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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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인생을 이야기라고 한다면 주인공 파이 파텔의 인생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 이야기]에서는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향하던 배를 타고 있던 중, 배가 난파를 당해 겨우 살아남는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파이 이야기]는 그가 인도에 머물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파이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동물원에서 다양한 동물을 보며 자랐고 그들의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게 된다. 매우 영적인 꼬마 파이가 여러 동물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도 어릴 적에 동물원에 가면 일종의 환희? 혹은 감격? 을 느끼곤 했으니까.

책이 본격적인 이야기, 즉 배가 난파를 당하고 파이가 리처드 파커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겨우 살아남는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라는 것이다. 매우 영적인 소년 파이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두루두루 탐색을 하다가 결국 가톨릭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함께 믿게 된다. 세속적인 다른 가족들은 파이의 그런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종교에 대한 파이의 열정은 대단하다. 한 예로, 파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 (위대하고 군림하고 불멸하는)와 예수의 이미지 (박해받고 굴욕당하고 결국 죽는)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신부님과 집요한 토론 배틀을 벌이다가 문득 깨달음과 믿음을 함께 얻는다. 논리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과 종교라는 부분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이었다.

신과 종교에 대한 부분이 다소 많지 않은가?라고 어리둥절할 때쯤 본격적인 파이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70년대 당시 인도의 집권당이 결국 독재를 할 것이고 나라가 불안해질 거라는 예감을 느낀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다. 배에는 가족들뿐 아니라 미국의 동물원에 팔려갈 예정이던 동물들까지 함께였다. 그런데 가던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배가 요동을 치게 되고 한 선원에 의해 바다로 내던져진 파이는 다행히 구명보트 위에 안착하게 되지만 결국 배가 가라앉으면서 파이 외 다른 가족들은 희생을 당하게 된다. 구명보트 위에는 파이뿐 아니라 거대한 몸집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수컷 하이에나, 그리고 다리를 심하게 다친 얼룩말과 기진 맥진한 암컷 오랑 우탄도 함께 머무르게 된다. 망망 대해에 떨어진 파이,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운명과의 사투를 벌이는 파이의 모험은 이제 시작된다. 파이의 치열한 내적 갈등, 즉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조금 지루하고 건조해졌을 지도 모른다. 홀로 바다를 떠다니며 구조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소년의 반복되는 일상을 상상해 보자. 하지만 리처드 파커라는 존재와 대치하고 공존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기에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파이는 운명과의 사투를 벌인다. 언제 호랑이가 덮칠지 모르고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모른다. 햇빛은 쨍쨍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러나 이렇게 암울한 상황이 연속됨에도 불구하고 파이는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친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 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나는 죽지 않아. 아멘. ˝

겉으로 보기엔 호랑이와 함께 운명의 사투를 벌이는 한 소년의 모험 이야기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조금 더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의 개입이 항상 있다는 것?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아니면 우연처럼 발생한 일들이 마치 짜 맞춘 것처럼 필연적 운명이라는 퍼즐을 완성시킨다는 것.. 등등. 한 편의 서정시 같은 파이 이야기,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독자들은 파이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의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살아남아 파이 곁에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에게 위험한 존재였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삶을 갈구하게 해준 고마운 인연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고!"

사실 책을 끝까지 읽게 되면 독자들은 해석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론이 갑작스레 등장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큰 물음표가 찍힐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다소 과장될 수 있고 스토리텔링도 예술의 한 분야라고 봤을 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각색되건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한 치 거짓 없는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아름답게 포장된 이야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여긴 영적인 소년 파이를 떠올려 봤을 때 날 것 그대로의 진실보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그 나름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파이와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책을 덮었다.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주었던 판타지 + 모험 이야기 [파이 이야기]를 꼭 소장해야 할 영미 소설로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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