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의학의 발전을 이끈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
여성은 입학할 수 없었던 하버드대학교에 최초의 법의학과를 설립하기 위해 자신의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으면서도 나서기 싫어하고 오직 법의학에 초점이 맞춰지길 원했다.
프랜시스 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매사추세츠 연방에서 발생하는 모든 예기치 못한 혹은 수상한 죽음에 관한 수사를 보스턴에 있는 단하나의 현대적이고 집중화된 검시관실에서 맡는 것이었다. 그 시설에는 시체 안치소와 독성학 장비, 병리학적 관찰을 위한 현미경, 엑스레이, 사진 장비가 갖추어져야 했다. - P241
이런 디오라마에 정확한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기란 어렵다. 리는각 모형에 대해 항목별로 회계 장부를 작성하지 않았고, 일부 소재는 두가지 이상의 모형에 쓰였다. 어떤 추산에 따르면, 디오라마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와 노동력의 가치는 3000~6000달러 사이로, 오늘날의 4만~8만 달러에 해당한다.
리의 초기 모형 중 하나는 방 두 개짜리 시골 오두막이다. 거주자는 부자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타르 종이로 이루어진 지붕에는 때운 자국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은 갖추고 있다. 나무난로 근처의 따뜻한 자리에는 안락의자가 있고, 널찍한 철제 틀 침대가 있으며, 방 옆에는 음식 재고가 충분히 차 있는 등유 스토브를 갖춘 단출한 주방이 있다. 라는 정교하고 상세한 디오라마를 만드느라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수천 달러를 쓴 끝에 이 모형에 토치로 불을 붙였다. 프레더릭 스몰의 살인 및 방화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 P285
법의학을 향한 리의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졌고법의학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의학, 법학, 경찰 세 분야가 모두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당시 경찰 수사관은 거의 전문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몰라증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거나 범죄 현장을 훼손하곤 했다.
리는 경찰을 위한 교육 세미나를 열고, 1940년대부터 이들을교육하기 위해 실제 사건 현장을 그대로 재연한 작은 모형 디오라마를 만들었다.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라 불리는 이디오라마는 현재 18개가 남아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법의학 훈련에 활용되고 있다. 1967년 하버드대학교 법의학과는 사라졌지만, 법의학에 대한 리의 열정과 헌신, 그가 남긴 아주 작은 죽음들은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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