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알렉상드라 라피에르 지음, 함정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내 가슴에 카이사르의 혼을 가지고 있다. 고 말했던 그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최영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라는 책에서였다. 천편일률적인 포즈의 자화상들 사이에서 '화가 알레고리의 자화상' 은 '나는 여자가 아니라 화가요' 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최영미는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명한 그림들 중에는 성경속에서 강한 운명의 굴곡을 겪은 여성들을 따온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들로는 '유디트' 연작 이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 야엘과 시스라, 그리고 수산나와 두 늙은이까지.

 그녀는 당시의 흔치 않은 여류화가이며,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라는 역시 유명한 화가의 딸이고, 아버지의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고소해 유죄를 받아내는 당시에도 쇼킹하고 온 로마를 떠들석하게 만든 소송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동료에게 강간당하여 유디트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불행한 여자화가. 라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전 나의 생각이었다면,

이 두껍고, 글씨 많고, 재미 없으며, 알찬 책을 읽고 나니,
강간을 당하고 안 당하고, 소송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그녀의 삶은 불꽃같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돈과 사랑과 명예와 가족과 모성 등을 저울질할때 항상 그 반대편에는 '예술' 이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와 떼 놓을 수 없는건 '예술' 그리고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이다.
딸들이 아버지의 소유물이던 시절, 예술이 생사의 문제였던 시절,붓과 칼이 같은 손 안에 있었고 붓이 곧 칼인 시절이었기에, 둘은 모두 자신의 재능의 우월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언제라도 다른 하나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한 사람의 파멸을 바라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일들을 해치웠다.

평생에 걸친 아버지와의 대결. 증오, 사랑은 그녀가 평생에 걸쳐 부인했으나, 결국 내심으론 승복할 수 밖에 없는 서로에 대한 '인정' 이었다.

작가 알렉상드라 라피에르는 이 책에서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를 그리기 위해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온갖 사료들을 찾았다. 그런 그의 지식들은 17세기 로마, 피렌체, 나폴이에서의 '아르테미시아' 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주었다.

책이 지루하고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은 시간 순서에 의해 이루어져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연결이라기보다는 방대한 분량 내내 장면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시절, 왕들이나 제후들 그리고 교황들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손아귀에 넣고야 마는 편집적 수집가들이었고, 17세기 예술후원자들에게 화가, 조각가들은 교환화폐이자, 선전도구였다. 군주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그들은 밀사과 되었고,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루벤스와 벨라스케스. 그들은 밀사였고, 오라치오 젠틸레스키가 말년에 영국과 로마를 오갔던 것처럼 조국을 위해 이런저런 유럽의 운명적인 순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그들의 주인은 단 한사람이었다. 오직 하나, '예술'이었다.

탐욕스런 권력자들 앞에서 '그림이 법보다 위에 있었' 고, 교황 바올로 5세가 말했듯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화가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로마에서의, 피렌체에서의, 나폴리에서의 아르테미시아의 생을 그리면서, 각 도시의 정치, 예술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녀의 강간사건에 대한 법정공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로마법에 관해 꽤나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르테미시아.
그녀의 미모와 열정과 사랑마저 '예술에의 갈망' 에 대한 희생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름을 남겼다.
그녀의 그림들과 함께


나이나 환경이 너무나 다른 그 네 사람- 대공은 25세, 알로리는 38세, 부오나로티는 48세, 그리고 갈릴레오는 50세-은 동일한 미적 신념에, 동일한 지적 탐색으로 서로 결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때 추기경 스피치온 보르게세가 탄복했던 아르테미시아의 검고, 퍼렇고, 붉고 노란, 예전 초벌 작업한 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라는 카라바조 파의 대작에서 폭력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림 전면의 침대 시트에 평면으로 잘 얹혀진 칼날과 관객의 눈 아래, 시체 밖으로 도랑물처럼 흘러내리는 핏줄기들. 두번째 면에는 홀로 페르네스의 뒤로 젖힌 머리, 소리 없는 비명 속에 벌어진 입, 관객의 눈을 찾는, 도움을 애원하는 듯한 뒤집힌 시선이 있었다. 그 다음 관자놀이 위, 온몸의 무게로 짓누르며 희생물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는 유디트의 왼손. 마지막으로 빛을 끌어모아서 옷소매까지, 얼굴까지 끌어올려 평행선을 이룬 유디트의 두 팔... 여기 네 사람은 각자 피렌체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던 같은 주제를 그린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만의 비밀을 전부 꽤뚫고 있었다. 그러니까 베키오 궁의 한 살롱에 있는 조각가 도나텔로의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쳐들고 있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유디트는 폭군의 천막을 탈출하고 있다.
그러나 폭군의 목을 자른 희열, 부엌칼처럼 검을 다루는 능숙한 솜씨, 그리고 진짜 같은 피와 홀로페르네스의 정교한 해부 모형, 또 칼을 밀쳐내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팽팽해진 팔의 근육과 벌어진 채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것보다 살인 장면이 폭력적으로, 그리고 잔인하게 그려진 적이 없었다. (300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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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탈리스키
    from 고치 2007-09-02 01:01 
    사실 그 방안에는 아마인 유와 아교, 테레벤틴과 니스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몇 발자국 거리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견습생 둘이 구부린 자세로 희죽거리는 표정으로 물감을 으깨고 있었다. 주사에는 흰 대리석을, 청금석에는 붉은 얼룩 반암을 빻아넣고 있는 소리가 마치 심장의 박동처럼 무겁고 규칙적이며 뭔가를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 한낮의 빛은 돼지기름에 절인 종이 판대기를 투과해서 하나뿐인 창문을 통해 바닥에 크고 누런 빛 웅덩이를 만들
 
 
하이드 2005-11-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에서 팔아요.

chika 2005-11-2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친절한 하이드님. ^^;;;

비로그인 2005-11-2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장의 목을 베는 저 손은 저렇게 듬직함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생각해보면 파리 한 마리 못잡을 듯한 여리여리한 손으로 목을 베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듭니다. 섬섬옥수가 더 잔인한 법이니까요.

누에 2007-09-0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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