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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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머리를 식힐 때는 하루키의 수필이 좋습니다. 솔직하고, 시원하고, 담백한 그의 글은 언제나 읽는 맛을 줍니다.

 

이 책은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소설가라는 점만 딱 도려내고 읽으면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적잖이 도움이 됩니다.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간인가'에서 하루키는 '링'에 비유해 소설가라는 일을 얘기합니다. 소설가를 떠나 누구에게나 링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승리(?)하려면 누구나 계속 써내려가는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소설가와 고시생의 지속성 차이는 '상상력의 지속성'과 '기계적인 지속성'인 것 같습니다. 쓰기 위해서는 상상해야 하는 소설가와는 달리 고시생은 이미 구축된 것들을 반복 반복 또 반복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신기하게도 뇌의 무궁무진한 능력입니다. 방금 읽는 것도 백지화 시켜 버리는 이 뇌의 힘! 두뇌풀가동을 아무리 해도 어떠한 무(無)로 돌아가는 이 재미!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와우! 서프라이즈!

 

어떤 날은 꿈을 꿨는 데 제 앞에 큰 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손에는 끌과 정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돌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머리 속에는 이런 조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계가 있었습니다. 설계대로 돌을 부수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하루종일 부쉈는데 귀퉁이만 조금 파낸 것입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는 데 그 잠깐 사이에 돌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 CIVA!!!' 하고 크게 소리치면서 꿈을 깬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의 링도 어렵기 마련이지요. 거기에 대해 하루키는 자세히 써 놓았습니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어쨋거나 상상력이나 기계적이나 지속성입니다. 그것만이 링 위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소설가가 된 무렵'에서는 소설가가 된 계기와 소설 창작의 비법(?) 등 이런 것을 써 놓았습니다.

 

아, 뭐랄까 여기서는 정말 하나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온 사람의 품격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거들먹 거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겸손함도 아닌 인간 그 자체로서의 솔직함.

 

그가 야구 구장에서 느꼈던 그것은 그야말로 추측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쭉 읽어온 독서로 축적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정도 사업이 여유로워지자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아닐까요?

 

자각이라도 해도 좋고, 뭐라 표현해도 상관은 없을 듯 싶습니다. 다만 저와 그가 다른 점은 저 역시 루쉰 선생의 수필을 읽고 사람의 육체가 아무리 강건한들 정신이 노예면 그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다. 정신을 개혁하는 데 제일 좋은 바로 문학이다라고 했던 그 구절에 감명 받아 문학을 해 보려고 했으나 전혀 글 한 줄 쓰지도 못 했습니다.

 

어느 순간, 어떤 기회에 누구나 무언가를 해볼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것은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듯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루키는 그걸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할까요? 자기 내부의 목소리 외침을 소중히 듣고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저는 그 소리가 들려올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그는 비둘기 온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그처럼 공부에 반드시 합격할 수 있다는 그런 비둘기 체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근처 도림천에도 비둘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안아 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뚱뚱합니다. 게다가 전투적이라고 할까요. 수십 마리가 무리지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무섭기까지 합니다. 안타깝게도 하루키가 말하는 애처롭게 떨고 있는 비둘기는 없습니다.

 

뭐 꼭 비둘기를 안으라는 법은 없겠지요...

 

하루키가 겪은 야구장에서의 감각, 그리고 비둘기를 통한 자각 그런 것들이 안타깝게도 저에겐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계시를 통해 고시생이 합격하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죠.

 

중요한 점은 그는 그 감각을 언제고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원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 입니다.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막히면 자신이 다시 출발할 그 원점.

 

그것은 무엇을 하든 간에 꽤나 중요한 일입니다. 저도 지금 하는 공부를 하며 겪는 이 고통이 하나의 원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성공해도 이 감각을 잊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문학상'에 대해서도 하루키는 담백하게 이야기 합니다. 문학상의 권위보다 중요한 것은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을 지가 중요하다는 사실. 소설가로서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길 읽으며 '아! 멋진 걸'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사회적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상들에 대해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저는 그가 여러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저런 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성실하게 써 가는 저 자세. 그것이 그를 지금껏 존재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 하루키의 수필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비법(?)이랄까요. 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인 그의 성실성입니다. 끊임없이 추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그것이 이 책 전반에 녹아 들어 있습니다. 역시나 일류의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선생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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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2016-06-01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쉰님 글은 오묘하게 푹 빠지게되는 매력이 있어요!!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글을 보고나니 읽고싶어졌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하루키 선생님 건강하세요. 그리고 루쉰님도요!!

루쉰P 2016-06-01 14:23   좋아요 2 | URL
ㅋㅋ 모든 책을 다 읽기에는 돈도 시간도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ㅋ 그냥 좋아하시는 책을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서재에 올 때면 너무 읽고 싶은 것이 많아 마치 아이가 홈플러스 장난감 코너에 온 기분이더군요.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제가 읽고 싶은 것만 읽습니다. 푸하 ㅎ 오늘도 날이 무척이나 덥습니다. -.- 그늘에서 화이팅 하세요 ㅋ

cyrus 2016-06-0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

루쉰P 2016-06-01 16:58   좋아요 0 | URL
ㅋㅋ 너무나 반갑습니다. 서재에도 들르지 못하고 너무 죄송해요 ㅠ 하지만 항상 하루키처럼 성실하게 쓰고 계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서재에서 만난 게 몇 년 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글 쓰는 실력이 많이 많이 느셨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루키가 말한 지속의 힘이지 않을까요? ㅎ 잘 지내시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전 써 놨듯이 고시원에서 열심히 스스로 수양 중입니다 후훗

cyrus 2016-06-01 17:09   좋아요 0 | URL
블로그 접속하는 일 가지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블로그는 심심할 때 보면 되는 거죠. 매일 접속해서 모든 이웃들의 글을 다 볼 수 없어요. 잘못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

루쉰P 2016-06-02 02:40   좋아요 0 | URL
역시 대인배 ㅋ 감사합니다. 그래도 들어가서 읽는 재미가 솔솔 한데 자신에 대한 여유가 없어 그러지를 못 하네요 ㅋ

이제는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겨서 서재도 구경 좀 조금씩 다니고 할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에 알던 분 중에 사라진 분도 계시고, 계속 계신 분도 계시고 하네요. 시루스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셔서 참 좋아요 ㅎ

다락방 2016-06-0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루쉰님.
:)

루쉰P 2016-06-02 12:13   좋아요 0 | URL
어쿠야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ㅎ 잘 지내고 계시죠? ㅎ 가끔씩 눈팅으로 보고만 갔지만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글을 쓰고 계셔서 역시나 다락방님이구나하고 생각을 했어요 ㅎ

전 너무 뭔가 날을 벼르는 사람처럼 뭔가가 한번 훅하고 몰아치면 부러져 버리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지난 시간 지내온 것 같아요 ㅋㅋ 그렇다고 뭐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좀 여유를 가지고 갈려고 해요.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진정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날 세우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ㅋㅋ

이렇게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오늘도 더워요 무쟈게 ㅋ 점심 맛나게 드셔요 ㅎ

감은빛 2016-06-2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님의 글을 읽으니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요즘 저는 좀 많이 지쳐서 일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창의적으로, 의욕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매너리즘에 빠져, 기계적으로 일을 하다보니 일이 잘 안 풀리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러도보니 더 지치고 피곤해지네요.

꾸준히 일을 하다보면 다시 재미를 찾는 계기가 생기겠죠?
가끔 다 때려치우고 몇 달만 조용히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해봤는데,
그럼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을테고,
당장 먹고 살 생활비가 부족할테니 그럴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요.

더운 날 힘 내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루쉰P 2016-06-23 01:35   좋아요 0 | URL
전 직장 다닐 때 공부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여기 와서 24시간 공부하니 다시 직장가서 일을 하고 싶더군요. 인간의 간사함이란 이 모양입니다. ㅋ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한 인생은 커다란 짐을 지고 고갯길을 올라간다는 말처럼 힘들어도 꾸역꾸역 오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이곳에서 매너리즘과 절망을 수없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고 자각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ㅋ

감은빛님도 화이팅이요 ㅋ

랄랄라 2016-06-2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여행안가신 이유가 이렇게 어려운 책을 마니 읽으시고, 공부만 하셔서 그렇다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전 여자분인 줄 알았어요...홍홍홍... 어뜨카면 서평을 이렇게 길게 적을 수가 있는건가요 루쉰P님....? 한수 가르쳐주십시오

루쉰P 2016-06-29 23:33   좋아요 1 | URL
ㅋㅋ 여자인 줄 아시다니 훗 인터넷에서는 양성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 같군요. 전 수염이 많이 나는 야성미 넘치는 남자입니다. ㅎ

아...어떻하면 길게 쓰느가...무엇보다 고시원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1평도 안되는 방에서 갇혀 있다보면 뭐라도 쓰고 싶은 욕구가 나옵니다. ㅎ 농담이구요. 전 사실 길게 쓰는 것이 좀 걱정이에요. 그냥 주저리 주저리 쓴다고 할까요....며칠에 걸려 써요...그다지 가르쳐 드릴 정도로 좋은 건 아닌 것 같네요 ㅋ

고양이라디오 2016-08-2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루쉰님 파이팅입니다.

루쉰P 2016-08-26 16:06   좋아요 0 | URL
그럴수가 ㅋㅋ 믿기지가 않네요 ㅋ 그 감정을 고스란히 쓰다니 ㅋ

네! 화이팅이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