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아 1호 - 창간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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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소설 애호가에게는 단비같은 잡지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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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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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더니, 이렇게 예쁘게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워낙에 신문에 연재되던 내용이라 그새 '기억'이 되어버린 글들을 다시 쳐다봤더니 해당 내용이 신문에 실렸던 아침이나 그때쯤 내가 치렀던 시시껄렁한 일들도 같이 생각났다.

고종석이 가서 걸어다닌 도시 이곳저곳에는 언제까지 젊은 얼굴로만 남을 동료들이 있고, 잃어버린 친구와 그리고 등에 업힌 어린 자식과 총총히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모한 고집이나 순수한 감탄과 끈질긴 현실 감각이 이런저런 정보들과 뒤섞였다.-<아랑후에스 협주곡>은 피겨스케이터들이 배경음악으로 가장 선호하는 곡이고 미국인 피겨스케이터 미셸 콴은 2003년 워싱턴 세계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의 연주에 맞춰 펼친 연기로 생애 다섯번째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한다. 기자로 일했던 내공이 훅 풍긴다.

헤어진 애인에게 에둘러서 보내는 무지하게 긴 안부를 담은 편지인 것 같다.('내 손으로 추리고 묶어 네게 보내는 이 꽃송이들'-피에르 드 롱사르) 여러분! 수사나 페레스 렌돈 게레로를 찾아주세요! 그런데 꼭 '그 싱그러운 나이'여야 한다는거. 그러니까 그 사사로운 기억. 반짝 솟았다가 이내 사라지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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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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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다. 어쩌면 미국판 상실의 시대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폴 오스터의 필력에 압도되었었다. 쉴새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주인공은 언뜻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이 정신 없는 애는 뭐가 되려고 이러나 하는 궁금증 때문에 끝까지 읽고, 또 그가 내가 살지 못한 삶을 살고, 가지 않은 길을 가서 마구 상처 입고 좌절하는 꼴을 보는 재미(?)에 재독 삼독하게 된 흔치 않은 소설이다.

무엇보다 오랜 걸인 생활 끝에 죽음의 위기에까지 처할 무렵의 주인공을 그의 친구 짐머와 훗날의 연인 키티 우가 찾아내는 장면이 압권이다. 못쓰게 된 물건처럼 변해버린 주인공을 보고 짐머가 처음으로 되뇌이는 말은 다음과 같다. (무슨 말을 많이 하고 싶은데 도저히 이 표현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이 멍청한 바보 자식아. 이 불쌍한 바보 멍청아." ("You dumb bastard. You poor dumb bastard.")

자기에게 허락된 것은 불행 뿐이라고 믿는 젋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힘들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그런 얘기가 좋다.  

부기 : 내가 직접 샀고, 그리고 한참 들고 다니면서 읽었던 이 책을 L에게 주었었다.("알라딘"을 알게 해준 분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L은 이후 달의 궁전을 새 책으로 또 사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C는 폴 오스터의 모든 작품이 담긴 책을(프랑스어판)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가난한 C가 한참 망설이다가 이 책을 샀을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작년 여름에 받은 이메일에는 보낸 사람이 이 책과 맺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게 너무 허무하기만 해서 나는 매우 슬퍼했었다.(이메일의 발신자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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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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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서 1987년 사이 약 석 달 동안 남부 유럽에서 전화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써내려간 소설이다. 그리고 이후 쌓인 소설의 여러 가지 유명세야 새삼 들춰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재작년쯤 유종호 교수가 일간지상에서 상당히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그때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앉아서 이건 그렇고 저건 조금 아니고 식으로 혼자서 기사 속 주장에 나름의 동의와 이의를 달았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냥 조금 끌끌 웃었다고 하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야 너무 익숙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어떻게 새롭게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소설을 통해 동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그 시대 역시 사회와 개인의 테두리 사이에서 싸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세대 혹은 시대 간 소통의 토대로서의 친숙함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나 "좁은 문"의 제롬도 알고 보면 당 세대의 젊은이들이었고 이 작품들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도 시대를 초월해서 이루어진 젊은이들의 공감이었다. 다만 청춘의 방황이라는 것도 시대의 영향 아래서 자유롭지 못한 관계로 그 형태와 모양이 이전 세대의 것과는 어쩔 수 없이 차이가 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동급생들이 데모를 하는 동안에도 강의를 듣고 있지만 교수가 부르는 출석 확인에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남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외무성이라는 국가 최정예 시스템에 들어가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조차 힘들고, 오늘날의 사회에 비록 노예제는 없어졌다지만 자본의 유무에 따라 여전히 다른 세계에 속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차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와중에서도 주인공 와타나베는 '올바르게 살겠다고' 결정하고 이미 죽어버린 고교 시절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난 지금껏은 열일곱, 열여덟인 채로 있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아. 나는 십 대의 소년이 아니니까. 난 책임이란 것을 느낀다. 아아, 기즈키, 난 너와 함께 있었을 때의 내가 아냐. 난 이미 스무 살이 된 거라구. 그래서 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실의 시대"는 1998년 6월에 나온 2판 63쇄인데, 1989년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메세지가 책의 앞뒤에 붙어 있다. 저자의 특별한 애정이 당시로서는 신선했을 거라고 짐작이 된다. 이 메세지의 말미에서 그는 젊은 세대 한국인 독자들의 감상을 편지로 보내준다면 기쁠 거라면서 영어나 일어로 편지를 써서 한국의 출판사로 보내달라고 그 주소까지 상세하게 적어둔 것을 볼 수 있다. (영어판이나 프랑스어판에서는 볼 수 없는 메세지다.)아마도 대체로 비슷한 사회적 상황을 겪으며 청춘의 날들을 보낸 한국 젊은이들의 생각을 무척 궁금했고 자신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의 모 일간지와 나눈 인터뷰에서 '한국에 매우 오고 싶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왔다 가고 싶다'고 말해 놓은 것을 보았다. 그 말처럼 정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국에 도착해서 어느 도시의 풍경 속에 미끄러져 들어가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익숙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작가를 상상하면 괜히 즐거워진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소설은 당대의 젊은이들을 고독하게 존재하는 가운데에서도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소설이 출간된 이후로는 약 20년, 저자가 보낸 스무 살 시절 이후로는 약 40년이 지났지만, 계속 살아가기로 결정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바치는 대가는 여전히 지불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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