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케이스릴러
김혜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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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나 스릴러의 묘미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긴박함, 그리고 놀라운 반전에 있다. 책의 속도에 끌려가는 느낌이 들어야하고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하는 것처럼 사건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 캐리어 ] 는 스릴러가 갖춰야 하는 요소를 골고루 갖춘, 그야말로 기가 막힌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첫 장을 펴들자마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면서 독자들의 멱살을 잡아끈다. 빨리 따라오라고.

 

 

“ 남편은 엄마의 수술을 직접 집도했다. 엄마는 사위에 대한 고마움에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눈물을 흘렸다. 차기 병원장인 그가 숨겨둔 100억원의 비자금이, 수술 후 죽어버린 엄마의 묘에 묻혀있다. 피로 얼룩진 자금을 들고, 이제 남편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주인공 이선의 엄마는 갑작스럽게 큰 병에 걸렸다. 의사인 남편이 평소에 건강검진을 해왔고 큰 이상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터라 몇 주 사이에 퍼져버린 암은 의문의 여지로 남았다. 그러나 사위를 의사로 둔 엄마는 아무 걱정 없이 수술실로 향했고 곧이어 싸늘한 주검이 된 채로 주인공에게 돌아온다. 주인공이 엄마의 묘에 오는 것을 한사코 막아서는 남편... 엄마의 묘 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어마어마한 액수의 비자금?!

 

 

남편이 엄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주인공은 그에게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엄마가 돌아가시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 준이를 낳게 된 주인공은, 이제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힌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그녀를 바라볼 때면 느꼈던 싸늘한 눈빛, 여자가 죽어나가는 시댁, ( 질식사였던 시어머니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 ).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어머니의 장지에 나머지 식구들의 묘자리까지 봐놨다는 시아버지의 소름끼치는 발언 등등... 그녀가 남편을 떠나야할 이유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 세상천지 남은 가족이라곤 없는, 상냥하고 덜 배운 여자. 심지어 언제든 병자로 몰아가 필요한 만큼 쓰다 버릴 수 있는 아내 ”

 

 

빨리 도망쳐야 한다. 비자금을 위해서 자신의 엄마를 죽일 수 있는 인간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가 바로 그의 곁일 테니까.

 

그녀는, 아들 준이와 해외에서 행복하게 여생을 즐길 것을 꿈꾸며 도피의 계획을 세운다.

 

 

이 책은 밤에 보면 안될 것 같다. 드는 순간, 정말, 내려놓기가 힘든 책이다. 첫장면부터 스릴과 긴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머리가 좋고 치밀한 남편에게, 도피계획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도피과정을 연습한다. 준이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캐리어에 담아서 몇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녀. 이제 남편이 세미나를 위해서 집을 비울 그 며칠동안에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첫 장부터 많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상황이다. 과연 남편이 주인공 어머니를 죽인게 맞는지,,,,,, 그리고 엄마의 묘에 비자금이 묻혀있는게 맞는지..,,,, 애초에 비자금이라는게 있기는 한지..

 

 

사실, 여주인공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불안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을 내세운 탓에, 그녀가 경험하는 것들이 사실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냥 병으로 돌아가신게 아닐까 ?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너무 큰 탓에 그녀가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 실제로 그녀는 이제 남편 뿐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이웃 주민들도 의심하기 시작하는 그녀. 도망치는 과정에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남편이 고용한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그녀...

 

 

여주인공의 과대망상증과 편집증에 대해 의심할 무렵, 사건은 빵하고 터진다.. 그녀의 과대망상증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평범한 한 여인이 남편을 피해 도망가기 시작하면서 전문 도망꾼 ( 이런 말은 없지만 ㅋㅋ ) 으로써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했건만 남편은 벌써 그녀의 도피계획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파악한 것 같아 보인다. 여권이 사라지는가 하면 중간에 준이가 2번이나 사라진다. 남편이 심어두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정말 한편의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다. 속도감이 엄청나서 글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다음 장을 보기위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전형적인 page turner 이다. 실제로 책을 영화화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주인공이 겪어나가는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은 스크린에서 더 활기를 띨 것 같다... 벚꽃이 날리는 이 봄날,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기대해보려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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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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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어느 정도의 느낌이 묻어나지만,

이 소설에는 동시대 청년들의 애환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렸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카드사 콜센터 직원, 인터넷 방송 BJ , 알바생 등

N포 세상에 로 내던져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까.

각각의 소설들은 일의 가치( “어비” ), 직업 선택과 직업윤리( “가만의 나날” ), 청년 실업( “기도” ), 여성 노동( “저런 사람도 아니다” ), 감정노동자( “어디까지를 묻다” ), 이주 노동( “코끼리” ), 산업재해( “P” ), 해고( “알바생 자르기” ) 등 노동에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룬다.

 

어비는 화면 상단에 타이머를 띄운 다음 그것들을 빠르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일부러 마이크 가까이 입을 갖다 대고 요란하게 음식 씹는 소리까지 냈다.

뭐랄까. 그럴 때 어비는 뭔가를 먹는 사람이 아니고, 먹는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p33)

 

정말 일다운 일이란 어떤 것일까?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인터넷방송에서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을 자극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판단의 기준이 애매하다.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날마다 사용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신지 ∙∙∙ 아무 일 없으시길 바라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p58)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전에 상품평을 보기 위해 블로그를 많이 이용한다.

블로그의 사용 후기가 좋으면 일단 안심을 하고 물건을 구매하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물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졌다면 그 직업을 잘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법규를 찾아보니 아르바이트생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1년 이상 일한 피고용인이라면, 해고는 반드시 서면으로 통보해야 했다. 명확한 이류를 명시해서, 30일전에. 회사가 이걸 어기면 지방노동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하면 된다.’(p200)

회사는 아르바이트생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아르바이트생은 회사의 허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의 권리를 챙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부터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이든 장년들이든 여러 가지 이유로 직업을 찾으려 노력한다.

누구는 자아실현을 위해, 어떤 사람은 생계 유지를 위해.

직업을 가진 후에는 계속 그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경쟁을 해야만 한다.

그 와중에 " 번 아웃 증후군 " 이라는 웃지 못할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여성들은 현 주소는 어떠할까?

직장이든, 가정이든, 슈퍼우먼(superwoman) 이 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존재한다.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서도 노동 기본권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 노동 기본권' 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이다.

이 기본권이 제도적으로 잘 보장이 된다면 노동자들이 현재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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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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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책의 결말에 도달한 지금, 나는 또다시 이 괴물같은 작가의 무시무시한, 소름끼치는 반전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숨도 못 쉴만큼 내내 강렬하게 몰아치던 피아노 연주곡이 갑자기 멈춘 느낌이다. 세상은 정적으로 둘러싸이고 나와 이 소설만 존재하는 느낌? 역시 나카야마 시치리님의 작품이구나~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만큼 소설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평소에 추리소설의 내용 전개가 어떤 식으로 흐를지 대충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 소설의 결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나는 경악을 금치못했다.


주인공 하루카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사촌 루시아가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할아버지와 루시아와 함께 묵었던 별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그들은 죽고 하루카 혼자 살아남게 된다.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고 깨어난 하루카.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이제 유명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미사키 요스케라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그녀에게 레슨을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녀의 눈빛 속에 숨어있는 의지를 발견한 것이다. 매일 매일 굳어지는 근육과 싸우면서 다시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게 된 그녀. 그런데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 사실 엄청난 부자였던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았던 하루카가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이후, 그녀는 계속되는 이상한 사건에 시달린다. 할아버지와 사촌을 잃게 만든 화재 사건에 이어,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 하거나 목발 한쪽이 부러져있거나 길 가에서 누가 달리는 차로 그녀를 떠미는 등.... 하루하루가 살얼음 걷는 것 같던 그때, 어머니가 신사의 돌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대체 하루카와 이 가족을 노리는 어둠의 그림자는 누구일까? 과연 하루카의 유산을 노리는 내부 인물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 뿐인가?

작품의 특징에 대해서 잠깐 말하자면, [ 안녕, 드뷔시 ]는 늦깍이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를 데뷔하게 해준 작품이다. ( 2009년 제 8회 '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 )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작가가 피아노를 배우는 아들에게 '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가 누구 ' 인지를 물었고 드뷔시란 답이 돌아온 후, 그날 바로 CD를 구입해 들었다고 한다. 특히 < 달빛 > 과 < 아라베스크 1번 > 이 특히 인상적이라 이 두 곡을 중심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작가가 음악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그것도 훌륭히 써냈다니, .. 이 분도 천재?

그리고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 탐정 미사키 요스케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이다. 나 카야마 시치리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속의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를 떠올리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꽃미남 탐정을 만들어보았다고 한다. 음대 강사로 등장하는 미사키 요스케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동시에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부드러움과 냉철함이 결합된 느낌? 인기있는 캐릭터로 성장할 가능성 100%! 실제로 미사키는 하루카가 크게 다칠 뻔한 장소에서 증거를 수집하며 범인을 특정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 잘생긴 오빠가 형사가 된 느낌 )

" 현대는 불관용의 시대야. 누구나 다른 사람을 용서하려 들지 않거든. 죄인에게는 극형을, 더럽혀진 자, 몸이 온전치 않은 자에게는 숨어 살라고 해. ..... ( 중략 ) 악의라는 건 맞서 싸워야 하고 부조리는 뒤집어야 마땅해. 슬프면 남의 눈을 두려워 말고 울부짖는 편이 좋고, 억울하면 화를 내야 해. .... ( 중략). < 황제 > 가 인간의 잠재된 힘을 노래하듯이, < 혁명 > 이 침략의 잔학함을 공격하듯이 음악이라는 훌륭한 무기를 내려준 거야. 그리고 지금 너는 그 무기를 갖고 있어 ."

" 나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걸 갈망했다. 연이어 가족을 떠나 보내고 피부와 목소리를 잃었다. 몸의 자유마저 빼앗겼다. 잃은 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재활이 끝나도 팔다리에는 장애가 남을 것이다. 그래서 잃은 것 대신 새로운 뭔가가 갖고 싶었다.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 나한테만 허락되는 재산이 갖고 싶었다. " ( 358p )

" 할아버지의 말이 되살아났다. 도망치는 습관을 들이면 안된다. 싸움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스스로에게 지지 말거라 " ( 388p )

아픔을 딛고 피아노 대회에 나서는 그녀. 화재 이후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녀가 매달릴 곳은 오직 피아노 뿐이었다. 부드럽지만 엄격한 미사키 선생님의 지도 아래, 고군분투했던 그녀. 피아노는 그녀에게 전부이다. 욱씬거리고 비명을 내지르는 온 몸의 근육을 잠재우고 부드러운 선율로 시작하여 폭풍같은 연주로 몰아친다. 자신의 한계까지 몰아친 그녀...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정신을 잃게 만들 정도의 고통을 이겨내고 연주회를 마친 그녀에게 과연 1등의 영광이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계속적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작가의 데뷔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인 [ 안녕, 드뷔시 ]. 불행을 온 몸으로 받아야했던 소녀가 그것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100%, 아니 200% 발휘하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음악과 추리의 결합이 신선하다. 미사카 선생님의 천재적인 연주, 하루카의 폭풍같은 연주는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연주회에 직접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음악만 아는 샌님인 줄 알았던 미사카 선생님의 날카로운 추리력도 볼만한 구경거리이다. 역시 대작가의 작품은 초기작이라도 이렇게 꿀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작품 [ 안녕, 드뷔시 ]. 반드시 소장해야 할 작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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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위엄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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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령 코크루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인간이 지상에 단 한 명만 남는다 할지라도 바로 그 한 명이 자나 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

종이 동물원으로 SF와 중국 역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던 [ 켄 리우 ]. 나는 그 책을 읽고 혹시 그가 천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단편 소설집이긴 했으나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제 역사 장편 소설을 들고 독자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민들레 왕조 연대기 3부작 중, 1부작에 속하는 [ 제왕의 위엄 ]. 중국의 고전 [ 초한지 ]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는 하나, 완전히 역사에만 바탕을 둔 소설은 아니다. 허구와 가상의 세계가 적절하게 녹아있는 소설이다. 그가 만들어낸 [ 실크 펑크 ] 라는 장르를 통해 SF 와 판타지적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나 할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선이라든지, 한 눈에 눈동자가 2개나 들어가있는 중안 인간인 마타 진두. 그리고 납작 엎드린 자나의 왕이자 다라 제국의 제황인 마피데레 앞에 모습을 드러난 신들까지...... 신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다라 제국에서 일어난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에 다름 아니다라는 사실이 나타난다. 일곱 국가를 수호하는 각 신들은 그들끼리 전쟁하기도 하고 동맹을 맺기고 하며 평화에 동의하기도 한다.

" 자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전쟁의 시대는 끝났어. 마피데레가 평화를 불러온 거야. 너희가 아무리 탐탁잖아 해도. "

" 다른 신은 몰라도 당신만은 알아주셔야 합니다, 제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 평생을 바친 것을 ."

" 너는 온 세상을 피로 물들였다. "

" 더 많은 피가 흐르지 않도록 흘린 피였습니다 "

........ ( 103쪽 ~ 105쪽 : 꿈 속에 등장한 일곱 수호신들과 마피데레의 대화 중 일부 발췌 )

[ 초한지 ] 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하니, 진나라가 멸망하고 초나라와 한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이 어느 정도 책 속에 들어있다. 책의 중심 배경지인 다라 제도의 일곱개 나라를 통일한 자나 제국의 황제인 마피데레의 모습에서, 진시황제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영생을 꿈꾸며 몸에 좋다는 각종 음식들을 먹고 자신의 말에 거역하는 모든 신하들을 처단한다. 그리고 학자들의 책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 분서갱유 )

육국을 통일한 그였지만, 결국 영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리고, 그의 뒤를 막내인 에리시 황제가 이어나가면서부터 자나 제국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어린 에리시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을 맡은 크루포와 정치에 참여하지 않도록 황제의 관심을 술과 여자 등으로 돌리려는 수궁령 피라의 모습에서 권력을 탐하다가 나라를 말아먹는 몇몇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 그런데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 책을 보면 안다 )

한편, 육국을 정복한 자나 제국의 속국에서 조용히 차세대 리더로 자라나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 아마도 [ 초한지 ] 나오는 유방과 항우를 상징하는 인물, 쿠니 가루와 마타 진두가 바로 그들이다.

주인공 쿠니 가루는 수완이 좋고 사람들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인물로 그려진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던 젊은 시절엔 방탕하게 지냈지만 점점 주디 현을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로 커 나가는 인물이고 마타 진두는 제국을 통일하려던 자나 제국의 황제, 마피데레의 손에 일족을 몰살당한 인물이다. 그는 다시 진두 가문, 즉 왕가를 일으키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자아성찰은 적당히 하면 약이지만, 지나치면 독이야. 때로는 남들이 하는 얘기가 우리 삶의 틀이 되기도 하는 법이야. 자, 한번 둘러봐. 당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가 수백 명이나 돼. 저 사람들 소원은 당신이랑 같이 자기들 가족을 구하는 거야. 그러려면 주디 현을 차지하는 수 밖에 없어. "

쿠니는 머릿속으로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왼손이 잘린 무루와 그의 아들을, 시장에서 끌려갈 처지가 된 아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자나 출신의 늙은 여인을, 아들과 남편을 다시는 못 보게 된 과부들을, 제국의 비정한 철권 아래 삶이 짓밟힌 모든 백성을.

....... ( 184쪽 부인 지아가 쿠니를 설득하는 장면 )

나는 역사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아직 [ 초한지 ] 를 읽어보지 못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SF와 판타지적 요소가 강한, 켄 리우의 작품을 통해서 중국 역사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앞 뒤가 조금 뒤바뀐 느낌이긴 하지만 ) [ 종이 동물원 ] 에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중국의 한 면모를 엿봤고 이 책 [ 제왕의 위엄 ] 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진나라 시대 말기 초나라와 한나라가 일어서던 시대를 조금 맛봤다는 생각이 든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고 흥망성쇠를 반복했던 장대한 중국 역사가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이 작품의 바탕이 된 [ 초한지 ] 를 비롯하여 여러 중국 역사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켄 리우라는 작가의 작품을 2권 밖에 읽어보지는 못 했지만, 정말 이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현실에 바탕을 두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무한대로 펼치게 만드는 소설. 역사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미래세계를 나타내는 듯한 소설. 신화가 적절히 가미되어 인간의 일이 마냥 인간의 손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소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이, 이 동양과 서양의 요소 ( 역사와 판타지 ) 가 적절히 들어간 작품을 낳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켄 리우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면서 민들레 왕조 연대기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속국들의 조용한 봉기를 지켜보면서 [ 제왕의 위엄 ] 2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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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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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사이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난 미모의 여대생이 어느 날 아버지를 죽인 살해범으로 검거된다 "

다소 자극적인 이 문구가 무색하게, 이 책은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찔러 죽인 한 살인마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일그러진 가족 관계 속에서 제대로 된 어른으로써의 성장을 하지 못한, 한 불안정한 여성의 자아찾기.. 에 관한 이야기 로 해석이 된다. 내 생각엔. 그녀의 자아찾기엔 여러 명이 함께 도움을 준다. 어려서도, 그리고 자라서도 자신을 지지해주던 어른이 부재했던 주인공 칸나. 이 사건이 있기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무의식적 충동 ( 불안, 죄책감, 수치심 등등 ) 이라는 미로 속에서 눈이 가려진채 헤매고 있던 그녀.

주인공 20대 여성 칸나는 아나운서를 지망했던 전도유망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러나 2차 면접을 앞두고, 갑자기 방송국을 떠난 그녀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학교의 여자 화장실에서 그를 흉기로 살해한다. 신문에 대서특필 될만큼 센세이셔널 했던 이 사건을 두고 한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려 하고, 임상 심리사인 유키에게 그 일을 맡긴다. 유키는 자신의 시동생인 가쇼가 국선 변호를 맡은 사건이라 흔쾌히 이 부탁을 승낙하고 카나와의 면담에 들어가는데....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어나갔을 땐 " 분노 " 라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릴 적 부모의 학대에 가까운 방임과 잘못된 양육으로 인한 상처로 , 자신을 학대하며 팔에 자해행위를 했던 카나에 대해서 유키가 묻자, 이렇게 대답하며 냉담하게 반응하는 카나의 어머니.

" 그거 닭에게 공격받은 거잖아요 "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는 아버지의 말을 조금이라도 듣지 않으면 이런 얘기를 들어야했던 칸나.

" 호적에서 파버린다 "

부모란 사람들이 왜 이렇지? 결혼도, 출산도, 부모가 되는 것에도 면허증 발급이 필요하다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런데 갈수록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바로 칸나라는 구심점을 통해, 다른 주인공들의 심리도 함께 분석되고 해체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가 담고 있는 성적인 시선에 갇힐 수 밖에 없었던 유키, 그래서 남자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그녀와 어릴 적 어머니에게 심한 학대를 받은 뒤, 사람에 대한, 정확히 말하면 여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변호사 가쇼 등을 지켜보며, 문득 스스로에 대한 심리분석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건 뭘까? 양육되는 동안 받았을지도 모를,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상처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소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왜 소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지?

범인과 형사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엄청나게 스릴 넘치게 다가왔다. 유키라는 한 진지한 임상 심리사와 피고인 사이에 벌어지는 집요한 정신 분석 과정.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고기의 꼬리처럼,  칸나가 왜 아버지를 살해하려하였는지는, 나올 듯 나올 듯 끝까지 그녀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칸나와의 면담과 편지...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탐문. 제대로 된 답변조차 할 수 없는 약한 정신력의 칸나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직감을 믿으며, 끝까지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그들. 유키와 가쇼.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칸나를 위한 책이다. 버려지고 부서진 채 구석에서 울어야 했던 작은 아이.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엔 여전히 그 아이를 품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흔들리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까?

과연 유키와 가쇼라는 팀은 칸나의 자아찾기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그녀의 결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몰아치는 듯한 급박한 전개는 없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해감으로써 독자들의 눈을 한시도 놓치지 않으려는 [ 퍼스트 러브 ]. 최근 봤던 소설 중 가장 의미있었던 소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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