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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평점 :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위화의 에세이 모음집 <산곡미풍>을
읽었다. 2024년 2월 중국 하이난의 한 아파트에서 그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바람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 준 셈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다.
형과 위화 본인은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던 것 같다.
병원 수술실에서 쓰던 노트를 훔쳐서 땅에 파묻어버리고
사람들이 모이던 초가집을 다 태워버려서 부모님을 곤란하게 만든 형제들.
그런데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면이 있다. 비록 그 당시에 부모님들은 힘드셨고 스트레스를
받으셨겠으나 독자의 마음은 추억의 아련함으로 가득하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부분은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던 소년 위화의 이야기. 바다의 색에 이끌려서
멀리까지 헤엄쳐버린 고등학생 위화. 해류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후
바다에서 하늘을 감상한다.
이때 그가 바라본 하늘은 매우 아름답다. 섬세하게 조각된 듯한
구름들과 은은하게 빛나는 빛무리에 둘러싸인 달. 잠시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가 탈출한 그의 눈에 포착된 자연의 아름다움은 실로
놀라웠고 그는 경이로움에 가득 찬다.
그의 에세이에서 유독 ‘죽음’을 관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 근처
사택으로 이사한 후 소년 위화는 자신의 방 맞은편에 영안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밤낮으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지 않을까? 죽음을 상상하고 죽음에
대한 사색을 하기 시작한 것은. 작가는 어린 시절 우물에 빠졌던
악몽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넓은 곳이 아니라
좁은 곳을 골랐다' '죽음에 대한 상상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늘 우리 곁을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서늘한 감상이 느껴졌다.
위대한 작가의 글이긴 하나 뭔가 대단한 성공담이나 교훈적인
내용이 있는 글이 아니라, 부모님의 칭찬에 호박씨를 열심히 볶은 것이라던가
너무 긴장하고 떨려서 발표를 망쳤던 이야기 그리고 게걸스러운 한
어린이의 캐러멜을 향한 탐심 등등 우리 못지않은 평범한 일상 그려내는
책이다.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은 대부분 뚜렷하지 않아서,
우리는 받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위화는 인생이란 마치 산들바람 같다고 말을 하는 듯하다.
그때 당시는 잘 모르지만 지나가고 나면 시원했음을 알 듯이 말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 부모와 보낸 시간이나 실패 실수 등도
훗날 돌아보면 삶이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듯한 저자.
어른이 되면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서
그저 그렇게 삶의 의미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되지만
가끔 어떤 냄새나 소리 혹은 풍경을 계기로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은 또 다른 삶의 에너지를 준다.
위화 작가도 그랬던 게 아닐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어떤 묻혀있던 기억의 흔적을 찾아내어서
호기심 많고 식탐 많고 실수도 잦았던 어린 위화를 현실로
다시 불러내어 우리의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스쳐 지나간 기억들이라고 말하는 듯한 책 <산곡미풍>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