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송곳
조동신 지음 / 북오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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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펼쳐진 역사의 변주, 상상력의 질주

책의 제목인 [칼송곳]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하며 나는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그 사건을 기가 막힌 솜씨로 해결하는 가상의 인물 군관 장만호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전후 시기 동안, 왜군 간자들, 즉 간첩들이 수시로 조선을 드나들면서 양반들과 군관들의 배신을 유도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작 소설집인 이 책에는 4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고 각각의 이야기엔 전라도 좌수영에서 근무하는 장만호가 등장한다. 첫번째 소설인 [칼송곳] 은 그가 바다에 빠져 죽은 한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좌수영 소속이었던 대장장이 순길이 살해당한 채 바다에서 발견되고, 풀뭇간에 있었던 거북선 모형이 사라진 점과 풀뭇간 곳곳에 순길이의 혈흔이 흩어져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모형을 훔쳐가려던 왜군 간자들이 그를 공격한 것이 아닌가 하고 사람들은 추측한다. 그러나 날카로운 추리력과 관찰력을 가진 장만호의 눈에는 전혀 다른 사건을 가리키는 증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번째 소설인 [편전]에는 활쏘기에 능한 한 관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첨사 나리의 활과 화살을 훔쳤다는 이유로 관아의 나무에 묶인 채 모진 신문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니, 활과 화살은, 활쏘기에 능한 그녀를 눈여겨 보았던 첨사 나리의 선물이었던 것. 자신도 한때 관노였던 첨사 윤흥신은 무예 실력이 뛰어난 관비 나해가 좀더 실력을 닦다보면 신분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장만호가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의 스승님이었던 윤흥신이 머무르는 경상도 다대포에 잠시 놀러왔다가 나해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녀에게 던지는 화살인 척전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호시탐탐 다대포 지역을 노렸던 왜구가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고, 윤흥신은 활쏘기 실력이 뛰어난 관비 나해에게 군관들의 자식들과 아녀자 그리고 부마의 아들을 책임지고 피신시키켜줄 것을 부탁하게 된다.

이 책은 여러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의 정치와 군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대단히 흥미롭게 풀어낸다. 당시 부정 부패에 시달렸던 조선군의 상황과 군대의 기강을 바로잡으려했던 이순신 장군의 노력이 보였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전쟁 중에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역사 장르 소설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느낌이 든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후로, 많은 양반들과 장군들이 몸을 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왜구들에게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시도가 이 책의 각 단편에 여러번 등장한다. 실제로 그런 인물들이 많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없고 조선의 무기가 좀 더 발달했더라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고자 한 정의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었기에 다소 실망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소 의외인 소설이었다. 임진왜란이 주가 아니고 임진왜란 중에 발생한 살인 사건들이 주를 이루다니, 그런 면도 신선했다. 내가 워낙 추리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주인공인 날카로운 추리력의 소유자 장만호 군관이 여러 살인 사건들을 하나하나 해결할 때마다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 역사와 추리 장르의 만남인 이 흥미진진한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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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99
제프 린지 지음, 고유경 옮김 / 북로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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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일리 울프는 절대 빈손으로 떠나지 않는다.

불가능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손에 넣을 거니까."

미드 [덱스터]는 악당만을 골라서 죽이는 연쇄 살인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낮에는 혈흔 분석가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밤이 되면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살인 충동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비록 살인범이긴 하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처리한다는 면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영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착한 살인자?라는 매우 모순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안겨준 충격적인 원작 [덱스터]를 쓴 사람이 바로 이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죽음을]을 쓴 작가 제프 린지라니 읽기 전부터 기대감에 부풀어올랐다.

줄거리를 살짝 이야기하자면, 주인공 라일리 울프는 엄청난 금액의 골동품이나 예술 작품을 훔쳐서 되파는 천재적인 도둑이다. 아무리 경계가 삼엄해도 유유하게 물건을 훔쳐나가는 놀라운 그의 기술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작업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피가 더 끓어오른다는 천재 도둑 라일리 울프,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처음엔 단순 절도범으로 보였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울프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가진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울프는 변장에 특히 뛰어나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마다 색다른 인물로 변신이 가능하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이름 "라일리 울프"는 본명이 아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천재 도둑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도둑질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는지 처음에는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여러 겹의 베일에 신분을 감춘, 매우 비밀스러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희대의 사기꾼이자 도둑을 열심히 추적하는 FBI 요원 프랭크 델가도의 손에 의해서 조금씩 그의 과거와 본 모습이 밝혀진다.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이나 되는 것처럼 라일리 울프의 뒤를 쫓는 프랭크 델가도. 책의 많은 부분이 울프의 과거를 파헤치는 델가도의 모습에 할애되어 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는 법! 델가도는 신출귀몰한 울프를 잡는 길은 오직 그의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성실하고 끈질긴 FBI 요원의 눈을 통해서 라일리의 과거가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하는데, 독자들은 한편으로는 울프의 불운하고 불행했던 과거가 지금의 현재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한편, 울프는 도저히 실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황실 보물이 뉴욕의 에버하르트 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던 것. 그중 울프는 '빛의 바다' 라 불리는 거대한 핑크 다이아몬드, 10억 달러를 호가하는 보석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훔쳐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의 엘리트 특수부대에서 복무했던 전문 경비원들이 밤낮으로 보물을 지킬 것이고, 그들이 방심할 경우를 대비해 이란이슬람공화국도 살인자 집단에 가까운 혁명수비대를 파견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첨단 보안 장치와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울프는 꼭 다이아몬드를 반드시 훔쳐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고는 위작 제조의 천재인 모니크를 이 사건에 끌어들이는데....

"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들을 맨해튼에서 전시한다는데

누가 그런 기회를 외면할까. (.... 중략....)

누군가는, 틀림없이, 훔칠 것이다.

미친 짓이라고? 자멸할 거라고? 불가능하다고? 그렇겠지.

절대 못 할 것 같아? 나를 지켜봐 "


황실 보석, 그것도 10억 달러가 넘는 거대 핑크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겠다는 천재 도둑 울프. 그는 보통 사람은 결코 생각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발하고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차근차근 계획 실행에 돌입한다. 물론 그를 뒤쫓고 있는 FBI 요원도 조금씩 울프의 실체에 가까워진다. 울프가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너무 재밌었다. 중간중간 실패를 하기도 하고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어쨌든 조금씩 다이아몬드에 다가가는 것은 틀림이 없다. 도대체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저 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라고 궁금해하는 사이에 어느새 프로젝트는 레이스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죽음을]의 주인공 라일리 울프는 비상한 머리와 이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절도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그는 천재적인 변장 실력뿐 아니라 절도와 관련된 풍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냉철한 현재 모습에 비해서 울프의 과거는 매우 비참했다. 그로 인한 분노 때문일까? 그는 절도를 저지르는 중간중간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저승으로 가는 고속 열차에 태워 보내기도 한다. 뭐랄까? 나쁘지만 왠지 인간적으로 끌리는 주인공 라일리 울프. 과연 그는 장애물을 뚫고 거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범죄 미스터리 소설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죽음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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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 지옥의 풍경, 요한계시록부터 단테까지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류재화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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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내 안에 악마가 있기 때문이다."

- 샤를 보들레르

영화 [콘스탄틴] 을 보면 인간 세상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장소이고 두 거대한 에너지는 팽팽하게 맞서며 균형을 이루어나간다. 그 균형을 깨뜨리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 보통은 "선" 이 내미는 손길을 받아들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악" 을 돌아보는 게 인간의 심리이다. 괴물이나 악마로 현현되는 악은 그 추하고 역겨운 모습 때문에 겉으로는 배척되지만, 사실 몰래 그들에게 끌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이 책 [악마-Diable] 은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사 학위를 받은 알릭스 파레가 엮은 것인데,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박물관에서 8년간이나 일한 내공이 책 속에서 팍팍 느껴진다. 다양한 대가들의 손끝에서 창조된,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인 악마의 모습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고 할까? 현대인들이 잔인하고도 끔찍한 범죄 사건에 소스라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료되듯, 과거 우리 조상들도 지옥이나 사탄 등의 이미지에 자기도 모르게 끌린 것 처럼 보인다.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여러 예술 작품의 형태로 재창조된, 정말 다양한 모습의 악마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지옥에서 인간에게 잔인한 형벌을 내리기도 하고 인간들이 서로 물어뜯는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기도 한다. 책을 보다가 문득 도대체 화가들은 어디서, 어떻게 악마나 사탄의 형체나 이미지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기독교와 고전 문학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중반 로마 속주의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악의 서를 내미는 악마에게 신의 가호를 빌며 단호하게 대답한다. 비록 젊은 시절 죄를 범하며 방황하긴 했지만, 악에 저항하고자 하는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진정한 수도자의 모습이 그림에서 드러난다.


- 종교화의 악마들은 대체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선한 영적 지도자들에게 나타나 유혹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완전히 인간의 모습을 띤 악마의 모습도 있지만 대체로 염소나 박쥐 등에서 뿔이나 날개를 빌려 인간과 차별화시킨 부분이 흥미롭다. 이 그림 속 악마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이다. 무질서와 혼란 등등이 악마의 신체를 빌려 구체화된 것 같다.

젊은 예술가 윌리엄 부게로 (1825-1905)는 화가에게 최고의 영예인 로마 대상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다. 세상이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부길 바란 그는, 단테의 [신곡] 지옥 편 30곡에 나오는 일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한다. 이 그림에서 잔니 스키키와 카포티 오는 서로 상대의 목을 물어뜯거나 머리채를 잡아채고 있고, 이 싸움을 해골처럼 앙상한 얼굴을 한 사탄이 지켜보고 있다.


- 흥미롭다는 듯 두 인간의 거친 싸움을 바라보는 사탄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이 그림은 인체 근육과 골격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점이 큰 감상 포인트인 것 같다. 마치 거대한 야수들이 서로를 향해 덤벼드는 듯한 이 그림에서, 폭발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지옥에서 영벌을 받은 두 죄수의 싸움은 마치 한 편의 무용극처럼 아름답게 펼쳐지지만 이곳이 지옥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위에 소개된 그림 이외에도 이 책 [악마-Diable] 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악마를 그린 그림들이 소개되어 있다. 각 화가들의 상상력 만큼이나 다양한데, 그들은 타락 천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울하게 명상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멸하는 거대한 붉은 용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노트르담의 대성당 위의 악마상이나 니키 드 생팔이라는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 [Le Diable -악마] 와 같은 것들은 기괴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을 희롱하는 듯한 발랄함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괴물에서 내면의 악마까지

악의 본질을 탐한 예술가의 기록

지옥에 가야만 악마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책 [악마-Diable] 을 펼치면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서 상상되었던 악마의 생생한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추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악마들의

모습이 이 책을 넘기는 독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소장할 만한 가치가 100% 인 책 [악마-Di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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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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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내가 만든 첫 책이다. " _ 앙리 마티스

스테판 말라르메와 앙리 마티스, 두 거장의 예술혼의 결정판

시는 너무 함축적이고 난해해서 쉽게 읽히지 않는 문학 장르라서 지금까지 요리조리 피해왔는데, 봄이 느닷없이 찾아오듯 시집 하나가 갑작스럽게 내 삶에 들어왔다. 그것도 매우 난해하다고 알려진 스테판 말라르메 시인의 시 모음집인 [목신의 오후]라는 작품이. 낯선 세계를 탐구하려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기회라면 기회!!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말라르메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소화해 보기로 굳게 마음먹어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반면 디테일에 무심한 그의 작품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안겨준다. 선이 굵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불안했던 마음도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 책 [목신의 오후]를 읽게 된 것도 앙리 마티스 화가가 손수 말라르메의 시를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삽화를 창작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소개말 때문이었다.


스테판 말라르메라는 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시를 읽기 전에 해설을 조금 읽어보았다. 거기서 그의 시 세계가 " 자아와 세계, 현실과 이상이라는 분리된 이원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거기에서 기인한 불만과 좌절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 어렵지만 어두운 지하실을 더듬더듬 나아가듯 시인의 감성에 접근해 본다. 아마도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 거친 속세를 살아내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더러운 시궁창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여정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전반적으로 그의 시는 다소 침울함과 우울함 그리고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창]이라는 시는 아마도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느낀 복잡한 심경을 담아서 쓴 시인 것 같았다. 병원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표정 없는 의료진들 그리고 생기 없는 흰 벽만 바라봐야 하는 그 무기력함이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환자들은 크나큰 절망을 느낄 것인데, 하물며 민감한 촉수를 가진 시인이라면? 창으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이 원망스러울 것이고, 그 원망이 극에 달하면? 햇빛이 머무르는 천국으로 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 침울한 병원이 지겨워, 텅 빈 벽이 지루해진 큰 십자가 쪽으로

진부한 흰색 커튼을 타고 피어오르는 역한 향냄새가 지겨워.

그 속을 알 수 없는 죽어가는 병자는 늙은 등을 다시 일으켜,

(... 중략...)

내 꿈을 왕관으로 쓰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전생의 하늘에서!

- 말라르메의 시 (창) 중 -

말라르메는 일상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많은 시를 썼다. 그중 [목신의 오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 신인 "목신 판"을 주제로 한 전원시이다. 엄청난 성욕을 지닌 호색한으로 묘사되는 이 목신은 아름다운 님프와의 사랑을 꿈꾸며 시링크스라는 님프의 꽁무니를 좇는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던 이 님프는 갈대로 즉시 변해버리고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목신은 그 갈대를 꺾어 피리로 만들어불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 도피의 악기, 오 얄궂은 피리 시링크스여,

그러니 호숫가에 다시 꽃 피어 나를 기다려라!

나를 둘러싼 소문에 우쭐하며, 오래오래 나는 여신들 이야기를 떠벌리리라,

숭배의 그림을 그리고 그네들의 그림자에서 다시 한번 허리띠를 벗기리라.

(.... 중략...)

"나의 시선은 골 풀들을 뚫고 불멸의 목덜미들을 하나하나 뜨겁게 찔렀으니,

그네들은 숲의 하늘에 고통의 비명을 울리며 (... 중략...)

사라지네, 오 보석들아!

-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 중 -

죽음과 지하 그리고 저승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말라르메와 비슷한 감정대를 공유하는 자이다. 비록 인간의 물질성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나, 말라르메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괴로워하며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것들의 찬란함과 격렬함을 노래하였다.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간절하게 바라는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시인 말레르메. 그의 시들은 어느 정도 광기에 물들어있다. 구원을 바라며 하늘과 땅을 향해 소리치는 옛 제사장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어 고유의 암시와 상징에 주목해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말라르메" 시인과 20세기 미술의 혁명가 앙리 마티스의 협업이 낳은 책 [목신의 오후].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말라르메 시가 표현한 이미지를 마티스 에칭화가 가느다란 선으로 구현해 내었다. 언어가 다 표현해 내지 못하는 강렬한 감정을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 보충해 주는 듯한 [목신의 오후]. 커피가 당기는 오후에 시와 그림을 동시에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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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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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한 남자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박스를 열어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매우 소중한 것이라도 발견한 양, 다급하게 안에 있던 앨범과 사진들을 꺼내 바닥에 펼쳐놓는다. 그 사진들은 여러 모양의 십자가들이 찍힌 것들이고 그중 하나의 뒤편에 누군가가 익숙한 필치로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극단을 이끌어가는 그 남자는 문득, 30년 전 부산의 한 동네에서 누이처럼 친하게 지낸 혼혈인 "헬린 킴 혹은 김혜련"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사람의 아들] 등으로 한때 한국 문학계의 거인으로 손꼽혔던 분인 이문열 작가의 신작 [리투아니아의 여인]을 읽게 되었다. 작품 구상에서 집필까지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니, 사유의 깊이와 통찰력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는 작은 극단의 연출가로 시작해서 뮤지컬 제작으로 저변을 확대해나가는 한 연출가의 여정기로 볼 수도 있겠으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비밀스레 간직한 (아닌척하면서) 타 인종에 대한 편견과 알량한 민족 정체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불특정 다수의 무차별적인 악의가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다. 묵직한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리투아니아의 여인] 속으로 들어가 본다.

[리투아니아 여인]의 줄거리를 잠깐 요약하자면, 부산의 한 동네 친구였던 '나'와 '혜련' 은 한동안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그러다가 조그만 극단에서 연출을 배우고 있던 '나'가 [리투아니아 남자들]이라는 연극을 올리게 되면서, 리투아니아 엄마를 가졌던 '혜련'에게 10년 만에 연락을 하여 그녀를 음악 감독으로 초청하게 된다. 주인공 '나'와 '혜련'은 서로를 남매처럼 여기지만 사실 '나'는 그녀에게 이성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번번이 누군가와 만나고 있는 '혜련'의 뒤에서 그녀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각각 운명적인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하는 듯 보이지만, 희한하게도 둘 다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둘 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노마드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다. 특히, 혜련의 경우는 리투아니아 조상을 가진 미국인이고 동시에 한국인 아버지를 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진정으로 머물 수 없는 그녀. 본질적인 고독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김치찌개가 그립고 친구들이 그리워 한국에 오면 그녀의 푸른 눈과 갈색 머리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리에 속할 수 없다는 점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다. 혜련의 리투아니아 할머니가 소련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하는 와중에 3명의 자매 중 한 명만 데리고 온 것. 30년이 흐르고 난 뒤에 분노와 절망에 가득 찬 늙은 이모들이 찾아와 어린이들처럼 어머니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퍼붓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모들의 슬픔이 진하게 느껴졌달까? 그리고 이 책의 중심인 '나'와 '혜련'의 사랑도 인상 깊었다. 사랑인 듯 사랑 아닌 사랑 같은 그들의 밀당 이야기는, 뭐랄까? 애초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배회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남자.... 결국엔 그들은 사랑보다는 오래가는 우정을 택하게 된다.

이문열 작가님이 절필 선언을 하셨나 싶을 정도로 그동안 작품 활동이 없으셨는데, 신작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1970년대와 80년대가 주로 배경이 되기 때문에 다소 고루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분들이 읽으면 정말 좋아할 만한 내용들이 나온다. 뮤지컬에 문외한인 나조차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괜찮은 공연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투아니아 민족이 경험한 분열과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외로움과 고독을 이야기했던 [리투아니아 여인]. 생각할 거리가 있고 메시지가 분명한 문학책으로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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