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아침 저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Minor Swing>을 듣는다.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조금 있으면 '또'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사는건 참 힘든 일인 것 같다고 했더니 P가 '보통은 죽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너는 사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는 <Minor Swing>을 들을 때마다 행복하면서도 막 슬퍼진다고 했다.(나에게 처음으로 이 음악을 알게 해준 사람이 P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윗입술이 부르텄다. 어려서부터 피곤할 때면 입술과 입술 주위에서부터 신호가 온다. 그런데 이렇게 입술 주변이 지저분해질수록 정신은 더욱 더 명료해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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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에 누가 메세지를 남겼다는 메일이 들어 있어서(이럴 때나 들어간다)오랜만에 로그인. 그런데 낯모르는 86년생 여성분이었다. 로그인한 김에 그렇다고 그냥 냅다 뛰쳐나오기도 아쉬워서 T는 뭘하고 있나 가보았다.(여전히 냉정한 금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몰랐는데 Facebook에도 이미 읽은 책 리스트를 표지 이미지와 함께 올려 놓는 시스템이 있었다. 벌써 아주 오래전 일같은데도 우리가 함께 들었던 강의에서 교재로 썼던 책은 언뜻 표지만 봐도 가슴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Le bel inconnu")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발견! 친구로 등록하고 싶다는 첫번째 메세지를 T는 이렇게 써놓았었다.(나는 오늘 처음 봤다.)  

'You took literature, picaresque novel in the spring of 2004.'

나도 어떤 봄에는 소설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봄이 당장은 벗어나고 싶지만 언젠가는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될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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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나
배수아 지음 / 이마고 / 2002년 2월
품절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줄의 맨 뒤로 가서 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줄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줄이란 질서이고 질서는 개인의 욕망 때문에 필요해진 것이다. 사로잡힌 경험의 기억은, 자신을 버리는 것과 닮아 있다. 그들은 한때,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 은밀히 문을 닫고, 비밀을 가진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발생되는 속도의 이탈이나 낙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불이익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겠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결코 이타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윤리적인 목적을 가진 행위는 어느 한 개인의 영혼을 붙잡아두지 못한다. 대상을 매혹시키는 것은 비밀 그 자체이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서 비싼 대가를 지불한다.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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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이사를 한다. 처음 이 집에 이사오던 아침에는 일찍 학교에 수업이 있어서 먼저 살던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 저녁때 이 집을 찾아 들어와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었다. 그 전에는 새로 이사올 집에 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라버니에게 어떻더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창문에 꽤 넓은 턱이 있더라고, 화분을 놓을 수 있겠다고 대답하면서 매우 즐거워했었다.

내일 밤은 이제 다른 곳에서 잠잘 준비를 하고 있겠구나 생각하니까 뭔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방에서 살면서 좋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 나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 만큼 이 방도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부기 : 사진은 오라버니가 필카로 찍은 것을 스캔해서 좌우가 바뀐 모양이다. 나무가 서있는 쪽이 내가 지금 있는 방 창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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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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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더니, 이렇게 예쁘게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워낙에 신문에 연재되던 내용이라 그새 '기억'이 되어버린 글들을 다시 쳐다봤더니 해당 내용이 신문에 실렸던 아침이나 그때쯤 내가 치렀던 시시껄렁한 일들도 같이 생각났다.

고종석이 가서 걸어다닌 도시 이곳저곳에는 언제까지 젊은 얼굴로만 남을 동료들이 있고, 잃어버린 친구와 그리고 등에 업힌 어린 자식과 총총히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모한 고집이나 순수한 감탄과 끈질긴 현실 감각이 이런저런 정보들과 뒤섞였다.-<아랑후에스 협주곡>은 피겨스케이터들이 배경음악으로 가장 선호하는 곡이고 미국인 피겨스케이터 미셸 콴은 2003년 워싱턴 세계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의 연주에 맞춰 펼친 연기로 생애 다섯번째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한다. 기자로 일했던 내공이 훅 풍긴다.

헤어진 애인에게 에둘러서 보내는 무지하게 긴 안부를 담은 편지인 것 같다.('내 손으로 추리고 묶어 네게 보내는 이 꽃송이들'-피에르 드 롱사르) 여러분! 수사나 페레스 렌돈 게레로를 찾아주세요! 그런데 꼭 '그 싱그러운 나이'여야 한다는거. 그러니까 그 사사로운 기억. 반짝 솟았다가 이내 사라지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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