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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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 특히 책 덕후의 책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대외적인 직업은 헌책방 사장님이지만, '이야기 수집가'이자 책을 찾는 사연을 듣고 책을 수배하여 찾아주는 '책 탐정'이 부캐인 분이다. 전작은 책 탐정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헌책방을 하면서 만난 헌책 속에 사연을 유추하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는 본인 덕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단 섬뜩한 책 이야기로 시작한다.
샛노란 표지 위에 초점 없는 눈, 불길한 표정으로 오른손에는 몸이 셋으로 나누어진 여성이 그려진 상자를 품에 둔 마술사가 그려진 책이었다. 이종택 [타인 최면술] 이란 책이었는데 그냥 최면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최면에 걸리게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라고 했다. 

이 책에는 최면으로 상대에게 암시를 거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그 본문 위 여백에 썼다가 빨강 볼펜으로 지운 흔적이 보이는 문장과 책의 사진을 보여줬다.

'김 oo 부장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라는 문구였다.

헌책 속 낙서에 대한 추리는 여기부터 시작한다. 일단 낙서를 보며 글쓴이의 현재 감정과 상태를 짐작해본다. 인생에 김 부장 한 명쯤은 겪어본 경험(?)으로 책 주인의 심정과 계획을 마음껏 추측하는데, 그 방식이 꽤나 재밌었다. 커져가는 추리도 김 부장 암살 시도는 계획에서 끝났기 때문에 글씨 위에 빨강 볼펜으로 글씨를 지우려 한거라고 추측하며, 살벌한 마음이 바로 든 문장이었지만 글쓴이의 화난 마음이 수그러들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메모의 주인공처럼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 있다면 함께 걷는 마음씨 좋은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든든함이 보였던 사연이었다.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독자의 목적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메모도 인상적이었다.
내게도 김부장같은 사람이 있어서 읽자마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갔다. 진지하게 꾹꾹 눌러쓴 글씨가 나도 모르게 글씨를 써놓은 사람의 심정을 상상하게 했고, 그를 괴롭힌 김부장이 미워졌다. 신기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 에피였고, 여기 소개된 책의 주제 역시 흥미가 생겨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했던 이야기였다.

본인은 외출 시 가방 속에 책 한 권 꼭 챙겨야 맘이 편하다고 털어두며 어느 날 책방에 흘러들어오듯 만나게 된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라는 허만하 작가의 책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꽤나 유명한 책이라고 소개했는데, 구판의 노란 표지가 개정판보다 더 좋다는 개인적 소감도 함께 했다. 역시 이번에도 책에 낙서가 있었는데 '2002.5.23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라는 글씨가 책 맨 뒷장에 적혀 있었고, 누가 봐도 책덕후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임펙트있는 한 문장이었다. 책없이 외출하면 불안해지는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생각과 간편하게 들고다니는 얇은 책 혹은 이북의 장단점을 생각해보게한 이야기였다.
거기다 책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함께 했는데, 종이책이나 전자책이나 모두 사랑하는 나로서는 글씨가 쓰여있고 읽을 수만 있다면 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부분이었다. 

헌책방에서는 훼손되거나 책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일반 헌책방이라면 판매할 수 없어서 후회할법하지만 작가님은 가슴이 뛴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특이하게 훼손이 되었을까? 하면서 말이다. 특별한 일상이 담긴 일기나, 책을 선물하면서 마음까지 담아낸 편지 등도 뜻밖의 수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하는 모습에서 나조차도 작가님의 취미를 응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개인적 취향을 얘기하자면 나는 책을 엄청 깨끗하게 읽는 편이다. 접거나 줄을 긋는 것, 혹은 책표지로 가름끈 대신 페이지를 표시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던 사람이었고, 그나마 서평을 쓰며 타협을 본 게 인덱스 정도인 사람이라, 여기에서 나오는 책에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고 메모를 남기는 건 솔직히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완독을 하고 책에 흔적이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는 게 꽤나 멋지다는 걸 느꼈고, 한 번쯤 책 선물할 때 편지를 써보는 것도 꽤나 낭만적인 일일 거라고 생각이 들어 실행해 보고 싶어지게 했다.

다음에는 '나까마'라는 책에 관해서라면 고수에 가까운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고지식하고 보통 성격이 이상하며 온종일 책을 생각하느라 사람 대하는 일에 미숙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고, 전작이나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은둔 고수의 면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이분들의 에피소드가 더 보고 싶어졌다.

이번 책도 작가님 특유의 유머 코드가 책에 잘 녹아있어서 웃다 보니 금방 완독해버렸다. 책은 읽는 것도 재밌지만 남들이 어떻게 책을 사랑하는지 읽는 것은 내 소소한 취미인지라 2권으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책의 주제는 헌책 낙서에 관한 이야기지만 헌책 낙서에 나온 많은 책들의 추천은 덤으로 얻어갈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신간은 온라인 서점 혹은 오프라인 매대에서 충분히 찾아서 읽을 수 있지만, 서점 판매대 혹은 베스트셀러란에서 내려간 좋은 책들을 소개받을 수 있는 방법이 흔치 않을지라 작가님의 책이야기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것 같다.

이 책이 많이 팔려 또 다른 책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라며 책덕후라면 만족할 책 이야기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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