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꽤 오래전에 산 책이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다가 책장 뒤로 뒤로 들어가서 눈에 안 띄었고, 그렇게 신간에 묻혀 보관만 잘하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파쇄란 작품이 나왔고, 파과의 프리퀄을 다룬 내용이라고 해서 아 그럼 빨리 파과를 읽어야겠네?라며 바로 파쇄를 구입하고 파과를 읽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무례한 50대 후반 남자가 서서 졸다가 눈앞에 임산부석에 앉은 만만해 보이는 젊은 여자를 향해 큰소리로 면박을 준다. 그것을 보다 못한 50대 여성이 자리를 양보한다. 사람들의 눈총에도 당연스럽게 자리를 양보당한 남자는 졸릴 것 같지도 않은데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죽여도 싼 인물이라고 생각할 때쯤 수많은 지하철 인파 속에 원래 거기 있었던 인물인 것 같은 평범한 60대 노인이 칼에 독을 묻혀 목표물인 그 남자를 순식간에 제거하고 나간다. 이게 시작이었다. 의뢰된 작업을 시행하는 것을 그들 사이에서는 방역이라고 불렸고, 노인은 방역 업자였다. 

일단 서사가 탄탄했다. 

주인공 이름은 조각, 하지만 과거에는 손톱, 현재는 여사님, 대모님, 그리고 할머니라고 불리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현직 킬러였다. 

그녀에게는 판자촌에서 태어나 15살에 당숙 집에 더부살이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쫓겨나게 되어 자신을 방역 업자로 만든 류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부터 쭉 방역 업자로 살아온 인생은 그녀의 감정만큼이나 무미건조했고, 뇌리에 남는 사건은 없는 듯했으나, 그녀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한 투우라는 남자가 무언가 해결할 일이 남은 듯하게 그녀의 회사에 입사하고 그녀 곁을 맴돌게 된다. 

진짜 재미있었다. 

구병모 작가님의 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글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는 것인데, 거기다가 말수 적은 주인공의 감정선이 눈에 그려진 게 여러 번이었고, 65세의 늙은 킬러의 마음이 오래된 칼날처럼 무뎌지는 순간이 위태위태했지만 결국 결말은 내 걱정을 안심시켰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킬러로서의 마지막이나, 혹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아직은 마지막이 될 수 없다는 걸 암시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남겨져, 내가 마지막 읽어야 할 프리퀄 이외의 외전이 꼭 필요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길복순'이 바로 떠올랐는데, 길복순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파과 역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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