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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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을 잘하고 직장동료들과 컵을 공유하지 않는 여자, 가슴 무게를 저울에 재어보고 정확히 몇 킬로 때문에 허리가 아픈지 의사에게 호소하는 여자 엘리너 올리펀트. 영국인스러운 냉소적인 유머를 가지고 있어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킬킬거리며 웃게 만드는 그녀. 특히 저울로 가슴을 재던 장면이나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던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박장대소를 이끌어낸다.

" 의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목을 큼큼 풀었다. 어떻게 그걸....."

" 주방 저울로요. 그냥 그 위에.... 한쪽을 올려놨어요. 양쪽 다 잰 건 아니고, 무게가 대략 같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

" 그녀가 천 끝을 잡아 빠르고 과장된 동작으로 쫙 떼어내자,

깔끔하고 눈이 확 떠지는 아픔이 뒤따랐다. "

" 모리투리 테 살루탄트 ( 곧 죽을 자들이 당신께 경배드립니다 라는 뜻의 라틴어 )

 ,, 내가 조그맣게 읊조렸다."

자꾸 괜찮다 괜찮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길래 꼼꼼하게 읽어보니 그녀는 일상을 버텨내기 위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독자의 눈에는 그녀가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 엘리너 올리펀트 넌 아주아주 괜찮은 사람이고 이 정도면 멋진 인생을 살고 있어."

음... 그런데 사실 괜찮지 않은 모습이 보여서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엘리너 올리펀트.. 일단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을 왕따시키는게 아니라 자신이 그들을 왕따시킨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일종의 수감시설 ( 감옥인가? ) 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전화해서는 그녀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

" 너는 내 안에서 자랐어. 네 치아, 네 혀, 네 자궁경관, 그 전부가 내 세포, 내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거야.

 

 내가 네 안에 어떤 작고 놀라운 걸 자라게 남겨뒀는지,

 

 어떤 코드를 작동하게 해뒀는지 누가 알겠어? 유방암? 알츠하이머? 두고 보자고."

그녀는 왜 생겼을지 궁금한 흉터를 얼굴에 가지고 있다. 왠지 엄마와의 과거에서 생긴 것 같은데 그것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꼭 한번씩은 쳐다보고 간다.. 엘리너 올리펀트에게 물어보고 싶다. 괜찮지 않은 거 아냐??

엘리너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다른 매우 독특한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들과 일부러 섞이지 않으려는 건지 혹은 섞이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이 여자 감정이 너무 메마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 속 어떤 부분이 고장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사무실에서 아무하고도 친하지 않고 그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그녀가 사무실 밖에서 레이먼드라는 직원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레이먼드를 묘사하는 그녀의 시각이 음... 확실히 레이먼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 어린이들이나 작은 곰인형만 입는 더플코트를 차려입은 레이먼드

- 잇몸질환을 일으키고 피부를 주름짓게 만드는 흡연 습관이 있는 레이먼드

레이먼드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횡단보도에 서 있던 그들 앞에서 한 노인분이 갑자기 쓰러진다. 레이먼드가 급하게 움직이면서 노인의 안색을 살피고 구급차를 부르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엘리너는 마음 속에서 감정변화가 꿈틀꿈틀대는 것을 느낀다. 그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쓰러진 이 노인에 대한 염려.. 인간에 대한 동정심... 엘리너는 레이먼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 놀랍게도 어떤 감정을 느꼈는데, 이 낯선 노인에 관한 염려와 걱정이었다 ."

끊임없이 말장난을 하는 그녀, 자기 뒤에서 험담을 하는 직장 동료들을 무시하지만 몰래 상처받는 그녀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대로 만나보지도 않은 연예인과 피자를 함께 나누는 공상을 하는 그녀.... 엉뚱발랄하고 귀엽지만 너무 외로운 엘리너 올리펀트. 티저북뿐만 아니라 원본으로도 그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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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쐬고 오면 괜찮아질 거야 -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우울, 불안, 공황 이야기
제시카 버크하트 외 지음, 임소연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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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당신 잘못으로 생긴 일도 아니며

이 터널 끝에도 빛은 있다

 

이 책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마음의 질병 - 우울, 불안, 공황 -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31의 입을 빌어서 표현되고 있어서 심리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그냥 여러편의 단편 문학이 모인 소설집처럼 느껴진다. 몸에 발생하는 질병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병도 예방과 치료 그리고 관리만 잘하면 극복해낼 수 있는,, 그냥 질병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을 마치 외계인처럼 취급하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수치심을 느낄 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들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일 혹은 가족과 친구의 일을 고백한다.

 

나는 대학시절 약간의 불안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 지금 뒤돌아보면. 사람들을 만나는게 편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 조차 어려웠으니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땐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겉으론 밝고 활발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엄청 많이 했고 일부러 사람들을 더 만났으며 남들보다 더 크게 웃었다. 속으로는 내내 울면서.

 

신시아 핸드라는 작가가 쓴 [ 행복한 얼굴을 한 가면 ] 편에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계속 자살 얘기를 했던 친구와 결국 자기 손으로 생을 마감해버린 남동생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는 어둠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남동생은 그렇지 못했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고 잘생긴 얼굴에 운동도 잘했던 동생... 그는 완벽하게 행복한 척 가면을 써왔던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사실 지인들에게 우울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고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순간 나의 자아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안기기 전에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주위 사람들 - 가족, 친구, 지인들 - 은 우리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녀는 말한다.

 

" 당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도울 수 없다.

그러니 행복한 가면을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보여주라.

그리고 당신에게 누군가 힘든 상황을 털어놓으면 귀를기울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라.

어쩌면 상대가 갇힌 어두운 터널 안에 당신이 한줄기 빛을 비춰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 외에도 모린 존슨이라는 작가는 한때 불안증과 공황발작에 시달렸고 사라 자르라는 작가는 병적으로 낮은 자존감 때문에 카페 화장실에 들어가 자신의 뺨을 후려쳤던 과거를 고백한다. 로런 올리버란 작가는 어릴 때부터 심각할 정도로 자살 충동에 시달렸으며 레이첼.M. 윌슨이라는 작가는 자신이 ADHD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 를 앓는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쯤되면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궁금하겠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잘 극복하여 살고 있다.

 

공통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과도하게 일을 하지 않고, 적절한 수면을 취하며, 산책이나 요가와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페인이나 설탕과 같은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음식은 되도록이면 제한하는 식습관을 취했다. 그들 중에서 나는 로런 올리버가 한 말에 매우 큰 공감을 하였다.

 

" 개인적으로 나는 정신질환이라는 용어를 '정신적 말더듬' 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말더듬은 힐난하는 어감은 물론, 종합적으로 모든 질병을 기술한다는 느낌도 덜하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하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같이 들리지만,

정신적 말더듬이 있다고 하면, 글쎄... 살면서 말더듬는 실수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나?"

마치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에 나와서 허심탄회하게 마음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해서 읽기가 편하고 좋았다. 작가들의 증상을 읽어보면서 심리적 문제가 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가면서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 심리서적보다 쉽고 재미있는 책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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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섬
리사 시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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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거친 바다에 맞서서 물질을 했던 강인한 해녀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비극적 역사를 온 몸으로 견뎌낸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제주도라는 특정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민족,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주도민들이 겪어야 했던 격동의 세월을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가 하고픈 말이 많았나보다.. 책 한권에 해녀들과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이 몽땅 들어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해녀들의 섬 ] 은 어쩌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 라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과 그들이 사용하던 장비, 도구 등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 목숨을 걸고 물질을 해야했던 그녀들을 위해서 만신, 즉 영적인 힘을 가진 무녀들이 굿을 하거나 목숨을 잃은 해녀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을 치러주는 장면도 보여준다.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장면들이라 시와 노래 아니면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맴돌았던 것은 바로 그녀들이 해산물을 따러, 즉 물질을 하러 갈 때마다 불렀던 노래, 해녀들의 노동요였다. 앞으로 있을, 힘든 작업, 목숨을 걸고 해야했던 작업에 대비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최면요법 (?) 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선창했다.

“ 물질하게 해주세요 ” 그녀의 굵고 쉰 목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내 귀에 닿았다.

“ 물질하게 해주세요 ” 우리는 그녀에게 답창을 하며 노랫가락에 맞춰 노를 저었다.

“ 황금빛 조개들과 은빛 전복들.” 그녀가 노래했다.

“ 그것들을 전부 따게 해주세요!” 우리가 화답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 [ 해녀들의 섬 ] 은 제주도민들이 겪어야했던 가혹한 역사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1938 년 일제 치하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일본의 패망 이후, 광복과 그 뒤에 바로 이어진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기에 반발했던 제주도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던 피비린내나는 제주 4.3 사건을 고발하고 있다.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 청년들이 고문을 당했으며, 사람들은 총살을 당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이 겪어야했던 시련에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같은 민족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의 정체와 명분이 궁금했다. 그리고 왜?????? 우리는 아직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지도 매우~~~~ 궁금했다. ( 친일파는 왜 아직 청산되지 않았는가 )

정치가 민족을 갈라놓기 전까지 제주도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땅이었다. 제주도민들이 원한 것은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었고 다만, 그 누구의 지배와 간섭도 받지 않고 자치적으로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누군가는 그런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반민족행위를 한다고하면서 그런 식으로 죽였던 것이다. 아직도 제주도엔 원혼들이 떠돌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매우 아팠다.

 

책은 1938년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주인공 해녀 영숙과 미자 사이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숙 어머니인 대장 해녀 밑에서 훈련을 받으며 함께 자란 그들은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만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였다. 마치 친자매처럼 함께 물질하며 우정을 쌓았던 그들. 그러나 영숙에게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그들의 사이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영숙에게 미자가 가장 필요했을 때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물론 제주도에서 일어난 그 사건과 관계된 일이다.

 

2008년 이제 80대 노인이 된 영숙에게 재닌이라는 여인이 다가온다. 그러면서 미자라는 사람을 아는지 묻는다. 영숙은 치가 떨리는 그 이름을 잊을 수도 없고 잊을 생각도 없지만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책의 첫 부분이지만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 그녀가 미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해녀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제주도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 책. 박경리님의 토지와 존. S. 펄벅의 대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민족을 쥐고 흔들었던 역사적 사건들, 특히 비극적인 사건들이 주인공들의 삶을 쥐고 흔들었다. 이제 영숙의 선택이 남았다. 그녀는 미자를 용서할 것인가? 이 책은 정말 소장가치가 100%, 아니 200% 인 책이다. 감동 그 자체이고 작품성이 너무나 뛰어나다. 다시 한번 더 읽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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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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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삶은 고달프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이 초 자본주의 시대에 집 하나 없는 인생, 야박한 시급을 받고 장시간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사회복지의 혜택하나 받지 못하는 저소득 노인들, 그리고 당신들과 우리들....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고달픔을 넘어서서 저주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눈감고 있으면 코 베어가고 가만히 있으면 팔 다리 떼어가는 야박한 세상 아닌가. 가끔은 거대한 게임 속에서 정해진 운명만을 따라야 하는, 저주받은 인생인가 싶은 생각이 들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배지영의 단편 소설집 [ 근린 생활자 ] 는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이 세상에, 남들 뛸 때 걸어가거나 심하면 기어갈 수 밖에 없는 짠내 나는 인생들의 암울한 생활상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짠내 정도가 아니다. 이건 암울하기 그지 없다.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그들의 삶으로 걸어들어가보자.

 

단편 [ 근린 생활자 ]

곰팡내나는 반지하 방과 옥탑방 그리고 고시원을 전전하던 상욱. 싼 전세를 구하던 그에게 공인 중개사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상가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꾼 근린 생활 시설을 아주 싼 가격에 매매할 수 있다는 것. 곰팡이 걱정을 안 해도 되고 햇빛도 잘 드는,, 거기에 값이 싸다는 매력을 지닌 시설. 그는 드디어 집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근생에는 조건이 딸려있었다. 불법적인 건물이라 신고 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비정규직 승강기 수리 기사인 상욱은 집마저 불법적이고 불안정한 근생 생활 시설에 머무르게 된다.

새 집에서 살기 위한 규칙

1. 반드시 인터폰으로 확인하고 문을 열어줄 것

2. 구청에 신고가 들어갔을 수 있으니 일단 초인종 누르는 사람은 무시할 것

3.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고기를 구워먹지 말 것

4. 애인을 데려오지 말 것

단편 [ 그것 ]

주인공은 산림청에 소속된 정직원이다. 그의 일은 저장드럼을 특수 트럭에 실어서 전국의 산지에 묻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에 불길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시작으로 매제까지 암에 걸려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여기서 독자는 눈치를 어느 정도 챌 수 밖에 없다. 그가 하는 일이 여동생과 매제의 죽음에 어느 정도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거대한 산업 구조 안에서 인간은 개미 정도 밖에 존재감이 없는 걸까? 라는 의문을 일으킨 단편이었다.

단편 [ 삿갓조개 ]

개인적으로 제일 충격적이었고 슬펐던 단편이었다. 제대로 된 근로조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야박한 시급에 매달려야 하는 현대의 노동자들의 슬픈 자화상. 주인공은 해안가 발전소의 도수관에서 자라나는 삿갓조개를 떼어내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도수관 내부는 산소가 모자라서 항상 산소통을 지닌 채 작업을 해야 하고 거대한 가위로 삿갓조개를 파내는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다 시급 900원을 올리기 위한 파업에 돌입하는 노동자들.. 도수관 안에서 먹고 자고 버티기 시작하는데...


시급 900원 인상도 너무 큰 욕심인 듯 싶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원하는 무언가가 성취된 적이 없는 그였다.

' 그래야 해서 ' 가 아니라 '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왔듯' 침묵하고 운명을 탓해야 했다.



우리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난 뒤 자꾸만 드는 물음이다. 언젠가부터 정신적 가치를 몽땅 잃어버린 듯한 우리 사회.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각자도생.... 마구 살아가는 느낌이다. 발전소라는 거대 기업이 노동자에게 시급 900 원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경력직을 잘라내고 싼 시급의 신입을 고용하는 장면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그들에게 자살 가위를 쥐어줬는지도 모르겠다. 작게는 그 발전소가,, 크게는 그런 기업을 방치하는 이 사회가.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외침은 어느새 " 경제 성장 " 이라는 슬로건 뒤로 묻힌 것은 아닌지.. 오늘따라 마음이 착잡하다. 있는 그대로 이 사회를 보여준 듯한 단편 소설 [ 근린 생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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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곤베리 소녀
수산네 얀손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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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이 데려간 사람은 악마와 나란히 손을 잡고 온다

링곤베리 소녀 중

 

늪이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이미지는 일단,, 불길하다,, 가 아닐까? 다큐멘터리에서 동물들이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늪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도 아마 비슷한 공포를 느꼈으리라. 늪 근처에만 가면 실종되는 사람들.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늪지대에 살고 있는 사악한 영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것이라고. 그 강력하고 사악한 영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숭배했을 사람들. 그들은 영적인 힘이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기 전에 제물을 바쳤을 것이다. 도구, 음식, 동물..... 그리고 때로는 그게 인간이 될 떄도 있었다.

 

이 책은 늪지 주변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실종을 추적한 한 사진 예술가와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얻을 수 없었던 해답을 찾고자 고향을 찾아온 한 생물학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탈리에는 생물학자이다. 그녀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늪지대의 온실가스를 조사하고자 자신의 고향인 모스마르켄 지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사차 온 것은 핑계이고 그녀에게는 더 큰 목적이 있다. 평생 그녀를 괴롭혀온 문제,, 한밤중에 들리는 " 똑똑똑 " 소리에 잠을 깨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으며, 자신을 품어준 양부모에게 평생 마음을 닫았던 그녀.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겼던 그 과거에 대한 해답을 얻으러 왔다. 그러나 혼자서 조용히 해답을 얻고 돌아가려던 그녀의 삶에 요한네스라는 남자가 뛰어든다. 사랑했다가 또다시 고통스러운 감정을 겪을까봐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그녀.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멈추어버린다. 바로 그녀가 겪었던 과거의 그때와 같은 상황이다. 그녀는 집을 뛰쳐나가는데......

 

마야는 범죄현장을 찍는 법의학사진작가이다. 부모님이 예술가였고 어머니가 경찰관이었던 그녀는 사건 현장을 사진에 담거나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시신을 찍는 과정에 매료된다. 죽음을 혐오하는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죽음에 매혹되기도 한다. 그녀는 레이프 형사를 통해서 최근 늪지에서 한 청년이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은 사건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런데 마야는 그 사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늪지 근처에 있는 덤불 사이에서 구부정하고 흐릿한 형체를 발견한다. 그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시신들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매장된 사람들은 안식을 얻을 수 없었다.

늪지는 새로운 제물에 굶주려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기처럼 늪지에서 사라져버렸다. 19세기 토탄을 캐던 농부도, 예란 달베리라는 사람의 아내도, 그리고 페테르와 위본네 부부는 트레이시라는 딸을 늪지에서 잃었다. 사악하고 강력한 영들이 늪지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서 가엾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던 그때!!!! 역사적 유물인 링곤베리 소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죽음을 당한 시신이 늪에서 발견된다. 링곤베리 소녀는 기원전 300년 경에 살았을 것이라 추측되는 미이라로써 늪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장대에 꽂힌 채 늪 속에 묻혀 있었다. 아마도 풍년과 다산을 위해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을 그녀.

 

마야는 이 사건들 추적한다. 탐문 조사를 통해서. 그리고는 예란 달베리라는 독특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양자 역학을 연구한 이론 물리학자였지만 실종 사건이 모스마르켄 지역, 구체적으로는 늪지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패턴을 발견했던 사람이다. 경찰에게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은 묵살이 되었고 경찰이 더 이상의 수색을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그는 사람들이 실종되는 이유를 영적인 세계를 통해서 찾게 된다. 초자연현상에 대해서 닥치는 대로 연구했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령은 존재에 대한 부정이자 비어 있음이거든요. 

하지만 존재의 부재인 비어있음은

막대한 힘을 소유하고 있어요. 일종의.... 굶주림이죠. 

 

과연 늪의 영혼들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스스로 늪에 몸을 던지게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시신의 몸에 꽂혀있던 장대와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동전의 존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두려움이 커지면 공포가 된다. 때로는 공포가 악습을 낳기도 하고. 죽음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라도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 늪 " 이라는 소재로 서늘하면서도 소름끼치는 공포를 낳은 수산네 얀손 작가. 그녀 덕분에 북유럽 특유의 음울하면서도 차가운 스릴러를 만날 수 있었다. 긴박하고 짜릿한 스릴보다는 조용하게 다가오는 공포를 원하신다면 오늘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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