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 가족 한국추리문학선 12
양수련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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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구인 광고로부터 촉발된

범죄로 얽힌 가족의 불편한 생존기

길을 걷다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자신이 삶에서 겪은 일들이 제일 놀랍고 기구하다고 할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힌 경험들이라 소설책 한권쯤은 거뜬하게 나올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 [리아 가족]에 나오는 가족 구성원들만큼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제로 이런 가족들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 가족은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평생을 시달려야했다.

이 책 [리아 가족]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3자의 입장이나 정해진 화자의 관점에서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가족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이 실려있다. 사건이나 상황의 객관적 묘사는 탁월하지 않다 하더라도, 특정 상황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생각, 느낌, 감정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매우 섬세한 심리 묘사가 펼쳐진다. 처음에는 추리나 스릴러 장르인 줄 알았는데 읽고 나서 보니까 가족 심리 드라마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리아는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살아온 여성이다. 청소년 시절 한 남자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후 남자들에 대한 혐오를 품은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분노의 칼끝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 문재식 형사를 향하게 된다. 리아는 자신이 당한 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 온 남편을 오해한 나머지 그를 피해 도로로 뛰어들었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 신세를 지는 몸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도우미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한 청년에게서 핏줄만이 느낄 수 있는 강렬한 끌림을 느낀 그녀,, 그랬다, 그 청년은 리아가 범죄를 당한 후 낳았던, 어쩔 수 없이 버려야했던 아들 조 였던 것이다. 부모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채 한 마리 길고양이처럼 살아왔던 조는, 뿌리가 뽑힌 들꽃 마냥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아오다가 엄마가 있다는 걸 알고 무턱대고 리아에게 찾아왔던 것.. 하지만 그는 이미 큰 범죄를 저지른 뒤였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남편 문형사는 아내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면서도 그를 연행할 수 밖에 없는데.....


" 어디서부터 우리의 만남이 잘못되었던 걸까요? 어디서부터 불운은 싹트기 시작한 걸까요?

비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불운은 왜 우리를 덮치고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던 걸까요?"

책은 3대로 이어지는 가족의 불운한 운명을 다룬다.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범죄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또 아이들을 버려야했던 얄궂은 운명의 리아, 리아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을 거부하는 아내를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남편 문형사, 악마같은 생부를 찾아내서 법 대신 심판을 하려했던 딸 란과 운명의 소용돌이에 갇혀서 삶을 내팽개치다시피 살게 되는 조, 그리고 조의 연인이 낳은 아들 단비까지... 모두들 마음 속으로는 행복한 가족을 꿈꾸지만 범죄로 촉발된, 원죄에 가까운 운명을 극복하지 못한 채 어색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독백이나 대화로 이어지는 소설이기에 다소 두서없게 느껴진다. 추리나 스릴러 장르로 보기에는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색다른 시도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어느 누구도 편하게 다리 뻗고 잘 수 없는 가족의 불운한 운명..... 그런 가족 속에 있는 각자의 입장을 직접 들어볼 수 있기에 그들의 세세한 심리묘사와 감정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먹먹함이 밀려온다. 그 누구보다도 기구한 삶을 살아온 리아 가족.. 서로를 밀어내기 바빴던 그들은 진정한 화해와 용서에 다다를 수 있을까?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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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성격 상담소 -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인생이 힘든 당신에게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생각의날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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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과연 성격은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내 성격의 못난 부분에 대해 유전이라며

가족 탓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소극적이고, 항상 불안에 떨고, 겁도 엄청나게 많아서

사회생활을 겨우겨우 하고 있는 나.. 그뿐만 아니라 과거에 정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멀어지고새롭게 만난 사람들과도 일정 거리를 두고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나.. 답답할 뿐이다.요즘 들어 이런 경향이 부쩍 더해져서 고민을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드러난 부분 말고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있는 부분이 많기에

본인의 성격 문제는 본인이 알기 무척이나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일일이 나에 대해 파악해달라고

졸라대기도 어려운 일... 이럴 때 정말 상냥하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는다면

도움이 될 듯한데, 이 책 [아들러 성격 상담소]를 읽고 있자니, 오래 만난 친근한 의사 선생님께 매우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심리학 강의 혹은 조언을 들은 느낌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히트를 친 [미움받지 않을 용기]를 쓴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신작이다.[미움받지 않을 용기]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지? 하며 무릎을 탁 쳤었는데, 나 말고도 남에게 미움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니.. 이 책 [아들러 성격 상담소]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서 열거하면서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콤플렉스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자면 허영심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사실 열등감이 너무 많고 자신감이 없어서

스스로 뛰어나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더더욱 자기가 뛰어나다고 강조하려는 몸짓이라고 한다.


본인의 문제를 약간이나마 알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혼란스러웠던 그동안의 삶의 이유가 조금 밝혀지고 어느 정도 해결책이 주어진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내가 소극적이고 불안에 떨고 겁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었다. 아들러에 따르면 이런 성격은 '방어형'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적의가 있는 고립'에 처한다고 한다. 즉, 상대가 나를 공격하기 전에 미리 차단을 해버리는 유형이고, 이런 사람들은 남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고립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이런 '방어형'의 사람들에 대한 아들러의 분석을 열거해 보자면,

- 대인관계에서 도망치기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 불안은 과제로부터 도망치려는 마음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 변화 앞에서 불안한 이유는 과제와 적극적으로 마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밖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므로 고립을 택하는 불안형도 있다.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은 무조건 좋고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었다면 신뢰가 덜 갔을 텐데, 이 책은 쾌활하고 잘 웃는 사람도 나름의 단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웃음의 무의식에는 타인의 불행에 고소해하는 공격적인 면도 있다고 한다) 기분파, 비관적인 성격, 화를 잘 내는 사람, 항상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 등등등 다양한 분석이 나와 있고 지나치게 전문적인 용어가 없이 쓰여진 편이라 쉽게 읽히는 책이다.

가끔 꿈에서 어딘가에서 뛰어내리거나 무언가를 피해 도망 다니는 꿈을 꿨었는데

내 무의식이 이렇게 내 손과 발을 묶고 입을 막아버려서 대인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냥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특정 성격을 선택하는 것도 나의 몫,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다.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 [아들러의 성격 상담소]를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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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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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인생을 이야기라고 한다면 주인공 파이 파텔의 인생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 이야기]에서는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향하던 배를 타고 있던 중, 배가 난파를 당해 겨우 살아남는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파이 이야기]는 그가 인도에 머물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파이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동물원에서 다양한 동물을 보며 자랐고 그들의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게 된다. 매우 영적인 꼬마 파이가 여러 동물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도 어릴 적에 동물원에 가면 일종의 환희? 혹은 감격? 을 느끼곤 했으니까.

책이 본격적인 이야기, 즉 배가 난파를 당하고 파이가 리처드 파커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겨우 살아남는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라는 것이다. 매우 영적인 소년 파이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두루두루 탐색을 하다가 결국 가톨릭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함께 믿게 된다. 세속적인 다른 가족들은 파이의 그런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종교에 대한 파이의 열정은 대단하다. 한 예로, 파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 (위대하고 군림하고 불멸하는)와 예수의 이미지 (박해받고 굴욕당하고 결국 죽는)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신부님과 집요한 토론 배틀을 벌이다가 문득 깨달음과 믿음을 함께 얻는다. 논리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과 종교라는 부분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이었다.

신과 종교에 대한 부분이 다소 많지 않은가?라고 어리둥절할 때쯤 본격적인 파이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70년대 당시 인도의 집권당이 결국 독재를 할 것이고 나라가 불안해질 거라는 예감을 느낀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다. 배에는 가족들뿐 아니라 미국의 동물원에 팔려갈 예정이던 동물들까지 함께였다. 그런데 가던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배가 요동을 치게 되고 한 선원에 의해 바다로 내던져진 파이는 다행히 구명보트 위에 안착하게 되지만 결국 배가 가라앉으면서 파이 외 다른 가족들은 희생을 당하게 된다. 구명보트 위에는 파이뿐 아니라 거대한 몸집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수컷 하이에나, 그리고 다리를 심하게 다친 얼룩말과 기진 맥진한 암컷 오랑 우탄도 함께 머무르게 된다. 망망 대해에 떨어진 파이,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운명과의 사투를 벌이는 파이의 모험은 이제 시작된다. 파이의 치열한 내적 갈등, 즉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조금 지루하고 건조해졌을 지도 모른다. 홀로 바다를 떠다니며 구조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소년의 반복되는 일상을 상상해 보자. 하지만 리처드 파커라는 존재와 대치하고 공존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기에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파이는 운명과의 사투를 벌인다. 언제 호랑이가 덮칠지 모르고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모른다. 햇빛은 쨍쨍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러나 이렇게 암울한 상황이 연속됨에도 불구하고 파이는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친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 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나는 죽지 않아. 아멘. ˝

겉으로 보기엔 호랑이와 함께 운명의 사투를 벌이는 한 소년의 모험 이야기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조금 더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의 개입이 항상 있다는 것?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아니면 우연처럼 발생한 일들이 마치 짜 맞춘 것처럼 필연적 운명이라는 퍼즐을 완성시킨다는 것.. 등등. 한 편의 서정시 같은 파이 이야기,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독자들은 파이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의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살아남아 파이 곁에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에게 위험한 존재였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삶을 갈구하게 해준 고마운 인연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고!"

사실 책을 끝까지 읽게 되면 독자들은 해석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론이 갑작스레 등장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큰 물음표가 찍힐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다소 과장될 수 있고 스토리텔링도 예술의 한 분야라고 봤을 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각색되건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한 치 거짓 없는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아름답게 포장된 이야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여긴 영적인 소년 파이를 떠올려 봤을 때 날 것 그대로의 진실보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그 나름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파이와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책을 덮었다.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주었던 판타지 + 모험 이야기 [파이 이야기]를 꼭 소장해야 할 영미 소설로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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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의 시대 우리 집 - 레트로의 기원
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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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인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가끔 눈에 띄는 단독주택이나 한옥을 발견하곤 한다. 사는 게 있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집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거란 생각에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언제 지어졌고 어떤 양식일까? 문득 궁금해진다고 할까. 집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겐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고된 하루 끝에 몸을 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도 한 것. 각자의 개성에 따라 집은 여러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터, 특정 시기에 지어진 집들은 더욱더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과거의 문화유산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저자 최예선씨는 직접 답사하고 리서치하며 실제로 살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건축 유산을 밀도 있게 탐구한다. 도서출판 모요사에서 갓 출간된 그녀의 책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은 격동과 변화의 시기였던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 우리네 집이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옛것에서 새것으로 넘어오기까지 과도기였던 이 시기가 바로 레트로의 기원이라 말하는 그녀, 저자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처럼 우리를 그 현장으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과도기 시대 집의 정원 풍경은 어떠하였을까? 아파트 속에서도 화분을 여러 개 가꾸며 푸르름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우리. 당시에도 꽃과 나무를 사랑하던 문인들은 정원 가꾸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특히 파초를 좋아했던 문필가 이태준이 머물던 성북동 집의 정원인 수연산방에서 자라나던, 흐드러지는 파초들은 이태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특히 서양 문화에 탐닉했던 작가 이효석이 가꾼 정원은 '잘 익은 살냄새'가 나고 '비밀을 가진 몸 냄새'를 풍길 만큼 실재하는 감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 즉 삶과 영감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꽃들이 하늘거리는 수연산방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자신만의 박물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물과 글자와 옛이야기와 지나간 시절의 매혹적인 정조를 모두 담아두던 '호기심의 방(분더카머)'이다. 파초 아래 의자를 놓고 앉아 남국의 정취를 몽상하는 비일상의 공간이자, 탄생과 성장과 소멸을 보며 글을 쓰게 하는 영감의 장소다"

가끔 도시의 변두리에 지어진 작은 성당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때가 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이지만 왠지 우리 전통 가옥인 한옥을 떠오르게 만드는 건물 라인에 눈길이 가곤 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1930년대쯤 지어진 대다수의 성당 건물은 서양식 건축과 우리 전통 구조가 혼합되어 지어진 것이라 한다. 어쩐지 벽돌 건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더라니... 특히 벽돌 건축의 걸작이 명동 성당이라 손꼽는 저자.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건축물인 명동 성당은 20세기 전에 완성되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장엄함과 숭고함의 산물이라고 한다.

"벽돌은 글과 분명 닮은 점이 있다. 집착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벽돌은 흙과 불에 대한 집착이며, 벽돌집은 집착이 완성한 건축이다. 흙과 불이 빚어낸 빨강의 산물. 벽돌은 뼈대가 되는 동시에 외피도 된다. 벽돌을 쌓아 올리며 집은 힘을 갖고 무너지지도 불타지도 않는 갑옷을 입는다. 안과 밖이 같은 질감, 같은 색깔이다"


우리 전통 가옥의 구조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고 새로운 공간의 창출로 이끌었던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일제 강점기의 예술가였던 김유방이었다. 그는 근대기 주택 개조론의 첫 문을 연 사람인데, "과연 우리의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엄청난 부호였던 그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몸을 담그다가 마침내 건축이라는 예술 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당시 여성들의 노동 공간이었던 부엌과 제사를 지냈던 대청을 언급하며 해방되지 못한 관습과 변화해야 할 마땅한 제도라고 언급하는 김유방. 그는 서구 부르주아 저택이 보여주는 수십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공간에 집중하며 집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못하면 부부와 부모 자식도 별거해야 한다는 극단적 선언을 하기도 한다.

"삶이 달라져야 집이 달라지며, 집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 (...)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열망이 끓어올랐던 김찬영(김유방의 본명)이라면 당연히 건축이라는 분야에 푹 빠져들 만했다. 모던 시대가 담보하는 신 주택과 신가 정의 풍경, 따듯하고 단란한 근대 가족이 표상하는 풍경을 그가 열렬히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에 지배를 당했던 굴욕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모던 시대의 삶과 공간에 대한 그동안의 분석이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30년 당시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물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창조성과 감각에 의해 새로운 건축 양삭이 도입되고 그에 따라 우리 삶의 방식도 180도로 바뀌었던 시대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변하고 집의 구조와 집을 채우는 것이 달라지듯, 집이야말로 삶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저자 최예선.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전통과 모던이 충돌하는 집과 그 속의 여러 가지 것들을 보여주면서 모던 시대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모던 시대 집과 소유주들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아련한 향수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미래의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상당한 자료와 사진 등을 통해서 레트로의 기원이 된 모던 시대의 집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는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을 꼭 읽어봐야 할 인문학 서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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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시체를 보는 사나이 1부 : 더 비기닝 세트 - 전2권
공한K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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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

옥상에서 떨어진 듯한 여자,

경찰서 화장실에서 목을 맨 경찰관.....

이 시체가 모두 나에게만 보인다고?

설정이 대단히 신선하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시체 환각을 경험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아닌 밤중에 시체를 경험하는 남자의 인생은 과연 어떨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듯하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닷없이 닥쳐오는 시체의 환각에 심장이 벌렁거리고 매일 두려울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예전에 한 대학 후배가 웹 소설의 재미에 푹 빠져 거의 밤을 지새운다고 하더니, 이렇게 환상적이고 독특한 이야기들 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구나 싶다.

독자 별점 9.92점에 네이버 웹 소설 베스트 리그 TOP 5에 속하는 영광을 누린 소설 [시체를 보는 사나이]는 독자의 요청 쇄도로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공한 k 작가는 10년을 교육 사업 마케터로 일하면서 시인을 꿈꾸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웹 소설을 쓰게 되었다니, 남다른 상상력과 추진력이 부럽기만 하다. 책 소개 글에 나와 있는 것처럼, 평소에도 "상관없어, 상상하면 다 내 거니까!"를 외치며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체를 보는 사나이]의 주인공 남시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냥 무심코 길을 걷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평범한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일종의 환각이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이 진짜 시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오히려 허위 신고 죄로 경찰서에 끌려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끌려간 경찰서의 화장실에서도 목을 매단 채 죽어있는 한 경찰관의 시체를 보게 되는데,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늘을 날아다니고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하는 히어로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히어로가 등장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는 식으로 미리 그들의 죽음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히어로 나타났다! 평범한 공시생에 불과했던 주인공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 이유는 뭘까? 세상 모든 히어로들이 그렇듯, 그도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줄 운명을 타고난 게 아닐까? 그런데 알고 보니 주인공 남시보의 할아버지도 시체 환각을 경험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남씨 집안의 초능력을 특별한 주인공이 물려받은 듯하다. 그러나 재능이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일 수도 있는 법, 시체의 환각을 보기 시작한 뒤부터 남시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경찰서에 다녀온 후 또다시 시체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 남시보. 이번에는 공무원 학원 옥상에서 어떤 여성이 뛰어내려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던 여성을 사전에 구해내게 되고, 그녀가 허무하게 살해된 아버지 사건 때문에 절망하여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름이 소담이라는 그 여성을 도와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와중에, 남시보는 자신이 거리에서 목격한, 피 흘리며 죽어가던 파란 셔츠 사내의 죽음과 택시 기사였던 소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경찰서 화장실에서 목격한 경찰관의 죽음이 묘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경찰서에서 쫓고 있는 주요 용의자가 바로 자신에게 잘해줬던 유일한 형사, 민우직 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경찰과 형사들 사이에선 묘한 분위기가 맴돌고, 민우직 형사가 범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모함에 의해 이 구렁텅이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시보는 소담과 민형사의 도움을 얻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애쓰게 되는데......

다른 사람의 시체를 미리 볼 수 있다면? 그것도 모자라 자기 자신이 죽은 모습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사는게 너무나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만약 나라면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릴 것 같은데, 소설 속 주인공 남시보는 대견하게도 이 능력을 이용하여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비극에서 구해낸다. 비전형적으로 보이지만 전형적인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재는 상당히 신선하고 독특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거의 대화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약간은 느슨한 감이 없지 않다. 짧게 요약해도 되는 장면은 묘사나 서술 방식을 통해서 빨리 지나갔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추리와 스릴러 그리고 환상이 적절하게 혼합된 소설 [시체를 보는 사나이]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장르 소설로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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