가님의 따뜻한 멘트들이 주옥 같았다. 거기다 해가 예쁘게 지는 메리골드를 선택한 것부터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녀가 살던 마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점, 웃음 뒤에 슬픔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모습으로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려보이지만 말투에서는 연륜이 느껴지고, 메리골드보다 청초하고 아름다우나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지은의 모습이 더 불안하고 금방 사라질 신기루 같게 느껴졌으나 전생에서 시도 하지 않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자신의 슬픔도 함께 타오르는 햇빛에 날려보내면서 점차 자신의 능력을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읽는 내내 굉장히 가슴 따뜻함을 느끼게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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