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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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기억,

진실과 거짓,

권력과 동의에 관한 이야기

처음엔 작가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벙벙해하면서 읽어내려갔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가 매우 영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저자인 수전 최가 어떻게 보면 [ 신뢰 연습 ] 이라는, 다소 모순된 제목을 가진 이 책으로, 독자들 전체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플롯이다. 앞에 읽었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다음 글에서 펼쳐지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숨 죽이고 책을 읽게 된다고 해야 할까?

정확한 사실 관계를 드러내지 않은 채, 저자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른 세 명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 라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마음 속에 거대한 물음표가 찍힌다. 누군가는 어떤 것을 감추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그걸 드러내고 싶어한다.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각자의 각도에서 보이는 것을 드러낸다. 어떤 이야기는 " 세라 " 의 버젼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버젼으로...

일단 독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독서를 일찍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인데, 마지막에 가서야 작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꾹 참고 읽기를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이 소설의 3가지 버젼의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누군지 몰라서 꽤 헤매었던 게 사실이다. 사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카렌도 첫번째 이야기인 " 세라 " 버젼에서는 거의 엑스트라급의 출현 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이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하고 그럴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책을 조금 읽고 나니까 이제서야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신뢰 연습이라고 붙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독자들이 끝까지 작가에 대한 신뢰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지은 듯 하다. 작가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어쩌면 신뢰와 불신 사이에서 시험을 당하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나는 어른들의 부주의함과 무책임함에 놀랐고 당시 무력하기만 했을 학생들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서 생각했다. 첫번째 이야기인 세라 이야기도 그렇고 두 번째 이야기인 카렌 이야기도 그렇고, 그 당시 어른들이 얼마나 미성숙하고 무책임했던가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그들은 어쨌건 교육자이지 않은가? 연기 연습이 목적이었든 아니면 감정의 부주의함이었던 간에, 킹슬리 선생님이든 마틴이든 모두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권위자의 손에 아이들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 마음이 놓일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명성 있는 예술 아카데미를 다니는 고등학생들의 연기 연습 장면으로 시작된다. 독자들은 여기서 세라와 데이비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신뢰 연습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연기 연습을 하던 중에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불안한 십대들의 감정 상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그들의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여름에 시작되었던 사랑은 가을 쯤에 끝나버리니까. 어쨌든 이 책의 거의 절반 부분은 세라와 데이비드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격정적인 로맨스는 그들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실 청소년 이야기를 이렇게 푹 빠져서 읽게 될지 몰랐다. 어른인 내가 유치한 사랑 놀음에 빠질 소냐.. 뭐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던 것인데. 그런데 이 책은 이야기 구성면에서나 깊이 면에서 어른들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짜여져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3명의 각도에서 써내려갔는데 우선 고등학생 버젼인 " 세라 " 의 이야기도 유치하지 않고 그녀가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들이 너무 강렬하고 생생해서 정말 머리 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다 그려졌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심리나 표정 묘사 등도 너무 세밀해서 혹시 자전적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중간쯤 갑자기 화자가 " 세라 " 에서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 중 한명인 " 카렌 " 으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다른 톤을 띄게 된다. 세라와 데이비드의 연애 이야기가 어떻게 끝을 맺게 되었는지 더 읽고 싶었지만 어쨌든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보기로 했는데 오히려 " 카렌 " 버젼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책의 거의 반 이상을 차지했던 데이비드와 세라의 연애 이야기는 소설 속의 소설, 즉 세라가 작가가 된 후 책으로 출판한 이야기였던 것! 두번째 파트는 카렌이 작가가 된 세라의 출판 기념 사인회를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세라는 자신의 소설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 중 빼놓은 것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의도적이었든 의도적이지 않았던 간에. 카렌은 세라가 펴낸 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녀의 거짓말을 어떻게든 밝혀내려고 작정한 듯 보인다.

총 3부작으로 나뉘어져 있는 작품 [ 신뢰 연습 ]. 2부는 1부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고 또 3부는 2부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1부가 가장 양이 많고 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 모든 사건들이 비롯되기 때문에 일단 읽어둬야한다. 진짜 이 책의 묘미? 혹은 백미? 는 2부와 3부에 드러나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꾸준히 읽어두면 나중에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 마치 속삭이듯이 비밀스럽게 감추어져있던 이야기가 다 드러나게 된 순간, 독자들은 참았던 숨을 터트려도 되리라...

이 책은 전체적으로 수전 최라는 작가의 풍부한 필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 번역가의 훌륭한 번역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 저자는 또한 이야기의 구도를 이리저리 뒤집어서 허구의 가면에 가려진 진실을 독자에게 드러내며 깜짝 놀라게 만든다. 독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면이 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었어? 라며 흥분한 채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이 보이는 듯 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쩌면 이 책의 제목 [ 신뢰 연습 ] 은 " 세라 " 가 쓴 이야기에서 킹슬리 선생님이 학생들의 연기 지도를 위해서 이용한 수업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책과 책을 쓴 작가를 믿고 끝까지 읽어내라는 작가의 의도인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물론 이런 독특한 책의 형식과 다소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책 내용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을 독자들도 있으리라고 보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었다. 한번 읽어봐서는 안될 것 같고 두번 세번 읽어야 작가의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듯 하다. 너무너무 만족스러웠던 독서 시간을 선사해준 책 [ 신뢰연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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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나 사이
김재희 지음 / 깊은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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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라는 시인은 지적인 마스크에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그 문학 작품 못지 않은 기이한 행적으로 더 유명하다.

시인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게 다방을 운영했다는 개인사도 그렇고, 결혼을 여러번 하여 아내를 여러 명 둔 사연도 그러하다.

예전에 읽었던 " 오감도 " 라는 시에서는 " 아해 " 가 무려 13명이나 등장하는데 그냥 등장만 하고 사라진다.

이렇게 기이한 시를 쓴 이상에게서 김재희 작가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이 에세이 [ 이상과 나 사이 ] 에서 김재희 작가는 그녀가 이상을 만나게 된 계기와 그에게 반하게 된 계기 그리고 이상과 자신의 비슷한 점

등을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당연히도 이상과 구보라는 캐릭터를 자신의 추리 소설의 주인공들로 뽑은 이유를

여기서 밝히고 있다.

이상은 넓은 스트라이트 넥타이에 서스펜더를 차고 팔짱을 끼고 있다. (중략)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무척 댄디해보였고 눈에는 총명함과 비밀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 뒤로 살짝 이상에게 기대선 구보의 일자로 자른 뱅머리, 대모갑 테 안경, 하얀 셔츠가 무척 지적으로 보인다. (중략)

1930년대 경성에 셜록 홈즈와 왓슨의 사무실이 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이상과 나 사이 - 김재희 에세이

역사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던 김재희 작가는 역사 인물을 찾다가 이상이 창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탁 친 뒤, 이상과 구보를 콤비 탐정으로 정하고 그들의 작품을 읽어나간다. 그 와중에 이상이 미스터리한 시구, 명철한 지성과 직관적 날카로움 등을 보여서 그를 셜록으로 지정하고 객관적 관찰자적 시점에 충실한

구보작가를 왓슨으로 지정한다.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였을 텐데 그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해서 우리는 [ 경성 탐정 이상 ] 이라는

좋은 시리즈 작품을 5권이나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이상과 관련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김재희 작가 본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있다.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이 작가든 연예인이든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이 마치 카르마처럼 겪을 수 밖에 없는 악플 공격에 대한 글이었다.

평행이론처럼, 이상과 김재희 작가 각각 악플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아무튼 그 괴이한 시들을 장장 15편이나 실었으니

그 15일 동안 온갖 협박 편지가 신문사로 날아들었다.

" 신문사에 폭탄을 설치하겠다 ."

"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시를 쓰는 시인을 죽이겠다 ."

" 당장에 시를 멈춰라 ."

이상은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 오감도 ] 시 연작을 발표한다. 이상의 " 오감도 " 는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라고 시작하는 시인데 띄어쓰기도 제대로 안되어있고 아해가 무섭다는 소리만 주구장창하고 있으니.. 시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보기엔 정말 괴이하기 짝이 없는 시였을 것이다.

김재희 작가의 말대로 그 당시엔 지금처럼 SNS 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15일 실렸다고 하는데

이상 본인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대중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싶었다.

그런데 김재희 작가도 역사 추리소설 데뷔작인 [ 훈민정음 암살사건 ] 을 발간하고 난뒤 리뷰의 형태로 상당히 많은 악플을 받았다고 한다. 그땐 문장이 완벽하지 못했다고는 치더라도

그 후로도 [ 이웃이 같은 사람들 ] 이라는 책과 [ 경성 탐정 이상 ] 으로도 악플을 받아서 위축이 된 적이 있었다고 하니 작가의 운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걸 역으로 이용하여 어떤 독자와는 소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었다니...

역시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외에도 작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권태로움이나 그 권태로움을 이기게 만드는 번뜩이는 영감에 대한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 김재희 작가가 습작처럼 적었다는 작품 ' 눈물 ' 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일본만큼 추리소설의 시장이 넓지 않은 한국에서 작가들의 인세 수입이 얼마나 적은가? 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다. 예전에 국제도서박람회에서 만났던 작가들이 책을 쓰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 책을 통해서 김재희 작가의 이상이라는 사람의 삶과 작품에 대한 사랑을 살짝 엿보게 되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굳이 글쓰기에 대한 이론서가 아닐지라도

작가들의 이런 에세이가 초보작가들에게는 하나의 글쓰기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습작 아이디어에서부터 플롯 세우기까지 조곤조곤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김재희 작가. 깨알같은 본인의 사생활까지 덤으로 읽게 되니 너무나 좋았던 책...

경성 탐정 이상 1권을 필두로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하나 읽어볼까 한다. 이상이라는 한 시대를 가로지른 작가에게 반해버린 또 다른 작가의 에세이!!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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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토님 2021년 새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토토엄마 2021-01-03 22:45   좋아요 2 | URL
scott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
제 블로그에 자주 찾아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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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부제목을 단,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편을 읽게 되었다.

자부심이 남다른 한국인 아니랄까봐,, 방구석 미술관 1편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문화는 서양이지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문화 사대주의자인 나도,,

역시 피 속엔 한국인의 DNA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책을 추천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 이 책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

코로나로 인해서 외출하기가 꺼려지는 요즘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엔 카페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했었던 것 같은데

연일 우울한 소식에 집콕하면서 고양이와 놀고 퍼즐이나 맞추다가

가끔은 레시피를 찾아서 맛있는 것을 해먹고는 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제 질린다고 생각할때쯤 이 책 [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을 만나게 되었다.

원래 나는 미술에는 좀 문외한인지라 ( 인상주의가 뭔지 고전주의가 뭔지 하여간 아무것도 모름 ) 당연히 좀 어려우리라 생각하고 집어들었다.

그런데! 역시 감칠맛 나는 조원재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 덕분일까?

아니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거장들의 뭔가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뒷 이야기 때문인 걸까?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깊이 빠져들게 된 책이다.

먼저 출간된 책, 독보적 예술 베스트셀러인 [ 방구석 미술관 ] 의 다음 편으로 출간된 작품인 " 한국 " 편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10인의 작품을 150점이나

수록해놓고 있다.

여기에 그 작품을 다 찍어서 올려놓고 싶을 만큼 정말 수작이고 걸작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우리가 한국에서 만날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한국의 예술책이라고 본다. 화가의 작품과 그들만의 예술 색깔 그리고 뒷 이야기까지,,

이야기거리가 다양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책

[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편으로 들어가본다.







우선 한국의 미술가하면 누가 떠오를까?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한 동물과 그 동물을 주구장창 그리신

그 분이 떠오를 것 같다. 바로 " 소 " 를 주구장창 그려오신 이중섭 화가 선생님이시다.

그는 " 소 " 를 그리지 않았다. 그 자신이 바로 " 소 " 였다. 그림 속의 " 소 " 를 통해서 평생 자신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절망 등을 표현하신 분. 그가 그린 소는 다양하다.

강한 에너지를 풍기는 소에서부터, 처참하게 무너지고 딱딱해지는 소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처한 환경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지.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일본에 보내야했고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던 이중섭 화가.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언젠가는 가족을 만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풍긴다.

예를 들어 < 흰 소 > 라는 작품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초인적 힘이 뿜어져나온다.

마치 그 무엇도 < 흰 소 > 의 발걸음을 가로막지 못할 것처럼.





우리들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만 들소처럼 억세게 전진, 전진 또 전진합시다

이중섭 화가 외에도 작품에 주목하게 되는 작가가 또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김환기.

한국의 추상미술에 커다란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화가라고 본다.

그는 유독 한국의 미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이 작품에 담으려고 노력한 작가이다

조선의 백자 속에서 자연스러운 평범함을 발견한 그는, 달항아리라는 그림으로 반추상주의를 이루어낸다.

하지만 그는 1956년 파리에 진출하여 도시 자체에서 영감을 얻고 [ 고국을 향한 사랑의 노래 ] 라는 걸작을 만들어내고 곧이어 1963년 10월 쉰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뉴욕에 가게 된다. 이미 한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화가였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뉴욕으로 가서 예술인생의 최후의 도전을 하게 된 그는

결국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라는 점묘법에 의한 걸작을 만들어 내면서 

뉴욕의 미술계를 휩쓸어버린다. 물론 그의 작품활동도 감동적이지만

 그가 그렇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던 그의 반쪽,

아내 김향안과 김환기의 사랑 이야기도 너무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 점의 우주 ] 라는 대작을 만들 수 있게 했던 친구의 시가 입에서 계속 맴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중략)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방구석 미술관 ] 책을 통해서 서양 미술사의 이면 혹은 뒷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번 2번째 책을 통해서 한국 현대미술을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이 시대의 도슨트라고 불릴 수 있는 조원재 작가의 글솜씨로 듣게 되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중섭 화가나 나혜석 화가처럼 일평생 고생고생하고 쓸쓸한 말년을 맞게된 화가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김환기 화가처럼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본인과 작품의 가치를 드높인 이야기도 읽게 되어서 좋았다.

왜 학교에서는 이런 걸 가르쳐 주지 않을까?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책으로 배운 게 훨씬 더 많다는 생각도 든다.

미술, 특히 한국 미술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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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러드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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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소설계를 이끌어갈 주자라는 느낌이 팍팍 드네요. 좀비물은 너무 많이 다루어지긴 했지만 무대가 우주라는 면에서 스케일도 크고 대단히 잘 만들어진 작품일 거라는 생각에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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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스 노벨
스티븐 리콕 지음, 허선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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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스 노벨은 제목 그대로 "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 " 를 모아놓은 

농담같은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전 스티븐 리콕이라는 저자가 쓴 단편 소설집인데

작가이기도 하였지만 경제학자이기도 했던 저자는 참,, 뭐라고 해야할까?

톡 쏘는 듯한 청량감의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혹은 그의 농담은 마치 사이다와 고추가루를 섞은 것?

말하자면, 그의 이야기 속엔 당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틀기, 풍자, 해학, 냉소, 

비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당시 그가 느꼈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글로 풀어냈다고 할까?

각 단편들은 마치 서커스 속의 촌극을 보는 듯 하다. 

일부러 주인공들을 바보처럼 묘사해놓고

독자들이 그들을 실컷 비웃게 하고 옆에서 같이 껄껄 웃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ㅋㅋㅋ

마치 코미디쇼의 슬랩스틱처럼 ( 서로 떄리고 맞고 기름에 미끄러지고 등등의 소동? )

 황당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독자들은 웃겨서 웃기도 하지만 정말 황당해서 웃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문학성이 높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이야기들의 장르가 매우 다양했기 때문이다.

1화 : 여기 해초에 묻히다 와 같은 탐험소설도 있고

8화 :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 처럼 공상과학소설도 있다.

그리고 비록 진지하지는 않지만 

5화 하일랜드 아가씨 해나와 오처라처티 호수의 저주와 같은 로맨스소설에

6화 : 누가 범인일까? 와 같은 추리 소설도 있다.

이 중 인상깊은 단편들을 고르자면 

우선 첫번째 단편인 1화 : 여기 해초에 묻히다 ( 광활한 바다 위 대혼란 )은

보물을 발견하려는 야망에 가득 찬 선장과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듯한 젊은이가 주인공인데

이상하게도 이 둘을 제외하고 나머지 선원들이 미스터리하게 바다에 빠져 죽는다.

바다를 잘 아는 이들이, 왜 자꾸 바다에 빠지는 것일까?

그 비밀은 보물과 관계가 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을 의심케 만드는 황당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독특한 반전 때문에 웃음이 터지는데.. 결말이 비극적이긴 하나 

권선징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 R라는 지점은 모래 아래 보물이 묻힌 곳을 가리킨다.

보물은 스페인 화폐로 50만 달러이며,

갈색 가죽으로 된 옷 가방 안에 담겨 있으리니.”


2화 넝마를 걸친 영웅 ( 히스키야 헤이로프트의 고군분투 생존기 ) 은

일자리를 찾아 뉴욕으로 올라온 히스기야 헤이로프트가 가난하지만 순박한 청년에서,

살벌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혹한 범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히스키야가 넝마주이의 모습이었을 때는 그를 무시하고 괴롭히던 사람들이

( 어떤 경관에게 길을 물었더니 느닷없이 몽둥이 찜질을 한다 )

그가 강도짓을 하고 방화를 저지르고 사람들에게 권총을 난사하였더니

그의 잔인함과 비정함에 감탄을 하고는 그를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당시 미국 사회를 전면으로 비판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경찰도 어찌 못하는 갱단들이 활개를 치던 시기였으니....


히스가야 헤이로프트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이 펼쳐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무시당하던 부랑자가 아니었다.

미국 범죄 세계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

8화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쓴 이야기라기 보다는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 같다.

이것은 미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던 한 작가의 관점에서 쓰여졌는데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그는 실제로 어느 미래에 도달하여 있었다.

그 사회는 사람들이 일 할 필요도 없고 옷도 공짜로 받을 수 있고 ( 즉, 패션산업 사라짐 )

알약 하나만 먹으면 1년을 버틸 수 있는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이 작가는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매우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 미래 사회가 진정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유토피아라는 껍데기를 덮어쓴 디스토피아인가?

위험과 스트레스, 힘든 노역, 씁쓸한 운명과

그로 인한 상심이 가득한 예전 삶을 올려주시오.

그 중요성을 이제 알겠소! 그 값어치를 이제 알겠소!

쉴 틈이 없는 삶을 돌려주시오!


허를 찌르는 듯한 작가의 유머감각... 당시 사회를 왁자지껄하게 풍자하는 듯한 이야기..

무려 100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단편들이 모여있는 책이다.

뭔가 기묘하기도 하고 독특한 단편집을 읽고 싶다면 오늘 이 책 [ 난센스 노벨 ] 을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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