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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20년 전쯤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이 마흔에 다시 읽어보니 왜 스무살 무렵에 읽은 이 책이 기억나지 않는지 확실히 알겠다. 단지 20년 전이란 시간이 내 기억력을 이른 겨울 항구의 아침 안개처럼 아득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스무살 무렵의 나에게 이 책의 주인공, '정신 나간' 10대 홀든 콜필드의 헛소리는 내 두뇌 속에 어떠한 의미의 맥락도 만들지 못한 것이다.
민음사판 번역본의 띠지에 "출간 50주년, 아직도 전 세계 젊은이들이 정신을 뒤흔들고 있는 문제작"이란 광고성 글귀가 있다. 콧방귀가 절로 나온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이 레논을 쏘고 이 책을 읽으면서 경찰을 기다렸다는 일화가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이 책을 신화화 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대중들의 이목을 피해 지금까지 은둔생활을 한다는 작가의 괴짜스러움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어느 십대 '찌질이(Loser)'의 이야기다. 뉴욕의 변호사 집안 아들은 열여섯 살 홀든 콜필드는 바야흐로 네번째 학교에서도 퇴학당하고 만다. 그의 눈에 비친 주변의 인물들과 세상은 역겹고, 가식으로 가득찼으며, 잘난 체하는 못난 놈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주변의 인물들-선생님, 룸메이트, 여자친구,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 창녀 등등-과 소통을 꾀하지만 언제나 대화는 어긋나고 종종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그는 충동적으로 말이나 행위를 내뱉는다. 그리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얼른 그것을 거짓말로 얼버무리곤 한다. 늘 상대가 문제다. 가끔 자신이 미친 것이 틀림없다는 자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기껏해야 자신의 어린 여동생 피비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고 대화가 통하는 상대다. 집을 나와 멀리 떠나 오두막을 짓고 벙어리나 귀머거리 흉내를 내며 살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을 따라 나서려는 여동생 때문에 포기한다. 이상은 그가 마침내 정신병원에서 형 D.B.에게 들려준 독백이었다.
이 책이 미국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명하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홀든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방황이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몇몇 학자들을 빼고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거나 주인공의 행위에 공감을 느끼는 한국인은 본 적이 없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홀든 같은 아이들이 콜럼바인 고등학교나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심각한 사회부적응에 우울증과 강박증과 불안증에 시달리는 이 '병든' 아이들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