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 - feat. 1평 좁은 주방
한태희 지음 / 지콜론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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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촉박하게 흘러가는 직장인이라 충분한 요리 시간을 낼 수 없다? 혼자 살고 있기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 [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를 꼭 읽어봐야 한다. 집에 있는 재료로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들, 가성비도 높고 맛도 있는 요리들이 빽빽하게 책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직장을 다녀온 후 바로 선 자리에서 뚝딱뚝딱 만들 수 있고, 사진만 봐도 군침이 흐르는 음식들이 책에 소개 되어 있다. 내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훌륭한 레시피 북 [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로 들어가본다.

저자 한태희씨는 어느 정도 요리와 음식에 일가견이 있어야 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만든 요리들은 어떤 재료를 어떻게 섞으면 맛있을 지 알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본격 요리책인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저자의 소소한 일상과 과거 경험들이 잘 익은 고등어찜 속에 들어있는 묵은지처럼 잘 섞여 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라면 백번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실려 있다. 우선 1장의 제목은 "퇴근 후, 나를 위한 소중한 한 접시" 이다.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니며 주님을 영접했으나 직장인이 된 후에는 주로 酒님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저자 ( 요리 뿐만 아니라 글도 대단히 맛깔스럽게 쓴다 ) 1장에는 유독 숙취나 직장인 스트레스에 좋은 요리가 실려 있다.


술 때문에 속이 쓰려서 위장 내시경을 했던 날, 끼니를 죽으로 떼우라는 의사 선생님의 충고를 과감히 패스하고 저자가 만들어 먹은게 있다. 그것은 바로 " 무조림덮밥" 저자는 이 요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 건강 검진이 끝나고 빈속인 날 또는 숙취로 고생하는 날은 부드럽고 담백한 그리고 든든하고 맛있기까지 한 음식이 무엇일지 머릿속을 바삐 굴린다. 부드럽고 담백한데 든든하고 맛있는 것. 그것은 뿌리채소다. 푹 익히면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속을 든든히 채워 준다. " 저자의 표현만으로도 이미 무조림덮밥을 한그릇 뚝딱한 기분이다. 잘 배어든 양념에 푹 쪄서 부들부들한 무와 쌀밥의 조화라니!





2장의 제목은 [온전한 나의 하루를 위한 요리] 이고 3장의 제목은 [구태여 시간을 더하는 일] 이다. 2장의 경우에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후 지친 자신을 위한 맛있는 야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배달 음식에 딸려온 쌈장, 김치, 초장 등을 이용해서 만든 감자탕 볶음밥 ( 들기름, 들깻가루, 들깻잎이 충분히 들어가서 감자탕 맛이 난다 한다 ) 과 냉장고에 쓰고 남은 자투리 채소를 이용해서 만든 부침개를 보니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히 든든한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3장에서는 좀 복잡한 레시피에 시간이 좀 드는 요리법들이 주로 등장한다.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바질은 근처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저자는 직접 길러낸 바질을 이용해서 만들어낸다. 구태여 몇 달의 수고로움을 더한 일을 통해 여유로운 주말을 더 천천히 음미하는 저자. 직접 길러낸 바질의 향이 더욱 향기로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장에는 석탄주와 사과시럽과 칵테일 등 술을 빚는 내용이 등장한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발효를 하는데 드는 시간까지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레시피이긴 하지만 직접 만들어낸 술은 또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각 요리에 대해 소개를 할 때 마다 저자 자신의 경험이 곁들어진다. 마치 사람 좋은 주인장이 운영하는 포차에서 술과 안주 그리고 그날의 특별 요리를 먹으면서 주인장과 재미있는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시험을 치고 나면 반드시 들렀다는 “공주 칼국수” 의 특별 레시피, 눈물 쏙 빼는 매운 칼국수와 아빠의 고향 평창에서 할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들기름 묵은지 막국수” 는 이번 주 주말에 꼭 만들어 먹고 싶은 요리들이다.

업무로 인해 지친 마음, 혼자살면서 느끼는 외로움 등등 급습하듯 몰려오는 여러 부정적 감정들을 잘 달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만들어준 따뜻한 요리 한 끼가 아닌가 싶다. 혼자 살기에 누군가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을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들어주면 된다. 집에 있는 재료를 쓰면 되고 조리법도 굉장히 간단해서 이 책에 나오는 요리는 거의 대부분 만들어먹을 수 있겠다 싶다. 저자의 글솜씨도 얼마나 좋은지 읽는 내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재주 있는 손끝이 빚어낸 맛있는 레시피 북 [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를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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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베이킹 수업 - 정말 쉽고 맛있는 베이킹 레시피 54
고상진 지음 / 리스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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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워낙 좋아해서 삼시 세끼를 빵으로 먹기도 한다. 밀가루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는 체질임에도 근처 빵집에 거의 매일 들리다시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어릴 때는 특히 카스텔라를 좋아했었는데, 엄마가 가끔 전기밥솥이나 전기 프라이팬을 이용해서 빵집에서 파는 제품 못지않은 촉촉하고 폭신하고 달콤함 카스텔라를 만들어줬던 기억이 난다. 우유와 함께 먹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요리를 잘 할 줄 몰라서 결혼하고 나서도 배달음식만 시켜 먹다가 최근에 탕수육이나 김치찜 같은 요리를 남편에게 만들어줬는데 다행스럽게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남편도 나만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요즘에는 건강 때문에 양을 줄이긴 했지만 빵돌이에게 한번 솜씨 발휘를 해줘 봐?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이 책 [나의 첫 베이킹 수업]을 만나게 되었다.






큼직한 크기의 책에는 사진이 보기 잘 정렬되어 있다. 사진과 글의 배치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게 되어 있다. 여백이 적절하기 때문에 눈이 아프지도 않은 것 같다. 특히 이 책은 나 같은 베이킹 초보에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빵을 만드는데 드는 기본 재료에서부터 기본 도구까지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사진도 같이 정렬되어 있어서 뭐가 필요한지 한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도구가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쿠키 틀이나 식힘망 등 특이한 도구를 제외하면, 저울이나 유산지 그리고 계량 수저와 컵 등은 집에 이미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빵 종류가 이렇게 많았다니! 이 책 [나의 첫 베이킹 수업]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빵에 대한 베이킹 방법이 나와 있다. 책의 맨 앞 쪽에는 본격적으로 특정 빵을 굽기 전에 알아야 하는 베이킹 기본 과정에 대한 용어가 자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가루 재료를 체 치는 방법에서부터 버터와 달걀이 분리되지 않게 섞는 방법까지,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설명이 나와 있기 때문에 초보 요리자도 아무 부담 없이 오늘부터 빵을 구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뿐 아니라 생크림 거품 내기나 머랭 만들기 그리고 오븐 정확하게 사용하기까지 디테일 만점인 책이다.





우선 머핀 만들기에 대한 내용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카페에 가면 어떤 머핀이 있나 먼저 둘어볼 정도로 머핀을 좋아한다. 다양한 머핀들 중에서 눈이 가는 것들은 바나나 머핀과 레몬 포피 시드 머핀인데. 그냥 잘 찍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고 향긋한 냄새를 맡은 기분이다. 조리법 아래에 살짝쿵 미리 준비하기라는 대목이 있는데, 얼핏 보면 군더더기 같지만 베이킹을 좀 더 완성도 있게 이끌기 위해서 넣은 작가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목표는 레몬 포피 시드 머핀이다! 사진과 함께 요리법을 자세하게 훑어본다. 달걀과 설탕 섞기와 같은 기본도 있지만 포피 시드 넣기 같은 생소한 부분도 보인다. 포피 시드는 양귀비의 씨앗으로 아작아작한 맛이 좋아서 베이킹에 자주 쓰지만 혹시 포피 시드가 없으면 빼도 된다는 작가의 말에 다소 안심이 된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틀에 반죽을 담아 오븐에 굽고 난 후 아이싱만 뿌리면 레몬 포피 시드 머핀 완성이다. 구하기 쉬운 재료에 쉽고 간단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그냥 읽어만 봤는데도 이미 머핀을 다 완성한 느낌이다. 이번 주말에 해야 할 일은? 바로 레몬 포피 시드 머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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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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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즐겨 읽지만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에 비해서 SF 소설에 손이 덜 가는 편이다. 너무 어려운 개념이 등장한다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소설을 읽다 보면 뇌에 정지가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SF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이 장르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 한편, SF 가 선사하는 기묘하고 독특한 세계관, 그 한계 없는 상상력이 주는 매력 때문에 쉽게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나의 경우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류가 전달하는 어둡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하다 보니 자꾸 그쪽으로만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게 된 배명훈 작가의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는 그전에 읽었던 소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굉장히 스마트하고 산뜻하다는 느낌? 미래를 다루긴 하지만 광활한 우주나 망해버린 지구 이런 게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읽다 보니까 한 50년 후에 혹은 100년 후에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일들이 훅 다가오는 느낌이다. 코로나를 겪은 후 비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침 튀는 센 발음이 싹 사라진다는 설정 -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외계인과 진지하게 조우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아이들의 수능 시험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진지하게 읽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게 되는 이야기들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의 정교하고 치밀한 "SF 적 상상력" 혹은 "세계관"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하고 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류가 가진 비장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세계관 특유의 감정적 소비는 최대한 절제하는 대신 여러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 보는 듯한 실험적 시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 하나하나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나의 뇌를 간지럽힌다는 싶은 느낌도 들었다. 9편의 소설 중 내 마음에 더 깊이 남았던 소설들은 [수요곡선의 수호자], [미래 과거시제], [접히는 신들] 그리고 [절반의 존재]였다.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가진 인공 지능들.. 앞으로 그들에 의해 지배될 어두운 미래를 가끔 상상하곤 하는데, [수요곡선의 수호자]에 나오는 주인공 로봇 마사로는 특이하게도 소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로 공급에 초점이 맞춰진 A.I.들의 무시무시한 공급력을 상쇄하고 경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수요곡선의 수호자랄까? 인간 못지않은 감수성을 가진 마사로와 함께라면 소비활동이 상당히 즐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과거시제]에는 독특한 언어를 말하는 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주인공 강은신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여행하는 자가 등장하고 그가 가진 특유의 언어 습관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독특한 단편이라는 느낌도 들고 예전에 봤던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떠올랐다.

[절반의 존재]에는 사고로 인해 절반의 몸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 지하임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절반이 아니라 다른 절반이 기계로 대체된 경우이다. 고통을 이겨낸 아버지는 그녀를 딸로 받아들이지만 어머니는 도저히 변한 지하임을 딸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부모님 모두와 함께 하게 된 자리에서 지하임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어머니 안세미씨에게 자신이 여전히 그녀의 딸임을 항변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소설들 외에도 [접히는 신들]이라는 단편도 너무나 독특하게 다가왔다. 2차원이라는 평면의 세계가 눈앞에서 3차원으로 변하고 공간에 우뚝 서게 될 때 느끼는 그 감동, 얼마나 경이로울 것인가? 평면에서 입체감을 구현해 내는 화가들의 위대함이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공간적 상상력이 남들에 비해서 더 뛰어난 사람들이면 이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배명훈이라는 이름이 워낙 낯익어서 책장을 좀 뒤져보니, 작가의 책들이 몇 권 꽂혀있었다. [타워]라는 책과 [안녕, 인공존재]라는 책인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책장에 꽂아놓은 것 같은데,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특유의 실험적 정신과 재기 발랄함이 녹아있겠지? 미래 세상에 대한 다소 삐딱한 시선이 만들어놨을 그 풍부한 세계로 다시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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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요괴상점
기구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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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장터 외진 골목, 이상한 이름의 상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요괴를 사고팔거나, 요괴를 잡아들이는 곳

조선 팔도에 끊이지 않는 요괴 사건을 해결하는 한성 요괴 상점이었다.

한성 요괴 상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모두들 매우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것 같은 평화로운 조선 시대에도 역병과 환란을 일으켰던 요괴들이 들끓었다니?! 이 책 [한성 요괴 상점]은 기상천외한 요괴들이 등장하며 세상을 어지럽혔던 판타지 조선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들어간다. 책에는 가끔씩 들어봤던 요괴 두억시니뿐만 아니라 새로운 요괴들도 많이 등장한다. 서양의 호러 스토리에 자주 등장하는 목 없는 기사, 즉 머리 없는 요괴인 무두귀 같은 존재도 있다. 독특하고 기이한 요괴들도 재미의 요소이지만, 이 [한성 요괴 상점]이 재밌는 이유는 역시 독보적인 캐릭터, 주인공 최한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부모의 실종으로 혈혈단신으로 요괴를 물리쳐야 하는 운명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특유의 호연지기와 유머감각(?)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애송이 요괴 사냥꾼, 엽과 한기의 활약으로 들어가 본다.

한밤중 한기는 채 잠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이 불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 그런데 집은 폭삭 주저앉을 정도로 타버렸지만, 한기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살아남는다. 알고 보니 그 전날 어머니가 준 적룡 혈담이라는 환 덕분에 살아났다는 걸 알게 된 한기. 다가올 재난을 어머니가 미리 예측하셨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어떤 변괴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서 서둘러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한성 요괴 상점으로 달려가지만 가게는 누군가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부모님의 행방은 묘연하다. 평소에 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씀에 힌트를 얻어서 매화나무 곁을 파본 한기, 거기서 요괴 화첩과 아버지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조선에서 알아주는 신출귀몰한 요괴 사냥꾼들인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지신 이유는 뭘까?

한편, 후농리라는 마을에서 마진이라는 역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간다. 혜민서에서 나온 의녀와 의원들이 약과 탕제를 처방하지만 환자들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삿갓을 쓴 낯선 사내가 후농리를 찾아오고 그가 건넨 검은 환약을 먹은 방산댁과 그녀의 딸이 차도를 보이게 된다. 불법적인 의료 행위라고 주장하며 환약 복용을 뜯어말리는 의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돌이 삿갓 사내의 환약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완쾌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차가운 인상착의의 삿갓 사내 이야기를 들은 한기는 곧바로 무시무시한 요괴 두억시니를 떠올리게 된다. 요괴 화첩에 따르면 요괴 두억시니가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끝내는 머리가 터져 죽는다고 하는데,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환약으로 병을 낫게 만드는 삿갓 사내의 정체는 진짜로 무엇이란 말인가?

요괴가 등장하는 장르는 자칫하면 너무 유치해지거나 소설로서의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기구름 작가의 "한성 요괴 상점"라는 요괴와 조선시대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글을 읽다 보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옛 요괴들이 생명력을 갖추고 생생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한국인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져서 요괴라 해도 크게 잔인하거나 무섭지 않다는 면도 좋았다. 예를 들자면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두억시니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머리 없는 요괴인 무두귀는 가족들이 누군가의 손에 몰살을 당한 뒤 생긴 한으로 인해서 요괴가 된 케이스였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것은 바로 요괴들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하는 거대한 힘, 요괴들을 조종해서 조선을 삼키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그는 허벅지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요괴이다. 과연 한기는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실종된 부모님, 요괴들의 습격으로 인해 너덜너덜한 백성들, 그리고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나라의 운명... "한성 요괴 상점" 속 판타지 조선은 이제 애송이 엽괴 최한기의 손에 달려있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에 작가의 현란한 필력 덕분에 정말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다. 특히 한기가 요괴들과 대적할 시 외우던 주문 때문에 여러 번 박장대소를 했다. 우스꽝스러운 주문이지만 그 주문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정말 대단했다. 무협지 같기도 하고 머털도사 같은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건 애송이 요괴 사냥꾼이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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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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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괜찮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이 병을 가진 이상

과연 정상적인 상태가 가능한지를 부단히 고심하고 있다. (...)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다면?

만약 이렇게 어지러운 상태가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율하는 나날들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끊임없이 바이올린 줄을 조율하는 한 여성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바이올린 줄이란, 조현병을 가진 저자가 겪는 혼란과 망상으로 가득 찬 그녀의 머릿속이나 일상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을 온전히 살아나가기 위해서 그녀는 끊임없이 스스로와 대화하고 다독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일대와 스탠퍼드 대학을 동시에 합격했고 패션에 관심이 무척 많았던 꿈 많은 여학생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작가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이 책 [조율하는 나날들]을 통해서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그녀가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경험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야기 내내 자기 연민이나 과한 감정을 담기보다는 제3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듯 객관적인 입장에서 풀어내어 읽기 편했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 [조율하는 나날들]은 쓴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씨가 겪어야 했던 혼란스러운 나날들은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신 건강이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정신적 질환이라고 해봤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그리고 공황장애 정도만 알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조현병이라는 질환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고, 이 병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 갉아먹는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은 환시나 환청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 구더기가 끓는 시체를 목격하게 된다거나 등등 ) 갑자기 급격한 공포심을 느끼게 되어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니...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들이 있어도 워낙 쉬쉬하며 살아가는 사회다 보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아예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병을 앓게 되면서 겪었던 많은 다양한 경험과 조현병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안타까웠던 사연들은 조현병 문제 때문에 그녀가 예일대학에서 완전히 쫓겨나야 했던 사실이다. 총기 사건과 같은 참사가 번번이 일어나는 나라라서 그런지, 미국은 더욱더 엄격하게 정신과적 질환을 다루는 것으로 보였다. 작가가 예일대 정신의학과 학과장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까지 재활의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재고의 여지도 없이 매몰차게 그녀를 쫓아낸 대학의 처사가 좀 안타까웠다. 반면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스탠퍼드대에 다니던 시절 청소년 양극성장애 캠프의 자원봉사자로서 참가하게 된다. 거기서 양극성장애와 더불어 발달장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스튜어트라는 아이를 도와주면서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이 엄마가 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저자는, 이 경험 이후로 아이를 갖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떠올려보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몸이 아프거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을 잘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한다. 하지만 정신적 질환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 자체도 꺼려 하고 따라서 공론화되는 부분이 매우 적다. 그런 면에서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이 참 대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병동에 갇혀서 미친 사람 취급받았던 순간이나 대학에서 쫓겨나야 했던 것과 같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사례도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성공적인 캠프 활동과 같은 희망적인 사례도 있었다. 그녀가 전달하는 모든 상황과 순간들은 굉장히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또한 그녀는 의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질환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녀가 앓고 있는 특정 질환뿐 아니라 다른 여러 정신과적 질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니 그녀와 함께 이 분야를 연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녀는 훌륭하게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동안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기에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과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느끼는 어려움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읽기 대단히 힘들었지만 너무나 흥미로웠던 책 [조율하는 나날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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