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에게 고한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0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비슷한 내용인지, 아니면 원작을 드라마화한건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범인에게 고한다' 이 부분을 일드에서 보고 엄청 오글거렸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서도 책에서도 클라이막스라면 클라이막스인데, 책에서는 좋은 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부분들이 너무 좋았어서 클라이막스가 별로 클라이막스로 느껴지지 않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과거에는 두 권으로 나누어서 나왔던 책이다.  주인공 경찰의 외모는 별로 상상 안 하려고 하는 편인데, 마키시마는 좀 궁금하다.와시 사건 전의 마키시마와 와시 사건 후의 마키시카 둘 다.

 

첫문장부터 재미있겠다! 싶은 경우가 있는데, 그 느낌이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김이 새버리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는 전자였다.

 

형사 일을 하다 보면 문득, 자신이 쫓는 범인에게 왠지 모를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인 마키시마도 좋지만, 주변 캐릭터 중에서 쓰다 경위가 나는 정말 좋았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건 아닌데, 쓰다가 나오는 모든 장면이 좋았고, 비정한 미스테리에서 보기 힘든 신선같은 형사였고, 별로 나오지 않지만, 딱 처음 나올때부터 이놈 뭔가 하겠구나 싶은 어리버리 오가와도 좋았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캐릭터들 다 등장하는 시리즈물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한 권으로 끝내기 너무 아깝다.

 

겐지라는 아이가 유괴된다. 경찰신고 없이 몸값을 전달하려다 막판에야 경찰에 연락하게 되고, 마키시마의 팀이 사건을 맡게 된다.

 

마키시마는 거실로 돌아가 가족에게 겐지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납치하다니 용서할 수 없군... 그런 감정을 북돋우고 사진을 돌려줬다. 그것이 작위적인 감정인지 본심인지는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저 절차의 하나로 기계적으로 한다는 인식이 없지만은 않았다.

 

이부분부터 좋았다. 대부분의 형사,경찰, 탐정 주인공들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보다 일을 우선하거나 하지만, 가족이 있는 경우, 누군가의 아들보다 자신의 가족이 소중하고, 매일같이 보는 험한 사건들에 가족들처럼 감정이입이 되기 힘들고, 감정이입해서는 안 되고 직업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키시마는 비포 앤 애프터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다른 캐릭터가 되어 나타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조직에 잘 적응하고(위에 아부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상부의 지시를 잘 따르고), 그러면서도 건조하고, 좀 더 현실적인, 현실에 있을법한 캐릭터이다.

 

 유괴범과의 줄다리기 끝에 몸값 전달은 실패, 범인 검거도 실패하고, 아이는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다. 그 과정에서 책임을 떠맡게 된 상사 대신 마키시마는 기자회견을 하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을 해버리고 만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아이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살에서 일곱살 사이의 남자 아이들이 죽는 사건이 일년여간 네 번이나 일어나게 되고, 경찰은 사건 해결의 실마리 없이 압박을 받게 된다. 새로온 출세지향주의자 소네 본부장은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검거율이 가장 높은 곳에서 수사관을 빼오는데, 6년전 겐지 사건때 실패했던 마키시마다.

 

6년여간 마키시마는 좌천되었으나 계속 형사로 일했다.

 

사건 이후의 처신이 타당했는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좌천된 시점에 일을 그만두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은 일종의 도망이었고, 연연하며 달라붙는 것 또한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어차피 마음속에 그 사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자신은 그런 방식으로밖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심경이었다.

 

굴욕적으로 좌천당했지만, 보기 좋게 사표를 내지도 못하고, 달라붙어 있지만, 그 역시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 말한다. 폐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패배했지만, 어쨌든 계속 직업으로 수사관으로서의 일상을 이어간다는 것.

 

육 년 전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은 변해 버렸다. 그만큼 크나큰 업보를 떠안고 말았다. 가족이 행복할수록 죄악감이 스멀스멀 고개를들었다. 그럼에도 이 행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그런 삶밖에 모를뿐더러 그러는 편이 자학적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좌천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주어진 임무에 몰두해 온 것도 그안에서 일종의 자학성을 느끼고,그것이 간신히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임무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에 잡아먹혔던 자신이 다시 텔레비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학 행위 이이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동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특별본부로 불려온 마키시마는 살인범을 인간쓰레기라고 했다가 살인범의 편지를 받은 방송국아나운서가 이끄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공개수사를 하게 된다. 이부분이 중심 이야기. 일년이나 끌어온 사건을 티비에서 설명하고 제보를 받고, 범인을 자극해 실수를 유도한다. 는 계획이다. 너무 드라마틱해보일 수 있는데, 아무리 경찰들이 발품을 팔아 목격자 제보를 받는다고 해도 두 번 가서 못 받은 걸 세번째 받기도 하고, (그말은 두 번 가면 못 받았을),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어 이야기 안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꺼림칙하게 남아 기억은 잘하는 그런 목격자들을 찾기 위해.라는 등의 디테일이 잘 설정되어 있고, 마키시마가 처음에는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다가 애초 계획에 따라 '범인을 잡기 위한 것'에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갈수록 욕 먹는 부분도 드라마틱하면서도 현실적인 전개라고 생각된다.

 

조직과 미디어, 대중을 견디며, 받아들이며 자신의 일을 하고, 죄책감은 자학으로 갚아나간다. 찌질한 범인도, 내부의 적도 다 있을법한데, 오직 쓰다만이 신선처럼 중간중간 나와서 독자도 마키시마도 유가족들도 힐링해준다.

 

범죄나 희생자보다는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명감이 필요한 직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고민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도 닿아있다.  쓰다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왔다면, 이 책에서는 좀 제일 허접해보이는 범인에 대한 어떤 '이해' 에까지 다다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옳고 그름의 답도 내리지못한 채 이번 일을 하고 있어."

쓰다는 딱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마키시마를 바라봤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몰두해도 속에 품은 마음 자체가 그러하니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약한 모습을 그대로 내비치자 쓰다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섬세하시군요."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섬세해질 만도 해.'

"글쎄요.....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의외로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사회 속에서 다들 자신만의 결론을 찾기 마련입니다."

"달관인지..... 무책임인지....."

"양쪽 다겠죠. 뭐든 다 제 갈 길을 찾아간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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