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지음, 강미숙 옮김 / 창비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원서로는 그닥 두껍지 않다던 '화이트 노이즈' . 여러가지 면에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소설이었기에, 무슨무슨 읽어야할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핀천과 비교되는 이 대단한 포스트모던 작가의 대단한 소설 '화이트 노이즈' 에 과감하게 별 세개를 줘 버렸다.

이 '가장 재미없는 미국식 시트콤' 의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잭 - 컬리지 온 더 힐의 히틀러학과의 창시자이자 교수.
첫번째 부인, 두번째 부인,세번째 부인
네번째 부인 베비트 - 넉넉한 몸매의 헝클어진 금발. 자세교정 수업을 한다.
하인리히- 머리가 빠지고 있는 재난광 아들 . 첫번째 부인과의
스테피 - 토스트 태워 먹기를 좋아하는 딸. 두번째 부인과의
드니스 - 의학용어집을 끼고 사는 베비트의 딸 . 전남편과의.
와일더 - 아기. 몇번째 부인과의 아기인지 생각안남.
비 - 정글을 돌아다니는 아빠와 첩보원 엄마(두번짼가 세번째 부인)를 가진 씨니컬하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녀.

워낙에 책 적으면서 보지 않는지라 두번째가 아니라 세번째잖아류의 지적 환영.
잭의 가족사항만 일단 저 위와 같다. 베비트를 뺀 모든 부인들은 CIA 나 뭐, 그런 류의 스파이들이다.

그 외 등장인물론 잭의 히틀러학과에 감명받아 엘비스학과를 만든 머레이. 독일어강사. 독사와 함께 있기 기네스 신기록을 세우려는 하인리히의 친구 등등등이다.
등장인물서부터가 신경을 박박 긁는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주변의 가장 짜증나는 인간의 그 짜증나게 하는 요소를 뻥튀기 기계에 집어 넣고 한 백만배쯤 부풀렸다고 생각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불쌍한 코차키스, 파도에 밀려 실종되다니." 내가 말했다. /"그렇게 거구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그 사람 정말 거구였죠."/"정말 컸지요."/"저도 할말이 없답니다.  저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 외엔 말이죠."/"분명 300파운드는 나갔을 겁니다."/"오, 그럼요."/"어떻게 생각하세요,290이었을까요, 300이었을까요?"/"300은 족히 나갔을걸요."/ "죽었군요. 그렇게 거구인 사람이 말예요."/"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나도 거구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그 사람은 차원이 달랐죠. 선생님도 나름대로는 큰 편이구요."/"내가 그이를 알아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전혀 몰랐어요."/"사람들이 죽으면 그들을 모르고 지낸 게 더 낫습니다. 그 편이 더 나아요."/"그렇게 거구인 사람이, 그렇게 죽다니."/"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파도에 휩쓸려가버린거죠." ...(294 pg - 295pg)

이런식으로 계속되는 대화는 책의 아주 첫장부터 끝장까지 인물과 배경이 바뀌며 계속 나온다.

'화이트 노이즈'란 전자제품에서 나는 잡음, 음향신호를 말한다. 책 중간중간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들과 중간중간에 알 수 없는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피카소. 미로. 스쿠터.
집중력이 조금만 흐려지면, 읽고 있지만, 전혀 생각 안나는.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가야하는 책이다.

책의 몹시 첫장부터 내가 주워만 듣던 보드리야르의 씨물라씨옹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 ' 미국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헛간' "사진이 찍히기 전에 이 헛간은 어땠을까요?" 그가 물었다. "어떻게 생겼을까요? 다른 헛간과 어떻게 달랐고 어떤 점이 비슷했을까요? 우린 이런 물음에 답할 수가 없어요. ㅣ미 표지판을 읽었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봐버린 때문이죠. 우린 이 아우라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요. 이 아우라의 일부인 거죠. 우린 여기에 존재하고, 우린 지금 존재하고 있어요." (26 p) 아무리 무식으로 무장하고 보려해도 결코 만만치가 않은 책이다.

책의 배경은 '블랙 스미스' 란 마을. ' 칼리지 온 더 힐' 이란 대학. 옆마을인 '아이언 씨티' 이다.
내가 책 읽는 와중에 도대체 언제 나오냐고 투덜거렸던 검은 구름은 책의 반 정도인 2부에서나 나온다.
유독화학물질 구름이 치솟고, 사람들은 대피한다. 이쯤 얘기했으면 스팩타클한걸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 이 책의 기사에는 이미 결말까지 다 나오긴 하지만, 그나마 이 책을 접할 다음 사람이  책장을 넘기게 해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힘을 보존하기 위해 베비트가 복용하는 '다일러' 라던가 미스터 그레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껴두련다.  

이 책의 몇가지 키워드는 ' 죽음에 대한 공포' , '텔레비젼' , ' 물질주의 사회' . ' 히틀러' 등이다.
답지 않게 일주일이나 붙잡고 있었던 책이지만, 골치아프기에 좋은 책이었다. 간만의 뇌운동.
조르디. 퓨마. 질샌더.

기사 검색하다 발견했는데, 이 강의실교본으로나 쓰일법한 돈 드릴로의 소설이 우리나라에 번역된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다! 라고 했는데, '카트리나로 드러난 미국의 치부와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관심을 끄는' 이라는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보니, 설마, 카트리나 덕분에 나온거야?! 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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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10-0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문이 불여일견.
저, 대사들 쥑이네요....-,.-

panda78 2005-10-0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카트리나 덕분에!
뭐 어쨌든 다양한 책 나오면 좋죠. ^^
질 샌더라... ㅎㅎㅎ