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 세상 모든 딸들에게 보내는 스님의 마음편지
선명 지음, 김소라 그림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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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고즈넉한 산 아래 자리잡은 고요한 절터에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스님들이 바쁘게 행사 준비를 하고 계셨었습니다. 그때는 추운 겨울이라 아파트에 살아도 덜덜 떨면서 살 때 인데 찬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옛날식의 절에서 살고 계시는 스님들의 모습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둘도 없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 둘도 없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은 모녀 사이인 동시에 서로를 이끌어주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이기도 하니까요. 어머니는 주지스님 그리고 딸인 선명스님은 제자인 스님입니다.

아들은 이해 못 하는, 딸만 느낄 수 있는 엄마에 대한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가, 또 어떨 때는 너무나 미워서 그냥 서로 모른 채 살았으면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너무 편해서 갑질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엄마를 생각하면 화가 났다가도 막상 엄마가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지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림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화로워지는 책입니다. 삽화가 곁들여져, 마치 동화처럼 귀엽게 그려진 다람쥐 스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스님들은 서로 싸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웅다웅 다투는 두 스님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역시 엄마와 딸이라 그런가요? 사소한 일로 다투고 토라졌다가도 금방 화해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니 인간적인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40쪽

“ 주지스님과 모처럼 단둘이 있을 때는 여느 모녀들처럼 엄청나게 싸우고 부딪칩니다. 특히 장거리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대화가 늘 아름다울 수만은 없습니다. 두 세 시간을 아주 격렬하게 티격태격, 내 말이 맞게 틀리네... 그리 싸우다 보면, 도착하기만 해봐라, 주지스님하고 말 안해야지, 속 터지게 입 꾹 다물고 있어야지, 하고 수십번은 생각합니다.

저자인 선명 스님은 어머니인 주지스님과의 일화, 타지에서 수행 정진을 하는 외국인 스님 이야기 그리고 살고 있는 절 주위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더 딸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어하는 주지스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선명 스님이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십니다. 속세를 떠나서도 딸에게 단정한 복장을 요구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다 같은가 봅니다.

선명 스님이 살고 있는 절에는 헝가리에서 온 주오스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20대에 강직성척추염을 앓았다고 합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건강을 되찾은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한국에서 출가를 하게 됩니다. 선명 스님이 바라보는 주오스님은 강직하고 단단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함께 수행하는 도반에 애정이 돋보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역시 수행하는 분의 글답게 마음속에 새겨놓을 만한 좋은 글귀가 많이 보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의 글은 역시 다른 가 봅니다. 힘든 절 생활을 견뎌가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해나가는 스님의 깨달음이 보입니다.

106쪽

사람은 자신이 지니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을 지니고 삽니다. 다른 이의 삶에 들어가봐도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부러운 이의 삶에 들어가봐도 그 삶에 또 다른 고통과 아픔, 애환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낸 인생이기에, 나의 삶이 가장 좋은 삶입니다.

선명 스님은 “ 존재에 대한 긍정 ”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살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글을 쓰십니다. 그리고 불교라서 그런지 인연법을 유독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연 관계에 대한 글은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만남과 이별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혼이 흔합니다. 이혼을 하는 와중에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됩니다. 이럴 때 선명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124쪽

“ 만남에 지켜야 할 예의가 있듯 헤어짐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자신의 인격까지 무너뜨리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미움과 원망을 바닥까지 보이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그 통증이 모두를 망가뜨립니다. 자기 자신마저도요 ”

모두가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한 글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잔잔해집니다. 삶의 고통에 찌들렸던 아픈 마음이 조금씩 치료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주지스님이 된 어머니와 그녀를 따라 스님이 된 딸의 아웅 다웅 절 생활 이야기. 힘들기는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우는 선명 스님의 눈을 통해서 독자들도 삶에 대한 많은 성찰을 할 수 있겠지요.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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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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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런 문체를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나? 이 소설은 d 라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물 흐르듯, 독자들에게 영화처럼 보여주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목공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d는 내심 그를 무시한다. 형편없는 솜씨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이 신성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아버지. 왜?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밥벌이니까.... 그러나 d는 그런 아버지를 혐오스러워한다. 고요와 평화를 좋아하는 d에게 있어 아버지의 일은 소음만을 일으키는.... 그냥 노동에 불과하다.

이렇게 냉소적이었던 d는 삶에서 신성함을 발견한다. d를 둘러싼 환경은 변한 것이 없으나 d로 하여금 삶의 신성함을 발견하게 만든 주인공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dd. 그전까지는 그 무엇도 아니었던, d의 삶은 dd를 만나면서 신성한 것이 된다. d는 사랑만이 인간을 존재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다.

18쪽

"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를 이따금 성가시게 했던 세계의 잡음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

그러나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dd는 한순간 d의 삶에서 사라져 버린다. dd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d. 어느새 차가웠던 사물들은 누군가가 ( 정확하게는 dd가 ) 남기고 간 미지근한 온기를 띈다는 사실을 느끼며, d는 차가워진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dd의 부재로 인해, 마치 사나운 적의 공격을 받고 집 안으로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는 달팽이처럼, 그는 그렇게 숨어있다. 미지근한 온기를 가진 사물들의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여기에 여소녀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전자 제품 수리공이 있다. 그는 세운 상가의 5층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 곳은 이제 여소녀를 비롯한 몇 명만이 남아서 그 명색을 유지할 뿐이다. 그도 앞서 말했던 d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는데 당연히 d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튼튼하게 유지될 거라 믿었던 자신의 치아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세운상가에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이 상가를 기반으로 했던 자신의 삶에도 천천히 균열이 일어남을 느낀다.

69쪽

이것은 망가지지 않는다. 자신있게 말하는 인간은 더러 보았지만 (... 중략 ...) 여기 사람들은 그저 망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중략..) 그러나 여기 이렇게 균열들이 있다. 멀쩡하다는 것과 더는 멀쩡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앞면과 뒷면일 뿐. 언젠가는 뒤집어진다.믿음은 뒤집어지고, 거기서 쏟아져 내린 것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지저분해질 것이다.....

무너져가는 삶의 터전으로 인해 상실감을 느끼는 여소녀와 소중했던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구토와 환멸을 느끼는 d가 우연히 소통을 하게 되고, 이상하게도 접점을 느끼는 그들. 고아처럼 내던져진 d에게 여소녀가 손을 내밀었다고 보면 될까? 여소녀의 눈에 d의 쓸쓸함이 보였나보다.

이 소설 [ dd의 우산 ]을 읽으며, 사람들의 삶이 가엾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소설은 내내 그들 눈에 비치는 이 세상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어두운 상가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문득 저승을 떠올리는 여소녀, 그리고 dd가 없는 이 세상에서 매일 죽음을 떠올리는 d. 비를 맞고 있던 d에게 선뜻 자신의 우산을 빌려주었던 dd의 따뜻한 마음과 대비되는 바깥세상의 차가움 그리고 세상을 다 산 듯한 사람들의 느린 움직임.

[ 디디의 우산 ] 은 절벽으로 내몰리는 듯한, 아니 이미 내몰린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여소녀의 작업실 한 구석에서 dd가 남기고 간 레코드로 음악을 듣고 있는 d.... 그는 생각한다. 모두 누군가를 잃으며 살아간다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d는 그 와중에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 거라고.. 덧없고 덧없고 덧없는 삶이지만 음악을 듣는 행복한 찰라의 순간을 찾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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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언제나 옳다 - 아빠와 함께, 조금 더 지적인 파리 여행
강재인 지음 / M31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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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 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로망의 여행지이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아마도 파리만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분위기, 고풍스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여행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작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는데, 상상했던 이탈리아와 달라서 실망한 점이 많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민박집은 추웠고 주인장은 불친절했다. 영어로 소통도 잘 안되고 교통도 좀 불편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에 생각해보니, 편리하게 여행했던 아시아 지역보다는 이탈리아가 마음에 많이 남았다. 힘들고 불편했던 점은 더 이상 생각이 안나고 웅장했던 대성당과 아름다웠던 거리만이 마음에 남았다.

이 책의 저자인 강재인 씨는 아버지와 함께 여행자의 로망인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기 위한 파리 여행. 두 사람의 여행답게 이 책에는 주요 저자인 강재인씨의 시각으로 본 파리여행과 아버지의 시각으로 본 파리여행이 두 가지 버젼으로 쓰여져 있다. 세대 차이가 있는 두 사람이 바라보는 파리는 어떻게 다를지.. 책을 보기 전부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 제목은 [ 파리는 언제나 옳다 ] 이지만 부제목은 [ 아빠와 함께, 조금 더 지적인 파리 여행 ] 이다. 책을 읽어보니 이 책에는 부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여행은 테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예술가와 문인이 머물렀던 주요 관광지 탐방. 이 부녀는 파리의 예술가와 문인들이 주로 다니던 카페와 레스토랑을 방문하고 장소들에 대한 감상과 그곳에 자주 출몰하던 예술가와 문인들의 삶과 작품 활동 등을 여행기에 담았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의 경우, 풍경 사진이나 먹거리 사진 혹은 여행지에 대한 본인들의 감상이 쓰여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의 경우, 옛 파리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예술가와 문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매우 흥미로웠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아버지와 딸은 [ 미라보 다리 ] 방문을 두고 약간의 신경전을 벌인다. 저자가 미리 짜놓은 여행 계획에 미라보 다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 [ 미라보 다리 ] 에 가자고 적극 주장한 이유는, 이 다리에 연관된 한 시인과 화가의 사랑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 미라보 다리 ] 라는 시를 쓴 시인의 이름은 기욤 아폴리네르 이고 그는 19세 때 파리로 이민와서 가난한 예술가들 -- 화가 피카소, 화가 루소, 시인 장 콕토 등 --- 과 어울린다. 그러다 1907년 피카소의 소개로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난다. 그들은 첫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혼관이 맞지 않아서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들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를 언급하며,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미라보 다리를 거니는 부녀. 삶의 본질은 결국은 고독이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카페 레 되 마고를 찾아간 그들은 이 카페를 자주 방문했던 문인들의 이름이 적혀있던 팸플릿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이름을 찾아낸다. 아버지는 그들의 계약결혼에 대해 언급하면서 1929년 그 당시 치고 매우 파격적인 결혼이었지만 서로의 자유를 허락한 긍정적인 방식이었다고 하는 반면, 저자는 그 계약결혼이 가식으로 느껴진다면서 아버지의 생각에 반격을 가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저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자유 연애를 허락하는 식의 결혼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확실히 이런 면에 비추어봤을 때 아버지의 연륜을 무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더 보수적일 수 있는데, 남녀 간의 결합이 반드시 결혼 (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닫힌 결혼 ) 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사실 어릴 적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여행은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사실 이 부녀는 둘 다 고집이 굉장히 쎄서 여행을 하는 동안, 하나의 주제를 두고 투닥투닥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옛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자주 찾았던 커피숍과 동네 서점을 다니며 파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에 젖어든다. 보통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녀오기 쉬운 여행인데.... 예술 탐방이라는 테마가 있는 여행...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여행... 너무 괜찮은 여행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펜과 노트를 꺼내본다.. 언젠가는 떠나게될 파리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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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방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3
다니자키 준이치로 외 지음, 김효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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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 추리 소설 시리즈 1편 재미있게 읽었구요. 3편도 많은 기대가 됩니다. 이번에는 탐정들의 심리묘사 등에도 초점을 맞춘다고 하니 완전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꼭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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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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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 [반지의 제왕] 과 함께 영국 판타지 문학의 계보를 이를 새로운 고전으로 찬사받은 작품. 27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한 이 작품을 쓴 저자의 이름은 리처드 애덤스. 그는 1972년 두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 작품 [ 워터쉽 다운 ] 으로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첫 배경은 토끼들이 옹기종이 모여사는 샌들포드 마을이다. 주인공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진, 허약한 토끼 파이버와 리더 기질을 가지고 있는 그의 사촌 형제 헤이즐. 파이버는 샌들포드 마을이 핏빛으로 변하는 환각을 보게 되고 그 환각에 지속적으로 시달린 후, 얼른 마을을 탈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헤이즐은 긴가 민가 하지만 평소에도 파이버가 불길한 일을 정확하게 예언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를 족장에게 다급히 알리러 가지만, 족장은 애가 타는 두 형제의 간청 - 모두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 에도 콧방귀만 뀌며 무시하고, 도리어 족장과의 만남을 허락한 빅윅을 다그친다.

결국 헤이즐과 파이버는 자기들 만이라도 마을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고 함께 따라올 토끼들을 모집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족장에게 불만을 갖게 된 빅윅과 마을 생활에 불만을 갖게 된 블랙 베리 등이 있다. 빅윅은 머리에 텁수룩한 털을 가진 토끼인데 용기와 투지를 가진 토끼 부족 최고의 전사다. 그리고 블랙 베리는 침착하고 현실적이며 토끼답지 않은 영리함을 가지고 있다. 댄더라이언이라는 토끼도 함께 하는데 그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토끼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힘을 길러준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들의 여정은 만만치가 않다. 우선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종종거리고 있는데 그들이 지나온 숲 속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왕왕 울린다. 어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개의 이빨에 물어뜯길 지도 모른다. 어쩔 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헤이즐 일행들. 그러나 널빤지를 이용한 블랙 베리의 재치로 강을 건넌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까마귀에게 쪼이는 약한 토끼들인 파이버와 핍킨. 하지만 힘쎈 빅윅과 실버가 까마귀를 공격하여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낸다.

이런 고생스러운 일을 겪어가며 길을 가던 중, 파이버가 던지는 예언 한마디.

“ 저기가 우리가 살 곳이야. 인간이 오지 않는 언덕. 저 언덕들과 우리 사이에는 짙은 안개가 가로막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겠지만 저 안개를 헤치고 나가야 해. 어쨌든 안개 속으로 들어가야 해.. 우릴 속여 길을 잃게 하는 안개 말이야 ”

주위에 안개 같은 건 없는데 이런 말을 하는 파이버를 보는 헤이즐은 알쏭달쏭 하기만 하다. 파이버는 이런 말을 뱉어놓고는 기억조차 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시 길을 나서는 무리들. 멀리서 들판을 찾아낸 헤이즐 무리들은 기쁜 마음에 들판으로 내려가 그들이 지낼 굴을 파기 시작한다. 그러나 굴을 파는 것은 원래 암컷들의 몫. 수컷들에 의해서 참으로 허술한 굴이 지어진다. 이래서 제대로 하룻밤이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중에 그들은 새로운 토끼를 만나게 되는데, 잘 먹어서 덩치도 좋고 윤기도 좔좔 흐르는 낯선 토끼. 그는 자신을 카우슬립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마을에 묵을 것을 권유한다. 그에게서 섬뜩한 기운을 느낀 예언자 파이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카우슬립을 따라가는 헤이즐을 비롯한 나머지 무리들, 그들은 과연 어떤 운명을 만나게 될 것인가?

사실 이 워터쉽 다운은 쪽수가 700쪽이나 되는 토끼 군단의 대장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들은 몇 번이고 모진 운명을 만나게 되고 그 때마다 자신 안에 있는 현명함과 재치 그리고 힘으로 그 상황을 극복한다. 비록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죽음만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뭔들 못 하랴! 풀만 뜯어먹고 똥만 싸는 뭔가 밋밋한 토끼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나는, 이 책을 계기로 모험하고 도전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진 토끼들을 만나게 되었다. 엘릴 (적을 나타내는 말), 실플레이 ( 먹이를 먹으러 땅 위로 나가는 일 ), 엘-어라이라 ( 토끼족 전설 속의 영웅, 천의 적을 가진 왕자라는 뜻 ), 등등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똑똑한 토끼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얻기 위한 토끼들의 긴장감 넘치는 대장정....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을 토끼스러운 명랑하고 발랄한 모험의 세계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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