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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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굴곡이라곤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민,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도전한 공무원 시험을 4년째 낙방한 것만 빼면 불운한 일도 별로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남편을 만났고, 자연스레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며, 2년 만에 결혼하고 이듬해에 사내아이 은수를 갖게 되었고, 모든 행복은 그녀의 곁에만 머무는듯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수터에서 송장 나비를 만나고 3살 은수에게 송장 나비에 대해 설명하던 그때, 불운한 기운 하나가 쑥하고 지나간 걸 느끼게 된다. 사전에는 없는 단어 뜻을 가진 송장 나비, 보릿고개 이후 봄에 죽어나간 송장들 곁에 보였던 나비라는 뜻이 좋지 않다는 어릴 적 아버지의 설명이 떠올랐고, 그렇게 약수터에 불길한 기운의 송장 나비가 휘젓고 지나간 이후에 사건이 벌어진다.
산책으로 유모차에 은수를 데리고 약수터에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요의에 아이를 유모차에 홀로 두고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끝으로 은수는 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여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민은 은수의 죽음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다. CCTV도 없어서 범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엄마였던 은수는 그날 무언가가 커튼 뒤에 숨어서 자신을 조롱하는 존재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은수를 해쳤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정신과에서 상담치료와 최면 치료를 받았으나 은수의 집착은 끝날 줄 몰랐고, 집안 한 곳이 증거 아닌 증거품으로 가득 찰 때까지 아이를 잃은 엄마의 행동은 계속되었다가, 장마로 약수터 등산로 입구가 무너지고 흙탕물화 되면서 민은 점점 안정을 찾게 된다.

은수가 죽고 3년째 되던 해, 남편과 민은 크리스마스이브 날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낡은 교회 앞에 바구니에 담긴 사내아이와 고양이를 함께 발견하게 되고, 남편의 적극적 권유로 입양을 하게 된다.
아이를 잃고 선물처럼 나타난 아이지만 입양한 동수란 아이와 아이의 고양이는 그녀를 살갑지 않았고, 갈수록 뭔가 의뭉스러웠으며, 그 둘의 행동에 가라앉았던 민의 의식이 다시 날카롭게 변해간다.
계속 키워오던 반려견 무지와의 사건과, 한밤중 아파트 헌 옷 수거함에서 낯선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자신의 집을 주시하던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어머니의 의문의 사망사건 등이 겹치며 평정심을 찾아가던 민의 한 가닥 남은 이성을 끊어지게 하고 망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민의 시점이 계속적으로 그려진다.
 
우선 민은 망상장애로 보이진 않았다. 확실히 그녀가 의심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걸로 보였고, 자신이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검은 모자 여인은 확실히 그녀 곁에 계속 맴도는 것이 느껴지는듯했다. 하지만 정신병원을 탈출하고 나서 그녀가 보는 것은 확실히 현실인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읽는 동안 내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줬었다.
현실과 망상 사이, 그리고 마지막은 자신이 보았던 검은 모자 여인이 되어가는 민의 모습이 가장 충격적인 결말로 느껴졌던 것 같다. 처음과 끝,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는 이야기란 뜻을 완독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실재와 허구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깨뜨리는 상황극에 한참을 몰입하고 나니 유독 현실감이 느껴지게 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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