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야식
하라다 히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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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하는 밤이 있다.

상처받은 날일수록 마음에 스며드는 야식을 먹자."

스스로 활자 중독이라 생각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언젠가는 조용하지만 커피가 맛있는 북 카페를 선물하고 싶다고 늘 상상해왔다.

그리고 낮보다는 밤에 책이 더 잘 읽히고 책을 읽다 보면 슬슬 야식이 당기는 나.

소설 [도서관의 야식]을 읽는 동안, 나는 행복감이 가슴속에서 충만하게 들어차는 걸 느꼈다. 이런 도서관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연간 회원권을 끊고 매일 출근하듯 다니지 않을까?

주인공 히구치 오토하는 교원 채용 시험에서 떨어진 후, 책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계약직으로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익명의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꾸준히 글을 올리던 어느 날, '세븐 레인보우'라는 계정으로부터 DM을 받게 된다.

'세븐 레인보우'는 오토하에게 도쿄 교외에서 운영되는 작은 도서관에서 일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 도서관의 이름은 '밤의 도서관', 이름처럼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문을 열고

유료로 운영되며 대출은 불가하다. 이곳에서 오토하가 할 일은,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서 기부받은 장서를 전시하고 정리하는 것. 뭔가 비밀스럽고 낯선 환경을 두려워했던 오토하는 매니저인 사사이와 직원 아코, 마사코 그리고 미나미 등등이 굉장히 친절한 사람들이고 업무 환경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서서히 이곳에 적응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우선 회사 동료와 '작은 아씨들'이나 '빨간 머리 앤'와 같은 작품에 대해 마음껏 의견을 나누고 함께 드라마 시리즈를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밤의 도서관' 옆에 딸려있는 작은 카페에서 만들어주는 요리들.

작품 속에 나왔던 요리들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다니,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일 듯.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작고한 작가들이 남기고 한 장서들이 아닐까?

특정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푹 빠져있는 독자들은 작가들이 간직하고 있던 책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오토하가 너무너무 부러웠다. 책들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정리하고 전시하는 일만 하더라도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은 느낌!

소설 [도서관의 야식]은 다소 비밀스럽다. 직원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아끼고

도서관 오너가 누군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책이라는 공통 주제로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는 '밤의 도서관' 직원들을 보니 내 마음마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그런 에너지가 있다.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가는 에너지.

이 책이 단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건, 내 욕심일까?

오토하와 사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보고 싶고

밤의 도서관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도 보고 싶다.

읽는 순간 "밤의 도서관"이라는 신비로운 장소로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 [도서관의 야식]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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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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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가 당신을 노리는지, 아주 조그마한 이유라도 있다면

나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잖아.

미안하지만 얼마나 더 당신이 이러는 걸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장르소설이지만 독서하는 동안 이렇게 불안하고 심장이 조여오는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혹은 미쳐가는 한 여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가운데 조금씩 다가오는 살인자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주인공 캐시. 그녀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규칙적이고 아주 집요하다. 아마도 살인자가 걸어오는 듯한 침묵의 전화를 받으며 점점 고립되고 자신을 잃어가는 캐시. 도대체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능력 있는 교사인 캐시는 방학이 시작되면서 동료 교사들과 밤늦게까지 파티를 하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탓에 도로가 더 위험하다고 느낀 캐시는 남편 매튜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소 어두컴컴한 숲길인 블랙워터 길을 거쳐서 집으로 오게 된다.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길이지만 지름길이라 15분 만에 집에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블랙워터 숲길. 그런데 오던 도중 멈춰 서 있는 한 차를 발견하게 되는 캐시. 도움을 주려는 마음도 있었으나 형편없는 날씨 탓을 하며 캐시는 그냥 집으로 온다.

다음날 캐시는 숲속에서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면서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캐시는 그때부터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죄책감이 그녀의 정신을 좀먹었던 걸까? 캐시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 친구들과의 약속을 깜박 잊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 빈도수가 점점 더 잦아진다. 캐시의 어머니가 마흔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치매에 걸린 후 고생하다 돌아가셨기에 점점 더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캐시.

소설 [블랙워터 레인]은 방학 기간인 7월부터 9월 초까지 약 2달간 벌어지는 일을 아주 숨 가쁘게 담아내고 있다. 캐시가 쓰는 일기 형식으로 서술되는 소설이기에 독자들은 그녀가 느끼는 혼란과 죄책감 그리고 분노와 고립감 등등 심리적인 부분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다.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이후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 캐시가 조금씩 무너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소설인데, 이게 정말 공포 그 자체다. 마치 조금 전에 산 입구에 들어섰는데, 걸었던 기억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정신 차려보니 절벽에 있는 상황이랄까? 주문하지 않은 물건이 배달되고,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을 새카맣게 잊어버리는 캐시. 이런 와중에 살인자가 쓴 무기라고 밝혀진 칼이 그녀의 부엌에 놓여있는 환상까지 보게 되는데....

이 책은 마치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같다. 예고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지키지 못한 약속들 속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주인공을 보면 엄청난 심리적 압박과 서스펜스 둘 다를 느낄 수 있다. 독서 내내 조현병 환자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대로 서 있는데,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정말로 이 모든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치매라는 질환을 물려받은 캐시의 정신이 무너지는 상황일까? 현실이 나를 심하게 조여온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나 자신보다는 그 현실을 의심해 볼 일이다. 영국 최고의 심리 스릴러 작가라는 타이틀답게 굉장한 서스펜스와 스릴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B.A. 패리스의 신작 [블랙워터 레인]을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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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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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은행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 사건

과연 그 범인은...?

치밀하면서도 스피디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걸작!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자 유명 시리즈인 [한자와 나오키]의 작가 이케이도 준의 데뷔작 [끝없는 바닥]을 읽었다. 거대 은행에서 벌어지는 권력 싸움과 음모 그리고 진실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주인공의 활약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작가 이케이도 준. 금융계를 배경으로 한 장르물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끝없는 바닥]도 엄청난 테이지 터너였다!


소설 [끝없는 바닥]은 주인공 이기 하루카에게 매우 중요한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대형은행인 이토은행의 기획부에서 일하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시부야 지점으로 좌천된 주인공 이기. 낙심한 그에게 힘을 준 것이 바로 같은 지점에서 근무했던 친구 사카모토였다. 그런데 기업의 불량 채권 회수 담당이었던 그가 외근을 나갔다가 하루아침에 차에서 죽은 채 발견이 되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죽기 전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몰래 인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은행이 발칵 뒤집힌다.


사카모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비리 앞에서 어안이 벙벙한 이기. 그러던 어느 날 이기가 살고 있는 맨션으로 찾아온 형사들은 사카모토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제기한다. 단지 사카모토의 사인이 알레르기성 쇼크사라는 것만 알고 있던 이기는 형사들에 의해 그가 벌에 쏘여서 죽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형사들은 사카모토를 마지막으로 본 이기를 의심하는 발언과 함께 사카모토가 저지른 부정 송금과 살인을 연관 지으려 하는데.,...


한편, 사카모토가 생전에 하던 일, 기업의 불량 채권 회수라는 일을 대신 맡게 된 이기는 사카모토가 죽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 너 나한테 빚진 거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그에게 던졌던 사카모토. 그뿐만 아니라 사카모토는 이미 도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기업인 도쿄 실리콘의 사장 야나기바 씨와 그의 딸 나오에게 "기대하지 말고 기대하세요"라는 말도 남겼다.


사실 도쿄 실리콘은 이기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남긴 회사이기도 하다. 시부야 지점으로 오게 된 그가 융자 업무를 맡게 되면서 알게 된 도쿄 실리콘 사장 야나기바 씨는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가 부모님 없이 컸다는 걸 알게 된 야나기바 사장이 저녁 식사에 자주 초대해 준 덕택에 그는 마치 가족과 함께 보내는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도쿄 실리콘은 큰 거래처였던 신에쓰 머티리얼이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자 동시에 파산하게 되었고 평범한 은행 직원인 이기는 도쿄 실리콘을 구해줄 수가 없었는데....


조직 인간이지만 절대로 조직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 이기 하루카. 그가 움직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는 오직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 친구 사카모토의 죽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비밀리에 사카모토가 남긴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 조금씩 사카모토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과 진실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들어가게 되는 이기.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협당하는 이기. 사카모토가 남긴 컴퓨터 자료는 물론 인쇄 자료까지 누군가가 처리한 상태. 그리고 누군가가 이기의 우편함에 죽은 벌을 남기거나 길을 걷던 이기와 직장 동료를 공격하여 가방을 뺏어가게 되는데... 과연 이기는 무사히 친구 사카모토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그 이면에 도사린 거대한 비밀과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일보다는 인간관계가 정말 힘들었고 정치질을 하는 사람들이 승진이 빠른 걸 보고 대단히 씁쓸함을 느꼈었다. 정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그때 느꼈던 것 같다. 한때 대형 은행에 근무했던 이케이도 준 작가도 기업 내 세력들 간의 암투와 음모 그리고 배신을 많이 겪었고 그 경험이 그를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은행에서 벌어진 연속적인 살인 사건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엄청난 비밀을 추적하는 강인한 주인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작품 [끝없는 바닥]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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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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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고통을 끌어안고

슬픔과 막막함으로부터

다시 삶을 써 내려가는 자기 해방의 기록

책 [태어나는 말들]을 읽는 동안,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리게 되었다. 세상이 제시하는 틀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그녀들은 잠시 맛본 자유의 달콤함을 기억 속에 간직한 채 공기 속 먼지로 사라진다. 강렬한 결말 때문에 놀랐고 한편으로 가슴 아팠던 영화. 비록 나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태어나는 말들]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던 한 여성을 떠오르게 만든다.

[태어나는 말들]은 누군가를 애도하는 묵직한 슬픔으로 가득찬 책이다. 작가가 느끼는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읽는 내내 먹먹함을 느껴야 했다. 작가 조소연씨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어머니의 삶을 재조명하게 된다. 그녀는 왜 스스로 삶을 등져야했고, 딸인 자신이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가슴을 치며 스스로를 원망하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작가는 고통스러운 복기를 통해 어머니가 느꼈을 감정과 생각을 유추해내고 그녀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만한 것들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민한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은 각각 1부 : 애도와 기억 / 2부 : 여성은 왜 아픈가 / 3부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로 나뉘어진다. 1부는 주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으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온 어머니. 그녀는 자식들이 모두 그녀의 품을 떠난 이후 빈 껍데기로만 남은 스스로를 위해 산을 오르게 된다. 거기서 연인을 만나게 된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욕망을 따르게 되지만 결국 그녀는 스스로를 단죄하게 된다.

작가는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다시 떠올려본다. 차라리 본인의 자유와 욕망에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녀는 정신 질환 즉 히스테리에 가까운 광기에 시달렸었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2부에서 작가는 여성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에 집중하게 된다. 평생 감정적으로 억눌려 살게 되는 여성들이 겪는 자궁 질환이나 히스테리에서 비롯되는 듯한 조현병과 망상 그리고 그누구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늙은 여성의 욕망 등등을 짚어가면서 조금씩 어머니의 죽음에 다가가게 되는 저자. 그러면서, 저자는 흔히 여성들이 삶에서 겪게 되는 문제와 자궁 질환과 같은 여성 질환이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이제는 여성 모두의 이야기로 그녀는 점점 다가간다.

고통이 너무나 커서 숨조차 쉬기 어려울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사람들마다 각자 방법은 다르겠으나 편집자 출신의 작가 조소연씨는 역시 활자로 풀어내는 방법을 택했던 것. 어머니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죽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덧 여성 전체가 겪는 문제로 옮겨가게 된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남편과 아들들, 즉 남자들에게 맡겨 버리거나 불쑥 불쏙 올라오는 욕망과 감정을 억누르고 덮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동안 여성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프게 되고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한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고 여성들과의 연대로 나아가게 되는 저자. [태어나는 말]은 굉장히 무겁고 슬픈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회복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 책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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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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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어.

그 영상을 보면 자꾸 뭔가가 떠올랐으니까.”

소설 [우리가 본 것]은 인터뷰 형식의 다소 짧은 소설이다. 하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매일 홍수처럼 밀려드는 영상들을 보고 열광한다. 그러나 물건을 사용한 후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듯, 인터넷에 실리지 못하는 유해 영상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설 [우리가 본 것]은 유해 영상 삭제 처리라는 매우 어둡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묘사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케일리와 동료들은 한 미디어 기업을 위해서 온라인에 게시가 가능하지 않은 영상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헥사라는 하청 기업에 소속된 이들 노동자들은 기업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게 영상들을 골라내어 삭제하지만, 가이드라인은 그때그때 바뀌기에 평가 기준이 다소 애매모호하다. 겉으로 보기엔 명백한 유해물 – 동물 학대, 성폭력, 자해 등등 – 일지라도 약간의 변수에 따라서 온라인 게시가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이 실제 노동 현실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고 있다면, 정말 엄청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감수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그들은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처참한 영상을 매일 봐야 한다. 보안을 위해서 서로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매일 500개 이상의 게시물을 다뤄야 하고 하루에 딱 2번만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죽도록 일하고도 애매한 평가 기준 탓에 영상을 걸러내는 속도나 정확도가 떨어지면 해고를 당한다. 그야말로 직원의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 케일 리가 직장을 그만둔 후에 그녀에게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변호사 스티틱과 나누는 대화 위주로 서술된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마치 고해하듯 토해내는 케일리를 보면서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얼마나 좀먹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케일리. 그녀가 회사에서 겪었던 일은 그녀의 정신을 파괴했고 결국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망가뜨리게 된다.

소설 [우리가 본 것]은 짧지만 강렬하다. 미디어 시대라는 화려함 이면에 숨어있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 안에서 혹사당하는 노동자 흉내를 내면서 사회 현실을 고발했듯이, 이 소설도 엄청난 양의 콘텐츠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 공장들 – 즉 IT 기업들 -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부분에는 이런 말이 실려있다.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그들의 경험은 창작의 산물이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물론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한 픽션이겠지만 이 소설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대중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정신적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편한 사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사회 현실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소설 [우리가 본 것]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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