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구름은 서쪽으로 흐르니
김형원 지음 / 마음연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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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오빠의 복수를 위해 장악원으로 향하다


<밤구름은 서쪽으로 흐르니>는 사극 소설이지만 전혀 고루하지 않다.

오히려 잘 만든 사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비극적인 사랑과 권력 다툼, 음모와 복수를 다루지만

그 안에는 아름답고도 애절한 정서가 흐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주인공들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장면마다

마치 귓가에 음악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장악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와 섬세한 묘사 덕분에 음악 소설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궁에 소속된 가야금 연주자 윤호가 한 권력자의 음모에 휘말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된다. 오빠를 잃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여동생 설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천재적인 가야금

재능을 지닌 설은 남장을 한 채 장악원에 들어가고, 오빠의 억울함을 갚겠다는

복수심을 품은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진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연인밖에 모르던

어질고 선량한 인물이 한 권력자의 탐욕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특히 윤호의 죽음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인지 설이 장악원에 입성하게 되는 것과 과연 복수를

할 수 있을지에 내내 긴장하며 읽었다.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인연이다.

설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병판 유상흔과 임금 정조까지

이어지는 관계는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사연들이 드러나면서 독자들의

몰입을 부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병판댁 잔치에서 설이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부분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분노와 결의를 음악으로

쏟아내는 장면은 상당히 드라마틱했고, 마치 극적인 영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성있는 캐릭터도 매력 만점이었다. 특히 만덕이라는 캐릭터는

음악의 천재이면서도 구수하고 코믹하며 인간미까지 넘쳐서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 내내 감초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성인 남자 캐릭터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이야....


물론 남자 주인공 승하와 준을 뺴놓을 수 없다.

특히 승하의 경우... 철저한 신분제였던 조선 시대에

서자로 태어나서 제대로 능력 발휘를 못하는 그 억울함과 슬픔

분노 이런 감정들이 잘 표현된다. 그리고 늘 설을 지키기 위해

예의주시하는 모습.. 너무 멋졌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이야기가 단순 복수극에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 방향은 그쪽으로 흐르긴 하지만 정조와 사도세자를

둘러싼 역사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이야기의 깊이는

깊어지고 개인의 복수를 넘어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제시한다.


<밤구름은 서쪽으로 흐르니>는 아름다운 문장과 음악적 정서,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사랑과 복수를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애절한 로맨스와 복수 서사, 그리고 한 편의 잘 만든 사극 드라마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소설인

<밤구름은 서쪽으로 흐르니>를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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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세계
모리타 아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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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동시에 슬픔을 가득 안고 있는 소설이라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책은 슬픔보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쪽이다. 책 <네가 사라진 세계>는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며 

상실감을 견디는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아야카는 학창 시절을 함께 수놓았던

가장 친했던 친구 하루나를 병으로 떠나보낸다.

이후 하루나의 남자 친구였던 하야사카를 좋아

했지만 그도 또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마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상실감과 공허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들을 잊지 못해서 회색빛 하루를 살아가던

아야카는 우연히 ‘그리프 카페 오노데라’라는

곳을 알게 되고 이곳이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여서 상처를 치유받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에서 마치

운명처럼 아내를 잃은 가시와기 료를 만나게

되는데....



인생을 채 다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떠나버린

하루나와 하야사카의 이야기는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이 책은 ‘남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사랑했고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던 이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외로움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상처 속에서 절망하고

고독에 갇힌 채 살아갈 수는 없다. 카페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상처는 다양했다. 가족과의 사별부터

반려동물의 죽음 그리고 연인과의 이별까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픔을 고백한 후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야카도 친구들을 잃은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미묘하게 하야사카의 차분함을 닮은 가시와기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듯한 그의 모습과 외조부모가

현재 딸인 린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는 가시와기.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는 마음의 장벽 앞에서

가시와기와 아야카 둘 다 머뭇거리게 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방식으로

타인을 배려한다. 학창 시절, 아야카는 무신경한

남학생 때문에 하루나가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 전전긍긍

했고 가시와기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야카가

힘들어할까 봐 감히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배려의 주인공은 바로

가시와기의 전 부인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편지를 남겼고 앞으로 혼자가 될 남편이 만날

사람을 위한 편지도 남기게 된다. 아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을 느껴 주춤했던 아야카는 그녀가

남긴 편지를 읽고는 깊은 감동을 받는데....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간을 함께 끌어안는 일이다.”



현실은 소설처럼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아야카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가시와기의 마음엔 평생 전 부인을

향한 그리움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면서도 다시 웃을 수 있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슬픔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어떻게

살아나갈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던 카페 사장이자

상담가인 오노데라 씨의 말이 크게 마음에 남았던 소설

<네가 사라진 세계>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을 이 소설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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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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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위화의 에세이 모음집 <산곡미풍>을

읽었다. 2024년 2월 중국 하이난의 한 아파트에서 그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바람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 준 셈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다.

형과 위화 본인은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던 것 같다.

병원 수술실에서 쓰던 노트를 훔쳐서 땅에 파묻어버리고

사람들이 모이던 초가집을 다 태워버려서 부모님을 곤란하게 만든 형제들.



그런데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면이 있다. 비록 그 당시에 부모님들은 힘드셨고 스트레스를

받으셨겠으나 독자의 마음은 추억의 아련함으로 가득하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부분은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던 소년 위화의 이야기. 바다의 색에 이끌려서

멀리까지 헤엄쳐버린 고등학생 위화. 해류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후

바다에서 하늘을 감상한다.



이때 그가 바라본 하늘은 매우 아름답다. 섬세하게 조각된 듯한

구름들과 은은하게 빛나는 빛무리에 둘러싸인 달. 잠시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가 탈출한 그의 눈에 포착된 자연의 아름다움은 실로

놀라웠고 그는 경이로움에 가득 찬다.



그의 에세이에서 유독 ‘죽음’을 관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 근처

사택으로 이사한 후 소년 위화는 자신의 방 맞은편에 영안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밤낮으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지 않을까? 죽음을 상상하고 죽음에

대한 사색을 하기 시작한 것은. 작가는 어린 시절 우물에 빠졌던

악몽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넓은 곳이 아니라

좁은 곳을 골랐다' '죽음에 대한 상상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늘 우리 곁을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서늘한 감상이 느껴졌다.



위대한 작가의 글이긴 하나 뭔가 대단한 성공담이나 교훈적인

내용이 있는 글이 아니라, 부모님의 칭찬에 호박씨를 열심히 볶은 것이라던가

너무 긴장하고 떨려서 발표를 망쳤던 이야기 그리고 게걸스러운 한

어린이의 캐러멜을 향한 탐심 등등 우리 못지않은 평범한 일상 그려내는

책이다.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은 대부분 뚜렷하지 않아서,

우리는 받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위화는 인생이란 마치 산들바람 같다고 말을 하는 듯하다.

그때 당시는 잘 모르지만 지나가고 나면 시원했음을 알 듯이 말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 부모와 보낸 시간이나 실패 실수 등도

훗날 돌아보면 삶이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듯한 저자.



어른이 되면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서

그저 그렇게 삶의 의미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되지만

가끔 어떤 냄새나 소리 혹은 풍경을 계기로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은 또 다른 삶의 에너지를 준다.



위화 작가도 그랬던 게 아닐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어떤 묻혀있던 기억의 흔적을 찾아내어서

호기심 많고 식탐 많고 실수도 잦았던 어린 위화를 현실로

다시 불러내어 우리의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스쳐 지나간 기억들이라고 말하는 듯한 책 <산곡미풍>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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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웨딩
연소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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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는 시대라고 했건만

세상은 여전히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생에 있어서 (거의) 1번 뿐인 결혼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평생 잊지 못할 화려하고

인상적인 결혼식을 꿈꾸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 <노 웨딩>의 주인공 윤아는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결혼을 준비한다.



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K장녀의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윤아. 그녀는 상당히 야무지고 인생에 있어서

주도적이다. 물론 여러 사정이 있긴 하나,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것부터가

남다른 그녀.



그러나 똑똑한 윤아도 엄마 앞에서는 무너진다.

아빠의 폭력은 견뎠으나 바람은 참지 못해서 결국 이혼을

선택한 엄마. 혼자 살고 있는 엄마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윤아에게 많이 의지를 해왔다.



그래서인지 아직 20대의 젊은 윤아의 결혼이라는

선택이 탐탁지 않은 엄마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윤아의 이른 결혼을 방해하고 나서는데...



어릴 적부터 고생한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는 아직 20대의 윤아가 매우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뿐

‘결혼’이라는 것이 품고 있는 그 의미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한 그녀.



“해인과의 연애를 통해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타인을 통해 나의 유년을 보상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 (...) 나는 마고처럼 내 안의 빈틈을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라지도 않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기대하지 않는다.”



사랑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 나름

순조로웠던 두 사람의 결합은 ‘결혼’이라는 어떤

제도에 들어서게 되면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문화 차이

라던가 절차에 대한 다른 사고방식 등등 일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그 뿐 아니라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은 나와 상대의

무의식이 부딪히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도

좀 복잡하다. 가난과 부모님의 이혼 등

다소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윤아와 그녀에 비해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해인의 유년기는 당연히 달랐을 것이고

그런 무의식적인 차이는 결혼 생활 내내 그들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나는 마치 주인공

윤아가 내 여동생이나 되는 것처럼 남자친구인 해인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어쩌면 안정적이라서 더 보수적일 수 있을

가족과 친척의 눈초리를 모두 감내하고 내 여자의

선택을 지지하는 그 모습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윤아의 결혼에 대해 일단 반대를

하고 보는 엄마의 마음이나 본 가족의 눈치도 봐야하고

윤아와 장모님이 서로 으르렁대는 것을 직관하는

해인의 마음...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올지 궁금했다.



결혼식은 어쩌면 모두에게 커플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인사일지도 모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책 속 윤아의 선택을 믿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와 해인 둘 다 ‘결혼의 의미’

그리고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무게’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는게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윤아와 해인의 이야기 <노 웨딩>

모두에게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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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지음 / 일레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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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낯이 조금 뜨거운데... 하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 책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가족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에 외로움과 쓸쓸함을 일으키더니

조금은 치사한 연애의 현장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책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저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이나

느낌 등을 아주 잘 묘사한다. 그런 표현들이

아주 맛깔나고 핵심을 관통하기에 나는 저자에게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65쪽에 나오는 이런 것들,



“해맑고 순수한 사람들은 때로 그 선의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늪에서 허우적댈 때면 그들은 순백의

위로를 건넸다. 나는 잔뜩 더럽혀진 내 손이 그 위로에

때라도 묻힐까 노심초사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서 친한 친구에게

날것 그대로의 분노나 슬픔 등을 털어놨다가

상대방의 얕은 위로나 훈계에 흠칫 놀랐던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91쪽 “어떤 여자들의 죽음”에서는 외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 저자가 ‘모녀 관계’의

이상함에 대해 반추하는 장면이 있다. 평생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외할머니가 사실은 엄마에게는

매우 모진 어미였다는 놀라운 사실....



겉으로 보면 아주 평화롭고 서로 매우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역기능적인

면이 조금씩 있다는 점... 역시 저자의 표현대로

한의 대물림이라는 게 있는가? 생각도 했다.



남자와 연애를 다룬 부분에서는 저자가

솔직하다 못해서 발칙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젊었을 당시, 남자 때문에, 혹은 잘 풀리지 않는

연애 때문에 패배감에 젖어 살던 그때의

기분이 확 되살아났다.



예를 들자면, 172쪽 “침대에서 내가 묻지도

않은 전 여자친구 얘기를 털어놓던 남자들아,

그때 너희들의 뺨 싸대기를 세게 올려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단다.” 같은 문장들



이걸 읽고 나도 모르게 옆에 있지도 않는,

이 세상에 지금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는

전 남자 친구의 뻔뻔한 얼굴을 올려붙이는

상상을 아주 잠시 했다. 상당히 시원하고

재치 있는 이런 표현들이 이 책에는 아주 많다.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나서

바로 블로그로 뛰어가 그때 쓴 서평을 찾아봤다.

아뿔싸, 책에 제대로 몰입을 못하고 그냥 마구 휘갈긴

글이 보였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때는 왜 몰랐지?



당시에는 추리소설에 빠져 살던 시기라 이 책의

진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저자는 상당히 재치 있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일반인들이 잘 묘사를 못하는 부분도

포인트를 짚어낸다. 정말 재미있고 공감이 많이 갔던

책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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