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 아시아 설화 SF
켄 리우 외 지음, 박산호 외 옮김 / 알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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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설황, 제주설화와 SF의 만남으로 기대 이상이었던 작품집이다.

견우 직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온 켄 리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침 7월 7일에 이 책을 읽고 있었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10대 레즈비언 커플들 중 한 명이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어서 칠월칠석에 긴 헤어짐을 앞두고 있다. 거리가 멀어지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이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한 명은 긴 거리 연애도 가능하다, 어떻게 헤어지냐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각자 마음 아파하는 두 커플은 오작교를 만들려고 올라가는 까치들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보게 된다. 그렇게 롱디의 아이콘인 견우직녀에게 연애 조언을 받게 되고.. 


두번째 단편인 왕관유의 '새해 이야기'는 새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해라는 전설의 동물은 빨간 것과 불을 무서워하고, 인간의 공포를 먹고 산다. 인간들이 새해를 쫓아내고, 망한 현실을 버리고, 모두 가상 세계에만 빠져 있던 미래의 어느 시점에 새해를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가 새해를 깨워내서 부탁한다. 


홍지운의 '아흔 아홉의 야수가 죽으면'은 아흔아홉 골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다. 박력 있고, 아련하며, 위트 있다. 옛 설화의 야수와 미래의 헌터, SF 적인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고, 여운도 길다. 


요즘 좋아하는 작가인 남유하의 작품을 보게 되어 기뻤다. 설문대할망 설화를 모티브로 한 '거인 소녀' 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야기이다. 남유하 작가 다이웰 주식회사에서도, 그리고, 이 작품 '거인 소녀'에서도 엄마와 딸 이야기가 묘하게 까슬하게 나오는데,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의 발문에서 강지희 평론가가 이야기했던 한국 소설의 모녀 관계에 대한 글 읽고 나니, 계속 사례로 모으게 된다. 


이 작품집 읽고, 제주설화 관심가게 되서 제주설화 책도 주문했는데, 남유하 작가의 후기가 흥미롭다. 


"제주도 설화에는 거인이 많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그 거인들이 할머니, 할망이라는 것입니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 바다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영등할망. 저는 두 할망이 몹시 마음에 들었고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화에서 나타난 두 할망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거인이라는 점, 인간을 사랑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보답을 받지 못했다는 점. (..) 거인 할망. 힘을 가진 여성이 왜 이토록 외면받거나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이 이야기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소녀들.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부디 소녀들이 그들만의 섬, 이어도를 찾을 수 있기를." 


진짜 너무 좋다!! 


다음 작품은 남세오의 서복 설화에서 모티브를 딴 서복이 지나간 우주에서.

불안정한 탐라라는 행성에 살면서 우주로 잠수하는 이야기.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 대신 우주에 뛰어드는 잠수의 이야기를 썼는데, 멋지다. 작가들 대단해. 


그 다음은 후지이 다이요의 아마미섬 설화 


곽재식의 한라산 우인은 곽재식이 곽재식했네의 느낌. 


이영인의 용두암 설화에서 온 '불모의 고향'은 이 작품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편이다. 제주의 기류, 해류, 용류와 인류의 탄생에 대해 하필이면 탐라섬에 정착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초기 인류에 대해 그리고, 섬을 만들어 별을 관찰하고, 용류와 해류와 기류를 타고 노는 신과 같은 존재의 가문에 대해 나오는데, 여전히 미친 바람과 자연에 둘러쌓인 제주섬에 살다보니, 이 이야기가 정말 벅차게 와닿았다. 


윤여경의 원천강 오늘이 설화를 소재로 한 소셜무당지수도 좋았다. 오늘이 매일이 장상이, 고양이 로투스 (연꽃) 무당, SNS, 유튜브에서 성공해서 부자되기, 등등 블랙코미디 같으면서도 설화 모티브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이 단편집의 단편들은 너무 좋거나 좋거나였는데, 마지막 단편에서 한숨난다. 


이경희의 산신과 마마신 


산신, 마고신, 마마신이 나오는데, 설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저급하다. 

나쁜 왕이 있어서 산신과 마고신이 나쁜 왕에 맞설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가 마마신이다. 


나는 요즘 픽션의 윤리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는데, 이 작품 보고도 또 생각했다. 

재미도 없고, 설화 모티브 작품인데 설화가 후져졌고, 이야기도 결말까지 별로고,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장면들이 별 생각 없이 안 지나가진다. 


산신과 마고신이 별상을 강하게 만들어 성주에게 대적하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은 괴롭힘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시켜 왕따 시키고, 옥상으로 불러 폭력을 가하게 한다. 배 걷어 차고, 연초빵 하고 막 그런 장면 나와. 

별상은 자기를 낳아준 마고에게 사랑을 느끼고, 발기하고, 그걸 알게 된 마고에게 따귀 맞고 쫓겨남. 이 때 별상은 열다섯살의 몸을 가진 다섯살 아이였다. 마고의 반응으로 장면을 더럽게 만듬. 산신과 마고가 질척하게 자기 위해 울고불고 난리 난 별상을 매몰차게 내침. 별상이 성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성주는 여자들 잔뜩 끼고 있고, 가슴을 주무르고, 별상에게 여자를 대주고 이런 장면들이 이야기에 필요한가? 


나는 장르 소설을 많이 읽었고, 예전 소설들도 많이 읽어, 예전보다는 많이 가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혐이군 생각하고 넘어가는 편인데, 예전 소설도 아니고, 이제 쓰인 소설에 별 상관도 없어 보이게 저런 장면들이 들어가면 더이상 술술 읽히지 않는다. 


작가 후기 보면, 이야기에는 망할, 드러운, 죽어 마땅한 성주 얘기만 써 놓고, 성주가 별의 주인이라 멋있대.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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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인종적 세계관에 대한 도전을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라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그런 이유로 인종주의 체제와 우리를 연관짓는 모든 시도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부당한 도덕적 모욕으로 여긴다. 아무리 적은 인종 스트레스라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백인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암시하기만 해도 대개 일군의 방어적 반응을 보인다. 그런 반응에는 분노,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과 논쟁하기, 침묵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같은 행동이 포함된다. 우리 백인은 이런 반응으로 도전을 물리쳐 균형을 회복하고, 인종적 편안함을 되찾고, 인종 위계에서의 우위를 유지한다.
나는 이 과정을 백인의 취약성으로 개념화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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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s enthusiasm had its downside. In a town filled with people who liked to hear themselves talk, he had peer.
If a speech was scheduled for fifteen minutes, Joe went for at least a half hour. If it was scheduledfor a half hour, there was no telling how long he might talk. His solilo-quies during committee hearings were legendary. His lack of a filter pe-riodically got him in trouble, as when during the primaries, he had pronounced me "articulate and bright and clean and a nice-looking guy,"
a phrase surely meant as a compliment, but interpreted by some as suggesting that such characteristics in a Black man were noteworthy.

As I came to know Joe, though, I found his occasional gaffes to be trivial compared to his strengths. On domestic issues, he was smart,
practical, and did his homework. His experience in foreign policy was broad and deep. During his relatively short-lived run in the primaries, he had impressed me with his skill and discipline as a debater and his comfort national stage. Most of all, Joe had heart. He‘d overcome a 
bad stutter as a child(which probably explained his vigorous attachment to words) and two brain aneurysms in middle age. In politics, he‘d 
known early success and suffered embarrassing defeats. And he had endured unimaginable trag-edy: In 1972, just weeks after Joe was elected to the Senate, his wife and baby daughter had been killed and his two young sons, Beau and Hunter, injured in a car accident. In the wake of this loss, his colleague and siblings had to talk him out of quitting the Senate, but he‘d arranged his schedule to make a daily hour- and-a-half Amtrak commute between Delaware and Washington to care for his voys, a practice he‘d continue for the next three decades.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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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지에 나와 있는데 몰랐네. 고딕스릴러 단편집이다.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는 마지막 작품인 허희정 작가의 '숲 속 작은 창가에서' 에 나오는 문장이다. 


여자들이 사라지는 숲을 조사하러 내려온 피디가 사리지고 싶어 P시를 찾은 나에게 하는 말. 

"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책소개를 읽지 않아도, 제목만 봐도 어떤 책일지 알 것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고딕스릴러인지는 몰랐지만. 


작품들이 다 으스스하다. 어떤 장르였다고 해도 현실의 으스스함이 덮어졌겠지만, 대놓고 고딕스릴러들이라는 점이 읽고나니 더 인상 깊다. 




한국 작가들의 고딕스릴러를 아직 많이 못 읽어봤지만, 정말 잘 맞는 장르같다. 여자를 가두고, 죽이고, 사라지게 만들고.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이 아주 잘 쓸 수 있는 장르인 것 같다. 각각의 단편들도 다 수작이고, 잘 읽었다. 


책 말미의 강지희 평론가의 발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여자들이 실종되거나 죽고 난후에 남는 것은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견고한 현실과 무기력을 동반한 적막" 


소설을 읽고 읽으면 더 와닿는 발문이긴한데, 발문의 전문을 읽어보길 권한다. 


"2010년대 중반 득세한 가정 스릴러는 대개 남편의 폭력성이나 비밀스러운 과거가 문제의 중심에 있고, 이에 대응하여 능동적 가학성을 발휘하는 여성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문학에서 여성 화자를 내세운 심리 스릴러들이 보여주는 가장 뜨거운 애증은 다른 여성을 향해 있으며, 가학성은 기묘한 자기 처벌로 귀결된다. 그 근간이 되는 유서 깊은 모녀의 애증은 이 소설집 중핵에 있다. 


어머니는 자애와 희생의 존재로 신화화되는 대신, 냉담하고, 잔혹하고 징그럽기까지 한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죽음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어느 순간 증발하고 잊혀진 여자들은 생명을 줄 뿐 아니라 임의로 박탈하는 괴물적 모성이 지닌 권력의 이면이다. 이 가운데 평생 열정과 변덕으로 새로운 남자를 찾아 헤맨 어머니를 딸이 목 졸라 살해할 때, 한국문학의 오랜 모성 신화가 깨져나가며 새로운 권력 계승의 길이 열린다. (...) 모친 살해는 사회제도의 압력을 개인화된 불운과 추문으로만 경험해야 했던 여성들이 '종교'와 '친족'을 해체하고 레즈비어니즘으로 새로운 사회를 열어내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뿌리 깊은 애증과 불안의 부정적인 속성들을 유산으로 여기며 상속받을 수 있을 때, 여성들은 증여의 대상이 되거나 증발하듯 사라지기를 그친다. " 


한녀문학이라는 멸칭을 자조적으로 혹은 애증으로 말하곤 했다.(강화길 작품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좋아하는 작품에서도 독한 모녀 관계가 눈에 띄었는데 (남유하 '다이웰 주식회사' 같은) 위의 발문이 일정 부분 답이 되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정표가 하나 생겼으니, 계속 읽으면서 생각해보겠지만, 아버지에서 아들로 내려오는 유산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읽어왔는데, 어머니에서 딸로 내려오는 그 독하고 찐득한 그 정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거리가 생겼다. 


리뷰를 쓸 지 모르겠지만, 쓴다면 책도 별 다섯개. 흔한 콘셉트라고 생각했는데, 실려 있는 단편들의 수준도 높고, 발문까지 읽고 나니, 좋은 기획이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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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 책상생활자의 최신유행 아포칼립스
심너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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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이야기를 처음 한 것이 심너울 작가인지 모르겠는데, 아닌듯. 더 전에 다른 지면에서 읽었던 것 같다. 글이 안 써질 때, 막 잘 쓰려고 하지 말고, 헛소리를 쓴다 생각하고, 일단 쓰기 시작하라고. 아, 어떤 감독이 쓴 책이었던 것 같다. 쓰레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일단 쓰라는 얘기였던 것 같은데. 여튼,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완벽하게 쓰려고 끙끙대지 말고, 일단 헛소리든 쓰레기든 쓴다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하라는 얘기 였다. 


심너울 작가 트위터도 팔로우 하고 있었고, 특이한 작가 이름과 근래 신간으로 책도 (제목만) 종종 본 것 같은데, 에세이를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고 연 2500만원을 버는 것이 목표이고 거기까지는 이루었다고 하는 걸 보고 인상적이어서 사게 되었는데, 책 읽고 나니, 역시 그 부분이 인상적이다. 천선란 작가랑 친한거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들긴 했지만, 에세이는 안 사도 될 뻔 했다. 이십대 남자 작가 이야기 별로 안 궁금해서. 리뷰 보니, 너무 웃겼다고 하는데, 뭐가 웃겼던걸까? 어떤 책을 웃기게 보나 서재 들어가봤더니 리뷰가 이 책 하나네.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하는데, 요즘 관심 있는 부분이라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유심히 봤다. 병이라고 부르면 병이 된다는 이야기에 동의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고쳐 나가기 위해 이런저런 수단을 강구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힘들면 병원에 가는게 맞겠지만. 


작가 성별 헷갈리지 않는편인데, 헷갈렸던 두 명이 다 한국 SF 작가였다. 다른 이모 작가는 다 읽고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인터뷰 사진 보고 알아서 놀랐다. 이 책은 첫 장부터 소집해제 이야기가 나와서 알았다. 


지금까지 책 열 권 사면 아홉 권이 남작가 책이었던 것 같다. 의식하고 사기 시작한건 몇 년 안 되지만, 아직 3(남) 대 7 정도인듯. 여성작가를 밀어주기 위해 뭐 그런거보다는 남작가 책 많이 읽어서 여자 눈으로 보고 그린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고 와닿아서 그렇다. 


아, 힐다를 보겠어요. 힐다. 

그리고 심너울 작가 소설책도 읽어보겠어요. 사둔 책들 중 한 두 권은 더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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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7-08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너울 소설집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읽었어요. 제목에 비해서 (?!!) 소설은 재미있어요. 특히 중년남 중성화 시키는 이야기!

하이드 2021-07-09 04:51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제목들을 좀 싫어하긴 하는데 궁금하니깐 읽어봐야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