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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어본 소만 존재한다 - 월호 스님의 십우도 풀이
월호 지음 / 운주사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절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벽화가 바로 십우도(十牛圖)이다. 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열 개의 그림으로 소를 찾는 그림이란 뜻으로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한다. 송나라 때 임제종 양기파의 곽암 사원 스님이 선 수행의 과정을 열 개의 그림과 게송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직지인심(直指人心)을 강조하여 수다스런 설명을 생략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은 곧 생각이고, 생각은 바로 분별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십우도는 그림과 최소한의 말인 시로 선 수행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세어본 소만 존재한다>라는 책은 쌍계사 국사암에 주석하면서 대중들에게 불교을 널리 알리고 있는 월호 스님의 저작이다. 스님은 십우도를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첫번째 심우(尋牛)에서 세번째 견우(見牛)까지는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이고, 네번째 득우(得牛)에서 여섯번째 기우귀가(騎牛歸家)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익힌 습기를 참회, 발원, 기도를 통해 없애 나가는 과정, 일곱번째 도가망우(到家忘牛)에서 아홉번째 반본환원(返本還源)까지는 참선을 통해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본마음이 드러나는 과정, 마지막 열번째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세속에 들어가 법륜을 굴리는 행불의 소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안한 말씀이지만 월호 스님의 십우도 풀이는 너무나 어긋난 소리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미 견우 단계에서 본성을 보았는데 참선을 통해 몸이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진 다음 아홉번째 단계에서 본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은 무슨 해괴한 말씀인가? 이분이 실제 수행과 체험이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만 십우도를 풀이해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소를 찾아나섰다가 발자국을 보고 소를 발견하기까지, 즉 초견성, 처음 자신의 본 성품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과정은 바로 깨달음의 체험 이후의 공부, 바로 오후수행(悟後修行), 흔히 보림(保任) 공부다. 참선은 본래 자신에게 완전하게 갖추어진 깨달음의 성품을 발견하는 것이다. 새롭게 없던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기에 본 성품의 발견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익힌 습관 탓에 본래 아무 일도 없는 본성 대로 생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네번째 득우부터 일곱번째 도가망우까지는 이전까지의 습기를 없애고 '소'라고 하는 '자신의 본성품'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다. 대혜 스님이 '낯선 것에는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에는 낯설어지는 것'이라고 한 말이 바로 이 보림공부다. 그런 와중에 문득 '과거의 습기'(가짜 나)나 '자신의 본 성품'(진짜 나)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본래 없었음을 사무치게 되는 것이 여덟번제 인우구망(人牛俱忘)이다.
나도 따로 없고 법(깨달음)이라 할 것도 따로 없는 경지다. 견성한 사람들 가운데 끝까지 그들을 괴롭히는 물건이 바로 '깨달음'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나는 깨달았다'라는 이 미세한 망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나'가 있고, '깨달음'이 있어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자신을 살펴가다 보면 그러한 미세한 분열이 저절로 사라지고 말쑥해지는 경지가 드러난다. 그러면 따로 '나'니 '깨달음'이니 할 것 없이 나무와 새, 산과 들, 하늘과 땅이 모두 '나'이고 모두 '깨달음'이다. 한마디로 '세계가 한 송이 꽃'인 것이다. 그것이 반본환원이고, 그런 경지에서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목 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는 사심없는 행동이 저절로 나오니 그것이 바로 입전수수의 경지다.
비록 열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첫번째 심우에서부터 마지막 입전수수까지의 단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소를 찾아 나설 때 아득한 수풀 속에서 들리는 늦가을 매미 소리가 모든 소식을 아낌없이 누설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